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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섹시에서 소심섹시로 <대도시의 사랑법> 노상현 배우
2024년 9월 30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재희’(김고은)가 결혼한다! 클로짓 게이였던 ‘흥수’(노상현)에게 재희는 대학 신입생 때 만나 13년을 동고동락한 소울메이트이자, ‘네가 너인 것은 쪽팔린 게 아니야’라고 당차게 말해준 유일한 친구.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재희와 세상과 거리감을 유지하려는 흥수의 13년 우정을 다룬 작품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미씽: 사라진 여자>(2016) <탐정: 리턴즈>(2018)를 연출한 이언희 감독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이 감독이 1년여 간 남자 주인공 ‘흥수’를 찾던 중 낙점된 이는, <파친코> 시리즈에서 ‘선자’(김민하)의 남편이자 목사인 ‘이삭’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병약섹시’로 불린 노상현이다. 헌신과 희생, 인류애적인 사랑을 보였던 이삭에서 대도시의 방황하는 청춘과 사랑의 일면을 지닌 ‘흥수’로, 180도 연기 변신한 노상현을 만났다. 인생에 대해 고민이 많고 그 고민을 즐기는 것이 자기의 ‘기본값’ 같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대도시의 사랑법>이 스크린 데뷔작인데 작품의 어느 부분에 끌렸나.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거슬림이 없었다. 솔직하고 현실적인 대사가 재미있더라. 또 유머가 많은 와중에 메시지는 분명해서 참여하고 싶었다.

이언희 감독은 ‘흥수’ 역을 물색하던 중 <파친코1>을 보고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하더라. 만나서는 바로 ‘같이 하자’고 했다던데. (웃음) 성소수자 역할에 주저함은 없었나.
캐릭터가 지닌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신경이 전혀 쓰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또 애정씬 등에 있어서 이성 배우가 상대인 것과 차이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잘 모르는 부분이라 인물을 이해하고자 좀 더 노력했던 것 같다. 사실 초반부에 나오는 첫 동성 애정씬도 각본보다 시퀀스가 길어진 부분이 있다. 각본에서는 짧게 끝나는데 좀 더 길게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먼저 제안했었다. 어떤 시선을 의식해서 캐릭터의 개성을 흐지부지 넘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비하면서 성소수자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그런 경험이 연기에 많이 도움됐다고.
누구에게나 말하기 힘든 지점이 있지 않나.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비밀 또 외부시선 때문에 밝히지 못하는 사정 등 그런 부류의 힘듦이 아닐까 막연히 유추했었다. 그런데 직접 만나보니 비슷한 맥락이지만, 그 정도가 훨씬 깊었다. 그들이 느끼는 고독함, 답답함, 수치스러움 등 그 감정이 다양하고 억눌린 강도가 생각보다 훨씬 큰 것 같더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볍게 접근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다시금 생각했었다.

9월 초에 열린 토론토영화제에 성황리에 다녀왔고, 국내에서 언론 시사회도 가졌다. 이제 개봉만을 앞두고 있는데 스크린으로, 그러니까 큰 화면에 담긴 자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던가...(웃음)
포스터가 크게 빌딩에 걸려 있는 걸 보며 확실히 새롭고 신기하긴 했다. 촬영하면서 모니터링을 많이 했고 또 이전에 시사를 여러 번 해서 스크린 속 내 모습이 낯설지는 않았다. 다만 음악이 입혀지고 후반작업까지 끝낸 완성본을 보니 영상 자체가 전체적으로 풍성해졌더라.

콘텐츠에서 게이를 다룬 모습은 상당히 전형적인 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여성적인 행동을 하곤 하는데,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렇게 묘사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이언희 감독과 김나들 작가가 사전 조사를 많이 한 것 같더라. 물론 원작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사전 정보가 별로 없었고, 작업하면서 이태원의 클럽 문화나 사용하는 단어(은어) 같은 것 등을 새로 알게 된 부분이 많다. 감독님이 조사와 인터뷰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다. 감독님이 원체 섬세하고 굉장히 재미있으시다. 촬영 전에는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들어가서는 자유롭게 놀 수 있게 풀어놔 주셨다고 할지, 마음껏 여러 시도를 할 수 있게 판을 깔아 주셨다. 물론 원하는 그림이나 방향성, 혹은 씬에 따라 다른 버전이 필요하면 요청하셨지만 말이다.

‘재희’ 역의 김고은 배우와 얼굴합부터 해서 케미가 너무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찐친의 기운이 스크린을 뚫고 나올 기세다. (웃음) 혹시 기억에 남거나 감탄한 순간이 있다면.
잘할 거로 생각했지만, 너무 잘해서 놀라웠다. 호흡이 잘 맞은 씬 하면 바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처음 촬영한 장면인데 뭐냐면, 동거를 시작한 재희와 흥수가 전날에 과음하고 라면 끓여 먹는 씬이다. 다시는 술을 안 먹겠다고 다짐하던 둘이 동시에 라면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넣는 순간,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바로 냉장고에 가서 소주를 꺼내 오는 장면이다. 리허설하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서 눈빛이 오갔었다. 서로 ‘너두?’ 하면서 바라보고 웃었는데, 이런 게 호흡이구나 싶었다. 이번에 잘 맞아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같이 누아르 장르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재희는 자기 감정에 솔직한 반면, 흥수는 자기 감정을 마주하는 걸 어색해하고 세상과 거리를 두려는 면이 있다. 당신은 두 사람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면에 있어서는 흥수 쪽이다. 그는 유일하게 자기를 인정하는 친구인 재희에게만 자기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표현에 있어 절제하는 면이 있다. 재희처럼 항상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은 아니다.

재희가 찐친이라면, ‘수호’(정휘)는 연인인데 서로 호흡은 어땠나.
정휘 배우는 성소수자 역할을 해 본 적이 있고, 촬영할 당시에도 뮤지컬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대화하면서 많은 힘을 받았고, 서로 자연스럽게 접근했던 것 같다. 연기 팁을 얻은 게 있다면…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키스할 때 아무렇지 않아 해서 덕분에 나도 자연스럽게 흡수됐던 것 같다. (웃음)

수호에게 흥수는 한마디로 ‘나쁜남자’라 하겠다. 나중에 자기 감정을 마주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다. (웃음) 흥수의 감정은 뭐였을까.
흥수라는 인물 자체가 억눌린 부분이 있다. 사랑은 질색이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받고 싶어 하는 친구다. 이런 마음이 방어기제처럼 반대로 발현됐다고 생각했다. 자기 진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결국 다가오는 상대에게 까칠한 언행을 하거나 공격적으로 되곤 하는 거지. 그러다 뒤늦게 후회하고 말이다.

엔딩 무렵, 재희의 결혼식에서 흥수가 그룹 미쓰에이의 ‘배드걸, 굿걸’(2012) 노래를 부르며 댄싱을 선보이는데 깜짝 놀랐다. 외국에서 대학교 다녔는데, 이 노래가 나온 시절의 한국문화에 익숙한지. 또 원곡자인 수지 씨 반응이 궁금하다. (노상현과 수지는 넷플릭스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에 함께 출연)
09학번이고 보스톤 지역에서 대학교 다녔었다. 한국인은 어디 가나 뭉치기 때문에 (웃음) 한인 친구가 많았고 또 한국이 그리우니 우리끼리 뭉쳐서 한국 술집을 찾아다니곤 했었다. 당시 소주가 마시고 싶으면 ‘명동’이란 살짝 촌스러운 이름의 술집에 가기도 했고, 그러다가 근처에 있는 진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불렀었다. 그때 몇몇 여자동기들이 ‘배드걸, 굿걸’ 노래를 불렀을지도. 하지만 먼 훗날 내가 직접 부르고 춤까지 출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흥이 있지만, 잘 추지는 못해서 레슨을 다섯 번 정도 받았었다. 재희에 대한 마음을 담아 틀리지 않고 열심히 추는 것이 목표였다. 수지 씨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잘 봤다고 하는데, 하필이면 원곡자와 만나서 굉장히 민망했다.

경제학 전공에서 모델로, 모델에서 배우로 그 길을 가고 있다. 연기에 원래 뜻이 있던 건가.
원래부터 연기에 흥미가 있었고 도전하고 싶었는데,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대학 진학 후였다. 대학교에 가니 그제야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보이더라. 군대 가기 위해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모델일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연기 준비도 같이했었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으셨나. 힘든 길이지 않나.
처음에는 ‘네가 하고 싶으면 할 수도 있지’라는 반응이었는데, 나중에 부모님께 이야기 들으니 ‘하다 말겠지’라고 생각하셨다더라.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하니 별로 좋아하시는 않으셨다. ‘굳이, 네가 진심이라 하니, 좋으면 해야지’ 하며 서포트해 줬지만 ‘굳이’를 강조하셨다! (웃음)

연기의 어느 면이 좋은가.
많은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고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도 많다.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인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즐겨했던 것 같다. 세상을 알아가고 싶고, 나를 알아가고 싶다고 할지. 내게 세상의 많은 정보가 들어오는데 너무 많아 과부하 돼 정리가 안되는 듯한 혼란스러운 시기도 있었다. 이런 점이 내 성격적인 기본값이고,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사람은 왜 태어나서 혼란과 아픔을 겪으며 사는지, 혹은 인간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생각하다가 동물과 우주까지 확장되기도 하고. (웃음) 질문과 의문이 많고 삶과 인생을 알아가고 싶은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이런 호기심이 캐릭터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데 도움되는 것 같다.

얼마 전 김고은 배우와 동반 출연한 유튜브 채널 ‘살롱드립’에서 MBTI에 관심 많다고 한 이유를 알겠다! (웃음) 당신은 INTP(아이디어 뱅크형)라고 밝혔는데 흥수와 재희의 유형은 무엇일 것 같나.
음… 흥수는 내향(I), 직관(N), 그리고 소설을 쓰니 감정(F), 판단(J)과 인식(P)은 반반 정도인 INFP(잔다르크형), 재희는 인식(P)이 90%인 ENFP(스파크형)일 것 같다.(웃음)

Apple 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선자’(김민하)의 남편이자 목사인 ‘이삭’ 역을 맡아 헌신과 희생의 사랑을 보여주지 않나.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일 것 같은데.
<파친코1> 이후에 삶 자체가 달라진 것 같다, 마치 그 후 시간은 따로 흐른다고 할지. 시즌1 촬영 후 지금까지 거의 쉼 없이 촬영해서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힘든 점도 있지만, 이제는 이 생활에 익숙해진 듯한 느낌이다. 지금, 이 삶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다. <파친코> 작품 자체로는 너무 큰 의미이고 소중한 추억이다. 시즌2 마지막 촬영이 ‘선자’와 함께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지금도 자주 떠오르고 한다.

시즌2에서 내 분량을 5일 동안, 이삭이 집에 돌아와서 이별하기까지 시간 순서대로 찍었었다. 선자와의 마지막 장면이 내가 <파친코>와 작별하는 순간이기도 했어서 그날은 모든 걸 떠나 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연기했다기보다 실제 마음을 표현했던 것 같다. 오전에 3~4시간 촬영하는데 감정의 강도가 매 테이크 같아서 덕분에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테이크마다 동일한 정도의 감정이 나오기 쉽지 않은데,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언급한 이삭의 마지막 장면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진 시청자가 많을 거다. 나 역시 그랬고. 이삭의 ‘병악미’를 보이기 위해 감량을 많이 했겠다.
병약미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고, 많이 노력했었다. (웃음) 병약하니 일단 말라야 했고, 시즌1 때부터 시즌2에 출연할 걸 인지하고 있던 터라, 근육이 생기지 않도록 약 1년간 운동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근육이 있는 것도 빼 버려야 했거든. 시즌2 때는 체지방을 빼려고 촬영 직전 며칠은 원숭이 마냥 바나나만 먹었었다. 제일 말랐을 때가 처음 모델 시작할 무렵으로 나트륨과 설탕을 다 끊고 관리했을 때인데 당시 68kg였었다. <파친코2> 때는 66kg까지 감량했다.

덕분에 <파친코>로 ‘병약섹시’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이번 흥수는 180도 다른 모습인데, 이번에는 또 어떤 ‘섹시’를 보여줄까. (웃음)
별명을 붙이는 분들이 정말 창의적이라고 매번 느낀다. 최대한 내 안에서 캐릭터의 면면을 찾으려는 편이다. 캐릭터를 구현할 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아직은 내 역량 이상이지 않나 싶다. 굳이 ‘섹시’를 붙여야 한다면, 이번 흥수는 병약하지는 않으니 ‘소심섹시’? 흥수가 소심한 면이 많다.

요즘 대세 배우 아닌가. (웃음) 많은 팬이 예전에 출연한 예능 <도포자락 휘날리며>(2022) 등을 비롯해 전작을 파묘한다고 하더라. 같이 출연한 주우재, 김종국 등의 유튜브 채널에 나와 작품을 홍보했다고.
대세라니 부끄럽다. 두 분 모두 츤데레 형들이다. 살갑게 표현하지는 않아도 따뜻한 마음을 지니셨다. 당시 같이 여행하며 동고동락해서 그런지 전우애 같은 게 있다.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어도 만나면 어딘가 친근감이 느껴진다. 형들이나 나나 서로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서, 이번 유튜브 출연을 핑계로 오랜만에 얼굴 봤다. 만약 홍보가 목적이었다면, (내 성격상) 채널의 주 시청층이 어떻게 되는지 이런 것들을 분석하고 갔을 텐데 (웃음) 그냥 얼굴 보고 놀러간다는 생각으로 나갔다.

가벼운 질문이다. 만약 팬미팅에서 춤과 노래 중 하나를 선보여야 한다면.(웃음) 이번 ‘배드걸, 굿걸’ 퍼포먼스를 보면서 문득 궁금하더라.
어려운 질문인데… 꼭 하나만 해야 하는 건가? (웃음) 두 가지 다 시키겠습니다! (옆에 있던 소속사 입장)



사진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4년 9월 30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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