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댓글부대>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작품을 선택할 땐 감독님과 작가님을 많이 보는 편이다. 안국진 감독님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출하신 분이라는 걸 알고 함께 일해보고 싶더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면서 감독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사회현상을 영화에 녹여낸 게 좋았다. <댓글부대>에서도 이 소재를 선택한 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해서라고 생각했다.
극중 사회부 기자 ‘임상진’ 역을 맡았는데 어떻게 준비했을까.
직접 사회부 기자님 몇 분을 만나거나 다큐멘터를 보면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연구하긴 했지만 완전히 사실적으로 그리려고는 하지 않았다. 영화적으로 창조된 캐릭터이기도 하고, 현실에서 기자가 몇 년간 한 사건에만 매달리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캐릭터 초반 빌드업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임상진’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업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납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현실과 상당히 밀접한 이야기인데 그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공교롭게도 바로 얼마 전에 댓글부대와 관련된 뉴스를 봤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지만 그런 이유로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게 첫 번째이지만, 엔터테이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고 관객에게 현실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영화가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댓글부대>는 과거나 미래의 일이 아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안에 상상을 보태 만들어진 드라마다.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차차 지켜봐야할 거 같다.
‘팀알렙’을 연기한 김성철, 홍경, 김동휘 배우와의 작업은 어땠나.
‘팀알렙’ 친구들 정말 잘한다. (웃음) 사실 김동휘 배우 말고는 극중에서 만나는 장면이 없다. 다른 친구들과 만나는 장면도 찍었는데 편집됐더라. (웃음) 김성철 배우는 <올빼미> 때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고 홍경 배우는 잠깐잠깐 봤는데도 타고난 연기 센스가 느겨지더라. 김동휘 배우는 굉장히 어른스러웠고 기본적으로 ‘찻탓캇’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높아서 훨씬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초반에는 ‘팀알렙’ 세 명이 한 팀, 하나 같은 느낌이 강했고 삼인삼색의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감독님이 배우들 특성에 맞게 수정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거다.
원작 소설과 달리 엔딩이 모호하다는 평이 있다.
개인적으로 모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진’의 결정을 관객이 모호하게 받아들인다면, 그건 영화가 어떤 게 팩트인지 러닝타임 내내 명확히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현실도 마찬가지지 않나. 명확한 건 없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예전에는 불면증이 심했는데 이제는 기절해서 잔다. (웃음) 아직 보여주고 싶은 연기가 많다. 배우로서 작품의 의도가 명확히 전달됐을 때 희열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서른 중반, 마흔을 넘어서면 열정이 사그라들거나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해서 더 열심히 하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무작정 달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정의할지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지난해 연극 <나무 위의 군대>로 무대에도 섰다.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듯한 그 느낌도 특별하고, 확실히 연기의 퀄리티가 다른 거 같다. 연극은 리허설 기간도 길고 회차가 진행되면서 내가 느끼는 것도 달라진다. <나무 위의 군대>가 48회 공연까지 갔는데 46회차 공연을 할 때 ‘아, 이게 이런 감정이었구나!’ 하면서 내려왔다. (웃음) 영화나 드라마는 대신 카메라 앵글이나 음악, 편집 등 여러 부가적인 요소로 완성도를 높인다. 그래서 매체 연기에서 중요한 건 믿음인 거 같다. ‘내 연기가 편집으로 보완되겠지?’ 하는 믿음. 하하!
이미지 고갈에 대한 걱정은 없나.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면 다 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까? (웃음) 뭐든 과하면 좋지 않다는 건 안다. 대중들은 내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길 원하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변했다는 게 인지되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성장해나가는 게 대중과 나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오래 가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밑천이 드러날 거 같은 조바심 때문에 큰 변화를 시도하면 탈이 날 거 같다. (웃음)
사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변화에 대한 강박이 컸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지루하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면서 극단적인 변화를 취하는 건 무리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나이와 정서에만 보여드릴 수 있는 연기가 있지 않나. 이 시간이 지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기를 그리워하는 분들도 계실 거다. 너무 빨리 나 혼자만 나아가도 좋지는 않을 거 같다.
지난해 소속사와 계약이 끝난 뒤 1인 기획사 겸 제작사인 스태넘을 설립하기도 했는데.
평소 가장 자주 연락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마동석 선배님이다. (웃음) 현장에서 보면 배우가 아니라 제작자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걸 보고 많이 배웠고, 동석 선배가 우리 둘은 재질이 비슷하기 때문에 연기, 연출, 제작을 다하라고 조언해 주기도 했다. 제작사를 차리게 된 것도 선배를 보면서 구체화한 부분이 많다.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카메라 뒤에서의 일, 배우와 회사 간의 효율적이고, 투명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전 소속사에서도 그런 게 잘 됐기 때문에 재계약을 했다. 이번에는 내 스스로 전반적인 걸 꾸려보고 싶더라. 이제 막 시작한 단계이고 우리 회사의 색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다.
연기, 연출, 제작까지 다 경험한 후에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근시일 내에 이뤄지진 않겠지만 전업 작가로도 활동하고 싶다. 한 번 사는 인생 해보고 싶은 일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어떤 방식으로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웃음)
사진제공_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