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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난 어떤가, 괜찮나? <행복의 속도> 박혁지 감독
2021년 11월 23일 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꽃 기자]

다큐멘터리 <행복의 속도>는 일본 오제 국립공원에서 활동하는 ‘봇카’를 다룬다. 오직 두 다리와 지게에 의지해 드높이 쌓은 봇짐을 지고 걷는 그들이 향하는 곳은 차가 진입할 수 없는 길목에 위치한 몇몇 산장들이다. 주인공 ‘이가라시’는 식재료와 생필품 등 필요한 물품을 건네주고 돌아오는 단조롭지만 고된 일과를 20년 넘게 묵묵히 행하고 있다. 또 다른 주인공 ‘이시타카’는 일본청년봇카대를 결성해 자신들 업무의 영역을 어떻게든 넓혀보려 한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태도는 조금 다른 두 인물을 가만히 들여다본 박혁지 감독은 몇 차례 자문했다고 한다. 내가 오제 국립공원의 봇카였다면, 어땠을까? 눈이 맑아지는 영상과 청량한 음악을 곁들인 봇카 이야기 <행복의 속도>는 관객이 자기 인생의 방향과 속도를 한 번쯤 짚어보도록, 보드라운 질문을 던진다.

처음 일본 오제 국립공원에서 활동하는 봇카들을 찍으러 간 건 2016년 7월 방영된 EBS <다큐영화 길 위의 인생> ‘인생을 짊어지고’ 편이었다. 왜 그곳을 다시 가기로 했나.
당시에는 열흘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사라져가는 직업에 대한 향수’라는 주제에 집중해서 찍었다. 50분 안에 3명의 인물을 등장시키다 보니 어떻게 보면 그냥 ‘봇카’의 일하는 모습을 잠깐 보여줬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의 주인공이었던 ‘이가라시’는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 캐릭터였다. 방송 다큐에서 ‘휴먼’ 장르를 많이 만들었고 나름대로 촉이 있는데, ‘이가라시’는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처음에는 일부러 멋있게 말하려고 저러는 건가(웃음) 했는데, 보다 보니 진짜 그런 생활이 몸에 배어 있더라.

<춘희 막이>도 2009년 4월 방영된 OBS 다큐멘터리 <가족> ‘여보게, 내 영감의 마누라’ 편에서 시작된 거로 안다. 방송 다큐로 만난 소재를 영화 다큐로 연장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은 점이 있다. 방송 다큐는 정해진 시간 안에 A라는 주인공을 집중적으로 알게 된다. 주인공도 방송이라는 걸 찍으러 왔다고 하면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해 주고 서로 시너지가 난다. 그때 인터뷰했던 내용이나 내가 취했던 카메라 구도 같은 것들이 스스로의 큰 재산이 된다. <행복의 속도>도 EBS 촬영을 하면서 (사전에) 많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냥 취재하러 갔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생각보다는 많은 내용을 담지 못했을 것이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봇카 ‘이가라시’는 현대적, 도시 문화, 경쟁 같은 키워드와는 전혀 거리가 먼 흔치 않은 인물이다. 규칙적인 보폭으로 매일 높다랗게 쌓아 올린 짐을 나를 뿐이다.
‘이가라시’는 후쿠시마 시골 마을 출신이고, 젊은 시절 오제 국립공원에서 산장지기를 하다가 봇카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권도 한 번 만든 적이 없다. <행복의 속도>를 개봉할 때에 맞춰 가족들과 한국에 올 수 있으면 내가 경비를 조금 부담하겠다고 했는데, 여권이 없다고 하더라.(웃음) 그 지역이 더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서류 절차를 밟으려면 차를 타고 1시간 반이나 나가야 하고 발급받는 데도 3개월이 걸린다고 하더라. 스마트폰도 <행복의 속도> 촬영이 끝나갈 때쯤 처음 샀다고 한다.

반면 또 다른 주인공 ‘이시타카’는 봇카 일을 외부에 더 알리기 위해 도시로 나가고 추가 일감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고 한다.
‘이시타카’는 봇카의 규모를 더 키우고 싶어 한다. 겨울철이 되면 오제 국립공원이 문을 닫기 때문에 봇카 일을 못 하게 되는데, 그때 왜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지 않고) 봇카 일이 아닌 다른 걸 해야 하는지 좀 못마땅해하는 느낌도 받았다. 일본이 넓으니 아직 개발이 안 돼 차가 못 들어가는 지역이 있을 거고, 거기서 자기 같은 사람이 역할을 해주면 사업체로서 돈을 더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일본 방송국 NHK가 자연 다큐를 찍을 때 무거운 밧데리 같은 걸 들어달라고 부른다고도 하더라. 방송 다큐 촬영을 위해 만났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내게 말했었다. 도쿄 가서 영업도 할 거고, 산악회 같은 곳에도 연락해보려고 한다면서 말이다. ‘이가라시’와 다르게 봇카 일에 욕심이 있는 것이다.

정작 영화에서 ‘이시타카’의 그런 욕심이 드러난 부분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욕심만큼 촬영을 많이 하지는 못했다. ‘이시타가’의 경우는 오제 국립공원에서 일하는 모습보다는 외부로 튕겨 나가는 모습을 많이 찍고 싶었다. 어울리지 않는 양복을 입고 사람 북적이고 차 소리 시끄러운 도시로 나간 그의 모습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방송 다큐로 일본을 짧게 촬영하긴 했지만 <행복의 속도>만큼 깊게 들어간 건 나도 처음이라서 문화 차이를 좀 느꼈던 것 같다. 예컨대 ‘이시타카’에게 오제 국립공원 외부에서 하는 봇카 일을 촬영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대부분 안 된다고만 하는 거다. 한 번만 다시 물어봐 달라고 하거나, 나한테 그쪽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냐고 하니까 화를 낸 적도 있다. 일본 문화에서는 나처럼 (한 번 거절한 걸 재차 부탁하거나) 모르는 이의 개인 정보를 달라고 하는 건 경우가 없는 거였던 것 같다.(웃음)


워낙 ‘실례’에 민감한 문화이니 그랬을 수도 있겠다.
월요일이 봇카 휴무일이다. 하루 정도는 쉬어줘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시타카’는 딱 봐도 무리한 외부 일정을 나간다. 발목 인대가 늘어나서 아파하면서도 말이다. 내 눈에는 그런 게 안쓰러워 보이는데, 나만 알고 있으면 안 되지 않나. (관객도 알 수 있게 영상으로) 표현이 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상황이 충분히 담겼다면 맥락이 더 분명히 보였을 거고, 그러면서 또 새로운 일이 발생했을 수도 있는데 무척 아쉽다. 그러다 보니 ‘이가라시’ 분량은 상대적으로 많은데 ‘이시타카’ 분량은 박박 긁어서 편집하는 느낌이었다.(웃음)

‘이시타카’가 가족과 식사하는 장면이 아쉬움을 달래줄 것 같다. 월급은 따박따박 나오냐거나, 네가 다치면 네 처가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는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친척 어른 덕분에(?) ‘이시타카’가 처한 상황을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고 본다.
나야 일본 말을 못 하니 그들이 만난다고 해서 무슨 연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설령 연출을 하려 해도 그걸 따라 줄 사람들도 아니니 촬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족분들이 마치 나는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면서 ‘이시타카’에게 ‘겨울에는 괜찮니’ 같은 걸 물으시니 나로서는 땡큐였지.(웃음) 그렇지 않았으면 초밥이나 조금 먹다가 나오는 장면이나 찍었을 거고 담을 이야기도 없었을 거다.

친구들과 만나는 장면도 찍었다.
그건 ‘이시타카’가 먼저 제안해줬다. 그 장면 덕분에 그의 캐릭터가 잘 설명됐다는 생각이다. 친구들이 봇카 일의 보람이 뭐냐고 묻지 않나. 그때 (필요한 짐을 건네받은) 산장 사람들이 고맙다고 할 때라고 답하는데, 마지막에 약간 말끝을 올리는 것이 조금 가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웃음) ‘이시타카’가 아내와 집에서 밥 먹는 신을 찍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번역하는 친구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의 아내가 평소 우리가 먹던 스타일대로 먹어야 되는 거 아니냐, 너무 보여지게 준비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는 거다.(웃음) 아마 ‘이시타카’는 촬영이라는 걸 하니 반찬도 좀 좋은 걸 내어오고 그릇도 정갈하게 보였으면 했나 보다. 내용 중 야구를 보면서 아내에게 “오늘 점심상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거니 잘 신경 써달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친구의 캐릭터라는 거다.


‘이가라시’와 ‘이시타카’ 두 캐릭터를 대조적으로 연출했다. ‘이가라시’가 걸을 때는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이시타카’가 걸을 때는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서 프리뷰를 해보니까 두 사람의 숨소리가 완전히 다르더라. ‘이가라시’는 처음과 끝이 거의 일정하고 거친 숨을 잘 안 쉬는데 ‘이시타카’는 곧 쓰러질 것처럼 난리가 났더라. 그래서 이 소리는 꼭 가져가자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나한테는 너무 대조되더라.

기자회견 당시 본인과 동일시한 건 여유 있는 ‘이가라시’가 아니라 이런저런 욕심 때문에 가끔은 불안해 보이기도 하는 ‘이시타카’ 쪽이라고 했다.
‘이시타카’는 오사카 출신이다. 가끔 도시에 나가면 기분 전환이 된다. 오제 국립공원에서만 일하는 건 좀 재미가 없고, 일본청년봇카대를 만들어서 그 외에 다른 데서도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입장이 나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나도 다큐를 만들다가 돈이 짭짤한 홍보용 영상 제작 제안이 들어오면 ‘이거 할까?’ 고민하거든. 다큐를 만들지만 동시에 가정도 꾸려야 하니까, 금전적 순환이 빠르지 않은 다큐라는 장기 프로젝트 중간에 1주일 촬영으로 한 편을 만들면 얼마를 준다는 식의 유혹에 흔들리는 거다. 아마 ‘이가라시’라면 그런 제안이 들어와도 하지 않겠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흔들릴 거라고 생각한다.

다큐 감독 대부분이 자기 작품과 생업용 영상 제작을 병행하는 거로 안다.
나도 방송 촬영을 많이 했다. 편집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면 촬영은 찍고 넘겨주기만 하면 끝이라 좀 깔끔한 느낌이 있거든. 근데, 그렇게 돈을 벌다 보니 약간은 게을러지는 나를 발견한 거다. <춘희막이> 때는 할머니들 식사하시는 신만 정말 장난 아니게 많이 찍었거든. 혹시 밥 먹다가 작은 할머니가 혼나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을까 하면서.(웃음) 어느 순간 그런 반복이 재미없게 느껴지더라. 그래서 ‘이가라시’에게 물었다. 맨날 같은 길을 걷는 게 지겹지도 않냐고. 그런데 마치 그런 질문을 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 바라보면서 1초도 같았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구름도 바뀌고, 바람도 다르다는 거다.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진짜 그렇게 느끼긴 쉽지 않지 않나. 그때 알았지. 아,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구나.(웃음)


일상에서 매일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을 것이다.(웃음) 영화에서는 삶을 대하는 ‘이가라시’의 태도가 그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해지지는 않는데.
인터뷰는 진짜 많이 땄다.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 틀린지 검증하는 의미에서 여러 질문을 던졌고, 그에 답하는 ‘이가라시’의 어록도 많았다. 그런데 그걸 그대로 가져다 쓰면 관객의 감흥이 반감될 것 같더라. 말에 집중하면 잠깐은 멋있게 느끼겠지만, 그건 너무 직접적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방송 다큐 <인간극장>같은 걸 보면 지금 주인공의 마음이 어떻고, 내일은 어디로 갈 건지까지 다 알려주지 않나.(웃음) 나도 그런 영상을 많이 찍어봤고, 필요할 때는 내레이션도 당연히 써야 하겠지만 <행복의 속도>만큼은 관객이 여유를 갖고 보길 바랐다.

당신도 그곳 오제 국립공원에서 여유를 느꼈나.
‘이가라시’가 아이들에게 잠자리를 잡아주는 신을 굉장히 좋아한다. 편집하면서 아마 그의 아이들도 아빠가 되면 자기가 어릴 때 했던 것처럼 아이들과 같이 잠자리를 잡아 주지 않을까 싶더라. 나도 어릴 때 잠자리를 잡아본 적 있었나 생각이 들기도 했고, 우리 아이들한테 곤충을 잡아준 적 있나도 생각해보고.(웃음) 촬영하면서 자문했다. 내가 오제 국립공원에서 일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생각이 전달됐으면 했다. ‘이렇게 살자’가 아니라 지금의 난 어떤가, 괜찮나? 정도의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랐다. 특히 ‘이가라시’ 또래라면, 한참 아이들 키우고 열심히 일하면서 인생을 달릴 때라 그런 생각을 할 순간이 많지 않을 테니까.

다큐를 만들면서 슬럼프를 겪은 때가 있나.
2016년 <오 마이 파파>를 개봉하고 그다음 작품으로 생각한 게 <시간을 꿈꾸는 소녀>(미개봉)였다. 어린 시절 신내림을 받은 권수진이라는 친구를 이미 2015년부터 찍기 시작했다. 그가 20살이 되고 대학에 들어간 2016년은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무당이라는 정체성과 사회의 시선이 부딪히는 지점이 포인트였다. 처음에는 주변 친구들과 교수님께 스스로 자기가 무당인 걸 밝히고 싶다고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3, 4, 5월 지나도 계속 기다리라고만 하다가 여름 방학을 시작하고 나서 그만 찍고 싶다고 하더라.(웃음)


청천벽력이었겠다.
1년 넘게 찍었으니까 충격이 컸지. 그런데 재고의 여지가 없더라. 그의 할머니를 찾아가서 수진이 좀 설득해 달라고도 해봤지만, 손녀가 결정한 거니 어떻게 그 뜻을 바꾸라고 하시겠나. 아마 수진이는 어릴 때부터 점 보러 온 사람들에게 ‘보살님’으로만 불리다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수진아’라고 불리는 게 너무 좋았던 것 아니었을까 싶다. 다큐를 안 찍으면 그 생활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촬영 일정이 무너지게 된 거고, EBS <다큐영화 길 위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거다.(웃음) ‘슬럼프’ 까지는 아니었지만 한 번도 촬영이 엎어지는 종류의 실패를 한 적 없어서 ‘멘붕’이었지.

주인공의 마음 변화는 물론이고, 다 찍어 놓은 뒤에 뒤늦게 가족이 크게 반대하는 등 다큐멘터리를 공개하기까지 고질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들었다.
더 재미있는 건, 그렇게 연락이 끊겼던 수진이가 4학년 1학기에 느닷없이 전화가 왔다는 거다. 잘 지내시죠? 혹시 옛날에 찍은 거 다 지우셨어요? 묻더라. 1년 넘게 찍은 걸 어떻게 지우겠냐고, 잘 갖고 있다고 하니까 그러면 다시 시작하죠? 하는 거다. 그런다고 나는 또 바로 “그래 알겠어!” 했지.(웃음)

(하하하)
부족한 부분 촬영을 마무리하고 지금은 편집 중이다. 러프컷도 나왔다. 중간에 2학년, 3학년 기간이 하나도 없고 2년 넘는 시간이 비어버려서 아예 시간의 개념을 다 무너뜨렸다. 전주국제영화제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내년 4월 프리미어 상영을 할 예정이다. 그게 다음 작품이 될 것 같다. <지구에 온 첼리스트>(미개봉)라는 또 다른 프로젝트도 있다. 촬영을 거의 마쳤다. 첼로를 켜는 자폐 청년 이야기인데 그 작품은 DMZ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하기로 돼 있다.

<오 마이 파파> 이후 열심히 작업했던 내용이 순차대로 공개되는 시점인 것 같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 <지구에 온 첼리스트>를 편집하는 데 앞으로 많은 시간을 써야겠다.
다큐 하는 분들은 아마 다 똑같은 생각일 거다. 편집이 제일 어렵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그에 맞게 꿰맞추는 게 아니다. 일단 다 찍은 다음에 장면을 맞추는데 ABC로 해도 말이 되고 CBA로 해도 말이 된다. 뭐가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관객이 더 재미있어할지 고민해야 한다.

고생스럽지만 그 선택 안에서 감독의 생각과 성향이 드러나고, 관객은 그 재미로 다큐를 보는 것 아니겠나.(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방송 다큐만 하다가 처음 영화 다큐를 하면서 제일 좋았던 게 GV다. 내 영화에 대한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은 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계였다. <춘희막이> 때 어떤 관객은 춘희 할머니 편을 들면서 페미니즘 시각으로 말씀도 하셨는데 그것도 너무 재미있었다. 어떨 때는 나랑 관객이랑 좀 싸우는 것 같은(웃음) 상황도 벌어지는데 역시 좋다. 그분은 내 영화를 그렇게 보실 수 있겠구나 싶더라. <행복의 속도> GV는 코로나19 때문에 질문을 육성으로 듣지 못하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전달받아야 해서 그게 좀 아쉽다. 목소리로 질문을 들어야 그 나름의 톤이 느껴지고, 나도 바로 반문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GV는 (개봉하는) 감독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거다. 그 맛을 느끼기 위해 더 열심히 다큐를 만드는 날도 있다.(웃음)

사진 제공_영화사 진진



2021년 11월 23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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