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이 아니라 공간이 달라졌다.
<중경>과 <이리>는 원래 하나의 이야기이다. <중경>이 며칠 먼저 개봉을 하게 됐는데 어떤 글에 보니 관객들이 <이리>를 먼저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부분이 있더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순전히 창작자인 나의 생각이다. 이 영화 두 편은 먼저 <이리>에서 시작됐다. <중경>을 먼저 촬영했는데, 생각은 <이리>에서 시작해서 <중경>이 나왔다. 그러니까 내 머릿속 사유의 순서로 보자면 <이리>가 먼저라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이다. 사실 관객들이 무얼 먼저보든 관계없지만, 제일 좋은 것은 두 작품을 같이 보는 것이다. <중경>,<이리> 혹은 <이리>,<중경>을 같이 틀면 거의 4시간 되니까 중간에 5~10분정도 쉬면서 내리 보면 제일 좋은 거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안타깝다. 극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
언론시사 기자회견 장소에서 <이리>는 한국 영화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가? <중경>은 중국영화라는 의미인지?
아니다. <중경>도 한국영화 맞다. 한국에서 처음 찍은 영화가 <이리>고 이야기도 한국의 이야기이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영화라고 한 것이다. <중경>은 제작사, 투자사는 한국인데 중국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경계>도 한국 이야기지만 몽골에서 촬영했었으니, 정말 한국에서는 처음 찍은 게 <이리>라는 의미다.
<경계>를 비롯한 예전 작품에 비해 <이리>는 카메라 워크나 내러티브의 진행이 좀 달라졌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른 여느 한국영화를 염두에 두고 찍었다는 의미로 생각했다.
꼭 그런 의미는 아니다. <경계>를 비롯한 내 전 작품들 <당시>, <망종>, <경계>는 모두 조금 조금씩 다르다. 그 다름은 공간에 따른 것이다. <경계>는 몽골의 공간에서 그런 카메라가 나온 것이고, <이리>는 그 도시에 맞춘 카메라 워크가 나온 것이다.
A. 의도한 것은 아니고 그저 공간을 따르고 그 안의 인물을 따른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공간과 인물의 구성대로 카메라 프레임이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지, 내 고집대로 어느 공간이든, 어느 인물이든 어떻게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국가를 나눠서 두 개로 작업한 것은 이례적인 일인 것 같다. 처음에는 ‘이리’에 대한 이야기를 찍어달라고 제의를 받은 걸로 아는데, 왜 <중경>을 찍게 되었는가? 그렇게 기획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는 두 개다. 하나는 나를 보호하는 것이다. 내가 한국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그래서 한국에서 영화를 찍는 게 너무 두려웠다. 한국에서 영화를 찍다가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찍고 한국에서 찍으면 적어도 절반은 간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실패를 해도 절반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하나의 이유였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이리’에서 시나리오를 쓰는데 자연스럽게 ‘중경’이 떠올랐다. 공간과 공간의 대화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이리>와 <중경>이 그렇게 겹쳐져서 두 공간에서 모두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중경>을 먼저 찍고 나니까 두 공간의 대화에 더 자신감이 생겼다.
한국에서 촬영할 때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는지?
어려운 점은 많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 어디에서나 영화 찍는 것은 다 똑같이 쉽지 않다.
<경계>에 보면 몽골에 촬영 온 한국사람들이 나온다. 감독이 막 소리 지르고 혼내는 장면을 보면서, 감독님이 한국의 영화 촬영 풍경을 우회적으로 넣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건 아니다. 다들 비슷하다. 시간 내에 완성해야 하니까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날카롭게 된다. <경계>에서는 그 곳에서 한국 사람이 나타나야 되는데, 그곳까지 오는 한국 사람이 없다. 영화 찍는 미친놈들이나 오지(웃음) 그래서 그렇게 설정했는데, 사실 영화 찍을 때 짜증도 많이 나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부드러운 감독이니까(웃음). 스텝들은 다르게 얘기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영화 속의 그 감독과 전혀 다른 감독이다(웃음)
진실을 찾기 위해 예술이 필요하다
이창동 감독과 친하신걸로 아는데, 혹시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보셨는지? 솔직히 <이리>를 보고 나서 처음 느낀 당혹감이 <밀양>과 비슷했다. 일차적인 느낌인데, 모든 고통이 여자 주인공에게 가해지고 그것이 전시되는 것을 괴로운데 지켜봐야 되는 게 불편했다.
진서는 천사다. 이창동 감독은 지독한 사람이고, 나는 부드러운 사람이다.(웃음) 전혀 다르다. <밀양>은 정말 지독하다.
앞에서 한국을 잘 모르니까 한국에서 영화찍는 게 두려웠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감독님이 한국 감독이 아니니까 이방인의 시선으로 내부인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더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진서는 ‘이리’라는 도시의 어느 곳에나 편재하는 존재처럼 느껴지더라. 진서의 걸음을 따라 도시의 풍경이 보여지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향에 전화하는 프레임에 진서가 항상 등장한다. 그에 반해 태웅의 캐릭터는 생경한 느낌을 좀 받았는데, 예를 들어 태웅이 외국노동자에게 해를 가하는 부분. 약자가 약자를 해하는 부분이 씁쓸하지만, 태웅이 그렇게 폭력적이 되어가는 것이 진서 때문이지 않나?
사실 그 안에서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은 태웅이다. 태웅이는 천사가 아니라서 마음을 비울 수가 없다. 직업이 택시기사인 태웅은 도시를 많이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사실 택시기사가 소통하기는 참 어렵다. 내가 택시를 탈 때보면 기사들이 외로워보인다. 말이 너무 많은 기사들도 있는가 하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기사들도 있다. 말하는 사람이나 말하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 외롭다. 진서는 고통을 당하지만 그 아픔을 감싸 안고 소화해낼 수 있다. 천사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한다. 그런데 오빠 태웅은 진서를 천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여동생. 혈육. 그러니 얼마나 아프겠는가. 나한테도 그런 여동생이 있다면 똑같이 분노를 터트릴 것 같다.
말씀하신대로 진서는 항상 어느 공간이나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기쁨을 주고 도움을 준다. 그런데 태웅이 사람을 찾아가는 이유는 분노 때문이다. 태웅은 동생 월급을 안주는 학원 원장을 찾아가고 동생을 윤간한 베트남 전우회를 찾아가고 외국인노동자에게 진서에게 빨래시키지 말라고 찾아간다. 태웅은 진서가 주도해서 빨래를 가져오는 것을 모른다. 내 동생이 바보니까 시킨다고 생각한다. 태웅이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딱 3번인데 모두 분노 때문이다.
보통사람이라면 죽이고 싶지. 자기 동생이 그렇게 고생을 하고 엉망이 되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에 죽은 줄 알았던 진서가 살아있다. 그건 죽은 것인가 살아있는 것인가?
그건 나도 모른다. 왜 그렇게 설정을 했냐면 내 마음 속에는 그 진서라는 인물은 천사다. 천사는 돌아온다. 천사가 돌아오지 않으면 세상은 폭발할 것이다.
태웅이 진서와 바닷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물소리만 들린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더라.
사람이 극도로 긴장을 하면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도심 한복판에서 싸움을 한다고 하면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자기 마음속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태웅은 동생을 물속에서 죽였다. 태웅에게는 물소리밖에 나지 않을 것이다. 그 소리는 만든거다. 영화는 가짜니까(웃음) 가짜지만, 진짜 정서는 가짜에서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게 영화이고, 이 세상의 현실이다. 세상이 행복하면 예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보도자료에 ‘리얼리티 영화’라는 표현이 있는데 맘에 안 들었다. 가짜로 진짜 정서를 만들어 내는 게 영화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내가 한 게 아닌데(웃음) 예술이라는 게 세상에 나온 것은 세상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진실에서 진실을 찾아낼 수가 없다. 허구를 통해서 진실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 존재하는 역사책, 정치서적 따위는 다 믿을 게 못된다. 거기에는 진실이 없다. 특히 요즘, 만약 100년 후에 인터넷으로 지금의 역사를 본다고 하면 진실은 더 찾을 수 없을 거다. 옛날의 역사도 통치자들이 모두 꾸며낸 것들이다. 그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역사의 진실을 찾으려면 그 시대의 시나 소설을 찾으면 된다. 그건 다 허구인데도 진실은 거기에만 있다.
그래서 감독님은 진실을 찾기 위해 예술을 하고 계신 건지?
내가 예술을 하고 있나?
Q. 네~(웃음)
사는 게 불편하다
감독님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흥미로웠던 것은 감독님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친구에게 “영화는 누구나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데, 영화를 찍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지금 좀 후회되는 것은 내가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거다.
왜?
나보다 더 재능있는 사람이 더 좋은 영화를 찍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많은 낭비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열정을 부어야 하고, 노동을 해야하고, 자본이 들어가야 하고, 마지막에는 별것도 나오지 않는데 그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택시운전을 했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아니다. 너무 겸손하시다!
겸손이 아니라 그런 마음이 든다. 무력감? 무력감이 든다. 영화를 찍었다고 하지만 혼자 생각할 때 무슨 힘이 있나 그 안에. 방황이 더 심해진다. 다음에 내가 택시운전 하면 혹시 내 택시에 타시면 알아봐줘요.(웃음)
저는 감독님이 감독님인게 더 좋다.(웃음) 한국이 많이 편해지셨나?
그건 아니다. 불편한 건 똑같다. 중국도 불편하고, 사는 게 불편하다.(웃음) 불편해도 부드럽게 다른 사람들을 대하자고 생각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출입국 관리소에 가서, 문도 열기 전부터 줄서서 다섯 시까지 기다렸다. 짜증이 얼마나 나겠는가.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곳에 있는 노동자들이 거의 다 한국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다. 내 비자도 노동자비자이다. 나만 짜증나는 게 아니라 다들 짜증나는데 참아야지.
익산역에서 윤진서를 만나다
윤진서씨 캐스팅은 어떻게 하셨는지? 어느 작품에서 윤진서씨를 보셨는지?
제일 처음 이리에서 봤다. 익산역에서 잡지를 하나 봤는데 윤진서씨 사진이 거기 있더라. 어떤 잡지의 표지에 나와있었는데 나는 배우인지 몰랐다. PD랑 같이 갔다가 시나리오 쓴다고 역안의 커피숍에 앉아 있었는데 잡지에 나온 윤진서씨의 사진을 보고 절반 농담으로 “얼굴이 재밌다.”라고 말했다. 얼굴이 재밌다는 건 예쁘다기보다는 옆집에도 있는 얼굴이잖나(좌중 옆집에 그런 얼굴이 있으면 좋겠다고 난리법석) PD가 관심이 있냐고 묻길래 농담반 진담반으로 어떤 배우냐고 물었더니 요즘 잘나가는 배우라고 <바람피기 좋은날>에 나왔다고 하더라. 그 때는 그 작품도 못 봤을 때다. PD가 우리 영화에 쓸 생각있냐고 물어서 쓸 생각은 있지만 그 배우가 뭐가 답답해서 나같은 사람이랑 영화를 하고 싶어하겠냐 했다.
PD가 연락을 했더니 시나리오 좀 보자고 하더라. 시나리오가 없다고 했더니 만나서 얘기를 하자고 했다. 만났는데 시나리오가 없으니까 쓸데없는 얘기하고 돈도 별로 없다라고 했더니 이상하게 윤진서씨가 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하게 됐다. 촬영 내내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자기 말로는 다른 현장에서보다 모범적으로 했다고 하더라. 다른 현장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웃음)
윤진서씨 연기에는 만족하시는지?
영화에서 보면 진동 받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나? 표정이나 말투나...
그 전에 <경계>찍을 때도 서정 씨와 같이 작업을 하셨다. 개인적으로 그 배우들이 다른 영화에서 어떻게 연기를 해왔는지 알기 때문에 처음엔 그들의 연기가 힘들어보였다. 그런데 영화를 계속 보다보면 그들의 연기가 어떤 단계를 넘어섰다는 느낌이 오더라.
나는 원래 그 사람들의 연기를 모르니까 내 눈엔 딱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따라와주었다.
한국영화는 많이 보시는지?
재작년까지는 많이 봤는데 그 후엔 거의 못 봤다. 영화를 만드는 일에는 사소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영화를 준비할 때는 시간이 별로 없다.
한국 감독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 혹은 아시아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혹시 동시대 감독들 중에 눈여겨보는 감독이 있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나에게 그런 위치는 없는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자 때문에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인데...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
감독이 얼마나 외로우면...
<이리>에 나오는 태웅이 택시기사로서 겪는 에피소드들은 어떻게 생각해내셨나?
택시타고 요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어디에나 있다. 그 씬은 PD와 함께 택시타고 가다가 내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찾다가 교회가 보이더라. 교회에는 화장실이 있으니까. 태웅이 택시기사니까 손님들이 급해서 잠깐 어디에 세워달라는 사람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 때 택시비 안내고 도망가는 사람을 여기다 세우기로 했다. 왜냐면 교회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곳이다. 그런데 택시비 안내고 달아난 사람은 교회사람은 아니다. 중부시장에서 화장실 간다고 잠깐 세워달라고 하면 돈 내고 가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장소에 세워달라고 하면 달아날 거란 생각은 거의 못할 것 같았다. 물론 교회나 신앙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태웅과 술을 마시는 여자손님은?
택시기사들에게 그런 일이 흔히 있다. 그 여자 손님도 외로운 사람이다. 여자는 익산에 누군가를 만나러 왔을 것이다. 익산역에서 나와서 택시에 타서 전화를 두 번 하는데 처음엔 받지 않고 두 번째는 상대방이 전화를 끊는다. 그런 상태는 감정에 문제가 생긴다. 여자의 아픔도 거기에 있다. 성(性)이라는 것은 감정과 같이 가야되는 것인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면 본능의 문제도 있어서 풀어야 한다. 그것을 해소한 후에는 외로움이 더 심해진다. 그게 아픈거다. 감정 없이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상대 중에 가장 거부감 없는 사람이 택시기사일 수 있다. 택시기사는 잠깐 사람을 만나고 떠나는 직업이다. 또한 그 시간에 택시라는 작은 공간 안에 있는 것만으로 그런 분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택시기사라는 직업도 굉장히 외로운 직업이라서.
<이리>는 그 두 남매로 인해서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처럼 보여진다. 개인적으로는 그 곳이 30년 전 사고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도시라기보다는 외롭고 버려진 지방 소도시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이 그 곳으로 모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택시 여자 손님도 그렇고.
더 깊은 말을 하자면 감독이 얼마나 외로우면 거기까지 가서 사람들을 모아 영화를 찍었을까.(웃음)
음악이 영화를 왜곡하는 게 싫다.
혹시 뮤지컬 장르에 관심이 있나?
(되묻는다) 혹시 아는 제작사나 투자사를 아나? 돈이 있다면 당연히 하고 싶다.
영화에 노래가 많이 나온다. 배경음악이 아닌 배우들의 육성으로 불려지는 노래가 자주 나오는데 뮤지컬적인 재미를 느꼈다.
아직 내 영화에 배경음악을 쓴 적이 없다. 소문을 들으니까 내 영화가 너무 답답하다는 얘기가 있더라.(웃음) 답답하니까 노래라도 넣어서 사람들 기분을 좋게 해주자 했다.
음악을 쓰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이 후 작품들에 음악을 쓸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대가들이나 다른 감독들의 영화를 볼 때 음악이 나오면 집중이 된다. 내 감정이 있다면 음악은 그것보다 더 올라가던지, 더 내려가던지 한다. 그러면 아무리 대가들의 영화라고 하더라도 거부감이 생긴다. 그런데 딱 한 감독 작품은 거부감이 생기지 않더라. 짐 자무쉬. 그 사람 영화는 음악으로 출발하니까 그 영화에 내 감정이 음악 때문에 왜곡됐다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더라. 그래서 좋았다. 그런데 내가 음악을 쓴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다. 또 하나는 영화를 만들어보면 음악이 들어가지 않으면 만들기가 어렵다. 음악이 없으면 그 안의 문제점이 확 드러난다. 어디가 모자라고 어디는 어떻다는 게 다 나온다. 음악으로 그것을 다 덮는 거다. 나는 좀 어려운 일을 하는 게 좋다.
그 말은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자신이 있다기보다 아직까지 내가 겁이 없는 거다. 덜 성숙된 거다.
음악을 쓰지 않고, 씬이 길고, 카메라가 인물에 좀처럼 가까이 들어가지 않는 이런 스타일 때문에 작품이 더 무게감을 갖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같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인물보다 공간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는가? <이리>시사가 끝난 후 윤진서씨가 인터뷰를 할 때, <이리>를 촬영할 때 자신이 벽이나 의자나 탁자와 똑같은 선상에서 찍히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그 사람 생각이다.(웃음) 인물을 중요시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영화는 사람을 찍는다. 그리고 영화는 사람의 감정을 다룬다. 그런데 사람은 공간 안에 있다. 공간에는 사람의 흔적이 모두 존재한다. 사람이 공간에서 나가도 카메라로 찍는 그 공간에는 그 흔적이 남는다. 사람이 얼마나 잘났다고 사람만 카메라가 계속 찍어야 되나. 사람은 공간 안에서 묻어나야 되는 거지, 공간보다 더 잘 나와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진서가 그 날 자신이 동물 같기도 했다는 얘기를 하던데(웃음)
정치적인 게 아니라 현실이니까
예전 인터뷰를 보니 역사적 사건은 감독님에게 늘 개인의 문제로 남아있다고 말하셨더라. <경계>나 <이리>를 보면 정치적인 암시들이 있다. <경계>에서는 북한 미사일에 관한 뉴스가 라디오에서 나오고, <이리>에서도 두 남매가 밥을 먹는데 TV 뉴스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모습이 나온다.
그것도 내 생활과 관계된 것이다. 내 영화를 찍을 때 진짜 선거를 하고 있었다. 그게 생활이었으니까 그대로 나오게 하자. 그랬다. 그 영화 찍을 때는 어느 방송을 틀어도 대선 얘기뿐이었다. <경계>도 그랬다. 그 장면을 촬영할 때 라디오를 틀었더니 그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찍고 나서도 사람들이 정치적인 거니까 빼자는 소리도 했었는데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됐다고 해서 그냥 갔다. 그게 현실이니까. 내가 그것을 이용하겠다는 게 아니라 진실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보면 아, 이거 정치적이다 하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전혀 아닐 수도 있다.
세월이 지나면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예술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겠다.
<이리>찍을 때 진짜 길거리에서 대선관련 인터뷰도 많이 하더라. 투표를 할 건지, 어떤가,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찍었다.
‘중경’이라는 도시에 대해 얘기해달라.
삼천만 인구,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사천성 근처에 있다. 번화한 곳이다. ‘이리’와 전혀 반대다. 그쪽은 터질 것 같고, 이리는 폐허같다. 이리를 보면 중경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중경도 어느 날에는 폐허가 될 것 같다.
작품이 나왔다면 책임을 못진다. 아들 낳아놓고 아들이 무슨 일을 하던지 아버지가 다 책임을 질 수는 없지 않나. 나의 출발점은 천사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고통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세월이 지나보면 다를 거다. 그 사람이 오늘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10년 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이란 게 그런거다. 30대 때 생각과 50대 때 생각은 또 다르다. 그것도 재밌는 거 같다.
감독이란 직업은 사실 권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나? 감독님은 현장에서 작업하는 방식이 어떤지 궁금하다.
그런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영화판에 보면 제일 나쁜 놈들이 감독이다. 궁금하면 다음 영화 찍을 때 현장에 와서 직접 보시라.(웃음)
계획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영화감독들은 다 이런 질문에 계획이 있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믿으면 안 돼.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작품 구상할 때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가 아니면 이야기가 먼저 떠오르는가?
작품마다 다르다. 그런데 이미지가 떠오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내가 찍을 영화의 한 장면이 갑자기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감독하는 사람들이 거의 망상증 환자들이잖나. <경계>같은 경우는 먼 길을 떠나는 어머니와 아들의 뒷모습이 계속 떠올랐었다. 그래서 하나를 만든거지. 다 거짓말인데 그 안에 있는 자기 감정은 진실해야 한다. 만드는 과정은 사실 재미없다. 지루하고 힘들고.
Q. 그래서 난 그냥 보는 게 더 좋다.(웃음)
2008년 11월 10일 월요일 | 사진_권영탕(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