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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필모는 일기 같은 것” <탈주> 구교환 배우
2024년 7월 4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선택할 자유를 위해 탈출하려는 ‘규남’(이제훈)과 운명에 순응하라는 ‘현상’(구교환). 두 남자의 쫓고 쫓는 추격이 시작된다. <삼진그룹 영화토익반> 이종필 감독의 신작 <탈주>에서 이제훈과 구교환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첫 작업이지만, 익히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낯설지 않고 1회차부터 편안하게 촬영했다는 구교환, 언젠가는 감독으로 배우 이제훈을 캐스팅하고 싶다고 전한다. 독립영화 씬에서 빛난 독보적인 존재감을, TV 극장 OTT 모두 아우르며 발휘하고 있는 구교환을 만났다. 하나씩 쌓아가는 작품 목록은 당시의 분위기, 풍경, 생각과 감정, 그리고 맛집을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일기 같다면서, 향후 팟캐스터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예고한다.

<탈주> 시나리오를 받고 첫 느낌은 어땠는지.
이종필 감독님이 독립영화와 단편영화를 만들고 가끔 연기도 하던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그분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글 너머의 것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글을 보고 어떻게 만들지 딱 느낌이 오더라. 비유하자면, 가수가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부를지 상상되는 것처럼 말이다. ‘리현상’이 빌런이지만 그 외의 모습을 보여줄 거로 기대했고, 예상대로였다.

리현상의 어느 부분에 호기심을 느꼈는지.
그가 ‘왜 ‘규남’(이제훈)의 탈주를 막는가’ 그 이유가 궁금했다. 현실의 안위를 위해서인지, 두고 온 꿈인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규남을 막아야만 자신이 버틸 수 있기 때문인지 여러 생각을 해 봤다. 특히 현상의 마지막 선택은 이상하면서도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나.
현상은 처음에는 꼿꼿하게 등장하지만, 갈수록 내적, 외적으로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시작과 끝의 얼굴이 다른데, 배우로서 이런 캐릭터에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생긴다. 규남을 막아야만 하는 캐릭터의 기능적인 요소를 뼈대로 했고, 그다음으로는 감정의 콘트라스트가 중요하다고 파악했다. (봐서 알겠지만) 현상이 정말 규남을 잡고 싶어 하는지, 아닌지 모호한 부분이 있지 않나. 충분히 총을 쏠 기회가 있어도 쏘지 않는가 하면 그렇지 않을 때도 있거든. 그는 연속성이 필요한 인물이 아니고, 만약 그가 일관된 자세를 견지했다면 오히려 납작한 캐릭터에 그치고 말 거라고 생각했다.

리현상의 첫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예민한 카리스마라고 할지, 차분하지만 좌중을 긴장케 하는 아우라가 대단하더라.
그렇게 봤다면, 연출과 분위기 그리고 절묘한 소품의 도움 덕분이다. 그때 장성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데, 킹 카드가 나오거든. 그런 식으로 무드가 예열된 상황에서 대본과 콘티를 그대로 따라갔을 뿐이다. (웃음) 개인적으로 그 장면은 ‘뻔뻔함’의 키워드로 접근했다. 리현상은 그 공간에서 어느 것도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현상과 규남의 전사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친한 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현상에게 규남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플래식백이나 회상 없이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전사를 드러내야 해서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 중요했었다. 진짜 오랜만에 만난 듯이 반가워해서 둘 관계의 역사가 깊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 현상이 규남을 부를 때 아주 그리웠다는 듯이, 한편으로 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도 있어서 그 선을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선우민’(송강)이 (과거에) 두고 온 꿈이라면, 규남은 지금 꾸는 꿈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꿈인 것 같다. 현상도 원하지만 실행에 옮길 수는 없는 꿈, 그걸 규남에 투영한 게 아닐까 한다. 우리도 자기 바람이나 희망, 꿈을 다른 사람에 투영해서 보는 경우가 많지 않나. 작가, 아티스트, 음악, 만화, 친구 그리고 길을 걷는 어떤 사람에게도 나는 그렇거든. 그래서 현상이 규남을 바라보는 마음은 양가적일 거다. 부러운 한편 자기가 못하는 걸 하는 규남에게 질투도 나겠지.

‘선우민’을 과거의 꿈이라고 했는데, 선우민과 리현상의 관계성은 상당히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어떻게 관계 설정하고 접근했나.
현상은 과거에 피아니스트를 꿈꿨고, 이런 면에서 선우민은 꿈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한다. 러시아에 두고 온 꿈 혹은 (과거의) 유령 같은 존재, 한마디로 현상에게 선우민은 곧 피아노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회장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꿈을 놓아버린 스스로가 부끄럽고, 마음이 덜컹했을 것 같다. 송강 배우는 같은 회사(나무엑터스)라 행사 때 가끔 보는데, 가까이서 보나 멀리서 보나 정말 보고 있으면 들여다보고 싶은 배우다. 뭐랄까 그 나이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 어려 보이다가도 성숙해 보이기도 하고 하여튼 그렇다.

북한말은 어떻게 연습했나.
북한말 코칭 선생님께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이런 표현이 가능한지 자주 물어보며 확인했었다. 현상은 자기감정을 언어로 감춰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특히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현상이 많은 대사를 소화하기 때문에 관객에게 좀 더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말하고자 통화도 자주하고 혼자서도 연습하고 그랬다. 왜 영어 잘하고 싶을 때 핸드폰 언어를 영어로 설정해 놓는 것처럼, 말이라는 게 할수록 느니까 반복하는 게 우선이었다.

선우민이 현상에게 전화 걸었을 때, 현상의 핸드폰에 러시아어로 뭐라고 뜨는데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더라.
아, 그건 관객이 발견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영화사 측에서 말하면 안 된다고… 양해해 달라. (웃음)

피아노 연주도 하는데 혹시 직접 연주한 걸까.
그 장면이 현상의 가장 액티브한 씬이 아닌가 한다. 현상의 표정이 안 좋지 않나. 옛날 같지 않은 실력에 스스로 불만족해서 그런 거다. 연주 전체를 직접 친 건 아니고, 클라이맥스 부분 딱 5초만 집중해서 연습하여 연주했고, 이 부분을 활용했다.

이제훈 배우가 한 시상식에서 공개적인 러브콜을 보냈는데, 기분이 어떻든가. (웃음)
이종필 감독님은 말했듯이 2008~9년부터 이미 호감을 가지고 지켜봤던 분이다. 함께 작업하지는 않았지만, 작품도 인간적으로도 매력이 넘친다고 생각했다. 이제훈 배우야 뭐, 솔직히 말하면 제훈 씨를 꿈꾸며 시나리오를 쓴 적도 있는데 같이 작업하게 되니 당연히 기쁠 수밖에! 나, 제훈 씨, 감독님 모두 서로가 함께하는 첫 작업인데도 마치 두세 작품 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1회차 촬영부터 무언가 포근한 게 낯설지 않은 거다. 이미 두 분을 좋아하고 그간의 필모를 봐왔기 때문인 것 같다.

곁에서 지켜보니, 어떤 배우던가.
멀리서 지켜본 모습이나 가까이서 접한 모습, 그 매력이 똑같았다. 이게 매우 어려운 지점인데, 이번에 제일 놀라운 부분이었다. 규남이 중반부에 안경 쓰고 능청스럽고 넉살 좋게 연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 마음속은 정체가 발각 날까 봐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상태일텐데….겉모습과는 다른 감정이 엿보이는 그 내면의 질주를 보며 관객의 한 사람으로 크게 쾌감을 느꼈다.

평범한 캐릭터를 비범하게 만든다는 시선이 많은데, 뭔가 비결이라도? 모니터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인가.
그렇지 않다. 내 하드웨어를 잘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웃음) 아마도 대부분의 배우가 그렇지 않을까. 모니터링이 필요하면 하지만, 그 외는 감독님이 오케이하면 그냥 두는 편이다. 같은 맥락으로 내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대중과 업계에서 끊이지 않고 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시장(업계)에 물어봐야지! 농담이고, 자주 받는 질문인데 난 정말 그 이유를 모르겠다. (웃음) 또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작품 선택 기준인데 여기에는 여러 요소가 있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혹은 같이하는 감독이나 배우가 좋아서 등 그때그때 다르다. 때론 어느 한 장면에 꽂히면, 특히 영화의 경우는 다른 건 상관없이 하기도 한다. 최근에 한 넷플릭스 <기생수>의 경우는 이야기가 재밌고 또 연상호 감독님과의 작업이 즐거워서였다.

독립영화 씬에서 워낙 유명했고, 지금은 영화와 시리즈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필모가 하나씩 쌓여갈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드는지.
일단 연기를 좋아하고, 현장에 있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즐겁다. 사실 캐릭터에서도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웃음) 확확 잘 빠져나오는 편이다. 내게 필모는 일기 같은 거다. 영화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지만, 그 외적인 부분도 많이 남아서 그렇다. <탈주> 때 ‘군산에서 불맛 나는 짜장면을 먹었지, 그때 날씨와 분위기가 어땠어’ 이런 식으로 그 시간이 고스란히 기억으로 남는다. 제일 많이 기억나는 건 당시에 먹은 음식이다. 짬뽕, 짜장면, 한정식 특히 베이커리! 빵집 순례를 좋아한다. (웃음) 리뷰에 의지하기보다 맛집의 아우라가 풍기면 직관적으로 선택하는 편이다. 거의 먹기 위해 운동한다고 봐도 된다.

작품 연출을 준비 중이라고. 감독으로서 이제훈 배우에게 캐스팅 제안할 계획이 있는지, 이제훈 배우는 당신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시나리오 수정 중이고, 올해 안에 크랭크인 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유튜브에 올렸던 작품들의 연장이라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놀이 같은 작업이니 너무 기대하지 마시길! 선물처럼 ‘짠~’하고 나타나련다. 내가 보기보다 입이 무거워서 (웃음) 어느 정도 준비가 돼야 제훈 씨한테 제안할 것 같다. 여러 요소가 개입하는 문제라 모든 싱크가 맞을 때 같이 작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금부터 10년 후 모습을 그려본다면.
음… 나도 궁금하다. 연출과 연기를 계속하며, 10년 후에는 진짜 재미있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이름도 이미 지어 놨다. ‘충무로 깔깔깔’ 이다. 공동 진행자는 연상호 감독님이다.


사진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2024년 7월 4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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