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은 100%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마치 노이즈 마케팅처럼 <현기증>이 실화라는 논란이 일고 있는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현기증>은 100% 허구의 이야기에요. 단지 이런 비슷한 일들이 있을 뿐이에요. 학원 폭력이나 치매, 정신 분열, 그리고 편집증을 앓는 노인들의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잖아요. <현기증>은 그런 사회 문제를 다뤘을 뿐이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상황, 결말은 100% 허구에요. 인터뷰에서 반드시 <현기증>이 허구라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왔어요.
그럼 <현기증>의 발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가요?
인간이 극한의 공포를 느낄 때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결말을 야기할지, 그 호기심에서 시작했어요. 친구나 애인에게 느끼는 공포보다 가족에게 느끼는 공포가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가족은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존재잖아요. 설사 끊어낸다고 해도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이 가족이고요. 그런 관계에서 비롯된 공포를 생각하다가 <현기증>을 만들게 됐어요. 영화를 구상할 당시 누나가 아이를 낳았는데 어머니가 가끔 아이를 봤어요. 만일 딸의 아이를 돌보는 엄마와 딸의 관계가 흐트러지거나 파괴된다면 그때 가족들이 느끼는 공포감이 극대화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삶이 항상 밝은 건 아니지만, 영화에서까지 인간의 어두운 면모를 확대해 바라볼 필요가 있냐는 의견도 있어요.
관객들이 <현기증>을 보고나서 기분 나빠지도록 만드는 것이 제 목적은 아니에요. <현기증>을 보고 오히려 역설적으로 가족과 어머니의 소중함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그래도 행복하구나, 느낄 수도 있고요. 공익 광고도 아니고 무조건 밝고 행복한 영화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웃음). 암울한 상황을 보고 반대의 상황을 생각해서 느끼는 감정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다양한 영화가 필요하잖아요. 짜장면과 짬뽕만 계속 먹으면 세상의 모든 음식이 그렇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맛없는 음식이나 또 다른 새롭고 신비한 음식도 있을 수 있는데 말이에요.
극단적으로 비극적인 <현기증>이 관객에게 공감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은 없었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기증>과 같이 비극적인 이야기에 공감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인물과 본인을 동일시하는 순간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공감을 피하려고 해요. 그래서 <현기증>과 같은 영화는 실질적으로 공감하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단순히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통해 관객들이 일말의 공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캐릭터를 이유 없이 혹사시킨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잖아요.
호불호가 갈릴 거라는 걸 확신하고 찍은 영화에요. 감정적으로 불편한 영화를 찍는데 그런 반응은 당연하죠. 그런 부분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고, 사실 그런 평도 감사해요. 인물을 장치처럼 활용하고 상황을 극단적이고 자극적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그래요. 뉴스만 봐도 극단의 끝이잖아요. <현기증> 같은 이야기는 뉴스에 비하면 정말 장난이에요. 어중간하게 타협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괜히 관객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인물들의 이야기에 살짝 아름다움을 가미한다면 그런 행동이 오히려 더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물들의 삶은 지금 막장까지 치닫는 상황이잖아요. 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사실대로 보여줘야지 중간에 조미료를 뿌리는 것처럼 가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불편할 거라는 걸 분명히 알았지만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않고 밀어붙였어요.
<현기증>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3초간의 현기증으로 인해서, 그리고 잘못을 묵인한 한 사람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파탄난다는 것이 핵심이에요. 가족이 모두 파괴되는 과정에 중점을 뒀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외부의 위험에 노출되도록 설정했어요. 그런데 꽃잎이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겪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일이 뭐가 있을지를 생각해보니 학원 폭력이더라고요. 학원 폭력은 현재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잖아요. 학생들끼리 성매매를 시킨다는 기사를 봤는데 너무 끔찍하더라고요. 꽃잎은 가족 외부에서 경험하는 위험을 가족 내부로 가지고 들어와요. 그런데 가족 공동체 내에서도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차단되어 있는 상황인거죠. 외부의 상황 때문에 힘들지만 가족으로 돌아올 수 없는 오갈 데 없는 인물들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위 상호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상호는 자신의 꿈과 직업보다 가족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애처가에요. 가족 구성체를 목말라 하는 남자가 영화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무너지는 모습, 그리고 거기서 느끼는 아픔을 다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족은 가장 완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불안한 집단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물들을 구상할 때 본인의 엄마와 누나를 모티브로 삼았다면서요.
굉장히 화목해요(웃음). 이건 꼭 말씀드려야 해요. 누가 보면 제가 굉장히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줄 알겠어요(웃음). 어머니가 부산영화제에 오셨다가 창백해진 얼굴로 고향으로 돌아가신 기억이 있어요(웃음). 가족과 사이가 좋아요. 단지 성격이나 말투를 참고했다는 말이었어요. 가족이 화목하니까 오히려 더 ‘이렇게 행복한 가족을 잃는 일이 벌어지면 얼마나 무서울까’를 생각하게 된 거예요.
관객들이 <현기증>을 보고 어떤 고민을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어떤 고민을 할지 제가 단정 짓고 싶지 않아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느낄 수도 있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도 있어요. 또는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은 어떠한지, 내가 영화와 같이 극심한 공포에 직면했을 때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볼 수도 있죠. <현기증>은 무책임할 정도로 열려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해석도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래서 영화를 보고 굉장히 짜증내면서 나가는 분도 있고, 생각하면서 나가는 분도 있고, 좋아하면서 나가는 분도 있고, 반응이 다양해요. 관객들의 반응을 제가 결론지어서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말한 것처럼 <현기증>은 열린 결말을 지닌 영화에요.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마무리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저에게 <현기증>의 엔딩은 닫힌 결말이에요. <현기증>의 마지막 장면은 순임이 치매가 아니라 공포 때문에 침묵했던 거라는 걸 친절하게 알려주잖아요. 순임은 딸을 보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묵인하고 침대에 누워있었던 거죠. <현기증>은 인간이 느끼는 공포로 인해 벌어지는 이기적인 침묵들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황폐화시키고 힘들게 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 거예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익숙하지만 숟가락 클로즈업으로 시작하는 오프닝도 영화 중간에 반복돼요.
타이틀 끝나고 5분 동안 가족이 식사하는 롱테이크 숏이 있어요. 사실은 그 장면부터 영화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영화가 너무 느슨하게 느껴졌어요(웃음). 순임의 가족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처음부터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영화의 긴장을 같이 가져갈 수 있는 강렬한 시퀀스를 찾은 것이 숟가락 클로즈업이었어요. 그래서 그 장면을 오프닝에서 한 번 보여주고 영화를 시작한 거죠.
선택이 효과적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긴장된 상태로 영화를 봤거든요.
색보정과 사운드를 제외한 순수 편집만 4개월을 했어요. 편집기사님이 편집을 한번 하고 나면 제가 수정사항을 모두 적어서 또 다시 편집을 했어요.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했죠. 편집기사님은 정말 저를 죽이고 싶었을 거예요(웃음). 하지만 기사님은 계약이 이미 끝난 상황인데도 웃으면서 편집을 해주셨어요. 나이 어린 신인 감독이 애쓴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웃음). 편집기사님을 엄청 괴롭혀서 중간에 얼굴도 한 번 붉힐 정도였어요(웃음). 빨리 개봉해야 된다는 제작사측의 이야기도 안 듣고 끝까지 편집했어요.
그럼 지금의 편집본에는 만족하나요?
지금 편집본보다 더 잘 나올 수는 없어요(웃음). 원본 자체가 더 좋은 영상이 없거든요(웃음).
정전에 관해서는 조금 열려 있죠. 순임의 현기증을 암시한다, 정말 정전이 됐다, 누군가 불을 껐다, 제가 답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단지 제 생각을 이야기할게요. 개인적으로는 단순한 정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에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얄팍함이 있어요. 순임은 영희가 불을 껐을 수도 있어, 그래서 사고가 난 거야, 그렇지 않다면 불이 갑자기 왜 꺼지겠어, 라고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거죠. 그래서 순임의 환상 속에서 꽃잎이 정전 이야기를 해요.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제가 영화에서 설정한 것은 단순 정전이에요(웃음).
꽃잎이 죽고 나서 병원 전경 숏이 하나 있어요. 그 장면 이후 순임은 이마에 밴드를 붙이고 등장하고요. 꽃잎이 죽었는데도 상처를 치료하러 병원에 다녀올 만큼 순임이 정신을 잃은 건가요?
그런 상황에서 순임이 100% 완벽하게 의식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5% 정도의 의식만으로 꽃잎의 죽음을 기억하는 거죠. 무의식적으로는 꽃잎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예요. 나머지 95% 이상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건 의식적으로 합리화된 자기 모습이고요. 하지만 순임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일말의 공포와 죄의식을 느껴요. 그리고 그 공포 때문에 숟가락으로 국을 떠먹지 못한 거예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는 해요(웃음). 순임의 깊은 무의식 속에는 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생각해요. 극도의 공포를 느낄 때 그런 무의식이 밖으로 표출되는 거죠.
<현기증>에는 유독 거울이 많이 등장해요. 영화에서 거울을 자주 사용하는 감독들이 많은데 이돈구 감독에게 거울은 어떤 의미인가요?
거울을 즐겨 써요(웃음). <가시꽃>에서도 거울이 많이 나오는데 거울은 유일하게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는 물체잖아요. 그리고 특히 <현기증>은 순임의 의식과 무의식, 두 가지 모습을 그리는 차원에서 거울을 많이 썼어요. 순임의 두 가지 자화상 같은 느낌인거죠. <현기증> 포스터도 마찬가지고요.
편집기사님도 괴롭혔지만 배우들도 엄청나게 괴롭혔다면서요?
배우들은 정말 끔찍한 경험을 했을 거예요(웃음). 김소은은 인터뷰에서 출연을 계약하고 나서부터 제가 계속 미웠다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웃음). 배우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촬영하면서 힘들다고 대충 찍으면 나중에 개봉했을 때 배우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고, 그렇다면 그 자괴감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나쁜 놈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만족하는 영상이 나올 때까지 찍자는 각오로 촬영을 시작했어요. 고집이 세기도 하고요(웃음). 김소은은 욕조 안에 있는 장면을 굉장히 추운 날에 5시간 동안 촬영했어요. 영화를 보면 김소은이 코 막힌 소리가 나는데 실제로 그 자리에서 감기가 걸려서 그런 거예요. 그래도 촬영을 계속했어요. 영화가 잘 나와야 배우들이 좋아할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어도 최선을 다했다는 확신은 있어야 하잖아요. 김소은은 아직도 저를 보면 슬금슬금 피해요. 촬영할 때 화장을 전혀 못하게 했거든요(웃음). 혹시라도 화장을 할까봐 졸졸 쫓아다녔어요. 김영애 선생님과 도지원 선배님도 온 몸에 피멍이 들고 손가락이 뒤로 꺾일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무슨 장면을 촬영하다 그렇게 다친 건가요?
김영애 선생님이 계단에서 구르는 장면을 촬영할 때 손을 잘못 디뎌서 엄지손가락이 뒤로 돌아갔어요. 문을 치고 나가는 장면도 살이 많이 찢어지고 무릎도 많이 까졌고요.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배우들이 촬영하면서 너무 고생했고, 그런 배우들이 너무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서예요.
잔인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사실은 여려요(웃음). 정말이에요. 심장이 막 뛰었어요. 지금도 만족할 수는 없지만, 영화가 만일 어이없게 나왔다면 연출가로서 견딜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예술영화 성향이 강한 저예산영화를 생각하고 <현기증>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제작사 대표님이 밑져야 본전이라며 시나리오를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들에게 보내보라고 권유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낸 배우들이 모두 작품에 출연하겠다고 한 거예요(웃음). 심지어 송일국 선배는 <현기증> 시나리오를 보기 전에 <가시꽃>을 보고 캐스팅을 결정했어요. 그래서 캐스팅은 정말 말이 안 될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됐어요. 캐스팅을 할 당시 네 명의 배우가 모두 연기 변신에 목말라 있었어요. 그분들에게는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본인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과 <현기증>의 촬영 시기가 맞아 떨어지면서 출연하게 된 거죠.
연기 경험이 많은 배우에게 디테일한 디렉팅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창작의 자유를 뺏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의 모든 부분을 꼼꼼히 챙긴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배역들이 너무 고통 받고 있잖아요. 배역이 그렇게 고통 받고 있는데 배우가 편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이질감이 느껴져요. 그리고 그런 모습은 배우 스스로가 용납을 못해요. 죄송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김영애 선생님이 우울증에 걸린 거예요. 제가 직접 힘든 상황을 만들었다기보다 배우들 스스로가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저도 배우와의 관계를 일부러 조금 차단하고 끊어 놓은 부분도 있지만요. 많이 위로해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어요. 시간도 너무 없었고 힘든 상황에서도 계속 요구를 해야 했거든요. 그런 부분은 저도 힘들더라고요. 감정 신이 워낙 많잖아요. 울고 있는데 옆에 가서 ‘괜찮으세요?’라고 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는 이렇게 한 번만 더 연기해 주세요!’라고 말해야 했죠(웃음).
촬영하기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감정 신은 오히려 촬영하기 쉬웠어요. 감정 신 같은 경우는 테이크를 많이 안 갔거든요. 하지만 일상 속 평범한 대사들은 오히려 촬영하기가 힘들었어요. 배우들도 가끔 인물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데 그럴 때는 배우들 스스로가 ‘어, 내가 조금 달랐지?’라고 인지할 정도로 말투나 행동들이 달라지거든요. 그러면 테이크가 오히려 많이 나와요. 배우들도 힘들었고요. 도지원 선배 같은 경우는 차를 타고 순임에게 ‘갈게’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을 30 테이크 가까이 찍었어요. 오히려 식탁에서 토하는 장면은 처음 촬영한 테이크에서 오케이가 났고요. 그런 장면은 더 찍어봐야 소용이 없어요. 더 이상 좋은 장면이 나올 수는 없어요(웃음).
한 번에 오케이가 나는 일이 드물었을 텐데 다들 놀랐겠어요(웃음).
송일국 선배님이 정말로 오케이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더라고요(웃음).
촬영은 순서대로 진행한 편인가요?
크게 바뀌는 장면 없이 대부분 감정대로 진행했어요.
연기를 전공한 걸로 알고 있어요. 연기 공부를 한 연출자들은 배우들이 연기하고 싶은 배역을 잘 알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쓸 때 도움이 된다던데,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렇죠. 배우가 연기하고 싶도록 만들려면 우선 쉽게 접할 수 없는 인물이어야 해요. 극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이거나 배우와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인물처럼요. 본인의 이미지를 깨고 싶은 배우는 보통의 경우 그런 캐릭터에 더 매력을 느끼죠. 하지만 시나리오를 쓸 때는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해요. 캐스팅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배우들에게 전달할 때는 인물의 이미지를 생각하지만 정작 시나리오를 쓸 때는 오직 캐릭터와 그 캐릭터의 이야기에만 집중해요.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보고 참여를 결정했다면 제작사 대표는 어떤 면을 보고 <현기증>에 투자를 결정했다고 생각하나요?
2년 전 <가시꽃>이 부산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제작사 대표님에게 연락이 와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 마인드가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어떤 마인드가 마음에 든 걸까요?
모르겠어요. 저는 단지 대화를 했을 뿐이거든요(웃음). 그런데 1억을 투자하겠다는 거예요.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대표님이 만일 <가시꽃>이 마음에 들면 돈을 더 투자하겠다고 했어요. <가시꽃>이 개봉하기 전이었거든요. 그래서 제작사 대표님에게 <가시꽃> DVD를 드렸고, 대표님이 영화를 본 뒤 바로 3억을 다음 작품에 투자하겠다고 했어요. 제작사 대표님은 전부터 영화 투자를 했던 분이에요. 이번에 제작사를 차리고 창립작을 저와 한 거죠. 대표님이 저예산영화를 제작할 생각이 있었거든요. <가시꽃>이 부산영화제에 초청되는 동시에 <현기증>의 투자가 이뤄졌고, <가시꽃> 개봉 당시 이미 <현기증>은 촬영에 돌입한 상태였어요. 제작사 대표님 덕분에 쉬지 않고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었어요. 굉장히 운이 좋았어요.
<가시꽃>을 촬영할 때는 쌓인 감정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폭발하고 싶었어요(웃음). 제가 가진 모든 걸 보여주고 싶고, 폭발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 차 있는 상태였어요. <가시꽃>은 10년씩 알던 배우 친구들 4명이 모여서 5D Mark II 카메라 한 대만 가지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촬영한 거예요. 교회를 제외하고는 장소 섭외가 된 곳이 하나도 없었어요. 준비는 1년 반 정도로 굉장히 오랫동안 했지만요.
<가시꽃>을 1년 반 동안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면서 왜 장소 헌팅은 안했나요? (웃음)
돈이 없잖아요(웃음). 돈을 내야한다는 건 못 빌린다는 뜻이었어요. 오죽하면 300만원으로 찍었겠어요. 죽어도 찍고 싶은 장소를 찾았는데 못 빌리면 어떡해요(웃음). 그래서 도둑 촬영을 하자, 쫓겨나면 다시 가서 찍자, 라는 생각으로 촬영을 다녔어요. 어디쯤에서 찍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 장소를 빌리지는 않았어요. 돈이 들어가는 사항은 전부 배제했어요. 그래서 새로운 시도들을 하게 됐죠. 지금 다시 영화를 보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오그라드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부분이 사실 잘 먹혔어요. 이렇게 찍는 놈이 다 있네, 한 번 초청해 줄 테니 와봐, 귀엽게 봐 준 분들이 있어서 저한테는 오히려 좋게 작용했어요(웃음).
<현기증>은 폭발하고 싶었던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정돈된 상태에서 연출한 거군요(웃음).
그렇죠. 그런 욕구가 많이 희석됐어요.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 신경을 쓰려고 특별히 더 노력했고요. <가시꽃>은 장비가 하나뿐이었지만 <현기증>은 조명도 있고 카메라도 업그레이드됐기 때문에 <가시꽃>에서 하지 못했던 부분을 보강하고 싶었어요. 아직도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지적을 많이 받아요. 지금도 계속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영화 연출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약해요(웃음). 그래서 <현기증>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을 더 신경 썼죠. 또 아무래도 <현기증>이 미묘하고 예민한 감정을 다루는 영화다보니 카메라가 정적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중점을 뒀어요.
<가시꽃>과 <현기증>은 모두 죄의식을 다루고 있어요.
<가시꽃>과 <현기증>이 공통분모가 있다면 그건 분명 죄의식이에요. 평소 죄의식이라는 감정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죄의식에 관한 영화를 계속 찍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죄의식보다는 죽음, 공포에 겁이 많아요. 그런 감정들을 마음속에 쌓아 놓고 가지고 있으면 너무 힘드니까 영화로 투사하는 것 같아요. 남의 인생을 파괴하면서 본인의 안정을 찾는 거라 어떻게 보면 변태 같은 거죠(웃음).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 결코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 영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두운 영화를 만드는 것에 나름대로 합리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자꾸 어두운 방향으로 영화를 만들다보니 <가시꽃>과 <현기증> 두 영화 모두 죄의식이라는 코드가 들어간 것 같아요.
연출 경력이 길지 않은데도 주목받게 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현기증>처럼 희한한 영화를 찍으니까요(웃음). <현기증> 같은 영화는 흥행을 비롯한 여러 가지 측면을 생각할 때 쉽게 찍지 않으려고 하는 영화잖아요. 그리고 타협을 잘 안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저의 그런 부분을 좋게 봐주는 분들이 있어서 주목받은 것 같아요. 하지만 반대로 미숙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 부분은 제가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할 숙제인거죠.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는 많아요. 그런 소재를 다룬다는 것만으로 주목 받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운이 좋은 거죠(웃음). 태몽을 잘 꿨어요(웃음). 홍대의 털보 아저씨가 제가 29살부터 잘된다고 했는데, 그때 홍대 털보 아저씨 말이 맞은 것 같아요(웃음).
29살 이전에는 얼마나 힘들었기에...
17살에 대전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집이 힘든 상황에서 서울로 온 거라 돈이 없어서 별의별 아르바이트를 다 했어요. 배우 지망생이었는데 오디션은 다 떨어지고 연극을 해도 돈을 한 푼도 못 받았어요. 월세는 내야하니까 아르바이트를 했죠.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방세를 내고나면 하나도 안 남았어요. 그러면서 계속 오디션을 보고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런 생활을 5~6년 정도 하다가 28살에 <가시꽃>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된 거예요. 영화감독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죠. 사실 지금은 굉장히 행복할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인터뷰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어요.
전부터 연출에는 관심이 많았어요. 아는 형이 잠깐 맡기듯이 준 8mm 캠코더로 친구들과 매일 모여 순서대로 상황을 만들어 찍었어요. 그때는 편집을 못했거든요. 찍은 영상을 보면서 혼자 즐거워했죠. 글 쓰는 것도 좋아했어요. 단편을 쓰고 나면 혼자 읽고 완벽하다고 좋아했어요(웃음). 연기 할 때는 앞이 깜깜했고 불안했는데 연출을 하니까 설레고 재밌더라고요. 앞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상상만으로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졌어요. 저는 취미 생활이 없어요. 시나리오를 쓰고 제가 촬영한 영화를 보고, 제작된 포스터를 받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이 취미 생활이에요(웃음).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굉장히 재밌어요.
연출의 어떤 점이 그렇게 설렜나요?
혼자 방구석에서 상상하며 썼던 대사를 배우가 실제로 이야기하고, 혼자 썼던 지문을 현장에서 스탭들이 현실로 만들어주는 것이 마치 마법 같이 느껴져요. 그래서 재밌어요. 혼자 상상했던 것들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 감동적이에요. 그래서 영화에 마약처럼 중독되는 것 같아요.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니까 예산이 크든 적든 상관없이 새롭고 시도되지 않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보고 싶어요.
연기할 때는 어떤 부분이 답답했나요?
오디션에 계속 떨어져서 보조 출연을 정말 많이 했어요. 자주 현장에 가다보니 나중에는 저보고 스탭들을 통솔하라며 무전기를 주더라고요. 자꾸 세트장 뒤에서 연기 아닌 다른 일을 시키니까 답답하고 불안했죠.
본의 아니게 하게 됐지만 스탭들을 통솔했던 경험이 지금 연출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나요?
도움이 됐어요(웃음). 진짜로요. 그래서 저는 연출할 때 단역 배우들도 직접 만나요. 인물 담당을 제가 하는 거죠. 그래서 그분들하고도 역사를 같이 만들어요. 다 함께 역사를 만든 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예요.
연출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현장에서도 연출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나요?
현장 구경을 많이 못했어요. 보통의 경우 버스 안에서 대기해야 했거든요(웃음). 그래서 현장에서 다른 분들이 어떻게 연출하는지를 사실 잘 몰라요. 연출부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고요. 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분들은 많지만, 솔직히 말해서 연출하는 데 도움을 준 분은 한 분도 없어요. 현장에서 연출을 가르쳐 준 분은 안타깝게도 없어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미스터리 판타지에요. 제가 촬영한 두 편의 영화는 모두 어두웠지만 사실은 판타지를 좋아하거든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연출했으면 좋겠어요(웃음).
고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기증>은 정말 실화가 아닙니다! (웃음)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