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시사 때 무대인사에서 이 영화가 삶의 태도를 바꾸게 했다고 말했었다. 어떤 의미인가?
좀 복잡한데, 나는 20대이고, 열정적이고 뭔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나의 성격, 나의 모든 것들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고, 뭐든지 그런 것들을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사는 게 멋있는 것인 줄 알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게 솔직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무엇이 진짜 솔직한 것인지, 어느 정도 절제하고 좀 더 기다려보면 답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절제하는 방법을 영화를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하면서 그런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 그게 나에게 필요했었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절제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특히나 나처럼 솔직한 편인 사람은 절제가 더 힘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솔직하지 않는 게 절제는 아니다. 욱하고 났더니 나중에 좀 더 절제할 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연기할 때뿐만 아니라 살면서 누구랑 대화를 할 때에도 느낀다. 특히 절제가 중요할 때는 화를 낼 때다. 그리고 감독님은 상당히 모호한 편이다. 말투도 모호하고, 표정도 모호하고,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그래도 항상 정확하게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끄집어낸다. 그렇게 기다리고, 절제하다보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더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절제와 기다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연기라든지 삶에서도, 영화를 찍으면서 그 부분이 나에게 굉장히 컸었다.
<이리>의 진서는 고통을 받는 인물이다. 진서를 지켜보는 게 가슴이 아팠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여러 번 보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세상 사람들이 그런 것 같더라. 자기들이 그렇게 잔인한지 모르는 거! 그런데 우리는 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면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나쁜 사람들에게 국한된 얘기라고 생각하면서 본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힘들어하는 것 같다.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덜 힘들었겠지만.
장률 감독님은 진서를 천사라고 하더라. 그래서 고통을 다 소화해낼 수 있다고 말하던데 연기할 때는 어떤 주문이 있었는지?
감독님이 촬영 당시 나한테 그랬었다. “진서는 천사일까? 바보일까?” 모호한데, 그 모호함을 표현해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내가 바보인 줄 알아요? 저 바보 아니에요”하는 술을 마시면서 하는 대화를 직접 만들면서 보는 사람들이 섬뜩했으면 좋겠다, 헷갈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희망은 늘 우리 주위를 정화시킨다. 양로원에서 매일 청소를 하듯이, 학원에서 무보수로 날마다 청소를 해주듯이 진서는 희망으로 우리를 정화시키지만 우리는 그 희망을 희석시킨다. 그게 희망인 줄도 모르고 그걸 끌어내리고 이용해먹는다. 그래도 고맙게도 희망은 스스로 계속 나타나는 걸 <이리>는 보여주고 표현한다.
캐스팅에 대해, 시나리오도 없는 상태에서 감독님과 한번 만나보고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들었다. 그런 결정을 내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감독님을 만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구나, 이런 어른이 있구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어른이 있구나’ 했다. 왜냐면 내가 나이를 먹으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능숙해지는 것과 간사해지는 것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사람들은 으레 일에 능숙해지면 간사해 지기도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바보 같은 사람이 나은 것 같다.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감독님을 봤더니 그런 사람이더라. 그래서 이 사람과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작업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고.
진서씨 얼굴을 보고 장률 감독님은 ‘재미있다’는 표현을 쓰더라. 감독님과 자신의 얼굴에 대해 얘기를 나눈적 있나?
내 얼굴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바보와 천사의 모호함을 나에게 표현해달라는데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애초에 잘하는 배우를 캐스팅하지 그랬냐고 장난으로 말했더니 “너는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돼”라고 하시더라.
이름은 어땠는지? 영화 속 주인공 이름도 진서 아닌가? 불편하진 않았나?
불편하진 않았다. 감독님은 단순히 윤진서라는 어감을 좋아하셨다. 예쁜 이름 같다고 하시면서. 태웅 오빠도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름을 썼고. 또 다른 이유는 배우들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그랬다고 하시더라!
배우들은 연기를 하는 동안에는 그 인물이 되고 싶어하지 않나? 그래서 이름까지 같으면 자기 자신과 인물을 혼동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중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왜, 이런 말 있지 않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마인데 길들여져서 착해지는 것인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천사인데 길들여져서 악마가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 이 말에 빗대어 보자면 진서는 태어날 때부터 천사이고 때 묻지 않은 거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나 자신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아이라고 생각했다. 윤진서라는 이름을 쓴 게 나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천사가 아니니까. 천사가 못되니까.
<이리>를 촬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자기 뺨 때리며 지하도를 걷는 장면과 과일가게 꼬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욕실에서 거울 앞에 서있던 장면이 잊히지가 않는다. 가장 감정적 호소력이 큰 부분들이었다.
그 두 장면이 가장 힘들었다. 딱 아시네. 뺨때리는 장면이 힘들었던 이유는 얼굴의 표정이 나도 모르게 자꾸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첫 번째 테이크를 갈 때는 엄청나게 울면서 촬영을 했었다.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내 뺨을 때렸다. 엉엉 울면서가 아니라 눈물만 계속 흐르는 상태였다. 나는 통제한다고 했는데 눈물은 통제가 안되는 거다. 표정은 통제됐지만 눈물은 통제되지 않은 채로 뺨을 때렸는데 감독님이 끝까지 가시더라. 나는 감독님이 맘에 드시나보다 했다. 그런데 “자, 눈물도 빼고 한 번 더”라고 하시더라.
<중경>은 봤나?
장률 감독님 영화는 다 봤다.
<중경>의 쑤이와 <이리>의 진서는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감독님은 두 영화에 대해 폭발직전의 도시와 폭발 후의 도시의 대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중경>의 쑤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었나? 혹시 쑤이를 연기했다면?
그런 생각은 못해봤다. 생각 할 수도 없다. 내가 연기를 했다고 가정할 수가 없는 게, 장률 감독님의 영화는 감정의 깊이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진짜로 내가 연기를 해봐야만 안다. 그리고 진서를 연기했던 사람으로 쑤이를 봤을 때, 비슷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쑤이와 진서가 진짜 만났다면 행복하지 않았을까, 왜 우린 떨어져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보통 감독이라면 그 둘이 만나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데 왜 장률 감독은 동시에 영화를 찍으면서 굳이 떨어뜨려놓고 힘들게 할까, 참 나쁜 사람이다. 감독님 참 지독하다, 생각했다.
감독님 영화를 다 보셨다고 했는데 장률 감독님의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시>는 서울영화제 때 봤고, <망종>은 DVD를 구해서 봤고 <경계>는 개봉했을 때 봤다. <중경>은 기자시사 때 몰래 들어가서 보고. 여하간, 장률 감독님의 영화는 지금은 사람들이 경황이 없어서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정신없는 세월이 흘러가고 나서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신기하다. 지난 번 인터뷰에서 감독님도 진서씨랑 같은 말을 했었다.
아, 정말? 장률 감독의 영화는 나중에 우리가 지금 그 누구를 얘기하듯이 다시 한 번 회자가 될 영화이고, 그렇게 해서 시리즈로 공부를 해볼 만한 영화들이라 본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모를 수도 있지만, 내가 영화를 많이 보고 공부를 했던 배우로서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자부한다.
그럼 다시 장률 감독님과 작업할 기회가 온다면?
오케이다. 그 때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웃음) 너무 힘들다. 단 2주 동안이었는데도 그 여파가 오래가더라. 그래도 감독님이 너무 좋아서, 견딜 수 있었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일들(일정)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인가?
연기 할 때.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 그 순간. 정말 자유로운 시간이다.
강한 사람인 건 맞는 것 같다. 잘 흔들리지 않으니까. 진서를 연기할 때는 물론 힘들었다. 인물의 캐릭터를 잡고 캐릭터를 만드는 건 힘들지 않았는데 촬영하는 방식에 대한 부분이 힘들었다.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배우에게 접근하는 카메라의 방식 때문에. 카메라가 멀리 있지만 장률 감독의 영화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연기를 해야 한다. 프레임 안에서 흔들리는 바람, 흩날리는 낙엽까지도 연기를 해줘야 하는 게 그의 영화다. 사람하고만 연기를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공기와 바람, 땅이랑도 같이 연기를 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다른 영화들이 공간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화들은 공간을 배우에게 맞춰서 세팅하고, 내가 굳이 호흡하지 않아도 알아서 미술들이 호흡을 해주는 반면에 그의 영화는 생짜다. 내가 호흡하지 않으면 자연은 우리한테 답을 주지 않더라. 그런 것들 때문에 접근이 힘들었던 것도 있었는데 캐릭터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그냥 내 안에 그런 바보 같은 면도 있는 것 같다. 천사는 아닌데, 왜 그런건지, 왜 그냥 당하고 사는지. 그런 것에 대한 이해는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행이랑 독서, 음악이 취미라고 하던데?
사람들은 그걸 배우라서 고상한 척 하려고 한다고 하는데, 진짜로 취미가 여행이랑 독서랑 음악이다.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이 있다면?
내 노래를 즐겨듣는다.
?
아, 내가 기타를 치면서 곡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게 취미기도 하다.
들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영화 안에서라도.
(웃음)
악기는 뭘 다루나?
기타, 피아노, 바이올린, 장구 그리고 탈춤을 좀 춘다. 학교 수업시간에 탈춤을 배웠는데 너무 재밌더라. 잘하지는 못하는데 탈춤은 그냥 즐겁게 노는 목적으로. 또 민요도 좋아한다.
<이리> 오프닝 시퀀스에서 윤진서씨가 노래 부르는 게 나오던데 목소리가 참 좋더라. 언제 정말 노래하는 걸 들어보고 싶다.
그럴 기회가 있을 거다. (의미심장한 웃음)
그럼 요즘 읽고 있는 책? 기억나는 책?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이란 책을 읽었는데, 굉장히 좋았다. 얼마 전에 다 읽었는데 다른 책을 못 읽겠더라. 그 책을 계속 곱씹어보게 된다. 소설은 아니고 민주노동당에서 일하다가 프랑스에 가서 문화정책에 대해 공부하고 돌아온 여자분이 쓴 책이다. 정치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인데, 문화적 혜택을 받기위해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쓴 책이다. 그 책을 읽고 나니까 문화인, 예술인으로서 책임감도 막 커지는 것 같고 내가 해야될 일도 너무 많아진 것 같았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시간되면 그 책 한번 꼭 보시길 바란다.. 진짜 재밌다.
정치적인 행위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내가 그쪽은 문외한이라서...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방금 내가 한말, ‘나는 문외한이니까, 정치에는 관련이 없으니까’ 이런 식의 말을 하면 안 되겠구나. 그러니까 그들이 자꾸 힘을 더 갖고 행패를 부리는구나. 특히나 배우로서 많이 뉘우쳤다. 또한 자유롭기 위해서는 싸워야 되는구나 생각했다. 난 자유롭기 위해서는 안 싸워도 되는 줄 알았거든. 내가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한 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자유롭기 위해서는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구나. 그렇지 못하면 얻게 되는 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그들을 피하고 난 나머지만 자유로운 거였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멋있더라. 그 여자.
로마는 어땠나?
4박 5일간 머물렀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밀라노는 가본 적이 있는데 로마는 처음이었다. 로마보다 밀라노가 내 취향에 맞는 거 같더라! 그리고 로마는 관광객이 참 많더라. 그래서 모든 것이 관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도시인 거 같고. 그래서 그런지 파리나 뉴욕처럼 삶은 없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너무 짧은 기간이어서 몰랐을 수도 있지만, 관광 그 이상의 즐거움은 없었다. 그나마 갤러리에서 <바스키아>전을 해서 봤는데, 그거 가장 좋았던 추억이랄까.
연기를 위해 따로 하는 공부가 있나?
그렇진 않다. 싫은데 뭘 억지로 해본 적은 없다. 물론 신체 트레이닝이라던지 배우들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발성과 발음에 대한 공부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니까.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예술가가 직업인, 그러니까 음악이라던지 미술이라던지 예술을 하는 캐릭터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맘이 있다.
그림도 그리나?
그냥 보는 걸 좋아한다. 전시회 가고. 미술자료집 모으는 게 취미다. 비싸서 흠이긴 하지만(웃음) 또 사진을 좀 찍는다.
그럼 개인적인 꿈도 예술인?
그렇다. 연기도 일종의 행위예술이라고 본다. 대중적이고 규격화된 어떤 틀 안에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그틀에서 빠져나가려면, 자유로워지려면 결국엔 싸워야 되는 것 같다. <이리>나 <비스티보이즈>를 하기 위해서 싸운 것들도 있고, 이런 저런 사소한 것들을 위해서도 싸워야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결국엔 나도 싸우고 있었더라.
자신이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싶은 게 많다. 지적 욕구가 많다. 어렸을 때는 밀란 쿤데라 소설이라던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이런 철학적인 책들도 많이 읽었다. 이해도 못하면서. 그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그런 책들을 최근에서야 이해하게 됐다. 그런 욕구가 없었다면 지금도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마지막으로 흥행에 신경을 쓰는 편인지?
영화가 어떤 영화냐에 따라 다르다. 흥행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라면 신경이 쓰인다. 그렇지 않은 영화라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 봤으면 좋겠다. 이해할 수 있는 소수가 보는 게 좋지, 이해도 못하면서 이런 저런 나쁜 말 듣게 하고 싶지 않다. <이리>는 나만의 보물로 간직하고 싶다. 또한 보는 사람들에게도 보물이 될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2008년 11월 18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