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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생츄어리> 왕민철 감독
2024년 6월 18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동물을 양육하는 가구가 30%에 육박할 정도로 대 반려동물의 시대. 그만큼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안타깝게도 야생동물은 여전히 관심 밖이다. 야생동물을 구조, 치료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이들이 있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청주동물원,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등 가용한 자원 안에서 그들의 우주를 되찾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다. <동물, 원>의 후속편인 <생츄어리>로 다시 관객을 찾은 왕민철 감독을 만났다. 동물원 속 야생동물들이 어떻게 동물원으로 오게 되었는지의 여정과 이 여정에 함께한 이들을 담은 이야기라고 소개하며, 각자의 위치와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 끌렸다고 말한다.

<생츄어리>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동물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소수다. 꼭 반려동물이 아니라도 너구리, 족제비, 새 등 같이 우리 곁에는 여러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생츄어리>를 통해 동물과 같이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 지구가 또 우리 사회가 인간만의 터전이 아니라는 걸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2019년에 개봉한 <동물, 원>의 연장선에 있는 다큐멘터리다. 후속편을 기획하게 된 계기와 이번에 중점을 둔 부분은.
속편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우리 사회 속에서 동물원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본 <동물, 원>에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 후속편을 만들게 됐다. <동물, 원>은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의 시선처럼, 청주동물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찍으려 했다면, <생츄어리>는 그 안에 있는 동물들이 어떻게 동물원에 오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촬영 방식에 변화가 있을까.
<동물, 원>때는 동물원이 돌아가는 원리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었다.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지켜봤고, 카메라를 설치하여 먼 거리에서 한 촬영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발로 뛰며 현장을 찾아다녔다. 한마디로 청주동물원 안에서 밖으로, 즉 야생으로 나갔다고 보면 된다. 또 동물들이 동물원에 오게 된 이유를 말보다 영상으로 보여주려고 인터뷰를 절제했다. 인터뷰로 설명을 채우는 게 안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를 행동이나 그림 같은 영화적 문법으로 채우려 했다. 안락사 문제 같이 말로 설명해야 하는 주제들이 많았지만, 이는 윤리위원회 회의와 그 안의 대화로 대체했다. 이야기 자체의 무게가 있어 전사나 설명은 부족해도 되겠다 싶어 가급적 직설화법을 지양했다.

청주동물원에는 전시 동물 외에도 여러 이유로 야생으로 복귀하지 못한 동물들이 상주한다. 야생동물의 보금자리인 ‘생츄어리’가 국내에는 단 한 곳도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동물, 원> 촬영 때부터 상당한 시간을 지켜봤는데 제일 큰 문제는 사람들이 생츄어리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왜 있어야 하는지, 그곳이 필요한 동물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또 이 시설이 필요한 개체가 얼마나 많이 발생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원인조차 파악 못 하니 그 해결책의 강구가 요원할 수밖에… 사육 곰을 예로 들자면, 농장에서 키우는 곰은 중성화 수술이 필수라 법적으로는 더 이상 개체수가 증가할 수 없다. 하지만, 극 중 반달곰 형제가 몰수된 경우처럼 몰래 키우기도 하고 또 곰 농장을 동물원으로 전환해 번식시키기도 한다. 동물원은 중성화 수술이 필수가 아니거든.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추진자인 최태규 활동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김봉균 재활관리사, 청주동물원 소속 김정호 수의사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안락사를 바라보는 시선에 미묘한 차이가 있더라.
구조센터에 들어오는 동물 수가 생각보다 많다. 제도상 자연 복귀가 불가능한 개체는 1차로 안락사 권고 대상인데,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일괄적으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동물원(수의사)의 윤리적 판단과 더불어 안락사 기준을 계량화하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안락사가 쉬운 타협이라는 의견도 있다. 안락사를 시키지 않으면 자연사를 기다리는 건데 이건 고통 속에 그대로 방치하는 걸 수도 있다. 대체로 공영 동물원은 2년마다 순환 보직이라 안락사를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동물복지 차원에서 공론화하여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하게 되는 구조인데 사람이든 동물이든 죽음에 대해 적극적으로 거론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경제적인 원리로 접근해서는 안 될 문제다.

로드킬, 독극물 중독, 서식지 파괴 등 의도했든 아니든 야생동물의 희생에 인간이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답답한 현실이지만,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위해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원인을 제공한 것이 인간이라면 수습하는 것도 우리 인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동물 전용 통행로를 만들어 로드킬을 예방한다든지…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일방적으로 관련자들을 매도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곰 농장의 경우 사회적 안에서 용인하고 한때는 장려했던 사업 아닌가. 결국 사회 전반에 걸쳐 동물 윤리와 복지 의식이 높아져서 사회가 변하면 개개인의 인식 역시 따라 올라갈 거로 생각한다.

환경이나 생태 이야기는 거대한 담론이라 자칫 교육적으로 손가락질하는 영화가 되기 쉬운데 <동물, 원>이나 <생츄어리>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에 담긴 사람들은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그 한계 안에서 최대한 배려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를 위해 전국을 다니는 최태규 활동가의 경우, 당장 전국에 있는 사육 곰을 해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니 돌아다니며 해먹을 달아주고 있다. 구조센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반적인 사회구조를 당장 바꿀 수 없으니, 당면한 아픈 야생동물을 치료해 고통을 없애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청주동물원은 전시동물의 인공적인 번식을 중지하고 생츄어리와 동물원의 절충지를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이렇듯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 끌려 지금까지 작업해 온 것 같다.

오프닝을 농수로에 빠진 고라니 장면으로 정했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를 촬영하며 많은 고라니가 농수로에 빠져서 다치거나 죽는다는 걸 알았고, 충격받았다. 그 장면이 우리 주위에 있는 야생동물의 현실을 굉장히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더라.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시설이고 일견 동물들에게 무해해 보이는 농수로가 고라니를 비롯해 야생동물을 얼마나 많이 해치고 있는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보고 사람들이 현실을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랐다. 물론, 농수로에 탈출구를 만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롭게 만드는 농수로의 경우 탈출구가 의무설치이나 이를 소급 적용은 안 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할 부서도 제각각이라 시민이 자발적으로 요청해야 하는데, 농수로는 농사를 위한 구조물이고 고라니는 (농사를 망치는) 유해동물로 지정되어 이해가 상충하는 면이 있다.

<동물, 원> <생츄어리>의 주요 무대가 된 청주동물원의 근황은 어떤가.
지난해, 앙상하게 갈비뼈를 드러낸 사자가 청주동물원으로 이송됐고, 동물원이 그간에 해온 일이 알려지면서 주목받고 지지도 많이 받고 있다. 방문객의 성격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어린이 위주 가족 단위가 찾는 놀이공원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동물에 관심 있는 성인이 주로 온다고 한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생츄어리> 다음 이야기를 찍고자 했는데 요즘 알다시피 지원금이 다 끊겨서 제작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웃음) 또 한 번 뛰어 봐 야지. 최근엔 청주 작업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을 집 안에서 찍어볼까 생각 중이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그네가 하나 있어 시간 날 때 마다 보는데 항상 사람이 타고 있다. 할머니, 아이, 아저씨, 밤에는 청소년까지 시간대에 따라 다 다른 풍경을 담아 봐도 좋겠더라.


사진제공. (주)시네마달

2024년 6월 18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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