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티모시 샬라메나 양조위가 와도 비교됐을 거예요.” <지옥2>에서 정진수 역으로 글로벌 시청자를 찾은 김성철의 농담 같은 진담이다. 배우가 교체될 경우, 그 누구든 이전 배우와 비교되는 건 당연지사. 덕분에 오히려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는 자신감 넘치는 김성철이다. 그 자신감의 원천을 묻자, “근자감!”이라고 가볍게 답하면서도 다시금 진지한 자세로 말한다. 일차는 흥미로운 각본이요 이차는 감독의 사랑과 지지가 클수록 배우는 더 잘하고 확신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결국 연상호 감독 덕분이라는 김성철이다. <지옥2>는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 같다는 김성철을 만났다. 시연 후 부활한 정진수는 해체된 인물이라는, 그 공허한 눈빛이 정진수의 본질이자 그 모습이 내내 각인되길 바랐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해당 인터뷰는 <지옥2>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2> 공개 소감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반응이 뜨거웠다고.
1~3부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고 나머지는 집에서 봤는데 큰 스크린에서 못 본 점이 아쉬웠다. 앞부분에서 ‘정진수’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등장했다면, 중반부로 가면서는 정진수가 하고자 하는 일과 이 시리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각기 캐릭터의 역할과 비중의 분배가 잘 이루어졌더라. 국내외 성적이 좋다고 하니 다행이고 기분 좋다.
크리처 장르적 재미는 물론이고, 지옥 세계관을 통해 여러 함의를 담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나 싶다. 결국 지옥은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나.
인간성에 대해 다루는 것 같다. 누군가 이용당하고 이용하는 세상이 결국 지옥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천사가 죽음의 고지를 내린다는 것 역시 우리가 아는 천사의 본질과 역설되는 설정인데, 이런 부분에서 지옥은 그 누구에게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과 사의 끝에서 그 누구도 어디로 갈지 모르니, 현생에 충실하자는 메시지로 생각했다.
‘정진수’ 캐릭터는 그대로 가되, 배우가 변경됐다. 그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 같다.
비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지옥2>가 오픈되는 날부터 한 달 정도는 핸드폰을 끄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연상호 감독님이 반응을 전해주셔서 강제로 듣고 있다. 리뷰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필터링된 반응이라 그런지 나쁘지 않더라. (웃음) 그런데 내 자리에 티모시 샬라메 혹은 양조위가 와도(웃음) 비교당했을 것이다.
비교당할 걸 알면서도 도전할 만큼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나 보다. 특히 어느 면에 끌렸는지.
너무 매력적이라 살면서 이런 캐릭터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웃음) ‘지옥’ 이라는 세계관 속에서 정진수는 특별한 인물인데, 그를 단어로 표현한다면 비범함이 아닐까 한다. 그의 비범함을 말투, 외모, 행동으로 어떻게 드러낼지 고민하다가, 정진수가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취하는 액션에 포커싱했었다. ‘나는 정진수야, 내 말 들어’ 이런 식의 절대자 같은 모습 말이다. 이런 자신감은 또 다른 부활자인 ‘박정자’(김신록)가 정진수를 향햐 ‘넌 사실 겁쟁이였을 뿐’이라는 말과 정반대의 표현이지만 그 맥락은 같다고 생각한다. 정진수는 구원자나 혹은 종교적 지도자가 아니라 본인이 느끼는 공포와 혼란을 사람들에게 전가하고 싶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지옥2>를 비롯해 요즘 많은 작품에서 콜을 받고 있어 전성기 같기도. (웃음) 김성철표 정진수를 자신감 있게 선보였는데 그 원천은 무얼까.
근자감? 하하 농담이고 이번에는 원체 대본이 재미있었다. 연상호 감독님이 원래 정도 많고 해서, 나를 걱정해 주셨는데 나는 오히려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손해 볼 것이 뭐 있냐는 생각이라 그렇다. 연기력을 비교당할 수 있겠지만, 최선을 다했는데 못했다고 평가받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진수의 변모한 모습과 더불어 연상호 감독님의 상상과 머릿속에서 나온 굉장히 주관적인 세계관을 최대한 많은 분들에게 공감되게끔 설득하는 것이 내 목표이자 사명감이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감독님 이하 스탭들의 사랑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번 현장은 특히 그랬다. 연 감독님은 처음 미팅한 후부터 촬영이 끝날 때까지 열렬하게 지지해 주셨다. 감독님이 사랑하고 신뢰할수록 배우는 더 잘하고 확신이 생기게 되거든. 그러고 보니 내 자신감의 원천은 감독님의 사랑인 것 같다.
언급했듯 상상력이 필요한 세계관인데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면.
어렸을 때 창의력 수업을 좋아해서 (웃음) 항상 대본을 보면서 글 이상의 것을 상상하는 편이다.
그래도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감독님과 상의를 하고, 또 다시 생각하고 나면 다 납득된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지옥2>다.
정진수 캐릭터에 당신만의 색을 덧칠한 부분이 있다면.
시즌2에 합류하기 전에 감독님이 ‘지옥’ 만화책을 선물로 주셨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웹툰을) 보다가 큰 그림을 보니, 작가님이 그림을 워낙 잘 그리셔서 그런지, ‘나랑 닮았네’ 싶은 거다. 물론 시즌1에서 (유)아인 형의 해석과 쌓아놓은 부분도 있겠지만, 나는 원작에 충실하고자 했다. 형이 시즌1에서 워낙 신선하게 표현해 주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해석할 여지가 없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강과 약으로 그 표현 수위를 달리 갔다. 처음 시연당하는 장면의 경우 ‘진경훈’(양익준)과 이야기하는 시퀀스에서만 자기 감정을 고스란히 표출한다. 오래전 고지를 당한 정진수가 현생을 살면서 느낀 두려움과 공포를 강렬하게 보여주려 했다. 시연 후에는 해체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온몸의 사지가 절단되는 등 고통 속에 산다면 그 인격이 온전할 수 있을까. 정진수가 부활 후 처음 등장할 때 ‘천세형’(임성재)과 만나는데 이때의 공허한 눈동자가 (시청자에게) 각인되길 바랐다. 그의 앞으로 행보에 있어 이런 텅 빈 듯한 눈빛을 유지하려 했다. 외적으로는 지옥을 경험하고 온 것이니 통통해 보이면 이상하니까 감량을 8kg 정도 했고, 근육이 빠지게끔 유산소 양을 늘렸었다. 물을 많이 안 마셔서 피부가 퍼석거리는, 메말라 있는 느낌을 주려 했다.
정진수와 박정자가 경험한 지옥이 다른 이유는 왜일까.
우리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닌가 한다. 저마다 갖는 가치관이나 두려움에 따라 경험하는 지옥이 다르지 않나. 박정자는 아이를 잃는 것이 두려운 헌신적인 엄마이고, 정진수는 교주로 칭송받으나 사실은 자기 본성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는 겁쟁이였을 뿐이다. 극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이들의 지옥 역시 다를 거로 생각한다.
가벼운 질문이다. 배우 김성철의 지옥은 뭘까. (웃음)
음… 흥행 참패? 주변에 보면 ‘잘되고 안되고는 내가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신기하면서도 정말 존경스럽다. 집착까지는 아니지만, 잘 되면 당연히 좋다!
정진수가 결국 지옥사자가 된다는 결말인데, 그렇다면 다른 지옥사자들도 인간이었던 건가.
그러잖아도 대본을 보면서 감독님께 질문드렸던 부분이다. ‘지옥사자는 결국 인간이었던 것이냐’고. 감독님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하셔서, ‘답을 주세요, 감독님’ 하다가 대화가 애매하게 끝났던 기억이 난다. (웃음) 당시 좀 정신이 없고 바빴거든. 내가 내린 판단은 모두가 인간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거다. 정진수의 경우 내재한 공포와 고통이 너무 커서 결국 지옥에 잡아먹힌 꼴인데, 감독님께 반은 인간, 반은 지옥사자면 어떨지 건의했다가 바로 묵살당했다! 또, 잘 보면 이번 지옥사자들은 시즌1과 달리 디자인에도 변화를 주었다.
1화를 강렬하게 장식한 ‘햇살반 선생님’ 문근영 배우부터 ‘연기 배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참여한 배우들이 명연기를 펼쳤다.
정말 그랬다. 각 캐릭터가 인생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근영 누나, 문소리 선배의 역할은 진짜 표현하기 어려운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신록 선배가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소리 선배에게 ‘언니는 시스템을 연기했더라’ 고 이야기했는데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햇살반 선생님의 남편인 ‘천세형’(임성재) 캐릭터도 수동적이라 고구마같이 느껴질 수 있는 캐릭터인데 그렇지 않게 풀어낸 점이 대단했다. 특히 정진수와 천세형이 붙는 씬이 여럿인데 그때 날 것의 느낌이 너무 좋았고, ‘컷’하면 서로 씨익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또 화살촉으로 나온 분들은 매일 2시간이 넘는 분장을 하는 등 너무 고생하셨다. 정말 모든 캐릭터가 대단했다.
모두가 고지를 받는 결말이 희망인가, 절망인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시즌1과 2를 통틀어서 정의를 대변하는 ‘민혜진’(김현주)은 살아남아서, 아이에게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고 하는 그 순간 해가 떠오르는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았다. 깔끔한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연상호 감독의 현장은 분위기가 매우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특히 퇴근시간 엄수라고. 감독님과 호흡은 어땠나.
감독님은 현실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너무 에너제틱한 것 같으면 잡아 주기도 하셨다. 비범한 느낌이 정진수와 나와 잘 어울린다고 하기도. 회차를 넘겨 찍거나 하는 일이 없이 그냥 찍어야 할 분량을 콘티에 충실하게 그대로 촬영하는 분이다 이를 위해 스탭분들과 사전에 세팅값을 워낙 잘 잡아 놓으셨었다. 언급한 퇴근시간도 아주 중시하셔서 우리 모두 행복한 현장이었다. 모두가 그렇듯, 퇴근 시간은 행복한 시간 아닌가!
이른바 깨발랄한 ENFP 유형에서 INFP(감수성이 풍부한 중재자) 유형으로 바뀌었던데, 현장에서는 어떤 편인가.
삼자의 말을 들어봐야 정확히 판단되겠지만,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감독님의 생각을 잘 따르는 편이다. 이건 경험적인 결과이기도 한데, (내) 의견이 반영되어 찍어도 감독님이 원하는 그림이 아니면 나중에 잘 안 쓰시더라. (웃음) 현장에서 특별히 에너제틱하기보다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쏟아내는 것 같다. 한 3년 전까지만 해도 ENFP였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INFP로 바뀌었더라. 생각해보면 변화에 잘 순응하는 편인 것 같다. 일례로, 바뀐 나이에 따라 32살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김성철 배우는 91년생)
티라미수 케익 챌린지, 뮤지컬, 디즈니+ <노 웨이 아웃: 더 룰렛>, 이번 <지옥2>까지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래서 매번 행복하다. 인터뷰 사이 점심시간에 잠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처음 기자분들과 인터뷰할 때가 2018년이었다. 거의 일대일 아니면 두세 분 오시고 했는데 그때도 행복했었다. ‘내가 기자분들이랑 인터뷰 하네? 배우가 됐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이 사랑받고 있나 보다 싶다. 경험이 쌓이면서 좀 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다.
고통스럽고 센, 캐릭터성이 강한 역할을 주로 해왔는데 잔잔하고 행복한 역할을 하고 싶지는 않나. 또 멜로나 로맨스는 어떤가.
고통스러운 일은 애써 연기할 수 있지만, 행복은 연기하기 힘들 것 같아 한편으론 무섭기도 하다. (웃음) <어바웃 타임> 같은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한 영화를 보면 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있지만, 그 갈망이 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로맨스는…그간 짝사랑이나 츤데레를 주로 했는데, 짝사랑은 재미있었다. 마음 졸이면서 뒤에서 쳐다보면 되니까! 멜로는, 경험치가 좀 더 쌓여 지긋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로맨스가 되는, 그런 눈빛을 가진 후에 도전하지 않을까 한다.
배우로서 추구하는 방향은.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은가.
예전에 오디션을 봤을 때 한 감독님이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질문하셨었다. 대학생 때 이후 이런 질문은 처음이었는데 그때 ‘백지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니, 감독님 말씀이 ‘백지’도 좋지만, 어떤 이미지가 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얼굴을 알리고 백지가 되는 것은 좋지만, 처음부터 백지면 영원히 백지로 남을 수 있다는 요지였다. 그래서 우선은 이미지 구축을 해보자 싶어, 짠내 나는 청년의 사랑도 해보고, 영화 <올빼미>에서는 소현세자도 하고 그러면서 어느 정도 얼굴을 알리고 다시 새로운 것에 도전해 온 것 같다.
해보니 확실한 한 방이 있는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면이 있더라. 이런 면에서 <댓글부대> ‘찡뻤킹’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도전이었다. 확실한 한 방 없이 스며드는 역할이라 힘들겠다고 생각했거든. 배우는 신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아마 못 봤던 얼굴을 보여드리지 않을까 한다. 말이 길어졌는데 결론적으로,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번엔 또 뭐 할 건데?’ 이런 반응이 나오는 배우라면 오래오래 살아남지 않을까 한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4년 11월 8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