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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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합수단장 ‘전상두’ 역을 맡았다. 캐스팅이 단번에 확정된 건 아니라고.
사실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때는 정중하게 거절했었다. 모티브가 되는 인물이 워낙 강렬한 이미지라 연기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작품을 고사했던 게 그 부담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킹메이커>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연기한 적이 있었고, 당시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건 ‘전상두’ 역의 모티브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이 영화 안에서 어떤 역할인지였다.
<행복의 나라>에선 ‘전상두’가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대본을 읽고 ‘전상두’의 이야기를 빌드업하기엔 분량적으로 적었고,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눈빛은 어떻고 또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그 캐릭터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더라.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 인물들 사이에서 기능적인 역할만 하고 빠질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거절한 건데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떠오르더라. <이태원 클라쓰>도 비슷한 사례인데 그때도 다른 스케줄과 겹쳐서 거절했는데 자꾸 이미지의 잔상이 떠올라서 결국 출연을 결심한 거다. (웃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동일 인물을 모티브로 한 <남산의 부장들> 서현우, <서울의 봄> 황정민의 연기와 비교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비교될 거라고 생각했다. 비교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그보다 <남산의 부장>, <서울의 봄>, 그리고 <행복의 나라>까지 시대를 다룬 이야기가 나오는 게 좋은 현상인 거 같다. 이런 예민하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뜻 아니겠나. 관객 입장에서도 세 편을 함께 보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대신 각 작품마다 매력과 장점이 다 다르니 그에 초점을 맞춰서 보면 좋을 거 같다. 내가 표현한 ‘전상두’는 밀실에서 술수와 편법으로 상대를 가지고 노는 듯한 뉘앙스로 야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행복의 나라>를 촬영할 때는 <서울의 봄>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영화에 더 집중해서 나만의 해석으로 풀어갈 수 있었다.
‘전상두’를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하려 했나.
‘전상두’는 욕망의 화신이지만, 그 욕심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싶지 않았다. <행복의 나라>에서는 ‘박태주’(이선균)와 ‘정인후’(조정석)가 이야기의 주가 되고 ‘전상두’는 그 둘을 잇는 가교다. 모든 배우는 자기 역할이 더 강력하길 원하지만, 나는 욕망을 절제하는 방향성을 잡았다. 실존 인물은 악인이라고 낙인 찍혀있지만 ‘전상두’는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자기 신념에 빠져서, 그것이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표현하려 했다. 실존 인물을 흉내내는 방식의 연기도 하지 않으려 했다. 참고 영상도 많이 봤지만, 인물보단 흐름에 집중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 결국 자료 참고를 포기했는데 주변에서 닮았다고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웃음)
분장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을까.
특별히 한 건 없고 머리만 밀었다. 내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다들 너무 닮았다고 하더라. (웃음) 연극을 하다 보니 이미지를 바꾸는 것에 대해 부담감은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테스트 삼아 머리를 밀어 봤는데 이미지가 잘 만들어진 것 같다. 어차피 머리를 밀어도 평소엔 모자를 쓰고 다니면 되니까 그런 부분에서 부담감은 없었다. 이를 뽑는 것은 아니지 않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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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끝나고 나와서 조정석 배우에게 ‘고생 많았다’고 전했다.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을 캐릭터다. 내게도 그간 조정석 배우는 밝고 유쾌한 캐릭터로 각인됐었다. 그런 그가 ‘정인후’라는 묵직한 인물을 맡는다고 들었을 때 고생이 만만치 않겠다 싶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기대 이상으로 멋있더라.
‘박태주’ 역을 맡은 이선균 배우의 유작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이선균 배우와 관련된 여러 마음은 충분히 잘 말씀드린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이선균이 어땠는지 봐주십사 한다. 이선균 배우의 유작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이선균이라는 배우의 연기 그 자체, 그 결들을 소개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박태주’가 참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이선균 배우의 연기가 참 좋다. 자신의 신념과 조국, 동료,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변호하겠다는 사람을 대할 때 보이는 디테일이 너무 좋았다. 이선균 배우와 동시대의 배우로서 나라면 저만큼 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공교롭게도 <행복의 나라>와 같은 시기 공개된 디즈니+ <노 웨이 아웃 : 더 룰렛>에서도 악역을 연기했다. 극중 희대의 흉악범 ‘김국호’ 역을 맡았는데.
나는 괜찮은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내 이미지를 걱정하더라. (웃음) <이태원 클라쓰>나 <비밀의 숲>에서도 악역을 연기했는데 의외로 좋은 반응이 많았다. 심지어 <비밀의 숲>에선 ‘창크나이트’라는 별명까지 얻지 않았나. (웃음) 배우라는 직업이 그렇다. 인권변호사를 하다가 범죄자를 하기도 한다. 그게 이 직업의 숙명이다. 나는 망가질 이미지도 없고, 쌓을 이미지도 없다. 주어진 것에서 존재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별로 없다. 직감적으로 선택한다.
차기작 계획은?
우선 차기작으로 <소방관>이라는 영화가 준비돼 있다. <소방관>은 소방관들의 처우 문제, 고생하시는 우리의 생명을 다루는 분들의 이야기인데 얼른 관객과 만나고 싶다. 수능 출제 이야기를 다룬 작품도 있는데 많은 이들이 수능을 직간접적으로 겪지 않았나. 많이들 공감할 거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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