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요즘 ‘윤상현’이란 본명보다 ‘태봉이’라는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서의 애칭으로 불리며 가장 ‘핫’한 스타로 떠올랐다. 잘 생겼지만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지는 일명 ‘귀여운 찌질함’을 지닌 남자. 잘난 척하고 거드름 피우는 재벌2세지만 살짝 톡 하고 건드리면 이내 무장해제 되서 아이처럼 천진한 웃음을 보여주는 남자. 우리와 동 떨어져 살 거 같은 이질감 느껴지는 신비로움보다는 우리와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살 것 같은 묘한 따뜻함이 느껴지는 남자인 것이다. 충돌하기 십상인 여러 면모들을 조화롭게 간직하고 있는 배우, 윤상현과의 인터뷰는 ‘이런 남자가 내 연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사심가득한 감성과 데뷔작부터 최근작까지 빼놓지 않고 모니터해온 이성을 함께 발휘하며 진행되었다.
<내조의 여왕>을 마치며 홈페이지에 “내조란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과 배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라는 글귀를 직접 적으셨었죠. 그리고 얼마 전 <상상 플러스>에서도 호흡을 맞춘 상대 여배우에 대한 배려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던데 혹시 특별한 ‘배려의 기술’을 알고 있는 건 아니신지요.(웃음)
기술이랄 건 없고...사실 배려하면서 해야 제가 연기하기가 편하니까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어릴 때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께서 그런 환경 속에서도 남에게 해 끼치는 걸 무척 싫어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러한 부모님의 성품을 따르게 되었지 싶어요. 습관이 되었다고 할까요? 잘 아시겠지만 드라마 일정이라는 게 무섭도록 빡빡해서 서로 예민해지기 십상이거든요. 그러니 누군가가 희생을 해줘야 분위기가 살죠. 촬영장에 가면 일부러 성대모사도 하고 우스갯소리도 하며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써요. 밤새워 일하다 보면 몽롱해지기 마련인데 그래주면 정신도 들고 화기애애해지니까.
잘나가다 완급 조절을 못해 흐지부지 마무리 되는 드라마들이 그간 상당히 많았는데 다행히 <내조의 여왕>의 엔딩은 우리 모두를 흡족케 했어요. 천지애(김남주)가 태봉이의 마음을 밀쳐내기는 했지만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 내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 그런 것들이 아마 지애를 바로 설 수 있게 했으리라 생각되요. 물론, 사랑 받는 것으로 치자면 요즘 윤상현만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어떠세요?
요즘 막장드라마라는 장르가 생길 정도로 말이 많은데 저희 드라마는 마무리가 잘 돼서 저도 무척 뿌듯해요. 출연자이긴 해도 저 역시 대본이 나오기 전까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거든요. 작가님이 나이가 많은 분도 아닌데 정말 감탄할 만치 완성도 있게 마무리 되어 종영 파티 때 제가 ‘천재작가’시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렸어요. 주인공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을 의미 있게 살려주신 점도 좋았고요. 모든 인물을 아우르기 쉽지 않잖아요. 시즌2를 많은 분들이 기대하시던데 그건 아마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만약 시즌2가 제작된다면 전 황비서 역을 하고 싶네요.(웃음)
‘태봉‘이 역이 마치 인생이 준 ’선물‘ 같다고 했지만 그보다는 <겨울새>의 해맑은 찌질이 ’경우‘를 잘 소화해내서 받게 된 ’상‘같아요. 원작에서 미움만 죽도록 받던 ’경우‘라는 캐릭터를 시청자들이 애틋하게 여기고 편들고 싶게 살려 낸 건 바로 윤상현씨 본인이니까요. 하지만 ’마냥 이렇게 망가져도 되나? 찌질이로 캐릭터가 고정되는 건 아닐까?‘ 싶은 불안감이 든 것도 사실이에요.
저 역시 <겨울새>의 ‘ 경우’ 캐릭터가 배우로서의 삶에 어떤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정성일 감독님이 생각하셨던 건 목에 힘주는 냉철한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원작을 읽어보니 전체적으로 슬프고 청승맞은 얘기이기에 감칠맛 나는 캐릭터가 필요하지 싶어 귀여운 마마보이로 가면 좋을 것 같다고 감독님께 말씀 드렸죠. 근데 재미있는 건, 제가 제안 할 때는 별 반응이 없으시다가 제 이야기를 들은 상대역 박선영씨가 감독님께 어필하니 그제야 들어주시더라고요,(웃음) 캐릭터를 그렇게 확실하게 잡고 연기하니 시청자들이 찌질한 인물인데도 애정을 가져주시니 저로서는 너무 고마운 거죠.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도 악역이지만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잖아요.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해요. 그전엔 실장전문배우라고 할 정도로 한정된 역할만 했기 때문에 어느 날부터 정말이지 다른 게 너무 하고 싶었어요. 절실했죠. 그러던 와중에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만나니 와락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사실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독신천하>, <불꽃놀이> 등 <겨울새> 이전의 작품들에서 맡은 역은 다 잘 나가고 폼 잡는 인물들이었죠. 나쁜 남자라는 측면에서 ‘태봉’이와 엇비슷한 캐릭터들이라 볼 수 있는데 유독 허태준에게 시청자들이 열광하게 된 까닭은 뭘까요
겨울새를 통해 자신감을 어느 정도 얻었고, 그 이후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때는 카메라 앞에서 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노는 기분으로 자유롭게 연기했어요. 감독님께서 믿고 맡겨주신 거죠. 그러다보니 대본에 쓰인 대사만 달달 외워 연기하던 때와는 다르게 저도 모르게 제 나름의 연기가 나오더군요. <겨울새> 때 어머니이셨던 박원숙 선생님께서 진심으로, 마음으로 연기하라는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 말씀을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사실 <겨울새> 전엔 흉내만 내고 감독님 말씀에 따라 수동적으로 연기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그러다 제 캐릭터를 제 스스로 만들 줄 알게 되면서 슬슬 자신감이 생겼지 싶어요. 시청자들이 허태준을 통해 좋게 봐주신 게 있다면 아마 자신감일 겁니다.
지애의 “수염 없는 게 낫겠네!”라는 한 마디에 당장 면도를 해버리는 설정에 억장이 무너진 여성들이 많았어요. 면도 자체야 물론 대본이겠지만 거울 볼 때의 표정이라든지 면도한 후 지애를 만나러 와서 코 밑을 슬쩍 훑는 부분 같은 건 그야말로 압권이었죠. 상현씨는 본인의 어떤 손짓, 몸짓, 눈빛에 여성들이 쓰러지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웃음)
대본이 나오면 일단 연구를 많이 해요.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또 어떨까 하고 궁리를 많이 하죠. 솔직히 예전엔 그런 생각을 통 못했어요. 그런데 훈련이 되니 이젠 자연스럽게 손동작도, 그에 따른 눈빛도 나오더라고요. 저는 어떤 캐릭터든지 어린 시절과 연관을 지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했으니 커서 이런 캐릭터가 됐겠구나, 하는 식으로요. 허태준 사장이라면 그런 표정과 몸짓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나저나 여성을 쓰러지게 하는 기술을 잘 알고 있지 않냐고요? 정말인데 그런 거 전혀 없어요. (마구 손사래) 예전부터 콤플렉스가 주름이에요. 하지만 이젠 역으로 제 연기의 커다란 도구라 생각하게 되었죠. 선하게 보이기도 하고 주름으로 표정도 많이 만들어지고, 대사 없이도 표현이 가능해진 셈이죠. 극 중 지애에게 반지 건네는 장면에서 어색해하고 뻘쭘해 했던 표정이 마음에 든다는 분들이 많으셨는데 실제로 제가 여자 친구에게 이벤트를 해주고 그런 걸 잘 못해요, 그 어색함이 촬영 때 저도 모르게 나왔지 싶어요. 본래 제 모습인거죠.
상현씨는 데뷔 때부터 일본배우 기무라 타쿠야와 본의 아니게 많이 비교되어 왔는데요. 기무라 타쿠야도 혹시 상현씨를 알고 있을까요?
저도 궁금한데요.(웃음) 과연 알고 있을지? 6월에 일본에서 <내조의 여왕>에서 불렀던 ‘네버엔딩 스토리’를 부를 예정인데요. 일본프로덕션이 기무라와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어 준다고는 했는데 어찌될지는 모르겠어요. 기무라와 한 무대에서 노래 대결을 해보고 싶긴 하죠. 사실 기무라를 닮았다고 해 주시지만 제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별로 안 닮았어요. 하도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예전에 기무라 사진을 놓고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 비교해 본적이 있긴 해요. 분위기는 조금 닮은 것 같긴 한데. 외모는 그닥..(웃음)
<내조의 여왕>에서 보여준 노래 실력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어요. 혹시 기무라 타쿠야처럼 버라이어티한 연예 활동을 할 계획이 있으신지?
사실 전에는 노래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어요. 어쩌다 작가님이 노래 부르는 장면을 넣어주시는 바람에 시청자들께 선보이게 된 거죠. 버라이어티한 활동이요? 아뇨! 전 지금은 연기만 하고 싶어요. 기무라의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프로정신은 정말 높이 사지만, 저는 지금은 연기에만 오로지 집중하고 싶어요.
포털사이트 지식검색에서 ‘윤상현’을 검색하니 “윤상현씨 만나는 방법 좀 알려 달라“는 질문이 있던데. 윤상현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면 될지? 음식은 뭘 좋아하는지, 취미는 뭔지, 여가엔 어디서 뭘 하고 지내는지, 주로 출몰하는 지역은 어딘지 두루 다 궁금해 하시더라구요.
예전에는 포장마차에 자주 갔어요. 요즘엔 바빠서 통 못 가지만. 비오면 포장마차에서 비 소리를 들으며 좋은 사람들과 한잔 하는 즐거움을 자주 누렸죠. 그러고 보니 술 끊은 지 7-8개월은 족히 되네요. 나이 들고 술 마시니까 피부가 늘어져서요.(웃음) 등산도 좋아해요, 어느 산을 딱히 정해놓고 다닌다기보다 무작정 그날 기분 내키는 대로 떠납니다. 구룡산도 가고 관악산도 가고 그래요. 그리고 또 낚시도 좋아하죠. 다음 주부터는 시간 내서 산에도 가고 낚시도 좀 하려고요. 아 맞다, 옷 만드는 것도 좋아해요. 순전히 취미로만. 제가 패셔너블하다고들 하지만 전 코디가 입혀주는 대로 그냥 입어요. 옷 입는 것보다 오히려 옷을 직접 만드는데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죠.
<크크섬의 비밀>의 윤대리도 그렇고, <내조의 여왕>의 허태준도 그렇고, 가만히 보면 자기 마음을 드러내기 보다는 뒤에서 돌봐주는 속 깊은 인물형들이죠. 남자 중의 남자지만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캐릭터인데 실제 윤상현이란 남자는 어떤 인물인가요
제가 실제로도 마음을 드러내기보다는 뒤에서 감추는, 보내주는 타입이라고 보시면 될 거예요.
살다보면 예쁘거나 잘생긴 얼굴 덕을 종종, 아니 많이 보잖아요. 그렇다면 상현씨도 잘생겨서 얻은 최대의 수혜가 있다면.
(민망해하며) 잘 생겨서 덕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잘생겼다고 제가 생각했다면 <크크섬의 비밀>이나 <겨울새>도 안 했겠죠.
정말요?
네 정말로!
폭풍과 같은 인기를 얻고 난 후라 차기작에 대한 부담이 엄청날 것 같아요. ‘이런 역은 꼭 한번 해보고 싶다’ 하는 거 있을까요? 그리고 진부한 질문이긴 하지만 워낙 인기남인지라 어떤 이성에게 끌리는지, 그것도 궁금해요.
차기작에 대한 부담이 있긴 하지만 드라마든 영화든 꾸준히 계속 출연하고 싶어요. 사실 신중하게 선택하라고 주변에서 많은 조언을 해줘요. 남주 누나와 승우 형은 차기작 대본받으면 자기들에게 먼저 가져오라고 할 정도로 많이 신경을 써주는 좋은 분들이죠. 벌써 제가 데뷔 5년차인데 지금처럼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는 건 처음이니까, 일단 집에서 너무 좋아하세요. 늦게나마 부모님께 최고의 효도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뭐든 다해보고 싶어요, <맨발의 기봉이>의 기봉이 같은 역도 하고 싶고. 여하간, 이것 저것 안 따지고 카메라 앞에서 막 놀고 싶어요. 그리고 이상형은 무조건 필이 통하는 분! 제가 필이 통하면 저돌적으로 대쉬하는 스타일이에요.
좀더 구체적으로(웃음)
밝고 복스럽고 아담한 분!
2009년 6월 17일 수요일 | 글_김서희(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