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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도 <삼식이 삼촌>도 내게는 ‘1승’ <1승> 송강호 배우
2024년 12월 9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잘 아시겠지만, 최근에 성적이 좋지 않았잖아요.” 연기를 하다 보면 능선도 있고 골짜기도 있다는 송강호다. 그러면서, 30여 년의 연기 인생에서 결과를 생각해서 안전한 선택은 하지 않았노라고 자부한다. 신선한 자극이 되고 배우로서 도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해 왔다는 것이다. <기생충>의 큰 성공 후, 송강호는 윤동주 시인 이야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한 영화 <동주>의 신연식 작가겸 감독을 만났다. 작품을 대하는 신선한 시선에 감탄했던 터라, 이내 의기투합했고 그 결과물이 <1승>이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유쾌하게 타인의 100승, 1000승보다 중요한 자기만의 1승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다. 만년 꼴찌 팀 ‘핑크스톰’의 감독 ‘김우진’이라는 인생도 커리어도 보잘것없는 캐릭터에 착 붙어서 특유의 위트로 꽤 타율 좋은 웃음을 일군 송강호를 만났다. 나태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작품에 임하려고 노력한다는 송강호다. 결괏값이 좋지는 않았어도, “영화 <거미집>도, 시리즈 <삼식이 삼촌>도 내겐 1승”이라는 그의 연기론을 들어본다.

드디어 <1승>이 관객을 찾는다. 소감 한 말씀!
어제와 그제 이틀 동안 극장에서 무대인사를 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하시더라. 부부동반으로 온 어르신도 계시고 연령대도 다양했다. <1승>이 고민하면서 보거나 어렵지 않은 영화라, 다들 관람 후 표정이 밝아서 기분 좋았다.

언론시사회에서 여자 배구만이 가지고 있는 ‘아기자기함’이 있다고 했는데, 어느 부분이 그럴까.
아, 그건 내가 표현을 잘못한 부분이다. 작전을 디테일하게 짜고, 이를 어떻게 수행하는지 또 어떻게 상대팀이 막는지 같은 전략과 이에 따른 공격과 수비 같은 깨알 재미가 있다는 걸 순간 아기자기함이라고 실언했다. 배구라는 스포츠가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힘과 에너지가 넘치는 종목이고 여자 배구도 당연히 그렇다.

<1승>의 아기자기함은 뭘까.
하하, 신진식과 김세진 같은 감독, 김연경 선수를 비롯해 전현직 배구선수들, 심지어 한유미, 이숙자 해설 위원까지 여러 배구인이 함께해줬다. 또 선수 구성을 보면 전문 배우, 전·현직 모델, 전·현직 선수 출신까지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참여해서 그들이 내는 묘한 시너지가 <1승>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 처음에는 오합지졸이었다가 점차 어우러지고 하나의 팀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거다.

극 중 ‘김우진’은 20세기 화법을 쓰는 감독인데, 김우진은 어떤 인물인가.
고등학교 시절 자기를 버리고 떠난 코치(김홍파)로 인해 상처받았고, 열정은 넘치고 넘치는데 현실은 이에 못 미쳐서 세상에 불만이 가득 찬 사람? 그럼에도 배구 사랑은 진심이다. 세련되기보다 고지식한 면모가 있어, 다시 말해 20세기 화법을 쓰다 보니(웃음) 선수들과 충돌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인물이다. 선수를 대할 때 언뜻 그 진심이 드러나고, 또 ‘1승’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진지한 감독이다.

김우진의 고등학교 시절 전사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부분이 특색있고 좋더라. 이번에 처음 본 건가.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할 거라는 건 알았지만,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적이고 매끄럽고 세련된 애니메이션은 우리 극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대로 잘 나온 것 같다. 그 내용은 비록 김우진의 아픈(?) 전사지만, 애니메이션을 삽입함으로써 관객에게 만화 같은 즐거움을 주는 역할도 한다고 본다. 중요한 건 ‘<1승>은 팝콘 먹으면서 편하게 보는 영화’라는 걸 전달한다는 사실이다.

매번 하는 질문이지만, 신연식 감독과 영화 <거미집>(연출: 김지운/각본: 신연식), 디즈니+ <삼식이 삼촌>(각본/연출)을 함께했다. 이렇게 연이어서 한 감독과 작업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함께하면서 개인적으로 목표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나도 매번 얘기하지만, (웃음) <1승>이 제일 먼저 한 작품이었다. 어쩌다 보니 개봉 시기가 늦어져서 그렇지… 의도하지 않았지만, 지난 20여 년간 무겁고 진지하고 무언가 깊이 있는 캐릭터를 주로 해왔더라. 그러던 참에 예전 <반칙왕> <조용한 가족> <넘버 3> 같은 작품을 20년 만에 보이면 (관객도) 반가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이번 <1승>을 너그럽게 보신다면 또 다른 영화적 즐거움을 얻어가지 않을까 한다. 제목 그대로 ‘1승’을 하는 영화 아닌가. 정말 1승하고 싶다!

요즈음 당신이 경험한 1승은 무얼까. 문득 궁금하다. (웃음)
<삼식이 삼촌>이다. 인기를 못 얻었지만, 영화와 달리 내부 데이터 기준으로는 사실 실패가 아니라고 들었다. 그래서 ‘1승’이라는 것이 아니라, 삼식이 삼촌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근현대사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결과를 떠나 새로운 도전이었다. 아마 자극적이고 역동적인 드라마였다면, 흥행에는 좀 더 성공했을지도 모르지만, 과연 내가 선택했을지에는 자신이 없다. 신연식 감독이 글을 쓰고,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거미집>도 비록 흥행은 실패했지만, 역시 내게는 ‘1승’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 감독의 어느 면에 끌렸는지. 장르도 서사도 제각각인데 관통하는 주제가 있나.
공통 주제나 글의 힘이라기보다 ‘시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영화 <동주> 때 크게 느낀 부분이다. 우리가 윤동주 시인의 아름다운 시는 기억하지만, 그분의 삶의 뒤안길, 발자취는 잘 모르지 않나. 한데, 이런 부분을 끄집어내는 시선이 참 좋았다.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고, <1승> 제안을 받고는 직접 나가서 만났다. 그때 <거미집>, <삼식이 삼촌> 이야기도 같이 나왔는데, 여건상 <1승>이 제일 먼저 작업에 들어갔었다.

이번 <1승>에서 감독의 시선이 돋보였던 지점은?
배구를 소재로 한 첫 번째 영화라는 점에서 그의 시선이 돋보인다고 하고 싶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스포츠 종목 아닌가. 또 스포츠 영화의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완벽하지 않은 이들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다.

신 감독 말로는, 요즘 콘텐츠 소비 트렌드에 맞춰서 편집을 좀 더 스피디하게 했다고. 연기하면서 염두에 둔 지점이 있다면.
이건 내 표현인데, 설명되지 않은 ‘영화적 시간’을 줄이고자 매번 노력한다. 말을 빨리하거나 연기를 빨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고, 애드립과도 구분되는 개념이다. 영화업계에서는 ‘마’라고 부르는 데, 불필요한 연기를 통해 낭비되는 물리적(실제적)시간을 말한다. 이 마가 없는 편이 제일 좋지만, 그렇게 하기 힘드니까 최소화하려 노력하는 거다. 이는 감독의 디렉팅의 문제가 아니라 배우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부분이다.

<1승>에서 예를 든다면?
첫 장면을 보면 김우진 감독은 꼬맹이들을 앞에 놓고 이론 수업을 하고 있고, 아이들은 지겨우니 빨리 나가서 실습하자고 한다. 이에 감독은 ‘이틀밖에 안 됐는데…’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또 애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다. 이때 감독(김우진)은 바로 이야기에 끼어들면서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향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이의 0.5초가 없어지면서 상황과 상황이 바로 연결되고, 설명되지 않는 영화적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김우진 캐릭터에 착 달라붙었더라. 송강호라서 가능했지 싶은데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는 힘은 무얼까.
작품 해석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이나 <박쥐> 같은 작품을 대할 때는 이질감이 들어야 했다면, 이번 <1승>은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었다. 김우진이 옆에 있는 사람, 평범한 이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해석하고 접근하다 보니 착 붙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나 싶다.

배구 감독 역할인데 준비는 어떻게 했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배구를 원래 좋아해서 시즌 때는 중계방송을 매일 보고 있다. 이번에는 전 배구협회 모든 분이 발 벗고 도와주셔서 솔직히 부담감도 있었다. 배구인에게 폐를 끼치거나 누가 되면 안 되니까. 김세진, 신진식 감독이 하루 시간 내서 와서 스파이크 같은 기술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그 중 한유미 의원은 아주 혹독하게 가르쳤었다. 옆에서 훈련받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내가 선수 역할이 아니라 다행이다’하고 조금 구경하다가 빨리 도망갔던 기억이 난다.

작품 선택 기준은. <1승>은 어느 면에 끌렸는지.
최근 한, 작품의 흥행이 모두 부진했다. 만약 성적을 감안해서 안전한 선택을 했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거다. 누구나 알고 있는 패턴과 장르적 공식을 따른 영화나 드라마를 했다면 좋은 성적이 나왔겠지. 한데 30년간 안전한 선택을 한 적은 없다. 다시 말해 결과를 생각하고 선택하지는 않았다. 여기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 인생이 그러하듯, 연기도 마찬가지인 것이 어느 구간에서는 뭘 해도 관객과 소통이 잘되고, 또 어느 구간에서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건 초심을 잃지 말고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1승>은 배구 소재지만, 비단 배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든 가진 저마다의 1승에 대한 이야기라, 영화를 보고 희망과 자신감을 되찾으면 좋겠다.

박정민과의 티키타카가 유쾌하더라. 또 조정석도 카메오 출연 했는데..
조정석은 개인적으로 친하기도 해서, 이번에 아주 반가웠다. 박정민은 영화 <파수꾼>(2010)때부터 좋아했었다. 그가 보여준 캐릭터의 힘은 아주 탁월한데, 이는 타고난 재능 플러스 인문학적 소양 덕분인 것 같다. 유심히 보면 자기 소양을 끊임없이 닦고 보이지 않게 차곡차곡 쌓아나가더라. 그렇기 때문에 입체적인 해석과 표현이 가능했을 것 같다. 또 본인이 출연한 장면의 순간 장악력이 예사롭지 않다.

영화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시선이 많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장본인으로서 요즘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침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컨텐츠의 다양성 면에서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까, 영화계의 상황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 지금은 영화의 정체성 자체가 변화를 맞는 시기라 생각하고, 시대에 맞게끔 적응해 나간다면, 충분히 다시 부흥하리라 본다. 영화의 정체성이 재확립되고, 이 시기를 지나면 (영화의) 독보적인 가치가 빛을 발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고, 이를 큰 스크린을 통해 보는 압도적인 즐거움이 있기에 그렇다.

한층 젊어 보인다.
쌍커풀했다고 오해하시는 분이 많은데, 절대 아니다! (웃음) 오른쪽 눈이 어떤 앵글에서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아서, 눈동자가 보이게끔 살짝 상안검 수술했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영화 <내부자들>의 시리즈 버전인데, 그렇다고 프리퀄은 아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가되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사진제공. ㈜키다리스튜디오 ㈜아티스트유나이티드/ <1승> 스틸


2024년 12월 9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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