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개봉 날이 잡혔죠?
네. 3월 22일!
혹시 완성된 작품은 보셨나요?
아직 못 봤어요. 3월 7일 날 기술시사가 있으니까 그때 볼 예정이에요.(인터뷰는 7일 이전에 이루어졌다.) 저도 예고편만 봤고, 후시 녹음 때 관련 장면만 대충 봤죠.
그렇군요. 저도 일단 <수>의 예고편밖에 보지 못해서 궁금한데 영화와 캐릭터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주시겠어요?
하드보일드 클래식! 국내에선 보기 힘든 신선한 장르죠. 어린 시절 헤어졌던 쌍둥이 형제가 19년 만에 만나요. 제가 연기한 형은 킬러고 동생은 임관을 앞둔 경찰이죠. 그런데 동생과 만나게 된 첫날, 동생이 제 눈앞에서 죽어요. 그래서 형은 동생의 복수를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되죠. 그 복수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 과정에서 적들을 상대하고 갈등하게 되는 거죠.
일단 ‘지진희’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젠틀한 이미지로 많이 부각되는데, 저는 지진희씨가 그것과는 다른 의외성을 많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얼마 전 <오래된 정원>의 오현우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박석규같은 은근한 껄렁함도 그런 부분들 중의 하나라고 봐요.
그렇죠.
혹시 자신의 이미지가 고정된다는 것에 반감이 생기지는 않아요?
반감은 전혀 없어요. 한 가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가 맡았던 그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이죠. 그게 가장 큰 공통점이죠. 제가 뭘 깨려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세상의 순리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이니까요. 그냥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일반적인 평범한 캐릭터들은 아니죠. 물론 저만의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그 캐릭터들을 아끼고 즐겁게 연기했어요.
이번 <수>가 지진희 씨에겐 액션이 처음이라고 봐도 되잖아요? 예전 <H>에서도 형사 역을 맡긴 했지만.
그렇죠. <H>는 <수>와 비교할 정도가 못되죠.
일단 <수>의 ‘수’는 예전 지진희 씨가 연기한 캐릭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판이한 캐릭터에요. 그렇기에 본인에게는 상당히 즐거운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상당히 즐거웠어요! 대충 아시겠지만 <수>의 작업이 굉장히 거친 액션이 많았거든요. 게다가 최양일 감독님이 원하시는 건 리얼 액션이었어요. 그냥 우리가 영화에서 쉽게 보는 연출된 액션이 아닌 진짜 리얼 액션이에요. 단적인 예로 목 졸리는 장면이 있었어요. 실제로 제 목을 노끈으로 졸랐고 저도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그때 진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죠. 그리고 그 상황을 벗어나 날 죽이려던 사람과 싸우고 결국 제거하게 되는 모든 과정이 거의 진짜였어요. 그런데 어차피 최양일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익히 들었고 그 사람의 예전 작품을 보고 나서도 그래야만 할 것이라 생각을 했죠. 촬영하다가 몇 군데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각오도 했어요.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덤벼들어서 생각보다 덜 다쳤던 것 같아요. 인대가 늘어나고 몇 군데 찰과상 입는 정도는 애초에 각오했던 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온 힘과 정열을 쏟아서 촬영을 마치고 나면 굉장한 희열감 같은 것들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여태껏 제가 맡았던 역할들이 내면에 무언가를 꾹 눌러 담아 제대로 풀지 않는 역할들이었죠. 무언가를 분출하고 내뱉는 역할은 처음인지라 그런 것에 대한 희열감도 있었고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한다는 해방감도 있었어요. 꽤 즐거웠죠.
그런데 어쨌건 지진희 씨의 액션은 실감이 안 나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전의 역할들을 보았을 때는 말이죠. 그래서 <수>에 지진희 씨가 캐스팅 된 건 의외라고 생각했어요. 음..혹시 기분 나쁘신 건 아니죠?
물론! 전혀! 괜찮아요. (웃음)
일단 그래서 궁금했던 게 캐스팅의 과정이었어요. 최양일 감독이 먼저 요청을 한 것인지, 아니면 지진희씨 측에서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건가요?
사실 캐스팅은 저의 문제이지만 캐스팅의 초반 과정은 제가 관여하는 문제는 아니에요. 어쨌든 일단 캐스팅을 하던 안 하든 감독님이 보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만나 뵙는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길 했죠. “감독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쓰러져 죽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연기하겠다.”라고 말했어요. 그걸 감독님께서 만족하셨던 것 같고 감독님 스스로도 <수>의 작업이 꽤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그걸 끝까지 참고 견뎌낼 수 있는 배우를 찾으셨다더군요. 저의 열의가 그런 고민에 통했는지도 모르죠.
최양일 감독님의 촬영 분위기는 소문으로만 익히 들었는데 직접 겪어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잘 아시겠지만 <수>는 공개촬영을 하지 않았죠. 감독님은 현장에 누가 오는 것을 싫어하시거든요. 현장 분위기를 흐리게 될 어떤 요소의 개입도 용납하지 않는 거죠.
영화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 하시는군요.
그렇죠. 그러니까 현장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이나 도구가 갖추어져 있어야 해요. 배우들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것이 충분치 않았을 때는 굉장히 화를 내세요. 하지만 그건 지극히 당연한 거겠죠? 그리고 그런 부분이 잘 준비가 되었을 때는 상당히 만족하시죠. ‘정말 프로구나!’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어요.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제가 예전에 영화를 찍으며 안이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을 버리게 되었고, 물론 <수>를 촬영하기 전 최양일 감독님의 명성을 들었기 때문에 이미 그런 것들을 많이 배제하고 준비를 했죠.
처음 영화의 정보를 듣고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이 영화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았을 텐데, 어떻던가요?
“이야! 이것 재미있겠다. 땀 좀 흘리겠는데! 이 감독님이라면 정말 제대로 만들겠지? 어떨까?” 이런 궁금증, 기대감 등. 일단 땀 흘리는 것도 좋아하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희열감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준비하기 위한 연습과정. 이런 것들을 모두 생각하니 사실 즐거웠어요.
액션 준비 기간은 얼마나 되었죠?
한 2달 정도. 하루에 4~5시간씩 심재명 액션 스쿨에서 준비했죠. 정말 꽤나 재미있는 작업이었고 좋았어요. 거기서 제가 준비했기 때문에 많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마친 것 같아요. 한번은 같이 촬영하던 스턴트맨이 저를 들어 올리다가 무릎이 뒤로 꺾여버려서 곧바로 이송된 적도 있어요. 일단 그 이외에는 크게 사고가 난 것은 없었어요. 그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긴장하고 실전처럼 임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71년생, 30대 중반이 넘었어요. 그렇죠.
이제 그 정도의 나이라면 변신보다는 변화라는 단어가 점점 어울려지는 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수>는 지진희 씨에게는 변신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겠죠? 어쩌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이런 연기를 해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인 생각에 남자가 가장 일을 열정적으로 많이 할 수 있는 나이가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제가 30대 중후반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안정적으로 가고 싶진 않아요. 지금이 가장 열정적으로 일할 때고, 그럴 수 있는 안정된 기반이 마련되었고, 좀 더 잘 될 수 있다고 느껴지기에 자신감도 생겨나고요. 이런 최고의 나이에 모든 길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길을 가고 싶진 않아요. 지금 이제 시작이라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훨씬 더 멋있게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또 다른 변신이 있을지도 모르겠죠. 물론 없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만이 표현하고 보여줄 수 있는 정말 매력적인 모습을 주목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인생에 또 다른 반전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죠.
여러 역할을 했지만 안 해본 역할이 있어요. 악역은 아직 한 번도 안 하셨죠? 그렇죠.
혹시 악역에 매력을 느낀 적 없나요? 하고 싶다거나.
이유 있는 악역이죠. <하얀거탑>에서 김명민 씨가 연기하는 장준혁처럼. 단순하게 결과를 놓고 보면 그 사람이 나쁘다고 쉽게 말하겠지만 그 사람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가 그렇게 욕심을 부려야 할 개인적인 이유가 있잖아요. 가정생활이라던가, 부모님에 대한 연민이라던가. 물론 그것들이 잘못에 면죄부를 줄 순 없지만, 그 사람이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할 이유가 있는 거죠. 무조건적인 나쁜 놈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역할이나 상대배우에 따라 많이 좌우되겠지만 악역에 대한 매력은 꽤 크죠. 악역의 이미지를 상상하기 힘든 배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악랄한 연기를 해냈을 때 느껴지는 충격의 강도는 엄청 커질 테니까요.
그전의 이미지가 오히려 반전이 되겠군요.
네. 그렇죠. 그전의 이미지들을 깨부수기 위해 일부로 세게 나가기보다는 아무렇지 않게..예를 들면 일상적으로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인다거나 하면 소름끼칠 것 같아요.
함께 출연한 문성근 씨나 이기영 씨 등은 악역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에요. <수>에서도 그런 뉘앙스가 풍기던데, 그런 분들에게 악역에 대한 영감이라도 얻은 건 없나요?
글쎄요. 영감까지는 모르겠고. 문성근 선배는 일단 절대 악으로 <수>에서 등장해요. 그걸 보면서 ‘진짜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지금까지 보지 못한 문성근 씨를 보게 될 거에요. 문성근 선배님 또한 “여태껏 자신이 맡았던 악역 중에 최고로 나쁜 놈이다. 이것보다 나쁜 놈이 나오긴 힘들 거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며 ‘정말 나쁜 놈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을 뿐이지 다른 생각은 잘 안했어요. 일단 제가 맡은 태수에 집중했으니까요.
예전 이야기를 해보죠. 03년도에 <다섯개의 시선>에서 박광수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했죠. 박광수 감독님과 인연이라도 있나요?
일단 박광수 감독님께서 ‘같이 찍자!’고 해서 했었죠. 사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긴데..배우로서 일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처음 만난 영화감독님은 박광수 감독님이었어요. 그때 당시 감독님께서 <이재수의 난>을 한참 캐스팅 작업 중이셨죠. 매니저가 그 자리에 가자고 하는데, 저는 사실 준비된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싫다고 했죠. 그럼 그냥 인사만 드리러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가 얼떨결에 현장에 떠밀려 오디션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정말 저는 준비된 것이 없어서 솔직하게 못하겠다고 말하고 나와 버렸죠. 그런데 일주일 정도 되니 캐스팅되었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하지만 제 스스로 준비가 안 된 상태라고 판단해서 우여곡절 끝에 제가 “죄송합니다. 제가 이제 처음 연기를 하고자 하는 거라 아직 준비된 것이 없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사절했죠. 그랬더니 박광수 감독님께서 “나중에 좋은 일 있으면 같이 하자.”고 하셨어요. 그리고 나서 시간이 지나고 박광수 감독님이 <방아쇠>라는 작품을 기획했고 그 작품에 캐스팅되어서 다시 뵈었죠. 나중에 엎어진 작품이긴 한데, 그 작품을 준비하던 중 <다섯개의 시선>에 박광수 감독님께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방아쇠>하기 전에 이거 한번 같이 하자”고 하셔서 감독님의 작품에 제가 출연하게 되었죠.
사연이 있었군요!
예! 그런 셈이죠. 꽤 길었죠? (웃음)
<퍼햅스 러브>에도 출연했는데 비중이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극의 키워드가 되는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그 영화에 캐스팅된 건 아무래도 <대장금>덕분이겠죠?
예! 아무래도 그 덕이죠. 사실 <퍼햅스 러브>에서 제가 맡은 역할에 유덕화씨가 내정된 상태였어요. 방금 말씀하신대로 그 역할은 영화의 키워드이긴 한데 두드러져선 안 되는 역할이었죠. 그런데 유덕화씨가 그 역할을 맡는다면 분명 워낙 연기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니까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진가신 감독님께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시다가 어차피 그 역할이 ‘천사’니까 꼭 중국인이 연기할 필요는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더군요. 그러다가 어느 날 홍콩에서 진가신 감독님이 집에 들어가던 중, 웬 여자들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걸 봤다고 하더라고요. 진가신 감독님도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종종 자신한테 팬들이 뛰어오는 일이 있어서 의례 그런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여자들이 자신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가더래요. 그래서 궁금해서 뒤를 따라가 봤다더군요. 그 여자들이 도착한 곳은 제가 있었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진가신 감독님이 저 사람을 알아봐달라고 했다더라고요. 그래서 봄 영화사의 오정환 이사님한테 문의가 왔고 저한테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죠. 그런데 처음에는 거절했었어요.
거절? 좋은 기회였을 텐데 어째서죠?
그렇죠. 그런 감독님과 작업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그런데 중국어 노래에 춤까지 춰야 되는데 준비가 가능한 시간은 일주일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못하겠다고 의사를 표시했어요. 그랬더니 오정환 이사님을 비롯해 주변에서 다들 이런 기회를 왜 안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일주일이란 시간 안에 그런 준비를 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신 없는 일을 허락해서 훌륭한 감독님의 작품에 누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렇게 뜻을 전했는데 진가신 감독님이 얼굴이라도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홍콩으로 가서 감독님을 뵀죠. 그런데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영화는 편집을 할 수 있고 일주일 뒤에 촬영에 들어가긴 하지만 당신이 찍을 분량을 한 번에 찍는 것이 아니다. 찍는 동안도 충분히 연습이 가능하다.”라고 하시면서 재권유를 했어요. 그래서 결국 승낙을 하고 2달 촬영을 포함해 몇 달 동안 현지에 머무르며 춤, 대사, 노래 등 계속 연습하고 영화에 매진했죠. 거의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모두. 잠꼬대까지 중국어로 할 정도였어요. 저에게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 작업이었죠.
캐스팅부터 모두 다 재미있는 사연들 투성이군요!
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죠.
좀 경력이 특이한데 애초에 연기와 무관한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사실 고등학교 때 금속공예를 했었고 대학교 때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포토그래퍼도 하셨죠?
네. 대학 졸업 후 디자인 일을 하다가 내 길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고민 중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그 때 ‘사진이 내 길이구나!’하는 생각을 해서 그 쪽으로 눈을 돌렸죠.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또한 잘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98년도에 IMF가 오면서 개인적으로 복잡한 일이 있었어요. 사실 97년도부터 매니저가 저한테 배우를 해보자고 권유하면서 쫓아다녔었거든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관심이 없어서 계속 거절하다가 개인적으로 복잡하던 차에 다시 권유가 왔고 ‘일단 1년만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꽤 우연스럽네요.
그렇죠. 원래 관심도 없고 할 생각도 없던 일이었는데. (웃음)
그런데 이것도 개인적 추측인데 사실 지진희씨 좀 깨는 사람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해요.
네. 맞아요! 제대로 보셨네.
그런가요? 하하. 사실은 제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재미있게 봤어요. 대중적 흥행과 평단의 평가와 무관하게. 왜냐 하면 지진희 씨의 연기가 이전과 달리 좀 특별했거든요. 깬다는 생각도 박석규 때문에 하게 되었고. 그런데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어쩌면 지진희 씨의 연기에 전환점이 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어요. 최근 <오래된 정원>도 그렇고, 이번 <수>도 보진 못했지만 작품을 선택하는 눈이나 연기의 깊이가 좀 더 심화되었다고 생각해요. 어때요? 지진희 씨에게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방금 이야기하신 게 맞아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으로 인해 저의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현장이 즐거워지고, 현장이 부담 없어지고, 현장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그 이후로 제가 굉장히 편해졌어요. 현장이라는 곳이 저 스스로에게. 그래서 만약 누구든 제 자신이 ‘배우로써 업그레이드되거나 발전된 계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라고 해요. 보셔서 그렇게 느끼셨다면 정말 저를 잘 보신듯해요. 그 감독님을 만난 것부터가 복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이하 감독님 말이죠?
예.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만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좋아요. 그 영화 이후로 내게 현장에 대한 공포감이 많이, 아니 거의 없어졌어요. 그 전에는 현장에 가면 늘 “어떡해야 하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투성이었는데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하면서부터 “이야~! 정말 재미있다. 즐겁다. 이런 맛에 영화를 하는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 되었어요. <퍼햅스 러브>가 그 이후에 하게 된 영화인데 <퍼햅스 러브>를 할 수 있었던 힘도, 그 다음인 <오래된 정원>을 할 수 있었던 힘도 모두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도 마찬가지고요.
음..역시나 큰 의미가 있군요. 그리고 많은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췄어요. 고현정씨의 복귀작으로 화제가 되었던 <봄날>에도 상대역으로 출연하셨고 이번 <수>에서 강성연 씨,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문소리 씨, 염정아 씨는 2번이나 만났죠?
네. 예전에 <H>와 <오래된 정원>에서.
그 중 특별히 호흡이 잘 맞는 배우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염정아씨와 강성연 씨가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죠. 서로 배려도 잘 해주고. 그 뒤로도 꾸준히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들이고요. 종종 술도 한잔씩 해요.
강성연 씨도 집중력이 대단한 것으로 아는데, 배우로서 함께 작품을 하며 지켜보니 어떻던가요?
굉장한 집중력과 치밀한 준비성! 진정한 프로죠. 현장에서 슛이 들어갔을 때의 집중력은 무서울 정도에요. 단적인 예로 이번 촬영에서 저에게 내동댕이쳐지고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겨서 질질 끌려서 던져지는 등. 정말 장난 아닌 상황이 많았어요. 굉장히 어렵고 힘든 씬이 많았는데 그것들을 아주 훌륭히 소화해냈어요. 덩치도 작고 여려보이지만 굉장한 파워가 있고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에요. 배우로서 부러울 정도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죠. 춤, 노래, 연기 모든 것이 갖춰진, 그래서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것일지도 모르고. 아마 제 생각에 뮤지컬을 한다면 정말 잘하지 않을까.
노래를 잘 하나 보죠?
그럼요. 예전에 음반도 냈잖아요.
아하! 그랬죠? ‘Bobo’라는 이름으로. 깜빡했네요. (웃음) 혹시 누군가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 배우 있나요?
글쎄요. 저는 그 누구를 모델로 삼고 싶진 않아요.
어쨌든 지진희 씨는 이야기를 해보니 욕심이 많은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그 많은 욕심 중 정말 뚜렷한 한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연기자로써 죽기 전에 ‘이런 역할은 해봐야겠다!' 싶은 것 있나요?
한 가지 해보고 싶은 건 코미디.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 중년 이후 노년쯤에 코미디를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죽기 전에 가능하다면 뮤지컬을 해보고 싶은 게 소원이에요. 그건 정말 힘든 작업이고 만능이어야만 되는 것이라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배우로써 그런 희망을 지니고 살아요.
<수>는 18세 관람가 영화겠죠? (필자가 인터뷰기사를 작성할 당시까지 <수>의 영상 심의 위원회의 등급 판정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도 그렇게 될 거에요.
보나마나 그렇겠죠? 일단 힘들게 찍은 영화라 애착도 많이 남을텐데 그런 노력을 보여주고 싶은 관람 대상은 누구라고 생각해요?
일단 18세 이상의 분들은 누구나 봤으면 좋겠고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엄청난 영화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보기 힘들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중에 봐도 절대 질리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라는 것을 느끼고 싶은 분들도. 특히 남성분들은 굉장히 좋아할 것 같고요. 명품 영화가 나왔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실은 저부터가 기대가 큽니다!
그럼 꼭 보세요.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글: 민용준 기자
사진: 권영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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