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장길수 감독이 신작 <초승달과 밤배>의 개봉 소식을 접했을 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실낙원> 이후 그는 별다른 소식 없이 영화계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장길수 감독의 입을 통해 그가 하루도 영화현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음을 우리 멋대로 그가 사라졌다고 결론 내렸음을 알았다. 7년을 대장장이처럼 다듬고 기다려서 개봉을 하게 된 <초승달과 밤배>는 ‘장길수 감독의 작품이 맞아?’ 하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변화되어 있었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등등, 한국 근대사에 냉철한 시선의 잣대를 들이대 당당하게 한국 영화의 뉴웨이브를 일으켰던 그에게 반가운 마음보다 궁금한 게 더 많아 인터뷰를 요청했다. 故정채봉 작가의 슬픈 동화『초승달과 밤배』를 영화화한 작품을 통해 그는 감독으로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었다.
7년이라는 시간동안 현장을 떠나 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봉과 배급의 문제 등, 달라진 현 영화산업구조 때문에 자신의 영화를 창고에서 오래도록 묵혀두어야 했던, 고단한 개봉과정을 들어보자.
영화를 만들기도 오래 걸렸고 중간에 삐걱거리기도 했다. 개봉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다.
영화가 완성 된지는 2003년이다. 왜 지금까지 개봉이 늦춰진 건가? 특별한 사연이 있을 듯한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봉이 늦어진 이유는 딴 데 없다. 돈과 영화산업구조가 우리 영화<초승달과 밤배>와 안 맞아서 개봉이 늦어진 거다. 결국 돈 문제다. 개봉을 하기 위해서도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제작은 말할 것도 없다. <초승달과 밤배>를 저예산으로 찍을 생각은 없었다.
등장인물도 많이 나오고 시대배경 자체가 70년대라서 세트 비용만 해도 만만치가 않다. 아이들이 시골 갯벌마을에서 대도시로 유랑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나는 영화이기 때문에 결코 적은 돈으로 찍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이런 돈 문제가 중첩되면서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마케팅 지원을 받아 그에 맞는 소규모 개봉을 하게 된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어떤 점에서 <초승달과 밤배>가 요즘 한국영화의 산업구조와 반목되는 부분이었는가?
소재 때문이다.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특히 ‘난나’의 여동생 ‘옥이’는 곱사등이다. 그러다 보니 스타가 출연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가 아니어서, 투자받기가 어려워졌다. 내용도 강하고 흥행요소가 있는 스토리라인이어야 하는데, 우리 영화는 아이들의 눈을 통한 잔잔한 감동이 전해지는 작품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만나는 여러 인물들과의 에피소드를 느슨한 구조로 묶어서 따뜻한 감동을 전달하는 게 작품의 의도다. 이런 부분이 상업영화로서의 성격을 지니지 않았다고 제작사나 투자자들이 생각한 것 같다.
제작단계에서부터 투자 받기가 어려웠는데 끝까지 작품을 밀고 나간 데에는 감독으로서의 고집보다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듯한데...
보는 사람들한테 (원작소설을 읽고) 내가 느낀 감동을 똑같이 전달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만들었다. 제작자들도 “되겠냐? 어렵다”하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 벽에 부딪쳤다. 결국에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작비를 받아서 직접 제작을 하게 됐는데 신씨네와 공동제작이 이루어져 간신히 영화를 완성하게 됐다.
고충이 참 만아겠다.
재주가 모자란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하려니 삐걱거린 거다. 지금까지 14편의 영화를 감독하면서 내 스스로 감독이라는 본업을 잊은 적이 없다. 그런데 <초승달과 밤배>는 사람이 없으니깐 할 수 없이 제작 일까지 겸할 수밖에 없었다.
7년 전 <실락원>을 작업했을 때와 현 영화시스템은 많은 면에서 달라졌다. 스스로도 제작과 마케팅을 겸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생각도 많이 변했을 듯하다.
내 생각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사회적인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점점 내가 연륜이 들어가면서 자꾸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하게 되고 그런 주제들이 눈에 자꾸 눈에 띈다. <실낙원>, <아버지>같은 작품들도 어떤 면에서는 결국 ‘가족’문제를 그리는 거다. 그런 면에서 <초승달과 밤배>는 이런 변화와 사회에 대한 시선이 모두 담긴 작품이다.
<초승달과 밤배>에 그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는 말에 동감한다. 그러나 예전 영화(‘은마는 오지 않는다’, ‘웨스턴 애비뉴’, ‘실락원’등등)를 보면 지금의 변화는 장길수 감독의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달라진 거다. 그전에는 작품의 구성이 쌨다면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느슨하게 이야기를 구성했다. 원작자체의 에피소드들 하나하나가 나의 심금을 울리면서 카타르스시를 느끼게 했다. 내가 느낀 이런 감동을 영화에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 관객에 보여주고 싶어, 전과는 다르게 서정적인 분위기 위주로 그린 거다. 또한 항상 여건이 불충분한 가운데 작업을 해서, 이전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배우를 캐스팅하고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 전에 ‘최진실’, ‘심혜진’, ‘손창민’에게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 새로운 배우로서의 역량을 과시하게 발판을 마련해 주었듯이 말이다.
연기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보는 편이다. ‘난나’의 선생님으로 우리 영화에 출연하는 ‘장서희’씨 같은 경우 우리 영화를 찍을 당시보다, 지금은 큰 배우로 성장한 한 상태다. 그런 것을 유념해두고 장서희씨를 캐스팅한 것은 아니지만 같이 작업을 할 당시부터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아 연기력도 좋고 성실한데 톱클래스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크게 성장할 배우라고 나름대로 예상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장서희씨의 캐스팅은 우리 영화에 득이 된 것이다. 그녀가 배우로서 크게-스스로 기회를 잡아- 성장한 모습을 보게 돼, 감독인 나도 참 뿌듯하다. 이 말은, 연기력과 성실함을 겸비한 톱스타가 요즘 보기 힘들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스타는 많은데 장서희씨 같은 배우는 참 드물다.
주인공 난나를 연기한 이요섭군과 옥이로 분한 한예린양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는가?
사실, 얼마 전에 가졌던 언론시사회 자리에서 요섭이와 예린을 만났는데 그 동안 많이 컸더라. 영화에 캐스팅할 때, 이 둘은 실제 연기경험이 없는 상태였지만 (연기)훈련은 잘 되어 있었다. 또, 주인공 난나와 옥이의 이미지가 이들의 얼굴에 어려 있더라.
사실 나도 그날(언론시사회) 두 주인공 난나와 옥이를 보니, 지금 와서 개봉하는 <초승달과 밤배>에서 세월이 흔적이 보여 감상적인 기분이 들게 하더라.
그전에 작품을 했던 분들도 있고, 난나와 옥이의 할머니로 등장하는 강부자씨는 자신이 영화연기에 열정을 가지고 있어서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혀 캐스팅하게 됐다. 우리가 출연자분들에게 넉넉하게 출연료를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모두 선의를 가지고 좋은 작품 한 번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한 거여서 차비정도의 출연료만 받고 연기를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일우 선생도 우리 영화에 출연했고, 요즘 가장 바쁜 조연배우로 명성을 쌓고 있는 기주봉씨도 난나의 삼촌으로 등장해 영화를 빛내 주었다. 연극계에서 유명한 이인철씨도 약장수로 출연해 주인공 이요섭과 한예슬의 연기지도를 현장에서 해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멍석만 깔아주고 전체적으로 장면 장면을 만들어 갔을 뿐이다. ‘양미경’씨 또한 우리 영화에 호의를 가지고 출연해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얘기를 듣다보니 배우만큼이나 감독님도 참 성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성실하게 작품을 만들어 왔는데, 14편의 영화 중 원작소설을 영화화 한 경우가 참 많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내가 소설읽기를 좋아하다 보니, 소설에서 소재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단순히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게 아니라, 인물의 다양한 심리 상태나 관계를 영화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열망이 남들보다 강한 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많이 해서 그러지 종종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만들려는 제작사 측에서 감독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그래도 내가 감독한 14편의 영화 중, 4편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작업했다.
<초승달과 밤배>를 만들고 개봉을 준비하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고, 새로운 신진감독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들을 한국 영화의 ‘뉴 웨이브’라 칭하는데 80년대의 ‘원조’ 뉴웨이브로서 기분이 남다를 듯하다.
아까 얘기했듯이 이 영화를 만드는데 7년이 걸린 거지, 5년 정도 쉬었다가 2년 만에 영화를 완성한 게 아니다. 내가 작품을 만드는 사이, 많은 감독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한국영화가 발전했다. 더불어 영화를 제작하는 환경도 많이 변화됐다. 나에게도 뉴 웨이브 시절이 있었고 다 한 번씩은 뉴웨이브 시절을 겪었을 거다.
변화된 시스템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아무리 예전에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 치더라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연유로 인해, 현재 새로운 감독들이 현 영화계를 주도한다고 본다. 신진대사라고 본다. 나도 적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고 <초승달과 밤배>를 개봉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감독 본인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감독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다음 작품은 <초승달과 밤배>처럼 오래 기다리지 않고 빨리 만나보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러려면 내 작품을 보기를 희망하는 팬들이 훨씬 많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래도록 작품 활동을 쉬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후배감독들에게 배우는 자세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번창하는데 기여하고 싶다.
<초승달과 밤배>의 개봉을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어떤 활동을 했는가?
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그래도 남는 시간이 있다면 다음 작품을 준비하며 보냈다. 두 작품을 진행 했었는데, <초승달과 밤배>를 제외하고, 한 작품은 1년 정도 진행하다가 중단됐고 또 다른 작품은 보류 중이다. 완전 중단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문제로 뒤로 미뤄진 상태다.
아무리 현 영화산업이 변한다하더라도 이것만큼은 결코 감독으로서 변하지 않고 끝까지 가지고 가야할 게 있다면 무엇인가?
후학을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업이 감독이니 평생 감독으로서 일하고 싶다. 학생들한테도 이런 말을 한다. ‘자기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어라’ 그들에게 내가 이렇게 가르치듯이 나도 내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더불어 삶에 위안이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작품을 만들 거다.
못 다한 얘기가 있으면 마지막으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해줘라
말을 들어보니 편집권이 없는 감독도 요즘 있다고 하더라. 그만큼 상업성이 강화된 작품이 많이 기획되고 또한 흥행성이 검증된 영화들에게 투자가 몰리기 때문에 그런 병폐가 생긴 것 같다. 그 시류에 맞추지 못하면 작품을 찍을 기회가 적다고 한다. 아니면 김기덕 감독처럼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하던지...
나 자신도 능력이 모자라지만 관객과 소통할 통로를 현 영화산업에 안착해 찾기보다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 개척해 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늦게나마 소규모로 <초승달과 밤배>가 개봉돼 영화를 같이 만든 스텝들에게 보람이 돌아갔으면 좋겠다.
취재: 최경희 기자
사진: 이한욱 PD
영상: 권영탕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