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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라는 톤을 가진 완결성 있는 단편’ 넷플릭스 <계시록> 연상호 감독
2025년 4월 4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연상호 감독이 영화 <계시록>으로 글로벌 시청자를 찾는다. 계시록은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는 목사(류준열)와 동생의 환영을 보는 형사(신현빈) 그리고 외눈박이 괴물에 의해 잡혀먹힌 범죄자(신민재)를 주축으로 한 종교 스릴러다. 이 세 인물의 공통점은 ‘아포페니아’, 즉 서로 연관성이 없는 대상 사이에서 의미있는 연결을 인식하는 심리적 경향을 지닌 이들이다. 연상호 감독이 이 용어를 꺼내 든 이유는 그가 느끼는 요즘 세태는 ‘욕망에 의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회가 이러한 경향을 부추기는 다양성의 부재’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장르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종교적인 작품이라고 소개하는 연상호 감독을 만났다. 두드러진 캐릭터인 목사 라인만이 아니라 형사 라인과 함께 비교하면서 보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라는 팁을 전하는 감독이다. <계시록>은 연상호라는 톤을 가진 완결성 있는 (시리즈가 아닌) 단편’이라고, 이런 의미에서 그간 작품의 ‘응축’ 같다고 말한다.

<계시록>은 믿음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작품인데, 영화의 기획 의도 혹은 기획하게 된 계기는.
현시대는 욕망에 의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태가 심화되고 있고, 사회 자체가 이러한 방향으로만 가속화를 유도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자면, TV 방송의 경우 일단 틀어 놓으면 관심이 없더라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유튜브가 구독자의 취향에 맞춰 보고 싶을 걸 추천해 준다. 이렇듯 사회 자체가 인간의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특성을 점점 강화하고 있다. <계시록>은 인간의 이러한 특징과 요즘의 세태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다.

초반에는 종교를 빗댄 스릴러인가 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당신이 의도한 질문, 보고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에 대한 물음이 강해지더라.
예전 세대라서 그런지 (웃음) 이야기의 의도를 중시하는 편이다. <계시록>은 스토리텔링 자체는 ‘성민찬’(류준열)이라는 목사를 외피로 그의 파멸을 극적인 아치로 보여주면서도 정작 외눈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뚜렷한 답을 주지 않는다. 외눈박이는 극초반부터 등장하고, 심지어 외눈박이 그림의 입안에는 세 사람이 그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초반에는 관객에게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마찬가지로 형사 ‘이연희’(신현빈)가 ‘권양래’(신민재)의 일기장을 보면서도 심지어 외눈박이라는 글자가 초록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도, 그 사실을 못 알아차리다가 아버지의 전화로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외눈박이 글씨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듯 이 이야기를 통해 뻔히 보이는 데도 보지 못하는,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세태를 보여주고자 했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플랫폼의 발달이 취향을 더욱더 공고히 하지 않나 싶다.
구독형 서비스라고 하는 부분이 극장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 아닌가 한다. 월드 와이드 소개도 마찬가지고. 취향을 강화시키는 면이 있겠지만, 동시에 넷플릭스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도 있다. <계시록>의 경우 관객이 원하는 방식의 엔터테인먼트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요즘 유행하는 사적 복수나 사이다 같은 대리만족을 주는 인기 장르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이런 장르들과 반대편에 있는 장르 아닌가. 역설적으로 넷플릭스의 월드와이드 공개 방식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이유도 이러한 다양성 확보의 측면이 아닐까 한다.

등장하는 세 인물인 목사, 형사, 범죄자는 모두 ‘아포페니아’라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대상 사이에서 의미있는 연결을 인식하는 심리적 경향을 가졌는데, 이 개념을 꺼내든 까닭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향이다. 인간의 문화가 발전한 원동력 중 하나가 추론의 능력인데 이 능력의 음지의 영역이 아포페니아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흥미가 갔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식의 실수를 하는 스스로를 깨달은 적도 있고, 아마 깨닫지 못하고 넘어간 적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갔던 것 같다.

제작발표회에서 <계시록>은 당신 작품의 ‘응축판’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어느 면에서 그런가.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뭘 봐야 할지 모를 때가 있지 않나. 내가 이런 상상을 해봤는데, 어떤 상상이냐면, 누군가 ‘연상호의 작품을 보고 싶은데 뭘 보지?’ 할 때, 과연 뭘 보면 좋을지를 생각해 봤다. <지옥>을 보자니 시리즈라 부담스럽고,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같은 단편이 한 편 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런 의미에서 ‘응축판’이라는 표현을 써봤다. 한마디로, 연상호라는 톤을 가진 완결성 있는, 시리즈가 아닌 단편이 <계시록>이 아닌가 한다.

초중반부 민찬의 아내가 불륜을 고백하는 장면은 다소 의아했다. 민찬의 말에 어떤 강한 설득력이 있었던 걸까.
그녀가 고백한 포인트는 하느님은 알고 있다는 것, 이 사실이 제일 무서웠을 거다. 믿음이 약해졌을망정, 기본적으로 목사의 사모라 믿음의 세계관에 있는 사람이라 그렇다. 민찬이 진지하고 대놓고 일깨워주는 것이 또 하나의 포인트다. 사실 원작 만화는 불륜의 증거를 직접 보여주는데, 영화화하면서 이 설정을 바꾸었다. <계시록>을 믿음의 전환 혹은 인식의 전환이라는 방향성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대놓고 증거제시가 아니라, 아내 스스로 고백하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단 이 장면뿐만이 아니라 매 순간순간 이런 인식의 전환을 보이고자 집중해서 만들었다.

민찬이 복도에서 바퀴벌레를 교회와 반대쪽으로 차버린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건 바로 전 장면에 대한 은유라 하겠다. 권양래를 만나고 잠시 전화를 받으러 갔다가 바퀴벌레를 보고 차버린 후 다시 들어와 권양래가 발목에 찬 전자발찌를 확인하는데, 이를 보고 ‘교회는 죄인이 오는 곳이다’라고 말하지만, 본심은 그렇지 않은 거지. 바퀴벌레처럼 차 버리고 싶은 민찬의 내면과 직업적으로 보이는 외면의 격차가 드러나기를 바랐고, 이러한 격차 때문에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

민찬이 엔딩에서 벽에 묻은 얼룩을 지우는 장면도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다. 처음에는 신의 모습 같다가 자꾸 문지르니 그냥 얼룩 같아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외눈박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말은 직전에 연희가 민찬에게 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민찬은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연희는 누가 계시를 주었냐고 묻는다. 엔딩은 민찬이 스스로에게 계시를 준 것은 누구이냐는 질문으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계시의 주체가 신일 수도 악마일 수도 혹은 단순한 얼룩일 수도 있겠다.

이때 류준열의 표정 연기에 호평이 많다.
준열 배우가 마지막 씬을 찍을 때까지도 어떻게 연기할지 서로 이야기를 나눴었다. 내가 유튜브 동영상 하나를 살짝 보여줬었다. 웃긴 동영상인데 이를 보여준 이유는 이러이러해서 최종 목적지에 도달했고 그것이 인과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의도에서였다. 준열 배우 역시 이해하고 이렇게 저렇게 10분 넘게 연기했고, 그중 제일 인상적인 장면을 토대로 편집했다.

류준열 배우와는 첫 호흡인데 작업해 보니 어떻든가.
매우 진지하고 사소한 것 하나라도 어떻게 할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더라. 기도회 장면의 경우, 자기화해서 다시 대본을 써오기도 하고, 또 톤을 잡기 위해 자신이 다니는 교회 목사의 설교를 녹음해서 듣는 등 스스로 준비를 많이 했다. 지금 말한 기도회 장면은 3회차 촬영, 그러니까 셋째 날에 촬영한 장면이다. 이때까지 영화가 어떻게 찍혔을 지 나도 모르고, 성민찬의 감정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준열 배우가 영화 전체의 깃발을 세워준 셈이었다 덕분에 영화의 톤이 명확해질 수 있었다.

신현빈, 한지현 배우를 이연희, 이연주 자매로 캐스팅했다.
신현빈 배우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전에 <너를 닮은 사람>에서 처음 보고, 되게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얼굴 자체에 사연이 있어 보이고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드라마 <괴이>는 내가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캐스팅 소식을 듣고 반갑고 기뻤었다. <괴이> 뒤풀이 때 잠시 인사를 나눴고, 이번에 <계시록>을 하면서 죄책감에 절여져 있는 이연희라는 예민하게 부서질 것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아 부탁드렸다. <괴이> 때도 아이를 잃은 엄마였고, 그 연기가 좋았거든. 지현 배우는 인스타 팔로우가 300만 명이 넘는 인기 배우라 (웃음) 이 역할을 수락할지 자신이 없었는데 조감독이 예전에 한지현 배우가 실제로 오디션을 많이 보고 다녔다고 하면서 연기를 진짜 잘한다고,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안면이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 여차저차 캐스팅했는데 에너지가 엄청 좋고, 연기를 너무 잘하기도 하고 연기 욕심도 대단한 배우였다.

연희가 동생 연주의 환영을 보는 걸 귀신 형상으로 구체화시킨 것도 분명 이유가 있을 터다. (웃음)
귀신 표현을 해보니까 정말 힘든 작업이더라. 고민 끝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민찬이 직접적이고 시각적으로 계시의 실체를 보기 때문에 연희 역시 직접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민찬이 받는 계시가 명확하기보다 아리까리한 느낌의 미묘한 지점이 있는데 연희의 죄의식의 상징 같은 연주 귀신 역시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끝까지 보면 알겠지만, 귀신은 연희의 죄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진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연희가 느끼는 트라우마를 관객이 직접적으로 체험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뜬금없지만, 권양래 역의 신민재 배우와 당신이 닮았다는 평이 많다. (웃음)
음, 나는 닮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웃음) 내가 보기엔 닮지 않았는데 왜 닮았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사람들은 나를 입체로 인식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거더라. 나는 스스로를, 거울을 통해서만 보니까 2D로 인식하고 또 어렸을 때부터 내가 마음에 드는 각도가 있어서, 보고 싶은 각도로만 본다. 그래서 입체적으로 보면 닮았음에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내 입장에서는 닮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더라.

로케이션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일종의 허세랄지, 민찬의 교회 외관을 찍으면서 몇 개의 요건이 있었다. 입체적이고 규모가 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되게 멀리까지 가서 찍었다. 아마 대구였을 거다. 또 마지막 교도소 바깥 풍경의 경우, 이렇게 외경이 있는 교도소를 찾아 장흥까지 가서 그 외부 풍경만 세 컷 촬영해 오기도 했다. 초반부 권양래와 성민찬이 빗속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은 원하던 앵글이 있었다. 먼 산과 벼랑이 있어야 했는데 이런 요건을 충족하는 장소를 찾기 어려워서 실내 세트를 만든 후 촬영했다.

<그래비티> <로마> 등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계시록>을 처음 이야기했을 때는 한참 전으로 코로나가 한창 심했을 시기였다. 첫 미팅을 앞두고 당시 코로나에 걸려 화상으로 미팅을 진행했었다. 내가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지, 그 비전을 듣고 싶어 하셨다. 최근에는 SNS를 통해 직접 홍보도 해주고 계시고, 예고편 하나까지 감독의 비전과 맞는지 안 맞는지 꼼꼼하게 살펴 주셨다. 막상 나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데 말이지! (웃음) 이번 작업에서 느낀 건 감독의 비전을 매우 중요히 하고 이를 (작품) 오픈까지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굉장히 심사숙고하신다는 점이었다. 촬영 중에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쿠아론 감독이 꼽은 최고 씬은 무얼까.
롱테이크의 대가시니, 자연스럽게 후반부 폐건물씬을 주목하시더라. 카메라의 의지없이 롱테이크를 찍는 어려움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셨다. 롱테이크의 핵심은 실제로 일어난 듯한 사실감인데, 이를 잘못 찍으면 카메라의 움직임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하셨다. 또 배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

그러잖아도 궁금했다. 폐건물 씬을 찍는데 소요된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리허설을 하루 정도 했고, 이때 좋은 장면을 편집해서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어서 배우들과 공유했다. 이를 보고 동선과 연기에 대해 숙지한 거지. 실제로는 하루 동안 찍었는데 원씬 원테이크다 보니까 더 좋은 씬이 나올 때까지 계속 찍었다. 테이크를 거듭할수록 감정과 카메라 웍이 완전해진다는 느낌이 들더라. 하루 종일 찍으면서 이것이 최고치 같다고 느낀 버전이 지금의 버전이다. 이후 몇 번 더 찍었지만, 더 완벽해지지는 않더라.

예비 시청자에게 <계시록>에 대한 팁을 준다면.
장르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장르영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채택하고 있다. 단순히 소재만이 아니라 이러한 스토리텔링방식에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을 유의해 본다면 좀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한다. 너무 대놓고 피에타 등 같은 종교적인 요소가 많이 담겼음에도 반기독교적인 이야기라고 하는 분이 있더라. 사실은 종교적인 부분이 많은 영화이고, 강렬한 서사를 담당한 성민찬 라인만이 아니라, 이연희 라인도 계시의 연속인 것처럼 만들었으니, 두 라인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넷플릭스 제작 시 예산 책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계시록> 외에 준비 중인 넷플릭스 작품이 있는지.
예산 이야기를 내가 하지는 않는다. 예산을 평가하는 팀이 있어서 시나리오나 배우를 보고 적정 예산을 산정하고 합의를 통해 예산이 확정된다. 또 지금 시점에서 이 작품이 필요한가를 보고, 필요하다는 결정이 나면 들어가게 되는 식이다. 대기 중인 작품은 촬영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일본어 시리즈인 <가스인간>이 있다. 일본 오리지널 시리즈로 내가 총괄 프로듀서 및 각본가로 참여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5년 4월 4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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