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이서 감독에게 영화의 출발은 본인이 목격한 부조리함을 말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밝은 면을 보고 싶어하지만 오히려 어두운 면을 드러내서 직시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적나라하게, 더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했던 시기다. 하지만 영화는 본인 스스로의 만족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들려주는 얘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이서 감독은 말한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얘기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이서 감독과 만났다.
(본 인터뷰는 <그랜드파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센 영화를 연출한 감독답지 않게 순한 모습이다.
그렇다! 나 되게 순하게 생기지 않았나. 사람들이 그렇게 잔인한 영화를 만들었냐고 놀라곤 한다.
<그랜드파더>연출계기는.
정윤철 감독님이 심사를 갔다가 강렬한 시나리오를 봤다며 네가 한 번 연출해 보는 게 어떠냐고 제의를 하셨다. 감독님이 나의 전작 <사람을 찾습니다>(2009)를 흥미있게 보셨다.
어떤 심사인가.
정윤철 감독이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공모전의 심사위원이었다.
원작이 ‘인간사냥’이라고 들었다.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인가.
아니, 수상 못했고 그 후 팔리지도 않았고. 정윤철 감독이 흥미롭게 보고 작품을 만들고자 한 거다.
<말아톤>(2005)을 생각해보면 정윤철 감독과 매치가 잘 안 된다.
감독님 본인이 만들기엔 좀 부담스러우니 네가 한 번 해봐라 하시더라. 그래서 각색을 하기 시작했는데 원작의 수위가 높다 보니 쉽지가 않더라. 수정 끝에 예산규모가 20~30억 정도의 시나리오를 써갔다. 근데 아닌 거 같다고 해서 다시 원래로 돌아가 캐릭터만 보완해서 가기로 했다. 결국은 지원이 안돼서 그냥 적은 예산의 독립영화로 제작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는 거까진 아니고, 엄두가 안 나긴 했다.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근데 내가 마냥 안 한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정윤철 감독이 날 생각해주기도 한 거고, 나도 작품을 언제까지 계속 쉴 수도 없는 일이라.
한때는 CJ에서 긍정적으로 투자 할 뻔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결국 영화사 ‘한 이야기’에서 제작하게 됐다.
<그랜드파더>는 물론 당신이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 박근형 선생님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실제 나이 77세의 진짜 그랜드파더가 그랜드파더를 연기한 거 아닌가. 처음부터 박근형 선생님을 캐스팅 할 생각이었나.
사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투자자나 정윤철 감독도 극 중 ‘기광’을 나이 드신 분이 연기할 수 있겠냐 면서 좀 더 젊은 사람을 캐스팅해야 되지 않냐 했다. 하지만 난 그 제안에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왜냐면 진실을 보여주려고 하는 건데 젊은 사람이 할아버지로 분장하는 건 사실감이 떨어지지 않나. 진짜 할아버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녀를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심정이 있어야 한다고 그들을 설득했다.
그럼 할아버지 배우로서 박근형 선생님을 바로 떠올리고 그 후 캐스팅 제의를 한 건가.
그렇다. 솔직히 선배님이 안 하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시나리오를 보시고는 의외로 더 좋아하시며 관심을 기울이시더라. 그래서 오히려 내가 당황스럽기도 했다. 선배님이 생각하기에 좀 심한 장면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선 함께 의논해서 살짝 고치기도 하면서 함께 작업을 했다.
박근형 선생님이 편집의 힘이 엄청났다고 하던데, 직접 한 건가.
이번은 아니다.
혼자 작업을 많이 해서 이번에도 편집도 했나 싶었다.
영화는 원체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함께 하는 작업이라 개인적으로 혼자 이것 저것 안 하려 한다.
원작이 각색을 했어도 내용에 노출이 있다 보니 솔직히 여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가 고보결이 이야기가 갖고 있는 힘이 마음에 든다고 출연을 결정했는데, 그 후에도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촬영 중간에 주인공이 너무 힘들어 하는데, 이렇게까지 주인공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할 필요가 있나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며칠 밤 잠도 못 자며 제작자와 정윤철 감독과 상의해서 노출이 영화에 필요한 장면이긴 하지만 배우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고집할 필요가 있겠나 싶어 상의 끝에 빼고 가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고보결이 너무 편하게 촬영하는 거다.
원래 노출이 있었는데 빠진 거다.
진작에 빼기로 했으면 훨씬 더 자연스런 연기가 나왔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당신의 작품에서 노출과 성매매가 유난히 많은 이유는.
나도 그 이유를 많이 생각해 봤다. 내 스타일이 뭔가를 포장하고 이런 걸 잘 못한다. 솔직하고 직선적인 얘기를 하고 싶은데 뭔가 옷을 입고 있는 자체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꼭 그럴 필요가 없었던 일인데 그 당시에는 그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필요한 건데 그걸 피해가는 건 비겁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라도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했다.
노출이나 성매매 장면은 배우들도 부담이지만 연출하는 입장에서도 부담스럽지 않나.
정말 힘들다.
특히 요즘, 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다. 어떻게 보면 왜 이렇게 몸을 사리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오래일을 하기 위해 계산적으로 피해가는 게 싫었다. 그 당시는 욕을 먹더라도 하고 싶은 건 해야 한다였다.
사실 <그랜드파더>에 나오는 불법마사지 삽 이런 건 실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벌어지고 있는데 자꾸 숨기려 하니까 오히려 더 문제가 된다고 본다. 물론 이게 성매매를 합법화하라는 게 아니다. 그건 절대 안될 일이다. 성매매가 법적으로 단속하여 겉으로는 사라졌지만 음성적으로 벌어진다. 그걸 노출시켜 실제 이렇게 돌아가고 있고, 그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그 모습이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면 중 하나임을 알리고 싶었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면은 여러 가진데 그 중 성매매도 부조리의 하나다. 강압적으로 막다 보니까 음성적으로 시행되고 거기서 발생하는 희생자를 조명하고 싶었다는 게 의도인가.
원작이 성매매와 결부된 범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난 그걸 각색해서 그 범죄에 희생당하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에 의해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원작이란 결말이 다르다.
원작의 결말은.
원작은 학교를 다니는 보람을 포주들이 와서 다시 끌고 가는 거다. 그건 너무 고통스런 결말 아닌가. 그 아이는 결국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니까. 물론 현실에서는 그럴 수 도 있을 거다.
원작과 결말을 달리한 건 잘한 거 같다. 그렇게 되면 정말 너무 괴로워진다. 관객들은 주인공이 너무 고생하거나 너무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연출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도 그걸 요즘 느낀다. 예전에는 극한까지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오는 희열이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다.
<타투>(2014) 기자간담회에서 사실 그렇게까지 심하게 지적당할 줄 몰랐다. 그 당시에는 내가 날 것에 대해 너무 몰입돼 있었던 거 같다. 누가 옆에서 그걸 지적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때는 저예산에 스릴러를 한다는 거, 쉽지 않은 장르를 한다는데 너무 매몰됐던거 같다.
영화를 봤나? <사람을 찾습니다>(2009)를 오픈 안하고 꽁꽁싸서 숨겨 놓고 있다(웃음). 그때는 원체 돈이 없었다. 어디서 투자를 받거나 한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에 집을 빼서 영화를 만들었다. 예산이 적다 보니 15일 동안 15회차로 찍겠다, 도와달라, 그렇게 시작했다.
영화는 당연 찾아 봤다. 제작년도가 2009년 맞나? 결혼은 했었나? 백진희도 아주 예쁘게 나오더라.
결혼했다면 집을 뺄 수 없었겠지(웃음). 최무성도 원래 저예산 영화는 안 한다고 했다가 출연했다. 이 작품 이후로 독립영화에 많이 출연하고 있 걸로 알고 있다.
<사람을 찾습니다>는 순수 당신의 창작 극본인가.
맞다.
영화가 이후 연극화됐고, 지금 현재 최무성이 연출하여 재공연하고 있던데, 저작권료는 받나(웃음).
그렇진 않다. 배우가 좋아해서 무대에 올려준다는데, 나는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는 거 자체로도 충분하다.
<사람을 찾습니다>에서 ‘규남’(김규남)은 어떻게 캐스팅한건지.
연극공연에 초대돼 갔었는데 그 공연에서 길거리 지나가는 행인 역이었다. 역할도 아주 작은 역이었는데 솔직히 비주얼이 충격이었다. 그 당시 영화나 연극이나 주인공이 전부 예쁘고 잘생겼는데 그게 너무 싫었던 거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주인공을 그리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써서 보여주니 굉장히 놀라더라.
연기도 너무 잘 하더라.
연기라기보다 그 분 자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분이 살아온 과정이 얼굴에 묻어난다. 박근형 선배님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살아온 인생이 보이는 것처럼. 억지로 짜낼 필요도 없고.
김규남은 아직 연극계에서 활동하나.
하는 걸로 알고는 있는데 최근에 못 본거 같다.
<사람을 찾습니다> 타이틀을 단순히 실종된 사람을 찾는 게 아닌 이 세상이 너무 엉망이다 보니 진짜 사람을 찾는다로 받아들였는데, 너무 앞서나간 건가.
아니다. 그런 의도로 붙인 제목이 맞다. 이 사회에 진짜 사람, 물론 다 진짜 사람이지만(웃음), 사람같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
그건 내가 밑바닥이기 때문이다(웃음). 연출적으로도 지금 내 위치가 밑바닥이고. 왜냐면 다음 작품 기약이 없는 연출자니까. 건설현장에서 노가다 등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생도 많이 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현장, 그런 사람들이 친숙하다.
그럼 경험에서 우러나온 거다.
아무래도 험악한 환경의 사람들을 많이 접했고, 그들의 순수함을 경험하기도 했다. 또 사악함도 보고. 그런 것들이 교차됐다.
그런 쉽지 않은 환경에서 영화를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난 영화키즈는 아니었고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사실 7년 동안 직업군인을 했다. 그 후 군인을 그만두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방송대에 편입해서 방송학을 공부했다.
당신의 이전 전공은 식품공학이더라.
원래 요리사가 꿈이었다. 근데 직업군인을 하다가 군대의 부조리를 접하면서, 아마 그때부터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 듯하다. 내가 여기서 꾸역꾸역 아부하고 줄타고 군복을 입고 있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더라.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럼 시나리오를 쓰다가 연출까지 하게 된 건가.
이야기를 쓰는 걸 좋아했지만 원래부터 목표는 연출이었다. 연출부로 들어가서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연출부에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에 비해 좀더 바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이 때문에 잘 안 뽑아주기도 했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가 생기면서 당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당연하다. 아이가 태어난 전과 후는 굉장히 다르더라. 한 생명이 탄생한다는 게 경이롭더라. 이젠 예전처럼 폭력적이고, 독한 영화는 못할 거 같다.
당신이 느낀 부조리를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게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긴데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그 동안은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밝은 것만 보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어두운 면을 드러내서 보여주는 것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어떤 중요한 책무라고. 최근에는 거기에서 한발 더 나가 같이 살아가고, 같이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나만 ,내 얘기만 하는 거보다 보는 관객이 같이 얘기해주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예전에는 내 이야기만 100% 했다면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주제를 관객들과 함께 얘기하고 싶은, 관객이 주인공인, 그러니까 관객과 함께 써나가고 싶다.
결국 관객과 함께 얘기를 만들어 나가고 싶은 거다. 그 얘기가 기대된다. 왜냐면 사회의 소외된 모습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그것을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들려주는 얘기와는 또 다르지 않겠나.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기쁜 일이나 인상적인 일은.
가장 기쁜 일은 아이가 태어난 일이다. 이제 한달 됐다. 또, <그랜드파더>로 박근형 선배님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해서 너무 좋았다. 이 영화로 박근형 선배님이 많이 인정받으면 좋겠다. 예산도 적고, 원작도 있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폭이 작아서 해드릴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박근형 선생님이 영화로 많이 부각되시면 좋겠다.
2016년 9월 5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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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Z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