[무비스트=류지연 기자]
<인천상륙작전>이 누적관객 600만명을 넘으며 흥행하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많은 관객들께서 봐주시고, 또 잘 봤다는 분들이 많아서 기쁘다.
영화에 대한 아쉬운 평가와는 대조적인 흥행결과다.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현상이 있는 것 같은데, 감독 개인으로서는 좀 아쉽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는 것 보다, 다른 잣대로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일부의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영화를 영화로만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첩보전, 후반부는 전쟁물이다. 첩보전에서는 서스펜스를 이끌어내야 하고 전쟁물에서는 스케일을 중시했을 텐데,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 있다면.
오래 전에 연출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같은 작품을 보시고 적잖은 분들이 감정을 밀도 있게 묘사한다는 평가를 해주셨었다.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중점을 두고 싶었던 것은 첩보전의 심리전이었다. 여러 캐릭터의 감정들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쌓여가길 바랐다. 전쟁영화지만 폭발과 전투 씬만 시종일관 이어지면 좀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이야기가 잘 드러나길 바랐다.
그렇다면 완성된 영화를 보고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어디인가.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 점이 아쉬웠다. 시간을 좀 더 투자했으면 컴퓨터 그래픽이나 영화의 완성도가 좀 더 높아질 수 있었을 텐데. 개봉일정이 정해진 영화였기 때문에 몇 개월 만에 후반작업을 마쳐야 했다. 촬영기간도 부족했다. 12월 4일에 크랭크인해서 3월 11일에 크랭크업했으니 3개월만에 촬영을 마친 셈이다. 작년 2월에 이 작품에 합류한 이후로 정말 쉬지 않고 작업을 했다. 아무튼 시간이 모자랐던 점이 가장 아쉬웠다.
<인천상륙작전>의 애국주의 코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 질문을 받으면 애국주의의 정의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애국주의와 같은 이념을 넘어서 작전 속에서 활약했던 첩보대원들과 군인, 일반 시민들의 희생정신과 숭고함, 전우애를 다루고 싶었다는 거다.
영화를 통해 이념을 전달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뜻인가?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소재와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노력, 희생을 다루고자 했던 점이 주제였다. 또 그러한 역사적으로 방대한 이야기들을 기승전결이라는 영화의 구조 속에 잘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 애국주의가 목표지점은 절대 아니었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앞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캐릭터를 구축함에 있어 북한 사령관인 림계진의 모습이 평면적으로 그려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선 이 영화의 소재는 인천상륙작전이다. 인천상륙작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성공이라는 결말을 가지고 있다. 두 시간 동안, 영화의 서사구조 안에서 이야기가 움직이려면 대결구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역사의 팩트를 뒤져봐도 남과 북의 대결구도가 존재한다. 대치상황인 것이다. 이 영화의 소재이자 성공한 작전인 인천상륙작전을 묘사하면서 대결 구도를 버리면 이 영화와 이야기가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결 구도를 버리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물론 이처럼 다른 이야기를 기대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전쟁 속의 대치 상황을 넘어서 인류애를 그리는 영화가 있는 반면, 대치 상황 속에서의 강한 대결을 밀어붙여 한 편이 이기고 한 편이 지는 구도를 채택하는 영화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림계진 캐릭터를 구성할 때, 파타고니스트인 이정재 캐릭터와 앤타고니스트인 림계진 캐릭터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범수씨도 선명한 대결구도를 원했고,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캐릭터가 모호한 쪽 보다는 악랄한 쪽으로 진화를 해갔던 것 같다.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소재는 선명한 대결구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팩트였다. 팩트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리암 니슨의 캐스팅은 어떻게 성사된 것인가? 같은 에이전시 소속이라는 기사를 봤다.
처음에는 리암 니슨과 같은 소속이라는 걸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후, 헐리우드에 있는 내 에이전트가 리암 니슨의 에이전트에게 나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작품들을 보여줬다. 사실 그 이전부터 제작진들이 사전작업을 많이 했었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리암 니슨 역시 다른 배우와 다름 없이 감독을 보고 시나리오를 본다는 것이었다. 리암 니슨에게 내 작품들을 보냈고 출연을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을 때,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다. 혹시 나 때문에 안 되는 건 아닐 까 여러 고민을 했었는데 흔쾌히 수락을 해서 너무 기뻤다. 촬영 내내 코드가 잘 맞고 좋은 배우여서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인천상륙작전>에 이어지는 영화 <서울수복>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거기서도 리암 니슨이 출연하나.
잘 모르겠다. 속편과 관련해서 정해진 것은 없다.
유난히 합작영화나 국경을 넘나드는 영화를 많이 찍었다. 데뷔작인 <컷 런스 딥>은 미국에서 촬영된 영화였다. 뉴욕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한 후 데뷔작은 어떻게 찍게 되었나.
<컷 런스 딥>은 뉴욕에서 찍었던 영화였고 뉴욕의 아시아 배우들과 함께했던 영화다. 대학을 졸업하고 데뷔작으로 만들려고 사실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준비했었다. 그러다 정말 운 좋게 운명적으로 투자자를 찾게 됐다. 적은 예산에 신인 배우들을 데리고 찍었는데 후반 작업 비용이 모자라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한국 배급사와 연이 닿아서, 투자를 받아 <컷 런스 딥>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인연으로 한국에서도 영화가 개봉을 할 수 있게 됐다. 작품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자연스럽게 차기작인 <내 머리 속의 지우개>도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맡게 됐을 때 멜로 장르여서 조금 망설였다고 들었는데.
평소에도 멜로 영화를 잘 안 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공상과학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모든 영화는 어차피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장르는 별로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멜로든 공상과학영화든 인간의 감정을 얘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끔 멜로 장르와 전쟁 장르에 치중한다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잘 모르겠다. 요즘 추세인 건지는 모르지만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오히려 되 묻고 싶은 점은, 특정 감독이 장르적 전문성을 가져야 하냐는 거다. 내가 만일 다음 작품으로 아주 강렬하고 엽기적인 스릴러를 들고 나온다면 또 다시 의아해하실 것인 것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만 좋으면 어떤 장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이야기를 다루는 멜로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찍기 쉽지 않은 장르이긴 하다.
본인에게 찍기 쉽지 않은 장르인가?
잘 만들기 힘든 장르라고 생각한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들, 보이지 않은 것들을 표현해야 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총도 없고 폭발 따위도 없다. 전쟁영화 같은 경우 보여지는 것들이 많은 반면, 멜로 영화의 경우 인간들의 감정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 때도 있다. 미장센 등 신경 써야 할 요소들도 굉장히 많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사요나라 이츠카> 같은 경우 화면이 아름답고 여배우들이 예쁘게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미학적인 아름다움도 영화를 이루는 요소 중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부터 <사요나라 이츠카>, <제 3의 사랑>까지 이른바 ‘한중일 멜로 3부작’을 찍었다. 제작과정을 통해서도 느끼셨겠지만 작품을 만들고 이해하는 과정에서도 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중요할 것 같다.
그 동안 살아온 배경 때문일지 모르겠는데, 다른 문화를 바라볼 때 편견 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런 자세가 여러 나라를 오가며 작품을 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영화를 만들 때 중국 관객은 어떻게 공감할 것이냐, 일본 관객은 어떻게 공감할 것이냐를 굉장히 중요히 여긴다. 그래서 차후에 그 나라의 관객들이 봐도 어색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고마웠다. 또 영화는 말이 필요 없는 공통언어이기도 하다. 소리를 끄고 봐도 어떤 나라 사람이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미국에서 성장하고 공부한 경험이, 미국적인 감성이 내면에 축적되도록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그런 질문을 들으면 되묻고 싶은 것이 한국적인 건 무엇이냐는 거다. 외국에서 인기를 얻는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볼 때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 예쁜 것? 이 질문을 들으니 굉장히 오래 전에 들었던 지적이 생각난다. 분명히 한국 영화인데, <내 머리 속의 지우개>도 그렇고 희한하게 ‘빠다냄새’가 난다는 말이었다. 분명히 한국 배우들과 한국에서 한국말로 찍었는데 ‘빠다 냄새’가 난다고. 반면 같은 영화인데도 미국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동양적이다라는 상반된 의견을 들어서 재밌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건 보고, 관찰하시는 분들의 이야기인데, 나는 그냥 내가 좋은 것들, 내 눈에 맞는 것들을 하는 것일 뿐이다. 내 자신을 아주 객관적으로 평가하길 바라는 질문인데, 나는 내 안에 지성적으로, 감성적으로는 잠재되어 있고 반응하는 것들을 묘사하고 찍는다. ‘이 부분은 미국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은 한국적인 부분이다’를 생각하며 계산적으로 연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연히 살아왔던 배경은 반영이 될 거다. 그런 면에서 내 영화가 글로벌 시대에 글로벌한 감성을 담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 동안 해왔던 장르를 벗어나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는가.
안 해본 것들 중에는 SF영화나 애니메이션, 코미디, 스릴러 등을 찍고 싶다. 장르를 따라가기 보다는 그 안에 어떠한 이야기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야기에 먼저 반응했는데 새로운 장르라면 더더욱 좋고.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비극에 끌린다. 주로 비극에서 진실이 많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굉장히 잘 만든 비극영화는 사랑의 가치라든가 삶의 가치에 대해 더 깊은 통찰을 하게 해준다. 내가 그 동안 그려왔던 영화나 캐릭터도 주로 비극적인 것들이었다. 희극보다는 확실히 비극에 더 끌린다.
지금 바로 떠오르는, 좋아하는 비극적인 영화는?
굉장히 많다. 주로 고전 영화들을 좋아한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비극들도 좋아하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같은 영화도 좋아한다. 서사구조로 보면 <블레이드 러너>같은 공상과학영화도 희망을 담고 있긴 하지만 모호하게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악당이 죽을 때 굉장히 비극적이다. 상당히 많은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아주 옛날 영화인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부터 <다크나이트>도 좋아한다. 주로 비장한 느낌이 나는 영화를 선호한다.
좋아하는 영화 등에서 영향을 받아 자신의 작품에 인용하기도 하는가?
많은 예술가들이 다른 타 예술가들의 좋은 면을 빌려오면서 자기 것으로 해석해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낸다. 바보 예술가는 표절을 하고 천재 예술가는 인용을 한다는 말도 있다. 나도 물론 참고를 많이 하지만 영화 속에 직접적으로 인용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들은 없었다. 이번 <인천상륙작전>때는 첩보 영화의 고전부터 시작해서 성공작으로 간주될 수 있는 시리즈물들을 참고했다. 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 한국에는 첩보물은 별로 없어 참고하기 어려웠다.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나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
정태원 대표가 디렉터스 컷을 만들기 시작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가장 행복했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웃음) 이 영화를 시작할 때 정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빡빡한 일정에 맞춰서 완성을 하고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을 때도 행복했다. 최근에는 그렇다. 디렉터스 컷이 극장에 걸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만들고 있다.
2016년 8월 23일 화요일 | 글_류지연 기자 (jiyeon88@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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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박광희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