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연>의 한국개봉 홍보차 내한한 중국의 국민감독 펑 샤오강 감독을 지난 19일 W호텔에서 만났다. 중국영화의 현실과 아시아 영화시장에 민감한 관심을 갖고 있는 펑 샤오강 감독은 <야연>이 중국영화의 현실과 미래를 점쳐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소개했다.
아직 한국에선 장이모우, 첸 카이거보다 덜 알려진 감독이라 볼 수 있지만 중국본토에서는 중국의 스필버그라 불리면서 최고의 인기감독으로 인정받는다고 들었다.
나는 대중영화감독이다. 장이모우나 첸 카이거는 중국의 현실을 담은 예술영화로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세계에 먼저 알려졌다. 장이모우, 첸 카이거보다 덜 알려진 이유는 그런 이유 때문일 거다.
그렇다면 <야연> 이전의 작품은 어떤 성격의 작품들이었나?
주로 코미디를 많이 했다. 중국 소시민들의 삶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나갔다. 내 영화에선 대사의 맛이 중요한데 해외수출 할 때는 그게 장애가 됐다. 그 맛을 살리지 못하는 번역 때문이다. 2004년에 만든 <천하무적>은 부부 도둑이 한 마을에 도둑질하러 갔다가 그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만든 코미디영화다.
<야연>은 확실히 당신의 전작들과는 분위기와 스타일이 정반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떠오르게 하는 스토리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당신의 변화에 중국 국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극과 극이다. 한쪽은 내 영화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전 영화들을 좋아했던 팬들은 다시 코미디하라고 한다. 아마 나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낀 것 같다.
<야연>은 한화로 200억이 투자된 블록버스터다. 중국에서 이처럼 무협액션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고 있는데, 그에 반해 내용은 빈약해지고 이미지만 남발된다는 평가도 있다. <야연> 촬영하면서 그런 점을 염두에 두었을 것 같다?
분명, 그런 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일종의 자신감도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시도였고 그러한 단점을 모면할 대안이 있었다. <야연>에서는 CG를 많이 자제하고 캐릭터의 감정에 중점을 두었다. 화려한 볼거리와 이미지로 지금의 중국무협액션 영화들이 점철되고 있는데 야연은 그렇지 않다. 물론 볼거리와 이미지는 화려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캐릭터의 감정에 충실하게 반응하는 선에서 관객들에게 보일 거라 자신한다.
<야연>의 건축과 의상은 전통적인 중국의 그것이 아니더라. 세계시장을 노려서 그런지 몰라도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반영한 것 같다.
원래 무대미술을 했던 사람이라 세트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당나라의 문화를 복원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일본과 한국의 건축양식을 이번 영화에 많이 도입했다. 당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허구의 이야기인 만큼 영화 속에 상상력을 많이 동원한 결과다. 주인공들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욕망이 누구에게나 감정이입될 수 있도록 세트에 민족성을 담는 것을 의도적으로 자제했다.
당신은 중국에서 일명 국민감독이다. 그런데 중국본토에서 장쯔이는 논란의 대상이라고 들었다. 일본잡지 '플레이보이'의 표지모델부터 게이샤로 분한 그녀의 할리우드 진출이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낳은 것 같다. 장쯔이의 출연으로 인해 당신에게 반감을 갖는 팬들이 양산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쯔이가 일본잡지의 표지를 했다는 소식은 지금 알았다. 몰랐던 사실이다. 장쯔이는 배우가 되기 위해 엄격한 훈련을 거친 사람이다. 대단한 노력가형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남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국민성이 있다. 장이모우가 세계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때도 가난한 중국현실을 영화로 세계에 알렸다고 비난했다. 지금은 돈만을 추구하는 상업영화 감독이라고 비난한다. 장쯔이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성공을 진심으로 같이 기뻐하기보다 시샘하고 질투한다. 반일감정이 심한 중국민들에게 그녀의 행보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지금 장쯔이만큼 연기력과 스타성 그리고 캐릭터 이해력이 빠른 배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야연>에서 황후 완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그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그 말이 맞다. 예전에는 예술영화를 만들어서 해외영화제에서 상 받는 게 감독들의 목표였다. 다시 말해 상업영화를 경외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중국영화계는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감독들의 의식 또한 많이 바뀌었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고루 추구하는 감독들이 많이 생겼다는 뜻이다. 아직도 90% 이상이 예술영화이긴 하지만 최근 5~6년 사이 나타난 이 변화들은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야연>에 그런 변화들을 포괄하는 지점이 있는가?
그렇다고 본다. 나의 정체성은 대중영화 감독에 가깝지만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그 중간지점을 <야연>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중국 무협액션대작들이 갖고 있는 한계성을 스토리로 극복하고 싶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중국의 문화를 세계적인 상품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중국영화들은 화려함과 스펙터클을 추구하다 보니 중국문화의 외양적인 면만 인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야연>은 중국의 문화 안에 다양한 아시아의 문화를 접목하고 캐릭터와 스토리에 맞게 배치하고 활용했다. 볼거리만 추구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해외에서 시장성이 높다고 판단한 장르가 중국무협액션 대작인데 그 판단이 아직까지 맞는다고 본다. 때문에 나도 그 안에서 중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본 거다.
중국에서 한국영화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영화를 보면서 중국영화의 미래를 생각해 본 적 있는가?
한국은 지금 가장 빠른 속도로 영화산업이 발전하고 있는 나라 중에 하나 일 것이다. 중국과 한국이 다른 게 있다면 한국은 국산영화를 사랑하고 지지할 줄 안다는 거다. 해외에서 상을 타거나 해외에서 좋은 흥행수입을 올리면 자기네 일처럼 자랑스러워 한다는 거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장이모우, 장쯔이가 비난을 받는 현실과 비교한다면 한국은 영화하기에 좋은 나라다. 한국영화는 관객을 끌어들이는 스토리를 쓸 줄 안다. 크기와 볼거리로 부피만 커져가는 중국 대중영화의 잘못된 성향이 한국영화로 인해 해결방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차기작이 곧 촬영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떤 작품인가?
MK픽처스랑 공동제작 형태로 전쟁영화인 <집결호>를 준비 중이다. 10월 6일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1948년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취재_ 2006년 9월 23일 토요일 | 최경희 기자
사진_ 권영탕 기자
☞ <야연>의 황후 장쯔이 접선!
☞ <야연>의 황태자 다니엘 우 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