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더 이해하게 됐다. 인터뷰 이게, 쉬운 게 아니다.(웃음)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책을 쓰고 누구에게 가장 먼저 보여줬나?
정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안 보여주고, 직접 사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책을 많이 팔겠다는 욕심은 없는데, 출판사가 손해 볼까봐 걱정돼서.(웃음) 아, 미국에 계신 엄마에게는 보내드렸다. 그리고 내가 책에서 멘토라고 했던 신철 대표님과 황인뢰 PD님에게는 직접 가져다 드렸다.
책을 낸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원래 ‘매니지먼트 개론’ 책을 내기로 계약이 돼 있었다. 그런데 개론 책에 앞서 에세이를 한 번 써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책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쓴다고 해도 하고 싶은 얘기를 과연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해서. 그런데 당시 내가 ‘모닝 페이퍼’라는 걸 쓰고 있었다. ‘매일 아침 의식의 흐름’을 적어가는 거였는데, 쓰다 보니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막 쏟아져 나왔다. 이를 통해 ‘내 이야기를 한 번 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지 않을까’라는 용기를 얻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책에서 ‘매니저의 삶이라는 것은 내 삶의 주인공이 내가 아닌 남의 삶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란 말이 나온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자기가 돋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지 않나. 당신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매니저로서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순간이 있었을 것 같은데.
매니저 하는 친구들을 보면, 일반적으로는 5년차가 넘어가면서 자신의 삶을 잊어버리고, 그냥 거기에 만족하며 사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에 대한 욕심이 항상 있었다. 조력자로서의 삶에 만족했다가, 나에게 충실한 삶에 갈증을 느꼈다가, 다시 현실에 만족하다가. 이런 식으로 계속 왔다 갔다 했다. 노력은 했지만 매니저 하는 15년 동안 그 생각을 극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구나 싶다. ‘배우들은 아티스트이고, 매니저는 비즈니스맨이라는 속성이 있다’고 했는데, 책에서 엿보기에 당신은 아티스트적인 측면이 큰 사람이었다.
아티스트를 지향하는 건 맞다. 문제는 아티스트적인 소질이나 재능은 없다는 거.(웃음) 어렸을 때부터 예술적인 감각이 있거나, 그런 환경에 있는 친구들이 되게 부러웠다. 그래서 사실 뉴욕에 가서 지내는 1년 동안 ‘나에게도 혹시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림도 그려보고, 기타 레슨도 받아보고, 댄스도 배워 보고 이것저것 많이 해 봤다. 그런데 해 보니, 이건 아닌가 싶어지더라.(웃음)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알고 돌아 온 것 같다.
일단, 사표를 내지 않으면 자유롭게 무(無)의 상태에서 생각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와 관련된 배우들과 매니저 동생들 때문이었다. 그들을 구속시키고 싶지 않았다. 당시 사표를 안내고 가면 그네들이 나를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그들에게 정말 못할 짓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뜻이 없다’는 걸 확실하게 그들에게 인식 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나 스스로도 원했고. 그들에게도 그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까지도 매니저로서 배우들 걱정을.(웃음)
오래 하다 보니, 참.(웃음)
그만 둘 때 말리는 사람도 많았겠다.
처음에는 다들 황당해 했다. “조금 지쳤구나, 당분간 쉬어야 하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대부분이 “다녀오면 무조건 (매니저 일을)다시 하겠지!”라고 생각한 것 같다.
복귀할 계획은 없나?
나도 그 쪽으로 다시 피가 당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너무 낯선 세계처럼 보인다, 벌써.
매니지먼트를 나온 게 2년쯤 돼 가는데, 어떤가. 안에서 지켜봤던 연예계와, 나와서 바라보는 연예계는 다른가? 나오니까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측면이 있을 것도 같고, 반대로 너무 잘 아는 곳이기에 그러려니 하면서 보는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둘 다다. 안 보였던 게, 더 잘 보이게 된 부분도 있고, 그러려니 해지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웃기는 건, 마치 매니저 일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사람처럼 내가 TV를 보고 있다는 거다.(웃음)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의 고수를 보면서 어찌나 좋던지. 그래서 그 드라마의 이경희 작가님과 통화 하면서, “언니! 너무 멋있어요! 다음에 어떻게 되나요?”이렇게 묻곤 했다.(웃음) 이제는 조금 평범한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건 없나? 예전의 버릇이 나와서 ‘아, 저 배우와 한 번 일 해보고 싶네’하는.
그럴 때도 사실 있다.(웃음)
혹시, 누구?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서 1, 2회에 고수 아역으로 나온 친구가 있다. 훌륭하다, 싶더라.(웃음)
배우의 재능을 알아보는 당신 안목으로 봤으니, 이제 그 친구 뜨는 건가?(웃음)
아휴. 아니다~(웃음)
아무래도 그랬겠지. 매니저라는 게, ‘딱 이거야’ 하는 기술을 요하는 직업이 아니라, 전반적인 이해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다. 대중문화라든가, 인간관계라든가, 네트워크 맺는 거라든가,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매니지먼트라는 걸 구성하기 때문에 오래 전 경험들이 다 도움이 됐다. 그리고 대학생 때, 일찌감치 준 사회경험을 한 케이스라 매니지먼트라는 세계에 들어갔을 때,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나 낯섦 같은 게 별로 없었다. 사람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매니지먼트 회사들의 매니저 진입장벽이 낮은 것에 대해 책에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매니저라는 직업을 아직도 사회적으로 고급 전문적으로 보지 않는 선입견과 편견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2008년에 매니저 자격증 시험 얘기가 나왔다가 들어간 적 있는데, 어떻게 보나?
그게 아마 ‘연예관리사’라는 자격증이었을 거다. 글쎄. 기준이라든가, 방향성이라든가 어떤 기준이 명확하게 정해진 다음에 라이선스 제도를 확립해야지, ‘일단 도입하고 보자’ 식이면 오히려 나중에 시장 질서를 더 어지럽힐 수 있다고 본다. 항상 보면, 불공정 계약이라든지, 안 좋은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회의원들이 발의를 하고 쏙 들어가는데, 사실 여기엔 지속적으로 논의돼야 할 부분이 많다. 아시다시피 매니지먼트라는 건, 한 방향만 있는 게 아니다. 배우와의 관계도 있지만 드라마, 영화, 광고, 언론, 뉴미디어 등 굉장히 다양한 쪽과 연관돼 돌아가기 때문에 그 모두와의 이해관계, 계약관계, 권리 이무관계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혼자서 “나는 이렇게 할래!”라고 해도, 다른 이들이 동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충분한 합의 도출 과정이 없고서는 그냥 말뿐인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나?
당연하다. 아직 이 분야에는 특별한 텍스트도 없고, 이론도 없고, 매뉴얼도 없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
나아지긴 했다. 그런데 체계화를 이뤄가는 음악 사이드에 비해 배우 사이드는 아직 과도기다. 다.
책에서는 가수 쪽이 더 취약했다고 나오던데.
그 때는 그랬다. 내가 처음 매니지먼트를 할 때만 해도, 가수 매니저가 대부분이었지, 배우 매니저에 대한 중요성은 별로 인식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때는 가수가 더 중점인 시대였다. 그러다가 한국영화 활성화와 더불어 배우들 입지가 좋아지고 금융자본이 들어오면서 기업형 매니지먼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그 때는 또 배우사이드 매니지먼트가 굉장히 활성화 되고, 음반사이드는 침체기였다. 음반 쪽은 음원 수입이라든가 수입 모델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자본력과 인프라가 풍부했던 당시, 조금 더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비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음반 쪽은 스타 발굴에서부터 등용, 트레이닝, 마케팅, 해외진출까지. 그러니까 ‘동방신기’가 없어도 충분히 ‘동방신기’ 같은 그룹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브랜드력을 가진 회사로 거듭났다. 이렇듯 음반과 배우 쪽은 항상 희비 곡선이 교차한다. 현재 음악 사이드는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배우 사이드는 기업형 매니지먼트가 점차 소멸되고, 춘추전국시대로 가는 모양새다.
내가 있을 때만해도 몇몇 배우들만 부티크형 1인 기업을 했다. 그런데 매니지먼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그게 좋게 보일리가 없었다. ‘우리를 전문 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런 기류가 더 퍼지는 걸 보면서, 매니지먼트 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라는 생각을 했다. ‘과연 우리가 그들에게 어떠한 존재로 인식을 받았었던가’, ‘그들에게 우리는 정말 필요한 존재였던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포커싱하는 매니지먼트를 못 했으면 배우들이 그에 대한 갈구를 느끼고 이렇게 까지 하는가’ 등을 말이다. 기획력의 부재, 전문력의 부재,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먼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게 우선인 것 같다. 또 반대급부로 그네들끼리 혼자 해 봐야 왜 매니저가 필요한지를 느끼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웃음) 어떻게 보면 서로가 좋은 시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그 다음 스텝이 더 궁금하다.
‘매니저와 배우의 함수 관계’ 챕터에서, 배우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1인 기업으로 옮기는 게, 자신이 몸담고 있는 매니지먼트에서 늘어난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것과 관련된 말인 것 같다.
맞다. 그 부분도 정말 무시를 못한다. 회사가 커지다보면 배우 한 명에게 집중하기 힘든 구조가 우리나라 구조다. 이것에 대해 할리우드와 자꾸 비교를 하는데, 우리와 할리우드는 시스템부터가 다르다. 할리우드에서 에이전트들이 받는 에이전시 페이라는 건, 정말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페이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모자라는 수익을 메우기 위해 한 배우에게 집중하기보다 자꾸 양적인 팽창을 시도하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하거나 다른 쪽 사업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다. 배우들은 우리가 만족이 안 되고, 우리들은 ‘너희들을 위해서 회사를 유지하려면 이런 걸 안 할 수가 없다’가 되고. 이렇게 계속 서로가 원하는 지점이 엇갈린다.
할리우드와 우리의 매니지먼트 시스템 차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우리는 매니지먼트가 신인 발굴에서부터 트레이닝, 등용, 마케팅까지, 즉 A부터 Z까지 모든 걸 서비스하는 구조고, 미국은 에이전트와 매니지먼트가 나뉘어져 있는 구조다. 그리고 할리우드 매니지먼트는 개인의 경력관리나 자산 관리만 하고, 고용기회 창출은 에이전트가 주로 한다. 예를 들어 캐스팅이라든지 계약이라든지 이런 건 모두 에이전트가 하기 때문에 매니지먼트는 배우 케어에만 집중 할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 큰 차이는 할리우드 에이전시는 신인 발굴을 안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검증된 연예인을 찾아 계약하고 이들에게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제공할 뿐이다. 이미 유명해진 스타들과 일을 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어마어마하다.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사람끼리 만나는 구조 같다.
그렇다. 대신 에이전시는 제작을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가 돼 있고, 매니지먼트 업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의 거대 에이전시는 그 힘이 굉장히 막강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끼워 팔기’(주연급 배우를 출연시키는 조건으로 같은 소속사의 다른 배우를 조연으로 출연시키는 것) 이런 것과 수준이 다르다. 그들은 감독, 배우, 작가, 여기에 대형 스폰서링까지 한데 엮어 제작사에 프로젝트 단위로 제시하는 ‘패키징’을 한다. 그들이 하는 일들이 사실 우리가 가장 부러워하는 일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맞다’고만 할 수 없는 게, 그들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큰 시장이지만 우리는 시장파이가 그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분리해야 한다고 하는 건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미국 시스템이 ‘맞냐’, 일원화 된 우리 고유의 시스템이 ‘맞냐’, 따지기보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없애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책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책은 매니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남자들이 지배한 사회에 도전한 여자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매니저를 시작할 때 여자 매니저가 얼마나 있었나?
김민숙 대표님이 계셨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언니이자 선배인데, 영화배우 전문매니지먼트를 거의 처음 시도하신 선구자적인 분이다. 그리고 창미선이라고 방송 사이드에서 매니저를 하는 분이 계셨다. 그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못 봤다.
지금은 여자 매니저가 많다. 여자 매니저만의 장점. 혹은 여자 매니저가 지양해야 할 태도가 있을까.
일단 여자 매니저가 지양해야 할 태도는 ‘여자임을 지나치게 어필하지 않는다!’ 책에도 썼지만 매니지먼트라는 건,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의 싸움이기 때문에 인적 네트워크를 하는 과정에서 처신을 잘못하면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 그리고 배우를 대변해서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그 과정에서 자칫하다 배우의 이미지마저 헤칠 수 있기에 행동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반면 여자 매니저의 장점은 ‘여자가 남자보다 의외로 더 충직하고 의리가 뛰어나다’는 거. 그리고 디테일한 면에 강하기 때문에 배우와의 교류나 시나리오 분석에서 상대의 심리를 조금 더 빨리 캐치한다. 그런 면에서는 여자가 유리할 수 있다.
인상 깊게 읽었던 것 중 하나가, ‘싸이더스’ 입사 초기 겪었던 마초들과의 전쟁 같은 생활이었다.
혹시, 거기도 그런가? 무비스트?(웃음)
(웃음) 다행히 마초는 없는데, 기자 파트는 나 빼고 다 남자다. 책에서 ‘여자임을 강조하지 않고 중성적 인간으로의 변신’이 남자들과의 거리감과 경계를 해제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는데, 읽으면서 공감했다.
약간 그런 척 할 필요가 있다. (사진기자를 보며) 그런데 마초처럼 안 보이는데. (좌중 폭소) 우리는 정말 심했었다. 마초 중에서도 마초들이 모여 있었던 곳이었다.
매니저로서 직업적으로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때는 마음에 쏙 드는 시나리오나 드라마 시놉시스에서 내 배우에게 딱 맞는 캐릭터를 발견했을 때라고 했다. 그렇다면, 매니저라는 직업을 하면서 가장 슬펐을 때는 언제인가?
내 진심이 오해 받을 때. 매니저 일이 사람과 사람 사이 만남의 연속이다 보니 별의별 사건 사고와 오해가 많이 생긴다. 예를 들면 내 판단에는 이게 저 친구에게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추천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다른 이유로 추천을 한 걸로 오해받는 일들이 많다. 본래 의도나 진심이 왜곡 돼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때 정말 슬펐다. 나중에는 본부장을 오래 하다 보니, ‘모두 다 못 믿는다’ 병에 걸렸었다. 매니저가 그러면 안 되는데, 당시엔 새로운 인간관계도 맺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만으로도 벅찼으니까. 한 번은 친한 지인이 내가 전화 받는 걸 옆에서 듣고는, “너는 어쩜 ‘여보세요’ 할 때부터 거절할 포스를 잔뜩 가지고 있니?”라고 하더라.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 편협하게 지낸 적이 있다. 그렇게 스스로 타인에 대한 벽을 쌓고 살았는데, 어느 날 뒤돌아보니 너무 외롭더라.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사람을 만났다. 그러니까 뒤돌아 봤을 때, 쫙 20명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같은 영화계에 있지만 서로 부탁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든가, 직접적으로 나랑 관계된 일을 안 하는 사람들과 사모임을 가졌다. 그 때부터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아지더라.
혹시 책에 소개 못해서 아쉬운 이야기는 없나? 15년이면 정말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었을 텐데.
많다. 사실 ‘매니저와 배우의 함수 관계’가 하나로 뭉뚱그려서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참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 어떻게 보면 그 얘기가 책에서 가장 하고 싶은 얘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바라보는 연예인과 실제 내가 경험하며 바라본 그들에 대한 시각 차이를 조금 더 쓰고 싶었다. 예를 들면 ‘왜 여자 연예인들은 재벌하고만 결혼하고 싶어할까’” 하는 이런 거. 여배우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이유를 더 소개하고 싶었다.
그런 건 나오더라. 성형에 대한 대중의 두 가지 시선. 자기 관리가 부족한 여배우를 맹비난하고, 그 비난이 무서워 관리를 한 여배우는 또 성형했다고 욕하고.
맞다. 그런 거. 그런 걸 조금 더 썼으면 좋았을 텐데, 내 얘기를 너무 많이 썼나 보다.(웃음)
말 나온 김에. 아까 그 얘기가 궁금하다. ‘왜 여자 연예인들이 재벌과 결혼을 많이 하는지’
그것도 성형하고 똑같은 거다. 예를 들어 A라는 배우가 있는데, 그 배우가 10년 후 꾀죄죄한 모습으로 시장바구니를 들고 버스를 탔다고 치자. 그러면 사람들이 “쟤, 정말 안 됐다”라고 소곤댈 거다. 버스는 누구나 탈 수 있는 건데,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누추해 보이고 하는 거지. 그런 스트레스가 여배우들로서는 장난이 아닐 거다. 그리고 주위에서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여배우에게 누군가를 소개 시켜 줄 때, 아무나 소개시켜 주지 않는다. 이미 소개팅 주선자가 자기 기준에서 정말 괜찮은 사람만 골라서 소개시켜 주려 하지. 그런데 그 반대편에 있는 남자도 그런 식으로 소개를 받았을 거 아닌가. 그렇게 대우 받고 살아온 사람들이 만났는데, 만나보니 상대가 또 의외로 진솔해. 그러면 마음이 더 끌리게 돼 있다. 그들도 선입견을 가지고 만났는데 의외의 모습에 더 빠지게 되는 거지. 그래서 그런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작가 노희경씨가 책 추천사를 쓰셨던데, 만약 매니저의 삶을 다룬 드라마가 그녀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그려졌으면 좋겠나.
왜곡해서 폄하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높여서 환상적으로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라디오 스타>의 안성기씨가 자장면 비벼주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웃을 때, 나는 가슴이 찢어지더라. 기분이 묘했다. 그런 것처럼 매니저의 삶이 너무 누추하게 그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반면 기업형 매니지먼트는 항상 악독으로 그려지는데, 개인적으로 그것도 불만이다.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줬으면 좋겠다. 정상적일 일을 하는 생활인의 한 사람으로 말이다.
책을 통해 본 당신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현재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인터뷰 자리에서 음악을 할 거라고 했더니, 보는 사람마다 “도대체 너 뭐 하려고 이러냐”해서 부담이 100배 됐다.(웃음) 음악 쪽 일을 하고 싶어서 공부 중에 있다. 몰랐는데 우리나라에 레이블이 되게 많더라. 그래서 그 쪽 분들을 한 명씩 만나고 있다. 금요일에는 인디밴들 공연을 보러 홍대도 가고. 아, 참. 집도 내 놨다. 홍대로 가려고.(웃음) 지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보려고 구상중이다.
처음부터 인디 레이블을 만들 생각은 없다. 그건 조금 시간이 거릴 것 같고, 지금은 공부중이다.
그 때 어떤 마음으로 미국으로 갔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굉장히 편해 보인다.
그런가. 다행이다. 얼마 전에 봤으면 안 그랬을 거다.(웃음)
김혜수, 전도연, 지진희씨에 대한 무한 신뢰가 책 전반에 드러낸다. 책에서 많이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직접 묻고 싶다. 그들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예전에 그들에 대해 얘기한 게 기사 헤드로 나온 적이 있다. 그 때 뭐라고 했더라? ‘혜수는 나의 길을 열어 준 동지고, 도연이는 같이 성장한 배우고, 진희는 자식같다’ 뭐 이런 거였는데, 보면서 웃었다. 말로 할 때와 기사 카피로 볼 때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 그래서 다른 표현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웃음) 느낌은 앞의 말이 다 맞다. 다 고마운 사람들이고. 일단 혜수는 끝없이 나를 믿어 줬던 사람인 것 같다. 정말 나는 혜수씨가 아니었다면 매니저 일을 못 했을 거다. 운전 못하는 매니저는 있을 수가 없는데, 그런 나와 함께 해 줬다. 그리고 도연이는 징글징글한 동생이다. 한없이 나에게 애정을 주기도 하고, 한 없이 나를 곤혹스럽게도 만들었던. 희로애락 모두 걸 준 배우다. 진희는 오히려 내가 한 없이 애정을 주고 싶은 상대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기도 하는 배우고.
‘싸이더스’와 ‘싸이더스 HQ’의 차이 등, 정보성 내용도 조목조목 재미있게 설명한 게 이 책의 장점이다. 매니저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 가능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집단이 있나?
나처럼 재능은 없는데, 뭔가 대중문화 계통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 길을 못 찾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없더라도 끈기를 가지고 하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나도 정말 가진 게 없었거든. 공부를 잘 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친구들이 나를 보며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매니저라는 직업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우리도 당신네들과 다른 게 없다’라는 걸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매니저와 배우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얘기하듯 나도 예전에는 ‘신뢰’와 ‘믿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신뢰가 바탕에 있어야겠지만, 이제는 철저하게 합리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만났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정 때문에 일한다’ 이런 거 말고.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이 맞아서 일하는 이성적 파트너십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
2010년 2월 18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0년 2월 18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