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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이라도 장편은 산업의 영역 <에듀케이션> 김덕중 감독
2020년 11월 27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단순히 일로만 접근할지 또 어디까지 서비스할지 경계가 모호한 순간이 생긴다” 김덕중 감독이 전한 <에듀케이션>의 시작점이다. 김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모티브 삼아 첫 장편을 완성했다. 영화는 돌봄 서비스 제공자 ‘성희’(문혜인)와 수급자의 아들 ‘현목’(김준형)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진폭과 흐름을 좇아가는 작품이다. 2019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초청과 올해의 배우상을 석권했다.

“나 혼자 으쌰으쌰가 안되더라고요. 장편은 아무리 저예산이라도 산업의 영역이에요.” 첫 장편을 마친 김 감독의 짧은 소감이다. 영화제에 참석하고 개봉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지만, 촬영을 멈춘 지 2년여. 김 감독은 초조함이 들던 중 최근 영진위의 숏폼 작업에 참여하며 불안한 마음이 가셨다고 말한다. <에듀케이션>의 경험을 살려 영화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가려 한다는 그를 만났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영화제 초청과 개봉은 또 다른 느낌일텐데 개봉 소감 한마디! (웃음)
당시엔 영화제에 초청된 것만으로도 족하다, 충분하다는 심정이었다. 한데 개봉이라는 게 일반관객과 만난다는 점에서 영화적으로 산업적으로 의미가 크더라. 첫 경험이라 개봉에 필요한 전반적인 과정도 그 의미도 몰랐는데 준비하면서 많이 배웠다. 또 ‘개봉’하면서 진정한 작업의 마무리이자 완료라는 느낌을 받는다.

‘돌봄 서비스의 한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인지 ‘성희’(문혜인)의 대사에 ‘도우미 아니라니까요’라는 표현이 몇 차례 등장한다.
활동보조인이 가사도우미는 아니니 청소를 전담할 필요는 없지만, 돌봄서비스 대상자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어느 정도 맡아 하는 경우도 있다. 매뉴얼이 따로 있지만, 대면 서비스의 특성상 조율이 필요한 지점이 많고 그 과정에서 서로 간에 소모가 심해진다. 시스템적으로 조율 환경을 갖춰야 하는데 그게 또 쉽지 않다. 코디가 조율의 일부를 담당하지만, 그 역시 업무가 과도해 매사를 챙길 수는 없거든. 그런 현실을 한 번 짚어봤다.

반면, 사람을 돌보는 일이기에 돌봄 대상자와 자신을 완전히 분리하기 어려운, 즉 공사를 명확히 선 긋기 힘든 순간도 있을 거다. 경험한 바가 있다면.
돌봄 활동을 그리 길게 활동하진 않았는데 당시 한 고객을 하루 6시간 돌보는 일을 했었다. 특별한 요구 사항이 없는 분이라 TV를 같이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한데 그 시간이 단조로우니 재미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할 것 같더라. 물론 고객이 요청한 바는 아니다.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그리 재밌는 화술의 보유자가 아니라는 거. (웃음) 혼자 고민하면서 일과 감정의 완벽한 분리가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는 고객의 개인사를 더 많이 알게 되니 더 그랬다. 그런 부담감에 힘들었는데 사실은 개인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거든. 내가 프로로서 접근하지 못한 거지. 그때의 경험과 느낌이 떠올랐고 영화 속에 녹여 보고자 했다.

‘성희’는 ‘숨도 쉬기 어려운 곳’이라 한국을 떠나고 싶고, 이를 위해 돈을 열심히 모으는데 장애인 활동보조 아르바이트가 의외라면 의외다.
‘성희’는 나를 투영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장애 활동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막연하게 한국을 떠나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외국에 나가면 사실은 더 힘들 텐데 말이지, 내 안의 판타지 같은 거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청년들이 많더라.(웃음) 성희는 사회복지를 전공한 학생이다. 사회복지학과 하면 으레 선하고 잘 베풀 거라는 사회적인 인식이 있는데 오히려 성희는 모가 나고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를 우선으로 챙기는 인물이다. 그런 간극에서 오는 아이러니함이 영화적 상황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잠깐 성희를 변명하자면, 그는 돌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허리를 다쳤고 그렇기에 더 몸을 보호하게 된 거다.

현목은 어른인 성희에게 기대고 하소연하고 싶지만, 성희는 그런 그가 가끔 안쓰럽고 마음 한구석을 콕콕 찌르지만 챙길 여력이 없다. 성희-현목 사이 오가는 감정의 균형과 톤 조절은 어떻게 갔나.
음, ‘불행 배틀’같은 느낌? 현목은 소년 가장이고, 성희는 허리를 다쳤는데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쉴 수가 없는 상황이다. 현목은 힘든 내게 뭔가를 좀 해달라고, 성희는 내 일만으로 벅차다고 서로 자기가 더 불쌍하다고 호소하는 거지. 서로 기 싸움을 하는 초반부를 지나 후반부에 이르면 상대에게 연민을 느낄 정도까지 관계가 진전되나, 그 감정이 애정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조율했다. 현목은 성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시비(?)를 거는데 성희는 가끔 받아 주기도 칼같이 끊어버리기도 한다. 그에 따라 현목의 반응도 뒤틀리는데 그런 감정의 낙차가 긴장감을 형성하도록 했다.

남성-여성, 미성년-성인, 고용인-고용주, 통념적으로 대응되는 관계에 있는 두 인물 간에 균형추를 맞추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좀 더 부연한다면.
초반 기 싸움할 때 현목이 티껍게 구는 것은 한 번도 갑인 적 없던 그가 갑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 거다. 성희에게 일한 시간만큼 카드를 긁고 결제해 주는 입장이니 사실과 상관없이 그런 기분이 든 거지. 그런 현목에게 성희는 일의 범위를 짚으며 명확하게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의 선을 긋는다. 그러면서 ‘어른한테 그딴 식’으로 대한다고 세게 나가는데 이때 현목은 바로 수그리고 들어온다. 아직은 어리거든.(웃음) 후반부 현목이 성희에게 (대체로) 시선으로 장난을 거는데, 이땐 성희 입장에서 움츠러들게 된다. 애라고 하지만 물리적인 힘에서 오는 남녀의 위계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상황에 따라 우위와 위계가 맞물리도록 균형을 맞췄다.

성희를 연기한 문혜인 배우의 대사 톤이 인상적이었다. 뭐랄까 일반인이 평소 이야기하는 것을 촬영한 듯한 인상인데 의도한 건가.
문혜인 배우의 강점이 배우 혼자 앞서 나가지 않는 거다. 덕분에 성희가 감정의 굴곡을 느끼고 때론 폭발하지만, 이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 부담되진 않는다. 성희가 말하는 모습을 잘 보면 끝을 명확하게 맺지 않는 경우가 많다. 웅얼웅얼하는 거지. 워딩의 정확성보다 성희-현목 사이의 상황전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요청했고, 배우도 그에 부응해줬다.

현목의 엄마(송영숙)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마비로 설정했다. 병증의 정도에 고민했을 것 같다.
코마 상태라면 몰라도 현목 엄마 같은 사례는 현실에서 아마도 찾아보기 힘들 거다. 영화적 장치로 봐야 한다. 현목 엄마가 어떤 의사 표현을 한다거나 혹은 움직일 수 있었다면 극의 흐름 자체가 크게 변할 수밖에 없다. 성희-현목의 관계 성립을 은유하고, 영화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신체도 정신도 제한된 캐릭터로 가야 했다.
 <에듀케이션>
<에듀케이션>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나 <에듀케이션>은 장애와 장애인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주제는 무엇인가.
영화를 시작할 때 청년 입장에서 청년의 사고방식에 관심이 컸다. 특히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게 되는 데 좋은 관계, 편한 관계만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자문했었다. 즐겁고,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때론 자신과 안 맞는 관계, 그리고 사람이라도 투닥거리며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지. 그런 과정을 통해 내면에 잠자던 인간애가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희가 딱 그런 캐릭터다. 외부와 관계 맺지 않고 좁은 방에 머문다든가, 항상 이어폰으로 음악 들으며 소리를 차단하는 등 하고 싶은 일만 하려 하지만, 잘 보면 인간애를 드러내는 순간이 있거든.

<에듀케이션> 관련 리뷰나 평 중 ‘울퉁불퉁’, ‘독특한 리듬’이라는 표현이 자주 보인다. 또 출연 배우들도 이구동성 ‘낯설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영화의 어떤 면이 그렇다고 생각하나.
음… 시놉시스를 보면 활동 돌봄을 받는 장애인과 그 보조인이 중심에 있다. 이를 보고 두 인물 간에 관계망이 형성되면서 유발되는 약간 슬프기도 또 감동스럽기도 한 장면을 예상하는데, 막상 보니 아닌 거지. (웃음) 뚜껑을 열어보니 장애인은 중심이 아니고 그 아들과 티격태격하는데 감정의 변화나 이런 과정을 불친절하게 보여주면서 롱테이크로 잡는다. 기대했던 것과 다른 흐름에 낯설다는 표현을 쓰는 것 같다. 또 공간도 새롭게 봐주신 것 같다. 노들야학의 주요 공간이 아닌 뒷문 쪽 풍경, 주로 활동하는 공간에서조차 어색해 보이는 성희도 그런 면을 높인다. 또 춤추길 거부하던 성희가 문득 일어나 춤을 추는데 정말 추고 싶은 건지, 아니면 ‘본때를 보여주겠어’ 뭐 이런 마음인 건지 모호한 느낌, 이런 것들이 뒤섞여 영화를 그렇게 평하는 것 같다.

노들야학에서 잠시 일한 바 있다고 들었다. 영화 속에도 활동 모습이 몇 장면 등장하더라.
벌써 10년쯤 전이다. 대학 재학 중 노들자립지원센터에서 활동지원 아르바이트를 했고, 졸업 후 노들야학이 운영하는 인터넷 언론사에서 3개월 정도 근무했었다. 그때 친하게 지낸 지인이 지금도 현장에 있어 영상작업을 같이하는 등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에듀케이션>을 찍으면서 공간과 사람 등 협조를 많이 받았다. 덕분에 영화가 풍성해졌다. 큰 빚을 졌으니 앞으로 갚아나가야지. (웃음)

기자로 일하다 영화 공부를 다시 시작했나 보다. 지난여름 개봉한 윤단비 감독 <남매의 여름밤>, 오정석 감독 <여름날>, 그리고 <에듀케이션>까지 모두 DGC(단국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출신 작품이다.
영상에 쭉 관심이 있었다. 사실 기자도 영상 취재기자를 하려고 지원한 거였는데, 막상 가보니 글 기사가 위주라 어렵고 힘들었고, 또 재미도 없었다. (웃음) 내 생각을 어떤 식으로든 전달하고 싶었는데 글을 경험해보니 아니었던 거지. 영상 콘텐츠로 눈을 돌렸고 그러다가 영화는 어떨지 찾아봤었다. 보니 재미있는 거다. 어설프지만, 열심히 하면 뭔가를 만들 수 있겠더라. 윤단비, 오정석과는 동기라 서로 격려하는 처지다. 학교 다닐 때 열심히 했던 친구들이라 좋은 반응을 얻어 참 좋다.

첫 장편을 끝낸 후 느낀 점이 있다면.
졸업 과제 특성상 적은 예산에 아주 짧은 기간에 모두 끝내야 했다. 단편이라면 나 혼자 어떻게든 하겠는데 장편은 개인의 영역이 아니더라. 혼자 힘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알았다. 배우와 스탭, 사람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또 프로덕션과 제작 시스템이 콘텐츠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컸다. 많은 것을 배운 현장이었다. 한마디로 단편이 ‘나 혼자 으쌰으쌰’라면 장편은 ‘아무리 저예산이라도 산업’이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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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일은.
<에듀케이션>을 찍은 지 2년이 넘었다. 영화제에 참석하고 개봉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지만 작업을 2년 동안 멈추고 있었으니, (앞으로) 영화인으로 살 수 있을지 조바심이 최근까지도 들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숏폼 작업에 참여했는데, 영화작업에 근접한 창작활동이라 그런지 비로소 초조함이 가시더라. 영화를 하는구나 싶으면서 이 마음을 이어가고 싶다는 갈망이 커졌다. 명맥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다음 작품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게 되더라. 어떤 방식으로든 할 수 있는 한에서 계속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진제공_씨네소파

2020년 11월 27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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