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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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정우가 감독 하정우로, <허삼관>(2015) 이후 10년 만에 <로비>로 돌아왔다. 영화 <롤러코스터>(2013)로 하정우표 코미디, 하정우식 웃음을 선보인 그인데 이번 영화에서도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은 유효하다. 개봉을 앞두고 충수염으로 응급 수술을 받기까지 한 하정우 감독을 만났다. 아직은 힘든 몸을 이끌고 <로비>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나리오 작업부터 후반작업까지, 웃음을 유도하기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표정하다, 이야기를 빨리한다, 또 괴랄한 이야기를 많이 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로비>다. <로비>를 본 관객이라면 느낄 수 있을 터다. 가슴이 탁 트인 풍경의 골프장에 옹기종기 모인 인간 군상들의 행태가 때론 ‘우리끼리’ 시전할 농담 따 먹기 같은 대화라는 것을, 그리고 이를 지켜보면서 삐질삐질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을. 호기심이 많아 마치 CCTV처럼 관찰하기를 즐긴다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골프장을 배경으로 한 한바탕 소동극인데 어떻게 골프장이라는 공간을 생각했는지. 보통 골프칠 때 자기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플레이어를 관찰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던데.
평소 호기심이 많다 보니 한 발 떨어져서 CCTV처럼 바라보는 면이 있는 것 같다. 평생 이 일을 하다 보니까 (웃음) 어떤 순간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입원해서도 (기자 주: 충수염으로 입원했었음) 병원 복도를 보며 그 활용법을 새삼 알았다. 저마다의 질병과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운동하려고 걷고 있더라. 나같이 가벼운 수술을 한 맹장염 동기도 있고, 심각한 수술을 한 환자도 있을 텐데 나이를 막론하고 아픈 배를 부여잡고 (방귀를 뀌기 위해) 절뚝절뚝 걷는 걸 보면서 새삼 병원 복도의 쓰임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같은 맥락으로 골프장에서도 관찰하게 됐었다. ‘매일 사람들을 접하는 캐디는 무슨 생각을 할까’ 혹은 내심으론 오늘이 그날(최고 스코어를 내는 날)인가 하면서도 일부러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등 밑밥을 깔기도 하고, 또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천원짜리 내기하면서 잘 풀리지 않으면 기분 나빠 하는 걸 보면서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싶더라. <로비>는 한마디로 골프장이라는 장소와 그 안의 캐릭터로부터 시작된 영화라 하겠다.
감독으로서 배우 복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캐스팅 면면이 흥미롭다.
한 명 한 명 캐릭터에 맞는 분이 누가 있을지 고민했었다. 연기는 다들 수준급이라 ‘어울릴지’에 방점을 뒀던 것 같다. 특히 ‘진 프로’ 역을 캐스팅하는 데 제일 심혈을 기울였는데 관객이 진짜 골프선수가 와서 연기했나 싶을 정도로 일반인 같아 보였으면 했다. 강해림 배우에게도 연기 보다 골프 폼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할 정도였고, 풋풋한 느낌이 장점이라 이 점을 살리려 했다. 또 이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마태수’ 역의 최시원 배우인데, 그는 가장 셀럽 같은 느낌이 났으면 했다. ‘다미’역의 차주영 배우는 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보고 너무 매력적인 배우라 생각했고,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다미’역에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 드라마 <원경>이 화제가 되어 덕분에 감사할 뿐이다. 감독은 항상 자기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가 최고의 연기를 펼치길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이를 위해 첫 연출작인 <롤러코스터>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마치 연극 연습하듯이 리딩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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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하늘이 연기한 ‘호식’ 캐릭터는 어떤가. 설득되기 힘든 상황을 캐릭터로 납득시킨다고 할지, 제일 돋보이는 인물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솔직히 운명 같았다. 무슨 조건을 따질 게 아니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왠지 많이 나왔으면 싶은 거다. 조 감독이 추천했는데 알고 보니 조 감독은 이동휘 배우한테 추천받았다고 하더라. 직접 연출도 하고 연기도 하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라 흥미로웠는데 만나고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표현을 뒤집어 놓는, 굉장히 놀라운 배우였다. 그 친구를 만나고 나서 ‘호식’ 라인이 생길 정도로 그 분량이 많아졌다. 나, 곽선영 배우, 그리고 엄하늘 배우 셋이 함께하는 씬이 의뭉스러우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주겠더라. 원래는 초반 장례식 때만 등장하고 말 예정이었다.
피식피식 웃음이 새나오는 여러 인간 군상 중에서, ‘최 실장’으로 분한 김의성 배우의 연기가 빛을 발하더라. 조금만 더 가면 과할 것 같은데 균형감이 절묘했다.
함께 라운딩하는 네 명의 멤버 중 빌런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진 프로와 심리적 감정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사람을 만들다 보니 최 실장 같은 개저씨 캐릭터가 등장하게 됐다. (웃음) 의성 형의 연기를 보면서 나 역시 굉장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한 부분이 웃긴 게 아니라 그가 관여한 라인이 리딩할 때부터 너무 힘이 있고 웃기더라. 현실의 의성 형은 젊은 친구들처럼 자유롭게 사는 분인데, 캐릭터는 자기 세계에 갇혀서 심지어 스스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교과서적인 인물 아닌가. 잘할 거로 생각했지만, 첫 리딩 때부터 과연이다 싶었다.
김의성 배우는 몇 차례 거절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설득했는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거의 초반에 그러니까 아직 헐겁고 완성되지 않을 때 드려서 출연을 주저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럼에도 ‘정우가 부탁하는 거니’ 쉽게 거절은 못 하겠고, 시나리오가 디벨롭되는 걸 지켜봐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이후 계속 고쳐 써서 드렸더니,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하신 듯. ‘이게 웃겨? 이게 재밌어?’ 하면서 스스럼없이 또 끝없이 질문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는 확신을 갖고 신뢰를 보여 주셨다.
코미디는 리듬감이 중요한데 연출하면서 집중한 부분은.
사실 코미디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하지는 않았다. <로비>를 보시고 코믹하다고 느끼신다면 감사하지만, 드라마에 좀 더 가깝다는 마음으로 연출적으로 접근했다.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가 <쓰리 빌보드>(201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같은 진지한 사실주의 영화였기도 했고, 평소에 이런 톤의 영화를 좋아하기도 한다. 시나리오 작업부터 촬영 또 후반작업 할 때도 어느 특정한 부분에서 웃기고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만들면서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표정하다, 이야기를 빠르게 한다, 또 괴랄한 이야기를 많이 하며 살아간다 등에 대해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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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를 추구하지 않았다지만, 관객은 코미디로 이 영화를 바라보니 하는 말인데 머릿속으로 그린 웃음과 이의 실현은 차이가 있지 않나. 웃음이 터질 것이라 확신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면.
그렇기 때문에 리딩 연습을 많이 한다. 내가 읽는 것과 듣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거든. 배우들의 리딩을 들으면서 오타나 말투 같은 부분을 가다듬어 나가기도 하고, 또 주변에 모니터링도 많이 하는 편이다. 배우 혹은 일반인 지인들에게 글을 돌리고 피드백 받아서 수정하곤 한다. 하다 보니 리딩과 현장의 분위기를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오더라. 재미있는 지점, 다시 말해 웃음 포인트는 처음 읽을 때부터 웃음이 터진다. 이를 믿고 가야지, 자꾸 고치려 하면 오히려 재미가 없어진다. 마치 성형수술과 같다고 할지, (웃음) 자꾸 손대면 안 된다.
하정우의 DNA가 묻어나오는 캐릭터라는 평이다. 작가로서 작업 스타일이 궁금하다.
고민하며 시간을 끌기보다 고민을 덜하고 일단 써보는 편이다. 가리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인풋으로 흡수하기도 한다. 이번에 예를 들자면, ‘마태수’ 캐릭터는 사실 최민수 선배를 모티브로 한 거였다. 이를 위해 최민수 선배의 인터뷰를 하나하나 다 찾아본 후 조금씩 변형해 나갔다. 마태수라는 이름 자체가 <모래시계> 의 박태수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데뷔작인 <롤러코스터>의 부족한 면을 보완했다고.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롤러코스터>의 경우 예산이 너무 작았고 그러다 보니 촬영 횟차가 부족했었다. 또 내러티브도 약했다. 축이 되는 드라마가 약하고 이에 시추에이션을 이어 붙이는 식이었다면, <로비>는 축이 되는 줄기를 바로 세워 놓고 그 주변에 인물을 배치하여 흘러가도록 했다.
<롤러코스터>, <허삼관>에 이어 세 번째 연출이다. 어떻게, 발전하는 스스로를 좀 느끼고 있는지. (웃음)
음… 확률은 높아져 가는 것 같다. 확실히 많이 쓰고 찍을수록 이야기가 가다듬어진다. 어떤 측면에서는 소재만 잘 선택한다면 진화하지 않을까 한다.
사진제공_쇼박스
2025년 4월 21일 월요일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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