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남사친 ‘승효’(김영광)가 결혼을 한다고…? 한 번쯤 잘 될 법도 했던 사이인데, 용기 내 고백하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이 어쩐지 후회로 남아버린 연말이다. 새해에는 ‘소진’(한지민)의 옆자리를 지켜줄 누군가가 다가올까? 곽재용 감독의 신작 영화 <해피 뉴 이어>에서 한지민은 쌉싸래한 심정적 이별을 받아들이는 호텔 매니저 ‘소진’역을 맡았다. 한지민&김영광 커플 외에도 원진아&이동욱, 윤아&강하늘 등 무려 14명의 배우가 출연해 제각각의 사연을 선보이는 <해피 뉴 이어>는 마치 <러브 액츄얼리>와 <새해전야>처럼, 짧지만 다채로운 이야기로 무장한 채 새해를 맞는 관객의 ‘해피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극이 벌어지는 주요 공간, 연말의 호텔에서 ‘소진’역을 연기하며 극의 한 축을 담당한 한지민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연말, 연초 신작 <해피 뉴 이어>를 선보인다. 당신에게 2021년은 어떤 해였나.
2021년은 모두가 그렇듯 나 역시 어렵게 시작했고 심적으로도 힘들었다. 준비하던 작품이 코로나19로 중단되면서 배우로서 막막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면서부터는 다행히 바쁜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노희경 작가님이 새로운 작품 <우리들의 블루스>로 기회를 주셨고 ‘작업해보면 행복할 수밖에 없다’고 알려진 이준익 감독님의 <욘더> 현장에서도 너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촬영하고 있다. 시작은 어려웠지만 후반부에는 동시다발적으로 연기를 할 수 있게 됐고 연말 <해피 뉴 이어>까지 보여드리게 됐다. 정신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금 되새긴 한 해였다.
<해피 뉴 이어>의 ‘소진’은 짝사랑 남사친을 떠나보내는 서운한 상황에서도 코믹하고 능청스러운 일상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극 중 이야기가 벌어지는 중심 공간인 호텔의 매니저이기도 하다.
‘소진’은 전체 인물의 관계성을 연결해주는 고리 같은 느낌의 인물이다. 다만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코믹한 요소나 사랑스럽게 표현될 지점이 많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곽재용 감독님께서 귀엽고 재미있는 장면을 많이 연출해주시더라. 가끔은 너무 만화적인 느낌이 드는 표현이라 괜찮을까 싶었는데, 편집본을 보고 나니 내가 그 상황 안에서 다채로운 표현을 지어내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반복해서 넘어지는 신은 캐릭터의 허당매력을 잘 보여준다. ‘소진’ 캐릭터를 어떤 느낌으로 보여주고 싶었는지 감독의 의도가 묻어나는 대표적인 신이라는 생각이다.
한 장소에서 그렇게 계속 넘어지는 게 현실적인 걸까? 이 정도면 허당을 넘어서 어딘가 부족한 사람 아닐까?(웃음) 그런 이야기를 감독님께 했었다. 계절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옷도 많이 갈아입고 머리 스타일도 바꾸면서 촬영했는데, 어떤 의도로 같은 장면을 이렇게 많이 찍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8~9벌 정도 옷을 갈아입고 촬영을 한 뒤 현장에서 (가)편집한 영상을 봤더니, 의외로 웃긴 거다.(웃음) 넘어지는 동작을 매번 바꾸면서도 자연스럽게 보여야 하고 그러면서도 안전해야 했기 때문에 연기하는 게 많이 어려웠는데 음악을 넣어 템포감 있게 편집을 해 주셔서 그런지 나름 귀엽게 잘 나온 것 같다.
‘소진’을 연기하는 동안 곽재용 감독님의 요구 사항이 분명하게 있었던 것 같다.
감독님은 내가 영화에서 어두운 표정을 자주 보여줬다는 걸 기억하시더라. 그래서인지 다양하고 심심하지 않은 표정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많이 하셨다. 밤을 새우고 집에 들어온 걸 동생 ‘세직’(조준영)에게 들켰을 때 마치 (실제로는 방으로 들어가는 중이었지만) 다시 (나와서) 출근하는 척하는 장면에서 슬랩스틱처럼 넘어지듯 일어나는데 그때도 감독님의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갔다.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각각의 캐릭터 특색을 적극적으로 살리려고 한 것 같다. 배우의 활약을 끌어내기 위해 감독님도 여러 노력을 했을 것 같다는 짐작이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면서 ‘소진’과 ‘승효’가 환하게 웃는 장면을 찍을 때 감독님이 무전기로 감자, 고구마 이야기를 하시더라. 그 내용이 재미있었다기보다는 배우를 웃겨주기 위해 무전기에 대고 말도 안 되는(웃음) 감자, 고구마 이야기를 하시는 게 너무 귀여웠다. 촬영 초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감독님의 노력으로 김영광 배우와 함께 깔깔 웃으며 촬영한 기억이 난다.
여러 배우와 분량을 나눠 진행했기 때문에 출연 비중이 아주 크지는 않은데.
내 분량이 아닌 다른 로맨스가 너무 궁금해서 자꾸 촬영 현장에 찾아가게 되더라. 다른 사람들이 찍은 걸 보여달라고 말이다.(웃음) 마치 남의 작품 보듯 설레며 재밌게 일했다. 마냥 즐겁고 행복하게 찍었던 거 것 같다. <해피 뉴 이어>의 또 다른 장점은 (분량을 나눠 맡다 보니) 체력적으로 덜 힘들고, 개봉할 때의 심리적 암박감도 n/1이 된다는 것이다. 촬영 시간이 부족해서 극 중 오래된 친구들 역할을 맡은 배우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촬영할 수 없었던 건 좀 아쉽다.
분량상 편집된 지점도 있나.
‘승효’와 함께 보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이 있었다는 걸 표현한 장면이었다. 둘이 입맞춤 상황까지 갈 뻔했는데 ‘소진’이 그 상황을 잘 준비하기 위해 화장실에 뛰어갔다가 온다. 그러고 나니 다른 친구들이 와서 이미 자리 분위기가 바뀌어 버린 거였다. 찰나의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지금의 ‘승효’와 ‘소진’의 관계가 됐다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인데 그게 편집돼 아쉽다. 감독님이 확장판에는 모두 넣어주신다고 했으니 볼 수 있을 것이다.
극 중 가장 좋아 보였던 커플은.
고등학생 ‘세직’과 ‘아영’(원지안)의 이야기가 조금 부러웠다. 데뷔를 일찍 했는데도 고등학교 시절의 풋풋한 이야기를 연기해본 적이 없다. (임)윤아 배우와 같이 앉아서 구름다리 고백 신 촬영을 지켜봤는데 그 순수한 떨림이 좀 그립기도 했다.(웃음) 이제 다시는 해볼 수 없는 역할이라 그런 것 같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건 ‘재용’(강하늘)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는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극한으로 치닫는 감정까지는 가지 않겠구나 싶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모닝콜을 통해 던져준 질문이 내일을 맞이할 힘을 준 것 같아 큰 위로가 됐다.
<해피 뉴 이어>는 극장 개봉과 같은 날 티빙에서도 동시 공개된다.
나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티빙에 접속하니 <해피 뉴 이어>가 떠 있어서 굉장히 기분이 묘했고, 반갑기도 했다. 예전에는 극장에 찾아가서 시간과 돈을 투자해 보는 게 영화의 의미였다면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모두가 조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외출을 꺼리는 분들도 계신데, 극장까지 걸음 하지 않고 집에서 안전하게 영화를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영화라는 매체가 좀 더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간 느낌이 든다.
관객, 구독자에게 이번 작품의 관람을 추천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게 <해피 뉴 이어>의 큰 매력이다. 자극적인 볼거리가 많은 영화가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크게 자극적이거나 파격적인 요소 없이 우리가 그리워하는 원래의 일상과 따뜻한 기운을 얻고 싶을 때도 있지 않나. 가볍고, 쉽고,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연말이 따뜻해졌다는 피드백을 보면 기분이 좋다.
앞으로 맡아보고 싶은 역할은.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일 있다면 그걸 알려줘도 좋다.
메디컬 장르와는 아직 연이 닿지 않았다. 안 해본 장르라서 해보고 싶다. (배우일 외에) 개인적으로는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싶다. 날아보고 싶다.(웃음) 사실 <미쓰백>(2018)으로 상을 받았을 때, (소속사) 대표님이 자기는 괜찮으니 나더러 “이제는 마음껏 사랑만 하면 되겠다”고 하셨다.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없으니까 지금 그 나이에 꼭 한 번쯤은 용감한 사랑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뜨겁고 열정적으로, 주저하는 것 없이 사랑해보고 싶다.
사진 제공_BH엔터테인먼트
2022년 1월 3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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