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훈련량이 비교가 안 될 정도예요.” 국내에서 유려한 검술 액션으로 손꼽히는 강동원이 밝히는 멋짐의 비결이다. 영화 <형사>와 <군도: 민란의 시대> 때 다른 배우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훈련을 했다고 자처하는, 자칫 잘난 척으로 보일 수 있는 발언에도 세상 담백하기만 하다. “세계적인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전세계 진짜 재능있는 사람들과 작업해 보고 싶네요. 평소 존경하고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당연하고요.” 욕망하는 것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처음으로 도전한 OTT 시리즈인 넷플릭스 영화 <전,란>에서 몸종 ‘천영’역으로 분해 <군도> 이후 10년 만에 다시 검을 잡은 강동원을 만났다. 스스로 미니멀하고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다는 강동원인데, 물처럼 평온해 보이는 얼굴 이면에는 뜨거운 욕망의 한 조각이 읽힌다.
<전,란>에서 양반집 자제가 아닌 몸종 캐릭터를 맡았다고 해서 놀랐던 사람이 적지 않다.(웃음) 실제로 부유한 집안 출신 이미지가 강해서인가 싶기도.
백그라운드 자체가 상류층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밝혔음에도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돌다니! 늘 말하지만, 18평 아파트에서 연탄보일러 때고 살았다. (웃음) 그간 노비까지는 아니라도, 사실 노비 캐릭터가 많지 않다, 형편이 어려운 캐릭터는 자주 해봤다. 노비는 처음이지만, 성격상 양반이 맞지 않아서 오히려 편하게 연기했었다.
<전,란>의 어느 면에 끌렸는지.
여느 영화 시나리오와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각 인물의 스토리가 보다 더 깊이 들어있었다. 특히 선조 관련 부분이 그랬고, 이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 액션도 액션이지만, 그 안에 감정이 담긴 것이 좋았다. ‘종려’(박정민)와 천영의 계급을 초월한 우정과 그 안에 담긴 계급 의식도 흥미로웠다.
박찬욱 감독이 각본가이자, 제작자인 점도 모티베이션이 됐을까.
박찬욱 감독님이 글을 쓰셨고, 그 글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영향을 받았다. 또 연출을 맡은 김상만 감독님에 관해 레퍼런스가 없어서 잘 몰랐는데 박 감독님이 ‘천재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더라. 박 감독님이 천재라고 하면 정말 천재시겠다는 생각으로 만났는데 과연 번뜩임이 느껴졌었다. 말이 아닌 이미지, 즉 시각적인 묘사가 뛰어난 분이더라. 그런데 박 감독님은 전체 제작 기간중 줌 미팅 포함해서 세 번인가밖에 못 뵈어, 아쉬웠다. 촬영장에 거의 안 오셨다. (웃음)
만족도는 어떤가.
액션도 그 안에 담긴 감정도 잘 나온 것 같다. 액션은 사실 동작이나 비주얼보다 그 감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외적으로 특별히 준비한 건 머리를 풀어헤치는 정도의 분장이었다. 반면 감정은 쏟아내고자 했다. 평소 쏟아 내는 연기를 선호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과할 정도로 해보자 했는데, 그럼에도 크게 과해 보이지 않는 것 같더라. (웃음) 워낙 미니멀한 스타일이라 그런 것 같다.
담담하다고 생각했는데, 크게 쏟아낸 거였다니! (웃음) 실제 성격은 어떤가.
성격도 비슷한 게 감정표현을 크게 하지 않는 편이다. 레이어를 쌓아두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너무 1차원적인 표현 연기는, 그것도 때때로 필요하겠지만,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캐릭터와 작품의 성격에 맞춰서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전,란>을 접하고, 바로 눈에 들어온 부분이 천영-종려 간의 퀴어코드와 선조 등을 현실 정치에 빗대어 묘사한 정치적인 영화라는 인상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퀴어코드는 있지 않나 생각했었고, 그래서 오히려 재미있었다. 정민 씨와 둘 사이의 관계에 관해 따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정민씨는 나보다 그 감정을 더 뜨겁게 느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나는 그보다는 좀 더 차갑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 뜨거움을 받아 주면 되는 편이었다. (웃음) 정치적인 요소는, 이 영화가 기획된 시기가 지금보다 훨씬 오래전이라, 언급한 것 같이 현실을 빗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형제> (2010) <검사외전> (2015) <검은 사제들>(2015) 등등 브로맨스가 많았는데 남성 파트너를 선호하는 편인가.
내 영화에 브로맨스가 유난히 많은 것이 아니라, 대체로 남자가 주축이 되는 영화가 많다. 남녀가 어우러지는 대본이 그렇게 흔치 않고, 남자들끼리 나오는 영화를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지도 않는다. (웃음)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조윤’은 양반임에도 서자라는 신분적 제약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번 천영은 심지어 양인에서 천민으로 전락한 인물인데 공통점이 있을까.
굳이 따지자면 신분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 그렇지만 신분이 달라도 너무 다르고 그들이 지닌 결핍도 너무나 다른 차원의 결핍이다. 조윤은 잘 사는 아이가 더 잘살고자 악을 부리는 것이라면, 천영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가 그저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니까. 해보니 둘 다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악한 짓도 재미있고 또 정의로운 일도 재미있지만, 일상에서는 착하게 살아야 하니까, 영화에서는 나쁜 일을 하는 편이 조금 더 재미있기는 하더라. (웃음)
검술액션의 일인자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웃음) 다른 액션보다 특히 애호하는 편인가.
검술액션을 특별히 선호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형사>(2005), <군도: 민란의 시대> 이후 이번이 세 번째인데 사실, 재작년쯤 검술 액션 영화를 기획하고 있었다. 올해 촬영하려고 했지만, 여건상 미루어졌는데, 대략 10년 주기로 찍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다.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런데 칼을 들면 멋지긴 하고 로망도 있긴 하다. 하나는 양복 입고 긴 장검을 쓰는 영화 또 하나는 판타지 사극 두 작품을 기획 중이었다.
기획한다는 건 직접 제작까지 염두에 두는 걸까. 또 검술 액션을 잘 하는 비결이 있다면.
기획, 개발, 제작, 출연 그리고 시놉시스까지는 직접 할 것 같다. 검술액션 비결은 다른 배우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훈련량이 많다는 것이다. <군도> 때는 5개월 동안 매일 천 번씩 칼을 휘두르고 촬영에 들어갔고, <형사> 때는 주 6회 매일 10시간씩 연습했었다.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연습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겐지’ 역의 (정) 성일 형이 은근히 칼을 잘 써서, 이번에 연습을 많이 했나 보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영화 <쌍화점>(2008) 때 합숙하면서 훈련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
예전에 비해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던가. 많은 배우들이 호소하는 부분인데…(웃음)
이번에는 여유 있게 촬영해서 크게 힘들지 않았다. 약 6개월 동안 80여 회를 찍어서 시간적으로 꽤 여유로웠다. 다만 이전보다 점프가 낮아졌다는 느낌은 받았다. 천영의 검술 특성상 위아래의 수직 움직임이 많은데 확실히 예전만큼은 안 되더라. 옛날에는 진짜 높게 잘 뛰었는데 말이지. (웃음)
마지막 천영?종려-겐신의 검술 액션 시퀀스가 <전,란>의 하이라이트 씬이다. 짙은 안개 속에서 진행되는데, 관련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다. 좀 풀어 놓는다면.
안개가 너무 짙어서, 그러니까 숨쉬기 힘들 정도로 스모그를 깔아 놨었다. 500여 평 세트장의 모래 바닥 위에 안개를 너무 깔아서 한 바퀴 돌고 나면 모니터가 어느 쪽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컷’ 하면 서로 모니터가 어디있지 할 정도였으니. 다행히 난 부상이 없었지만, 성일 형은 정민 씨 칼에 두 동강 날 뻔! 농담이고, 정민 씨 칼에 힘이 많이 들어갔지만, 성일이 형이 갑옷을 입고 있어서 괜찮았다. 평소 대역과 내 움직임이 다르고, 액션에 감정을 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웬만하면 직접 소화하는 편이긴 한데, 이번에는 <군도> 때보다는 대역을 많이 썼다. 그때는 99% 정도 직접 했다면 이번에는 95% 정도 소화했다.
‘범동’ 역의 김신록 배우와는 <설계자>(2022)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많이 친해졌다고.
이젠 말을 놓을 정도로 친해졌다. 서울에서 시사회 후 뒷풀이 자리에서 신록 씨가 ‘동원 씨 이제 말 놓을 때 되지 않았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동갑이고 친구의 친구라서… 그의 연기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준비도 진짜 많이 해오는 친구다.
넷플릭스 작품은 처음인데, 차이점을 느꼈는지.
창작자에 대한 존중이라고 할지, 자유도가 큰 것 같다. 당연히 흥행을 염두에 두고 있겠지만, (겉으로는) 크게 얽매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만약 극장용 영화였다면 19금으로 못 만들었을 거다. 손익분기점을 맞춰야 하니 아마도 15세로 가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전,란>은 처음부터 19금으로 가는 전략으로 시작했던 영화였다. 그 이유는 여럿이었지만, 당시 참혹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지금 정도 수위가 필요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다. 넷플릭스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점에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다.
넷플릭스 영화, 그러니까 OTT 용 영화를 영화제에서 허용할지 안 할지는 이미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6) 때 불거졌고 일단락된 문제 아닌가 싶다. 그 논란이 다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솔직히 놀라왔다. <옥자> 때도 그랬지만,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고 여러 견해를 접하게 된 것 같다. 지금은 극장용이든 OTT 용이든 그 경계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감사할 시기가 아닌가 한다.
글로벌 반응은 찾아보고 있나.
일일이 다 찾아보지는 못했는데, 해외 반응을 다 정리해서 올려주는 채널이 있어서 몇 군데 보기는 했다. 그런데 너무 좋게만 이야기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이게 정확한 반응인가 싶기도 하다. (웃음) 그래도 시청시간 같은 여러 지표를 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좀비물도 아니고 게다가 한국 사극인데 이 정도 반응이면 매우 고마운 일이다. 액션 영화라 접근성이 용이하고,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등을 통해 한국 사극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인 것 같다. 특히 중동 지역은 한국 사극이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이전 인터뷰에서 해외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는 맥락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혹시 이번 <전,란>이 그 발판이 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나도 궁금한 부분이다. 누군가 좋게 보고 콜이 올지 안 올지 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없다. 넷플릭스로 전세계 동시 공개되면 좋은 게 외국 친구들이 실시간으로 잘 봤다고 연락이 온다는 점이다.
<전,란>을 본 시청자의 대부분이 극장에서 봐야 그 진가가 더 드러날 영화라는 평가였다. 아쉬움은 없는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전,란>은 콘티도 그렇고 촬영 자체도 대형 스크린을 염두에 두고 만든다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하다 보니 차이점은 있더라. 뭐냐면 촬영 초반에 클로즈업을 많이 찍어서 한 2주쯤 지난 후 감독님께 ‘우리 클로즈업 너무 많이 찍는 것 아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감독님 말씀이 넷플릭스 영화라서 좀 더 클로즈업이 많다고 하길래, 그때서야 ‘아’ 하고 (극장용이 아니라는 걸) 환기한 기억이 있다.
다소 뜬금없지만, 작품 선택 기준은.
대본이 재미있으면 하는 편이지만, 조금의 신선함은 있어야 한다. 대본의 완성도도 중요하다. 기승전결이 짜여 있고 클라이맥스가 얼마나 좋은지도 주요하게 살피는 부분이다. 이번 <전,란>은 보통 영화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구도인 게 이렇게 주요 캐릭터를 다 살리기가 쉽지 않은데 그걸 잘 해내서 좋았다. 그만큼 기본적으로 구도가 잘 잡혀 있는지 또한 나에겐 중요하다.
영화는 생물 같다는 말처럼, 흥행은 섣불리 예측하지도 예단하기도 힘든 난제라 하겠다. 지금까지 흥행에 있어 아쉬움이 남는 혹은 납득되지 않은 결과물이 있을까.
영화가 잘못 나오면 어쩔 수 없지만, 영화는 괜찮은데 흥행이 잘 안되면 아쉬움이 커지는 것 어쩔 수 없다. 좀 더 많은 분들이 보면 좋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거지. 개인적으로 이명세 감독님의 < M >(2007), 엄태화 감독님의 <가려진 시간>(2015)이 그랬던 것 같다. 상업영화든 예술영화든 관객이 좋은 영화를 많이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늘 작업에 임하고 있다. <전,란>은 액션만이 아닌 그 안에 깊은 이야기가 녹아 있는 매우 상업적인 영화라고 생각하며 접근했었다.
배우로서 욕심이 있다면. 또 같이 함께하고 싶은 감독이 있다면.
내가 욕구가 있다면…. 진짜 배우로서 세계적인 배우가 되고 싶고, 그래서 전세계의 진짜 재능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 그러면 신분 상승이 되려나. (웃음) 박찬욱, 봉준호 감독님과 꼭 한번 함께하고 싶다. 평소 작품을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기 때문이다.
차기작인 드라마 <북극성>이 디즈니+ 공개가 확정됐다. 촬영은 다 마친 건가.
지금 촬영 중이다. 예전에는 드라마는 준비할 시간이 많이 없어서 선호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쪽대본이라, 다음 장면이 뭔지 모르고 들어가야 할 때도 있었거든. 예를 들면 회사에 다니는데 내일 해고될지 모르고 열심히 다니는 것과 같다고 할지. (웃음) 캐릭터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요즘에는 드라마도 사전 제작이라 촬영 환경에 별 차이가 없어서 드라마와 영화를 굳이 구분해서 고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4년 11월 5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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