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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에 완전히 미치고 싶어요! <1번가의 기적> 하지원
2007년 2월 13일 화요일 | 이지선 영화 칼럼니스트 이메일


그런 사람이 있다. 대단히 붙임성 있어 보이는 타입도 아닌데,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면 대화를 끝내고 싶지 않은 사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막상 자신에 대해 보여줘야 할 순간이 오면 넘치는 자신감으로 돌진하는데, 그 변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

12번째 영화 <1번가의 기적>을 통해 챔피언에 도전하는 달동네 여성복서 명란이 되어 돌아온 배우 하지원은 그런 사람이었다. 다소곳함과 발랄함, 신중함과 열정이 공존하는 그녀는, 때로는 깔깔대며, 때로는 심사숙고하며 자신을 표현한다. ‘신체연기의 달인’이라 불러줘야 하는 건 아닌가 싶게 매 작품마다 온 몸을 던져 연기를 하는 탓에, 다치고 상처입는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그래도 연기가 마냥 좋아서 여전히 연기에 완전히 미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그녀. 이제 막 이십대의 마지막 나날을 시작한 하지원의 웃음소리는 그녀의 열정만큼이나 맑기만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녀의 팬이 아니었으나,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반하고 말았다. 누구라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그럴 것이다. 가끔은 소탈하고, 가끔은 소녀같고, 또 가끔은 여성스러운, 도회적인 얼굴 위에 순진한 아이의 표정을 담아낼 줄 아는 배우, 하지원을 만났다.

우선 졸업 축하한다. 개봉 준비에, 졸업 준비에, 바쁘겠다.
감사합니다. (웃음) 민망해요.

졸업을 앞둔 소감은?
(웃음) 근데 사실 좋아요. 좋은데, 언론에 공개되는 게 좀 민망하기도 하고 그래요. 또 활동하면서 학교 다니기가 정말 쉽지가 않거든요. 생각보다 졸업을 못하신 선배님들도 굉장히 많으세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랑스럽기도 해요. (웃음) 그래도 촬영하고 밤에 와서 레포트 쓰느라고 밤새고…, 마지막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작년에는 꼭 졸업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그래서 힘은 들지만 촬영 끝나면 레포트 쓰고 친구들 도움도 받고 그랬죠.

활동하랴 공부하랴 고생이 많았겠다. 좀 쉬었나?
조금 쉬었어요. 여행 갔다 왔어요. 보름 정도. LA에 다녀왔는데, 이번 여행이 너무 좋았어요. 한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근데 그냥 쉬고 자고 먹고…. <황진이> 드라마를 하다 보니까 기본적인 걸 못 했었어요. 기본적인 걸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더라구요. (웃음)

얘기를 듣자니, 시놉시스만 보고 덜컥 출연을 결정했다던데? 의리 때문에? 아니면 어떤 점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웠던 건가? 시나리오 안 보고 결정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우선은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컸구요. 감독님이 (얘기를) 해 주시는데…, 와 닿았어요. (웃음) 1번가라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가슴 속에 자기가 바라는 희망 같은 걸 하나씩 품고 있는데 그 안에 명란이라는 여자는 가슴 속에 자기 삶이 아니라 아빠, 가족밖에 없잖아요. 그 장치로 복싱이라는 걸 이용했다는 게 액티브하고. 처절하기도 하지만 그 마음이 너무 예뻤어요. 제가 그 즈음에 <황진이> 드라마를 선택한 것도 진정성이라는 것 때문이었거든요. 그런 걸 너무 하고 싶었어요. 감독님이 그 말씀을 하시는데 가슴이 찡하더라구요. 그래서 ‘감독님 믿을 테니까 시나리오 잘 써 주세요.’ 그랬죠. (웃음) 의리도 뭐… (웃음) 저는 의리도 있는 편인데 (웃음) 제 입으로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저는 한 번 작업을 했던 사람들 하고는 오래 가요. 한 번 작업을 했다고 그냥 끝나는 게 아니고, 같이 했던 배우들 하고도 꾸준히 연락하는 편이고.

윤제균 감독, 임창정씨와는 두 번째 작업. 처음과는 어떻게 달랐는지?
작업이 사실 쉬웠어요. 사실 감독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코미디 감독으로 인식이 돼 있는데, 저는 그 한 장면 때문에 믿음을 가졌어요. <색즉시공>에서 제가 침대 위에서 울고 (임창정씨가) 차력을 하잖아요. 그 장면을 작업할 때 감독님하고 너무 잘 맞았구요, 저를 너무 편안하게 해 주셨어요. 특별히 서로 어떤 주문을 한 것도 아닌데 그 작업의 호흡이 너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다른 장면도 물론 그랬지만 그 장면은 특히 그랬어요.

감독님하고는 그런 진정성 있는 작업을 멜로도 좋고 한번쯤 해봤으면 했는데 그게 이번 작품이 된 거죠. 이번 영화할 때, 감독님하고 약속한 부분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진정성이고, 두 번째는 콘티 그대로 찍겠다. 그랬는데, 콘티가 너무 훌륭했어요. 박찬욱 감독님이랑 작업을 많이 하셨던 분이라고 하더라구요. 콘티가 영화 한 편을 본 것처럼 너무 자세하고 그래서 앵글도 똑 같이 찍었어요.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다 보니까 제 자신이 흔들리거나 감독님이 흔들리거나 이런 부분이 없었고. 물론 촬영장은, 역시나 감독님이나 창정오빠도 코미디를 좋아하시니까 리허설 할 때 코미디를 막 만들 때가 있어요. (웃음) 근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자제를 하고, ‘우리가 지키고 가야 할 건 진정성이다’ 그랬죠. <색즉시공> 때 보다 훨씬 좋았던 거 같아요.

<황진이>때는 춤추느라 고생하고, 이번엔 코까지 다쳤다. 실제로 권투장면들을 보면서 ‘장난 아니었겠구나’ 싶었다. 맞는 연습만 한 달을 했다던데, 힘들지 않았나? 체력이 원래 좋은 편인가?
체력이 좋은데요…, 진짜 복싱은, 진짜 힘들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합을 맞춰서 하는 가짜 액션이잖아요. 복싱 같은 경우는 합을 맞출 수가 없어요. 복싱선수들은 상대방 주먹이 오는 걸 보고 피해서 바로 때려야 되는데, 이게 합을 맞추면 동작을 굉장히 천천히 하게 돼요. 이게 쉽지가 않은 거죠.

가짜라는 게 너무 확연히 보이는 거예요. 한 방 때리고 한방에 쓰러지는 합 같은 경우는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는데, 저는 그렇게 해 주실 줄 알았는데 (웃음) 감독님은 ‘우린 합 안 짜니까 지원이 네가 스파링으로 연습을 해서 그날 그렇게 찍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좀 당황했어요. 게다가 막상 스파링이라는 걸 해보니까 주먹이 날아오면, 당연한 거지만 눈이 감기는 거예요.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눈 안 감을 때까지 계속 맞았어요. 정두홍 감독님한테 계속 맞고, 복서들한테 계속 맞고. 영화에서 눈 감으면 다 보이잖아요. 주먹을 피하면서 계속 때려야 되니까 어려운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해본 것 중에서 가장 힘들었어요. 맷집도 많이 늘었구요. (웃음)

그렇게 힘들게 했으면 내가 왜 이 영화를 했을까 후회한 순간도 많았겠다.
후회했죠. 양 쪽 눈 막 ‘밤탱이’ 돼 가지구 매일 멍들어서 다니구. 촬영 전에 연습 하다가요. 막 눈물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그런 과정들에서 마음고생도 좀 했어요. 내가 괜히 덤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정말 쉬운 게 아니구나 싶고. 한 시간 반 스파링을 하고 나면요, 왜 골이 흔들린다고 그러잖아요. 그거 맞아요. 골이 흔들려서 멍해요. 그러면 밤이 돼야 정신이 깨요. 그럼 닭가슴살 먹고 또 운동하러 가요. 전문 트레이너분한테 지도받으면서 복싱선수처럼 몸 만들기 그런 거 하구. 하루 스케줄이 온통 운동이었어요. 그래서 촬영하는 날이 오히려 더 좋을 만큼, 많이 힘들었죠.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영화를 보고 나니 어떻던가?
아무래도 권투가 다른 액션에 비해서 동작이 작잖아요. 그래서 실제 제가 맞는 충격보다 화면에는 덜 나오거든요. 내가 저렇게 아프게 맞았는데 관객들이 알아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찍은 거에 대해서는 후회는 없어요. 진짜 할 만큼 했거든요. 실신하면서까지 찍었으니까, 후회는 없어요.

권투영화 다시 하자고 하면?
안 하죠. (웃음) 전 절~대! 안 해요. (웃음)

<황진이>에서는 춤을 췄지만 보통의 춤과 달리 격한 동작도 많았고, <다모> <형사>에선 검술도 했고, <1번가의 기적>에선 권투까지, 유난히 액션연기를 많이 하는 여배우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특별히 그런 캐릭터를 선호하는 건가, 아니면 그런 제의만 자꾸 들어오는 건가?
처음에는…, 좋아서 했는데요. 이제 많이 들어오죠. (웃음) 하지원하면 빨리 배워서 빨리 한다더라 하니까. 황진이 같은 경우에도 촬영 당일날 춤동작을 30분 정도 배워요. 그러면 저 같은 경우는 순서보다도 선생님이 하는 눈빛이나 꺾임이나 이런 걸 주의해서 보거든요. 그런데 컷을 안 하면 계속 춰야 되니까 나머지는 제가 막 만들어요. 어쩔 수가 없어요.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은 연기를 해야 되니까요. 그걸 보고 감독님들은 빨리 한다고 생각을 하세요. 그래서 그런 액션 같은 경우가 많이 들어오죠. 또 사실 저도 워낙 액션을 좋아해요. 액션영화 개봉하면 매니저랑 둘이 가서 보기도 하고. 여자친구들은 잘 안 좋아하잖아요. 근데 저는 <옹박> 이런 거 보면, 새로운 액션이다 그러면 박수치고 좋아하고 그래요. (웃음)

액션영화나 액션연기에 대한 동경이 원래 좀 있었던 건가?
음…. 그런 건 아닌데, 해 보니까 재밌더라구요. 그리고 할수록 더…, 뭐랄까, 더 흥미롭고 더 많다는 걸 알겠어요. 이것도 정복하고 싶고, 이것도 도전해 보고 싶고. 한 번 맛을 들여서 그런지 막 그런 게 생겨요. 운동 같은 것도 이번에 이런 거 해봤으니까 또 다른 거 해 보고 싶어.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도전정신 강한 편인가 보다. 다른 연기에 대한 욕구나 갈증은 없나? 예를 들면 멜로라든지.
사실 되게 멜로를 하고 싶어요. 싫어하는 건 아닌데, 많이 조심스러워요. 꼭 정말 베드신에 도전하는 것처럼 멜로라는 장르가 쉬운 장르로 느껴지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작품을 고를 때도 멜로가 들어오면 ‘내가 과연 이런 감정을 잘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고. 좋아하는 장르라 그런지 더 조심스러워서 더 완벽한 시나리오와 더 완벽한 캐릭터를 더 기다리는 것 같아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을 텐데? 여배우들한테는 멜로연기의 시기가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 않나. 국내에서는 여배우들의 수명이 짧기도 하고.
뭐, 내년이 될 수도 있겠죠. (웃음) 저는 스물 일곱살이 되면 몸과 마음이 완벽한 그런,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스물 일곱살이 돼도 사랑의 감정도 지금도 모르겠거니와 제 자신이 덜 성숙된듯한 느낌 있잖아요. 연기나 감정에서. 그런 느낌이 많이 들더라구요. 그때는 다 알 줄 알았어요.

언제 그런 생각을 한 건가?
이십대 초반에. 하하하하.

막상 스물일곱살이 됐을 땐?
그래서 그때 충격받았어요. ‘뭐야, 이거. 스물일곱이 됐는데’ 정신도 그때랑 변함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진짜 그때 되게 좀 당황했어요. 스물일곱이 된 제 자신한테. (웃음)

지금은 2년 지났다.
지금도 똑같죠. (웃음) 아, 근데 올해는…, 그런 게 좀 생겼어요. 굉장히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좀더 내 자신한테 여유를 갖는다고 해야 되나요? 그러니까 스케줄이나 생활의 여유가 아니고 마음의. 그런 게 좀 생겼어요. 그래서 이게 성숙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올해 조금 해봤는데 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작년에 약간의 아픔이 있었어요. 그래서 과거를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런 거에 대해서 고민 안 하고 너무 열심히만 달려왔는데, 그런 걸 생각해 보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 내 주위 사람들, 내가 해왔던 작품들, 일, 이런 걸 생각하다 보니까 조금 더 차분해졌다고 해야 하나요, 마음이? 그래서 성숙해진 것 같아요. (웃음)

그런 것들이 명란이 같은 캐릭터를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 건가?
그런 것도 없진 않을 것 같아요. 그 즈음에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 보다는 진정성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선택하게 됐는데, 아무래도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진정성에 집착했다고 했는데, 과연 어떤 것들이 진정성일까?
그냥 겉으로 보기에 드라마 같은 경우도 정말 가벼운 소재들로 만든, 약간의 코미디도 있고, 눈요기에 좋은, 너무나 쉬운 얘기 있잖아요, 트렌드를 따른. 그런 것 보다는 좀더 사람냄새가 나는 영화나 드라마라고 할까요. 작품을 통해서 어떤 사람의 인생이 약간 보일 수 있는 걸 하고 싶었어요.

명란이랑 본인의 비슷한 점?
포기하지 않는 거? (웃음) 제가 한 번 해야 되는 거는 끝까지 그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요.

오기도 있는 것 같고, 고집이 센 편인 것 같다. 어떤 인터뷰에서 보니까 데뷔 초기엔 오기로 연기를 계속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한참 생각하다가) 음…. 조금씩 변하는 거 같아요. 그 당시에는 일단 너무 일을 하고 싶은데 오디션을 봐야 되잖아요. 오디션을 보다 보면 저한테 100% 다 만족하는 감독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신인 때 막 시작하는 단계니까 어떻게 해서든 그때 저의 바람은 일단 일을 하고 싶은 거였어요. 그런데 오디션에 막 떨어지다 보니까 ‘좋아. 내가 뭔가 보여주겠어.’ 그런 오기가 있었죠.

그런 과정을 거친 뒤, 막상 데뷔 이후에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말하자면 역전의 순간을 지나쳐 온 셈인데, 그리고 난 뒤, <진실게임>의 하지원과 <1번가의 기적>의 하지원은 어떻게 달라졌나?
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모르겠는데…, 저는 그런 질문 할 때가 제일 난감하거든요. 어떤 작품이 끝나면 하지원씨가 어떻게 변한 것 같아요? 어떤 위치에 와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걸 생각해 본적도 별로 없는 것 같구요. 음… 글쎄요. 변화…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음… 작품에 따라서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약간 호러나 <진실게임>처럼 스릴러 장르를 하면 거기에 맞춰서 제가 변해 버려요. 그럴 때는 사람들이랑 말도 잘 안 해요. 표정도 되게 우울할 걸요? (웃음) 좀 발랄한 역할들을 하다 보면 거기에 맞춰져 있고.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진짜 내가 뭔지 잘 모르겠는 거 있잖아요. 진짜 내 성격이 뭔지 잘 모르겠는. 그럴 때가 있어요.

원래 성격은 어땠나?
초등학교 때나 이럴 땐 내성적이었는데 남한테 지는 걸 싫어했어요. 그건 엄마가 해주시는 얘긴데 남자애들한테도 지는 거 싫어하고 그랬대요. 중학교 때나 이럴 때는 더 내성적이었대요. 뭐 부탁하면 거절 잘 못 하구요. 고등학교 때는 전학을 가서, 텃세라 그래야 되나요, 그래서 좀 조용히 지냈죠. 대학교 가서는 너무 좋았어요. 자유분방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하구 그래서 너무 좋았어요. 평소에는 조용한 편인데 좋아하는 거 할 때는 좀 시끄러워요. (웃음) 전 오히려 촬영장에서 제일 시끄럽고 집에 가면 얌전해요.

윤제균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20대 또래 여배우 중 유일하게 한 편의 영화를 책임지고 이끌어나가는 힘을 가진 배우’라고 평가했더라. 스스로 평가하는 배우 하지원은 어떤 인물?
(웃음) 어휴. 과장을…. (한참 생각하다가 웃으며) 어려운 질문 많이 하셔. (다시 잠시 생각하고) 음…. 저는, (이 일이) 진짜 좋아요. 진짜 좋아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대충 할 순 없잖아요. 찍는 순간 전까지 고민을 해요. 만약에 어떤 장면에서 내가 달려나가는 씬이다 그러면 달려나가는 것에 대해서 찍기 전까지 고민을 해요. 절대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대충은 없어요. 그래서 제가 대충하는 사람들 되게 싫어해요. (웃음) 자기 일 흐지부지 하는 사람 싫어하거든요. 성격인 거 같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의 저를 만들어준 요인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해요. 만약에 대충했다면, 어느 분야든 대충하는 사람은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잖아요.

책임감이 아주 강해 보인다.
그런가 봐요. (웃음)

<진실게임> 이후 8년의 연기생활을 해 왔다. 지난해에는 <황진이>로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고. 성과와 경력이 쌓인다는 건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책임도 늘어난다는 의미일 것 같다. 또 한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건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를 할 때 그런 부분을 의식하기도 하는지?
아뇨. 그런 건 없어요. 이걸 꼭 마무리 잘하고 이런 건 아닌데. 그냥 원래 나라서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이걸 꼭 책임져야 되고 나한테는 이런 게 있고 저런 게 없고 따지는 건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그것만 하고 다른 건 생각도 잘 안 하는 스타일이에요. (웃으며) 나는 그냥 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책임감 강하다고 하고 그래서 민망하기도 하고. 그냥 좋아서 열심히 하는 건데, 그런 말씀 해주시면, 민망하기도 하지만 좋기도 하고 그래요.

연장선상에서 얘기하자면, 요즘 같은 경우, 영화를 만드는 일들이 변화하면서 흥행의 책임이 배우에게 주어지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부담을 느낄 때가 있나.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근데 저는 <황진이> 할 때도 그… (웃음) 그건 자기 회핀가? 저 스스로 그랬어요. 드라마를 할 때 내 연기를 보고 좋다는 사람도 있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고 수많은 말들이 있는데 되게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역인데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거든요. 그래서 정말, ‘난 시청률에 상관없이 이 드라마를 선택했어’라고는 하지만, 한쪽에서는 되게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지금 생각해 보면 시청률도 잘 나왔고 많은 사람들한테 이슈도 되었고 어떻게 보면 사극이긴 하지만 그 시대의 여성이지만 지금 시대의 여성상을 보여준 거랑 비슷하거든요.

옛날에는 못 살아가지고 꿋꿋하게 뭔가를 하는 캔디 같은 캐릭터를 여자들이 좋아했지만 지금은 “내가 가져서 내가 써.” 이런 여성상들을 좋아한대요. 저도 몰랐는데. 남자들한테 사랑받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남자를 잡을 수 있고, 자를 수 있고, 더 카리스마 있고, 이런 여성상을 좋아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거에 대해서 많이 연구를 했어요. 표정이나 뭐나 감독님이랑 수없이 얘기를 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그때는 그런 부담을 더 많이 느꼈었어요. 어떻게 보면 ‘황진이’라는 큰 타이틀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드라마가 더 그런 것 같아요. <1번가의 기적>은 감독님이 흥행에 상관없이 만들 거라고 해서 오히려 흥행에 대한 부담은 안 가졌어요. 근데, (웃음) 너무 간사한 게 개봉날 다가오니까 신경 쓰이는 거 있죠. 정말. 와,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구나 그런 걸 느껴요.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당연하겠고, 관객은 얼마나 예상하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왜냐하면, <1번가의 기적>이 제가 지금까지 찍은 영화들 중에 시사 반응이 제일 좋거든요. 그래서 더 불안하고 더 모르겠는 거 있죠. (웃음) <색즉시공> 할 땐 욕도 되게 많이 듣고 <형사> 때도 욕을 엄청 들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형사> 좋아했다.
그쵸? 저도 후회없는 작품인데요. 이번 영화는 반대로 15명 중에 한 명 정도가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막상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 흥행이 어떨지 감이 전혀 안 잡혀요.

앞으로 활동 계획은? 권투선수 데뷔는 안 할 것 같고. 데뷔 권유도 받았다고 들었다.
연기자 하려면 권투는 포기해야죠. (웃음) 되게 아파요. 짜증이 날 정도로 아파요. 집에 가서 이불 쓰고 막 울었다니까요. 거울 보면 눈가에 시퍼렇게 멍들어 있고. (웃음) 지금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요. 뭔지는 모르겠는데 마음의 변화가 있어요. 그때는 진정성에 꽂혔다면 지금은 이사를 가고 싶기도 하고 방을 바꿔보고 싶기도 하고 한 번도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어요. 작품 따로 생활 따로가 아니라 작품이 생활에 영향을 미치다 보니까, 특이한 걸 해보고 싶기도 하고, 요즘 들어 더 새로운 걸 해 보고 싶어요.

그 동안 너무 다양한 장르를 해서 남은 게 별로 없지 않나.
에로랑 SF? 하하하하~ 그냥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요. 아직은 정해진 건 없어요.

최근에 봤던 영화 중에 이런 건 정말 새로웠다, 이런 건 탐나더라 싶은 캐릭터가 있었나?
근래 본 영화가 <사랑해, 파리> 밖에 없는데..., (잠시 웃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아. 그런 연기 해 보고 싶어요. 혹시 <사랑해, 파리> 보셨어요? 거기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얘기,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재미있게 봤다고 하자 반색하며) 제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거든요. 몸이랑 표정으로만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그랬더니 아는 기자 언니가 그걸 추천해 주시더라구요. 너무 재미있어요. 상황이 다 만들어주고.

그 얘기 하니까 생각났는데, 학교 입학할 때 마임으로 돌고래 연기를 했다고 들었다.
(웃음) 너무 창피해요. 돌고래! 완전히 지금 생각하면 쇼를 한 것 같아요. 무대에서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구요. 사실 아무것도 안 보일 때가 많은데… 그때, 그 무대를 다 썼어요. 의상도 아주 타이트한 걸 입었구요.

그걸 할 줄 알고 입은 건가?
아뇨. 그냥요. 머리도 쫙 묶고. 마임을 했는데. 하고 나서는, 난 더 이상 후회는 없다! (웃음) 그랬죠. 정말 쇼를 한 것 같았어요.

물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겠지만, 결과가 잘 나오는 편인 것 같다.
아는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지원아 너는 너무 쉽게 얻으려고 하면 안 된다. 네가 좀 고생을 해야 잘 되는 것 같다. <다모>도 그렇고, <형사>도 그렇고, <황진이>도 그렇고. 그러니까 앞으로 고생하는 작품만 하래요. 그런데 그건 농담으로, 하도 고생하는 걸 해서 그러시는지도 모르겠어요.

영화 <1번가의 기적>의 매력? 관객이 꼭 주목해 줬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나?
그냥 보셔도 될 것 같아요, 어떤 거에 주목해서 영화를 보는 것 보다. 저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영화 찍고 나서 우울하지 않아서 너무 좋아요. 보고 나면 너무 기분 좋구요. 그런 생각 들지 않아요? 나한테는 내가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있었지. 이런 게 생각나는 거죠. 예를 들어 집을 사는 게 목표였다면 요즘 집값도 그렇고 악조건이라 포기할 수도 있는데 그냥 미소 지으면서 한번쯤 내 바람으로 가져갈 수 있는 거죠. 좀 막막해도 꿈이니까.

꿈을 갖고 사는 게 좋다?
비관적인 사람도 많잖아요.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하지원씨의 꿈은 뭔가?
저요? (웃음) 저는 지금 연기하고 있는 게 되게 좋아요. 어떤 사람들은 내 수명이 3년, 5년, 10년…, 그렇게 말하는데…. 저는 그냥 지금이 좋아요.

그 꿈이 구체화될 수도 있지 않나. 예전에 연기가 꿈이었다면, 앞으로는 이런 배우가 되겠다, 이런 연기가 해 보고 싶다, 이런 사람과 작업을 하고 싶다, 또는 이런 상을 받고 말겠다 등등.
(한참 생각하다가) 어떻게 보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잘 모르겠지만…, 연기에 완전히 미쳤으면 좋겠어요. (웃음) 조니 뎁이 정말 멋있는 게, 왜 모습만 보면 <가위손>에 나왔던 사람이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온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다르잖아요. 항상 변신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를 해 본 적은 없는데,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는 조니 뎁처럼 진짜 하지원의 모습이 전혀 안 보여서 관객들이 착각하고 못 알아볼 정도로 연기에 완전히 미쳐버렸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이 ‘쟤 완전히 미쳤구나’ 생각할 정도로. 미친 연기가 아니고 겉까지 확 바뀌어 버렸으면 좋겠어요. 그런 거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연기에 대한 바람이나 꿈이 있다면 그런 거예요.

그렇다면 사적인 꿈은?
저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는데 학교를 짓고 싶어요. 아이들도 너무 예쁘고 그래서…. 근데 돈이 많아야 된다고 그러더라구요. (웃음) 50이 될지 60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학교도 만들고 싶어요.

결혼 쪽은?
아직 관심이…. 사실 인터뷰 하면 기자분들이 너무 물어봐서 이젠 좀 싫어요. (웃음)

안 물어볼까 했는데 아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물어봤다.
아이는 낳고 싶기도 한데, 결혼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입양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나이가 더 많이 든다면요.

스물 아홉이 사실 일반적으로 압박이라거나 지나기 힘든 나이라고들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나이의 압박을 느낀다거나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지는 않나? 배우로서 살려면 오히려 더 그런 부분을 느끼기 쉬울 것 같은데.
관리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이제 내가 늙는구나 라는 생각보다 어쨌든 저는 저를 관리할 책임이 있잖아요. 피부, 건강, 몸매, 내 자신을 좀더 녹슬지 않게 관리를 잘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 한 살 또 먹었네 이런 생각은 안 해 봤어요.

<1번가의 기적> 말고 설연휴 개봉작중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복면달호>? (웃음) 둘 다 잘 되면 좋죠, 뭐.

글: 이지선
사진: 권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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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u in
솔직히 최고의 연기파 여배우라 칭하진 않지만,
모든 연기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성실파이자 노력파 배우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연기 기대하겠습니다.   
2007-02-14 03:10
hrqueen1
화이팅!
전 사실 '동감'에서 쟤 누구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안방에서 극장에서 언제나 그 배역에 맞는 고군분투에 그만 팬이 되고 말았어요.
정말 영화쟁이가 되기를 바라고요, 그리고 몸도 좀 아끼시구요.
마지막으로 화이팅!   
2007-02-1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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