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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양면성에 집중” <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
보통의 가족 | 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인간의 양면성과 도덕적 딜레마를 심도 깊게 그려낸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가 네덜란드, 이탈리아,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영화화됐다. 다름아닌 ‘멜로 거장’ 허진호 감독에 의해서다.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호우시절>(2009) 등 특히 로맨스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그이지만 최근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9), 넷플릭스 시리즈 <인간실격>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보통의 가족>을 통해 장르의 지평을 또 한 번 넓힌 허진호 감독과 만났다.

토론토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아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처음 토론토에 도착했을 땐 시차도 안 맞고 정신이 없었다. (웃음) 경황이 없는 와중에 박찬욱 감독에게서 현지 반응이 좋더라고 문자가 왔더라. 실제로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반응이 꽤 좋았다. 코미디 영화가 아닌데 많이들 웃어 주셨다. 이 영화의 장르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선 접근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 기대 이상으로 좋아해주셔서 감사했다. 우리 영화를 초청해준 토론토영화제 지오반 프로그래머가 이탈리아 버전보다 재밌다고 넌지시 말해주더라. (웃음) 그 말을 듣고 자신감을 얻었다.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연출을 맡게 된 계기가 있을까.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재밌게는 읽었지만 나에게 왜 이 대본을 줬는지 나 역시도 이해가 안 가더라. (웃음) 그 뒤에 원작 소설도 읽고 영화화된 작품들도 전부 찾아 봤지만 계속 망설여졌다. 내가 해왔던 이야기와 결이 다르기도 하고, 이미 영화화가 된 작품을 다시 영화로 만든다는 건 감독에서 큰 부담이지 않나. 하지만 내가 지금껏 의도적으로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던 사회적 문제와 인간의 양면성을 영화라는 방식을 통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도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 내 스스로에게 충분히 던질 수 있을 만한 질문이었다.

제목은 왜 <보통의 가족>으로 지었나.
원작 소설 제목인 ‘더 디너’를 그대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한글로 번역하자니 ‘저녁 식사’인데 좀 어색하지 않나. (웃음) 이들이 처한 상황이나 그 안에서의 행태가 일반적이지는 않으니까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만한 <보통의 가족>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릴 거 같았다.

배우들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된 건가.
제일 먼저 떠올렸던 건 설경구 배우였다. <박하사탕>(2000)이 개봉하고 난 뒤 우연히 일본의 한 음식점에서 마주쳤다. 둘 다 신인이었던 시절인데 언젠가는 같이 작업해보자고 말은 했지만,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보통의 가족>으로 드디어 설경구 배우와 작품으로 연을 맺게 됐다. 요즘 정말 잘나가는 배우인데 오래된 의리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웃음)

김희애 배우와의 인연도 꽤 예전부터다. 본격적으로 연출을 시작하기 전부터 좋아했던 스타였고, <봄날은 간다>가 끝나고 나서 밥 한끼 같이 하면서 안면을 텄다.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연경’이 가진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을 만한 배우로 가장 먼저 생각이 나더라. 이번에 작업하면서 김희애 배우의 새로운 면모를 많이 발견했다. (웃음) 작중 ‘연경’이 ‘재규’에게 애교를 부리는 장면들은 내가 의도한 게 아니라 김희애 배우의 아이디어였다.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김희애 배우의 그런 애드립 덕분에 ‘재규’와 ‘연경’ 부부의 끈끈한 유대감이 더 잘 드러났던 거 같다.


장동건, 수현과의 작업은 어땠나.
장동건 배우와는 <위험한 관계>(2012)를 하면서 중국에서 오랫동안 가깝게 있었다. ‘재규’라는 인물이 겉보기에는 선해 보였으면 했다. 장동건 배우가 굉장히 강한 캐릭터 연기를 많이 했는데 이런 연기는 처음이라더라. ‘재규’가 어떤 사람일까 고민하길래 그냥 평소 동건 씨 하던 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수현 배우는 할리우드 영화들을 통해 알게 됐다. 실제로 만났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맑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조금 놀랐다. (웃음) 수현 배우가 한국영화는 처음이기도 하고 네 배우 중 연차가 제일 적은 터라 연기할 때 어떨까 궁금했는데, 전혀 주눅들지 않고 특유의 밝고 당찬 성격으로 연기하더라. 사실 ‘지수’라는 인물이 속물적이고 부정적으로 보일 수가 있는 캐릭터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네 사람 중 가장 정상적인 인물이지 않나. 그런 부분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준 거 같다. 설경구 배우는 수현 배우와 김희애 배우가 한 컷에 잡힐 때가 가장 재밌다고 하더라. (웃음)

배우들에게 디테일한 지시를 하기보다는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그 순간, 그 공간, 그리고 그 공기에서만 나올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사실 명확한 그림을 갖고 촬영에 들어가지 않는데 연출자인 나도, 그리고 배우 본인도 의도치 않았던 생생함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 좋은 거 같다. 그런 생동감과 현장성을 좋아하는 탓에 예전엔 촬영이 굉장히 오래 걸렸는데 지금은 아니다. (웃음) 예전에야 현장 로케이션으로 촬영하면서 날씨나 조도 같은 변수가 많았지만 요즘은 대부분 스튜디오, 세트장 촬영이기 때문에 이전에 비하면 상당히 빠르게 촬영을 끝마친다. (웃음)

‘재완’과 ‘재규’는 자식의 처우에 대한 선택을 계속해서 번복한다. 어떤 내적 변화가 있었던 걸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재완’은 돈과 성공을 좇는 실리적인 사람이고, 그런 ‘재완’의 선택 역시 실리에 따른 거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어쩌면?딸?‘혜윤’(홍예지)이?자기가 설정한 어떠한 선을 넘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재규’가 아들이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해도 양심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처럼 ‘재완’에게도 자신만의 원칙이 있을 거다. 그런데 의뢰인들을 대하는 ‘재규’의 모습을 보면, 그의 선이 양심이나 정의와 관련된 거 같지는 않다. 차라리 아이들이 자수할 때 ‘재완’이 얻는 게 더 많아서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반대로 ‘재규’ 같은 경우엔 처음부터 아들을 신고할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연경’(김희애)도 ‘재규’에게 ‘당신은 신고 못할 거다’라고 하지 않나. 겉으로는 마냥 선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선악이 공존할 거라고 봤다. 이들 형제의 입체적인 모습을 통해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오는 10월에는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시청자를 찾는다. <보통의 가족>과는 180도 다른 결의 멜로 드라마다.
영화 아카데미 40주년 기념으로 나를 포함해 4명의 감독이(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감독)?연출을 맡았다. 최근엔 다양한 장르 연출에 도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하는 정통 멜로라 새롭더라. (웃음)


사진제공_하이브미디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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