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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작품 하나도 없어, 그게 날 말해 준다' 김지용 촬영감독
2018년 12월 27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꽃 기자]

김지용 촬영감독은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2005)으로 데뷔했다. 신인이 그 정도 이름있는 감독의 굵직한 작품으로 데뷔하는 건 운이 대단히 좋아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그는 답한다. 하지만 이후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그는 주어진 운을 자기 실력으로 꾹 붙잡아 둔 사람에 가깝다. <도가니>(2011) <수상한 그녀>(2013) <밀정>(2016) <남한산성>(2017)까지 시대와 이야기, 장르와 분위기를 오가며 작품에 걸맞은 영상을 빚어냈다. 지난 11월 그는 자기 실력을 농축한 <남한산성>으로 세계 유일 촬영 감독 대상 영화제 에너가 카메리마쥬에서 아시아 최초 황금개구리상을 거머쥐었다. 연말 극장가에는 그가 작업한 신작 <스윙키즈>가 상영 중이다. 돌아보면 단 하나의 작품도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적 없다는 그의 말이 더욱 힘 있게 들리는 요즘이다.

지난달 <남한산성>으로 제26회 에너가 카메리마쥬에서 아시아 최초로 황금개구리상을 수상했다. 게다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웃음) 축하드린다.
촬영 감독만을 대상으로하는 에너가 카메리마쥬라는 영화제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작품을 출품할 생각까지는 못 하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CGK) 차원에서 올해의 작품을 선정해 출품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첫 후보였다. 좋은 계기가 됐다.

루카시 잘 촬영 감독의 <콜드 워>(2018)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직접 촬영한 <로마>(2018)를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이 대목에서는 소감을 듣지 않을 수가 없다.(웃음)
굉장히 놀랐다. <남한산성>에 대한 반응이 꽤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현지에 있을 때 심사위원들이 영화 잘 봤다는 인사를 건넸으니까. 그렇다고 엄청나게 뜨거운 반응이 있었떤 건 아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생소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아마 상을 준다면 다양성 측면을 고려해서 동상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웃음)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과도 그 정도 수준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콜드 워>와 <로마>는 여러모로 인지도가 있는 작품 아닌가. 그런데 동상은 <로마>에게 주고, 은상은 <콜드 워>에게 주길래 그때는 나는 안 주나 보다… 했다.


수상 결과를 알고 나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겠다.
올봄에 열린 아시안필름어워드에서 촬영상을 수상했을 때,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상을 한 개 더 받게 되다니, 기분이 ‘많이’ 좋았다.(웃음)

<남한산성>의 영상을 떠올리면 푸른 계열의 시린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굴욕적인 역사를 혹독할 정도로 추운 계절적 배경과 함께 녹여냈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추위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내게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새파란 색까지는 아니어도 꽤 차가운 느낌이 필요했다. 비극적인 역사를 다루는 만큼 알록달록한 색감도 배제했다. 전시 상황인 걸 고려해서 밝은 빛보다는 모닥불이나 호롱불 정도의 자그마한 실제 빛을 광원으로 활용했다.

영화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조명, 즉 빛일 것이다. 당신이 촬영을 맡은 작품들에서도 빛의 활용이 도드라진다. 데뷔작 <달콤한 인생>으로 시작된 김지운 감독과의 협업, 김종관 감독의 <더 테이블>(2016), 최근 선보인 강형철 감독의 <스윙키즈>까지 기억에 남는 작품이 많다.
시각적인 콘텐츠를 잘 보여주기 위해서는, 빛을 잘 쓰는 수밖에는 없다. <도가니>(2011) 때부터는 조명을 직접 설계하기 시작했다. 한 공간 안에서 촬영과 조명을 함께 운용하면 일 처리가 빨라지고 촬영 계획도 효율적으로 짤 수 있다.


<더 테이블>에서는 김혜옥 선생과 한예리가 출연하는 세 번째 에피소드가 특히 좋았다. 해질 무렵의 석양이 화면을 가득 채웠던 장면 말이다.
모두들 그 에피소드가 제일 좋았다고 말한다.(웃음) 하지만 촬영하는 입장에서는 주어진 예산 안에서 에피소드에 적합한 빛을 만들어내는 게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해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해 질 무렵도 고작 몇 십 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촬영 기간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시간대를 제대로 연출해내려면 차라리 빛이 거의 들지 않는 공간을 찾는 게 나았다. 은은한 빛만 들어오는 북향의 장소를 섭외하고, 조명을 직접 만들어 썼다. <더 테이블>처럼 여자 배우가 주로 출연하는 작품은 북향에서 비추는 부드러운 빛이 더 좋은 역할을 하는 측면도 있다.

최근 개봉한 <스윙키즈>는 어떤가. 화려한 탭 댄스와 흥겨운 음악이 가득한 만큼 주로 화려한 금빛을 활용한 것 같다.
아주 잘 봤다. 요즘에는 시나리오를 읽고 작품에 합류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 작품을 비추는 빛의 질감부터 떠올린다. 시대극은 당시의 분위기나 공기까지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그 작업이 더욱 중요하다. <스윙키즈>는 비극적인 역사와 공간 안에서 진행되는 판타지 같은 영화다. 너무 즐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억누르지도 않은 균형 잡힌 비주얼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관객이 반감을 갖지 않고 두 느낌 사이에서 몰입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마련한 방법론이 있다면, 들려달라.
1950년대 촬영된 라이프 지의 컬러 사진을 많이 참고했다. 필름 사진이 오래되면 열화가 이루어지면서 한쪽 색깔이 붉게 물든다. 그런 느낌이 영상에 포함되면 화려한 듯하면서도 과거의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에 70년대 중 후반 정도에 출시된, 디지털 렌즈에 비하면 약간의 결점이 남아 있는 렌즈를 장착해 색다른 느낌을 내보려고 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여전히 LP를 찾는 것과 같은 맥락 아닐까. 촬영은 디지털카메라로 하되 옛날 감성을 담는 거다. 촬영도 일종의 하이브리드 시대가 된 것 같다.(웃음)

보통의 관객들이 렌즈에서 오는 변화 같은 것을 감지할 수 있는가.
아마 이렇게까지 대단한 차이를 느낄 수는 없을 거다. 옛날 영화는 필름 카메라로 촬영을 했으니 그 과정에서 기술 차이가 생기곤 했지만, 지금은 모두 잘 만들어진 디지털카메라와 렌즈를 쓴다. 그래서인지 영상 실력도 전반적으로 평준화된 느낌이다. 영화 같은 드라마도 많다. 그런 흐름 속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영화 촬영의 관건이라고 본다.

영화 같은 드라마, 꽤 많이 봐왔다. 그런 와중에도 영화 영상만의 차별점을 드러내야 할 텐데.
영화는 드라마보다 한 컷에 들일 수 있는 시간이 훨씬 길다. 좀 더 계획적으로 촬영할 수 있다. 제작사에서 주는 가이드라인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그 경계를 타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영상적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촬영과 조명에 관심 있는 후배들에게 눈여겨 볼 만한 작품을 몇 가지 추천한다면.
코엔 형제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그들과 함께한 두 촬영 감독의 작품을 비교해가며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브루노 델보넬 촬영 감독이 함께한 <인사이드 르윈>(2013) <카우보이의 노래>(2018)와 로저 디킨스 촬영 감독이 함께한 <헤일, 시저!>(201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같은 작품을 보다 보면, 같은 코엔 형제의 영화지만 촬영 감독에 따라 작품의 결이 달라진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다음 작품 활동으로 이미 바쁜 일정에 돌입했다고 들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이해준, 김병서 두 감독이 오랫동안 준비한 재난 영화 <백두산>이라는 작품이다. 백두산이 이미 폭발한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마지막 상황을 막기 위해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대개 물리적인 액션을 동반하는 작품을 촬영할 때 쾌감도 성취감도 큰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너무 어렵다.

어째서인가.
VFX 작업이 대다수인 영화다. 기존처럼 현장의 전경이나 후경 혹은 조명을 신경 쓰면서 작업하기보다는 앞으로 만들어질 가상의 이미지를 상상해가며 작업해야 한다. 굉장히 낯설다.(웃음)

최근 들어 배우들에게도 종종 듣곤 하는 어려움이다.(웃음) 마치 마블의 작품처럼 모든 게 상상의 영역으로 등장하는가 .
아니다. 우리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지진이 벌어지는 상황을 담아야 한다. 그래서 완전히 가상 세계를 구축하는 마블의 제작 과정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웃음) 관객은 자기가 늘 보던 공간이 조금만 달라져도 이상하다는 걸 빠르게 눈치챈다. 훨씬 잘 해야 한다.


필름 카메라로 영화 촬영을 시작해 디지털카메라의 보편화를 받아들였고, 이제는 CG와 VFX의 세계에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종종 예상하지 못한 변화에 적응하는 일을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는 영화인도 있다.
그렇긴 하지만, 촬영이라는 작업의 기본 맥락은 변하지 않는다. 주변적인 요소가 바뀔 뿐이다. 그렇다면 빨리 적응해야 한다. 나보다 더 오래 일하는 분들도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필모그래피 중 가장 사랑하는 작품을 꼽아줄 수 있나.
음… 그럴 수는 없다. 아직 나와 작품을 함께한 모든 감독님이 살아 계신다.(하하하) 촬영 감독은 독립적인 예술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한 결과물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하나의 작품을 꼽을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돌이켜 보면 창피한 작품은 단 하나도 없다. 그게 나라는 사람을 말해준다고 본다.

마지막 질문이다.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더 테이블> <밀정> <남한산성> <스윙키즈>까지 최근 몇 년간 전부 좋은 사람들하고만 일을 했다. 영화도 잘 만드는 데다가 인간적으로도 잘 맞는 이들을 만났다.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았다.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는 게 부담스러운 적도 있는데, 덕분에 그때보다는 좀 더 일을 즐기게 됐다.


2018년 12월 27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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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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