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제가 칭찬에 알러지가 있는 것 같아요” 칭찬을 들으면 너무 좋으면서도 부끄럽고 민망해서 어쩔 줄 모르겠고, 양가감정이 든다는 정해인이다. 라이징과 대세를 넘어 안정기에 접어든 그이지만, 정해인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어색하다고. 자기라는 사람을 너무 포장하는 느낌이 들어, 단지 ‘배우’ 정해인이고 싶단다. 풋내기 시절 감탄에 감탄하며 봤던 <베테랑>이기에, 그 후속편에 출연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정해인을 만났다. 동공(눈빛)연기와 오묘한 미소, 도가니를 혹사한 액션을 통해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얼굴 ‘박선우’로 관객을 놀래키는 동시에, 공교롭게도 드라마 <엄마친구아들>에서는 엄친아 ‘최승효’로 설렘 로맨스를 말아주며 종횡무진 활약 중인 그이다. <베테랑2> 촬영 당시가 인생의 가장 건강한 시기였다며 웃는 정해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눈빛과 묘한 웃음으로 캐릭터를 표현했는데, 스크린에서 스스로 마주하니 무슨 느낌이 들던가.
한 기자분이 동공연기라고 표현하셨더라. 신경 써서 연기한 부분을 알아봐 주신 것 같아 기분 좋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을 때는 눈만 보여서, 그 눈을 통해 감정을 표출해야 했다. 처음에는 그런 내 모습이 약간 낯설고 이질감이 들었다. 박선우의 미소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내 나름의 방법이었다.
‘박선우’ 캐릭터를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어려웠다고 했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파악하고 접근했나.
소시오패스와 나르시시스트의 기질을 지닌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촬영 전부터 이러한 사람의 성향에 대해 찾아봤었다. 그들은 자기가 남들보다 우월하고 모든 일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여유만만하다고. 박선우의 웃음은, 이 여유로움에서 비롯된다. 이런 사람의 특성 중 하나가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어 한다는 점이다. 분노조절장애 같은 면이 있는 거지. 박선우가 급발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캐릭터를 어느 정도 체화하려면 그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그런데 박선우는 정상인의 시선으로 보면 안 되는 인물이라, 그가 움직이는 ‘목적’에 집중했었다.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이용한다고 생각했다.
초반부, 박선우가 강력범죄수사대로 차출된 후 처음으로 식사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 서도철은 박선우를 예뻐라 하고, 이때 박선우의 표정을 거울을 통해서 보여주는데, 그때도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장면의 포인트는 극 중 인물들은 박선우의 표정을 보지 못하지만, 관객은 보고 있다는 점이다. 관객에게 ‘뭔가 구린데?’ 하는 생각이 들도록 표정을 해야 했다. 너무 태연하게 하면 납작해 보이고, 그렇다고 자기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면 투머치 해 보여서, 그 적정선을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
그간 필모에서 제일 어두운 인물이 아닌가 한다. 해보니 어떻든가.
정신건강에 이롭지는 않더라. (웃음) 이런 캐릭터는 가끔 해야 할 것 같다. 평소 캐릭터와 본체를 분리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온·오프 모드가 확실한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오래 걸렸다. 촬영하는 기간이 길다 보니 박선우라는 인물이 내 삶에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낯설다’고 말씀하기도 했는데 스스로도 느끼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되도록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박선우의 생각회로가 정상인의 범주에서 많이 틀어져 있어서, 나도 모르게 상처 줄 수 있겠더라. 촬영이 끝난 직후에도 혹시 여파가 남아있을까 싶어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웠었다.
혹시, 악역도 가능하다는 어떤 자신감을 얻었을까. (웃음)
박선우는 서도철이라는 정의로운 형사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일 뿐 빌런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래야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더라. 내 모습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기보다… 극 중 보이는 박선우는 류승완 감독님이 오케이한 결과물이자 결정체이니 자부심을 가지려 한다! (웃음)
공교롭게도 <베테랑2> 와 <엄마친구아들>이 비슷한 시기에 선보이게 됐다.
<베테랑2>는 2022년 겨울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촬영했고, 이때는 <엄마친구아들>의 제안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드라마와 영화가 동시에 오픈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공교롭게 겹쳐서 신기할 뿐이다. 드라마를 보는 팬들은 조금 충격받을 것 같다. (웃음) 사실 <엄마친구아들>은 오랜만에 하는 로맨스 드라마다. 그간 < D.P. > <설강화> <커넥트> 등 좀 딥한 작품을 계속 해 왔고, 본격적으로 액션한 건 이번 <베테랑2>가 처음이다. 해보니 멜로나 로맨스 장르는 몸이 편하지만 감정을 잘 표현해야 하고, 액션은 몸이 좀 아프고 계속 긴장해야 했다. 각자의 힘듦과 어려움이 있더라. 지금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일반 관객이라면 <베테랑 2>를 보고 나서 ‘정해인이라는 배우에 관심이 가네, 다른 작품도 찾아봐 볼까’ 하고 생각한다면 제일 기쁠 것 같다.
<베테랑>이 흥행한 2015년 당시에는 완전히 신인 배우였는데 그 후속편에서 주연을 맡아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게다가 칸영화제에 초청받았으니 더더욱!
당시 경험이 거의 없는 완전한 풋내기였다. <베테랑>을 얼마나 재미있게 봤는지 N차 관람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그 후속편에 합류했으니 그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베테랑2>가 9년 만에 나와서 가능했던 것 같다. 좀 더 일찍 나왔다면 내게 기회가 안 왔겠구나 싶으면서, 앞으로 계속 열심히 하다 보면 지금 같은 기회가 또 생기겠구나 싶어 기대되기도 한다.
칸 초청은 감독님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감독님이 ‘우리 칸에 가게 됐어!’라고 전화주셨는데 당시 <엄마친구아들> 세트장에서 다들 촬영 준비중이라 막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데 덤덤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감독님께서 ‘나만 가고 싶은 거야?’ 하시는 거다. 사실은 기쁜 마음을 꾹꾹 누른 거였는데 말이다. 칸에 가서는 너무 긴장해서 안 떠는 척하느라고 일부러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을 정도였다. (웃음)
칸에 어머니가 동행해서 화제가 되었다. 비하인드 좀 들려 달라. (웃음)
배우 인생에 언제 또 칸에 가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어머니께 칸에 가게 됐다고 하니, 당신도 가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더라. 어머니가 평소에 들이대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웃음) 더 놀랐던 것 같다. 일단 같이 가자고 했는데, 다음 날 생각해 보니 다른 분들이 불편하시겠더라. 그래서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어머니께 힘들겠다고 하니, 알겠다고 납득하시더라. 그런데 그 다음날 어떤 사정인지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가면 안 되겠냐고 또 말씀하시길래 그만 설득당해 버렸다.(웃음) 황정민 선배님, 류승완 감독님, 제작사 대표님께 양해를 구하고 어머니와 동행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제일 잘한 일 같다. 뤼미에르 극장에서 상영부터 기립박수 받는 마지막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면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칸에서 영화도 같이 보셨을 텐데, 뭐라고 하시던가.
영화보고 아무 말씀 없이 우시기만 하셨다. 뤼미에르 극장에서는 상영 후 관례처럼 관객이 기립해서 박수 치는데, 그때 유일하게 앉아 계신 분이었다! (웃음) 내 뒤에 앉아 보셨는데 다리가 풀려서 못 일어나셨다고. 촬영 기간에 일주일 내내 비 맞고 귀가한 적이 있는데 영화 속 장면을 보며 네가 왜 그러고 다녔는지 이해하셨다고, 기특하고 장하다고 칭찬하셨다.
이번 액션을 보고 ‘도가니를 갈아 버리는 액션’이라고 하더라. 계단은 왜 그렇게 많이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슬라이딩은 왜 그렇게 자주 치는지! 배우들의 무릎이 걱정될 정도였다. (웃음)
과격해 보여도 정말 안전한 장치와 비법이 있다. 감독님의 노하우라고 할지, 처음 보면 약간 의구심이 들지만 정말 안전하게 촬영했다. 스턴트분들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시니까 믿고 따르면 되는데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긴 하다. 주저하면 오히려 다칠 수 있거든. 계단을 구르는 씬도 약속된 콘티 안에서 찍은 것인데, 영화 보고는 약간 뿌듯하기도 하더라. 직접 소화한 부분도 있고 스턴트분이 한 부분도 있는데 내가 점점 익숙해지니 감독님이 약간 도발하면, 질 수 없는 마음에 응하다 보니, 직접 한 부분이 원래보다 많아지긴 했었다.
격투기도 배웠는데 해보니 기술보다 중요한 게 체력이더라. 테이크를 여러 번 갈 수 있도록 기초체력을 다지는 일이 중요했다. 특히 달리기랑 심폐량을 늘리는 것에 주력했었다. <베테랑2> 촬영하던 때가 내 인생 중 가장 건강한 시기였던 것 같다! 더불어 식단도 좀 혹독하게 해서 삼겹살을 정말 먹고 싶었기도. 하여튼 본격적인 액션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걸 액션의 대가인 류승완 감독님 작품에서 했으니, 액션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황정민 배우는 당신이 국화같이 뽀송뽀송하다고 (외모) 칭찬했는데, 이참에 선배님께 칭찬 한마디 부탁한다. (웃음)
음… 선배님은 들꽃, 야생화 같은 느낌이다. 불모지에서 역경과 힘듦을 딛고 피어난, 언뜻 보면 거칠어 보이나 가까이 보면 굉장히 연약한 꽃 같다. 실제로도 굉장히 츤데레시다. 툴툴거리면서도 다 챙겨주신다. 첫 촬영이 ‘전 소장’(정만식)을 안전가옥으로 옮기던 씬이었는데 촬영 끝나고 ‘해인아, 국밥에 소주 한잔하자’고 해서 근처 24시간 하는 국밥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었다. 내가 새롭게 투입된 캐릭터라 기존 멤버들과 잘 융합하도록 먼저 손 내밀어 주신 거였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2>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서도철의 정의와 박선우의 신념 간의 대결이라고 그 의도를 밝힌 바 있다. 박선우의 신념은 무엇인가.
박선우를 연기하면서 포인트를 둔 부분은 ‘마녀사냥’이라는 개념이었다. 사이버레커를 비롯해 일반시민들이 판을 깔아주면 박선우는 ‘그럼 한 번 놀아볼게’ 하는 식이다. 중세시대 행해진 마녀사냥을 보면 억울한 피해자도 많이 생기지 않나. 그런 것처럼 가짜 해치가 등장하고 잘못된 정보로 인해 마녀몰이 당하는 사람도 생긴다. 하지만 박선우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그에게 신념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은 양심이 있고 인간의 도리를 알아서 어느 정도 선을 지키지만, 박선우는 이런 선을 한참 넘어 버린 인물이다. 욕망과 욕심이 과잉된 인물이다.
감독은 <베테랑2>에서 진실과는 상관없이 부화뇌동하고 이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와 알려진 사실 이면의 것은 보려고 하지 않는 대중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가짜뉴스와 확증 편향의 콜라보로 피해를 보는 이들이 여럿이고, 당신도 <설강화> 때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나.
감독님과 처음 미팅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감독님도 억울한 경험이 있으셨던 듯. 당시 너무 슬프고 무기력해서 동굴에 들어갔던 것 같다. 뭐라고 얘기해 봤자 왜곡되어 확대 재생산되니 침묵할 수밖에 없더라. 그러면서 내가 무심코 누른 ‘좋아요’가 모여 해치라는 괴물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 역시 알게 된 아픈 경험이다.
VIP 시사에 개인적으로 초대한 지인은 누가 있을까.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수현이! 촬영 중이라 바쁜 와중에도 와준다고 해서 너무 기쁘다. (김수현은 현재 <넉오프> 촬영 중) 또 <엄마친구아들> 식구들 중 대부분이 올 것 같다.
<베테랑2>에 쿠키가 있던데…혹시 다음 편을 염두에 둔 걸까.
칸에서 상영할 때는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보면서 깜짝 놀랐다. 감독님께서 뜻이 있다면 한걸음에 달려가겠다!
예비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추석 연휴 기간에는 매일매일, 연휴 끝난 후에는 몇 주 동안 주말마다 무대인사가 잡혀 있다. 홍보도 배우가 끝까지 책임질 부분이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힘이 닿는 데까지 하려 한다. 영화 <서울의 봄> 당시 정우성 선배님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거든. 개인적인 바람은 대중영화를 하는 배우로서 많은 분이 봐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 많이 봐주셨으면 한다. (웃음)
사진제공. FNC엔터테인먼트
2024년 9월 13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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