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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의 중심에서 매번 얼굴을 갈아 끼운 넷플릭스 <악연> 박해수 배우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벗어나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얽히고설킨 여섯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 캐릭터 간의 유기적인 맞물림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해 나가는 범죄 스릴러다. 이 흡인력 높은 드라마에서 박해수는 ‘목격남’으로 분했다. 악연의 굴레에 발을 들여놓은 다섯 인물들과 모두 접점을 지닌 유일한 인물이자,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얼굴을 보여만 하는 캐릭터다. 나이브한 찐따부터 돈밖에 모르는 욕망남 그리고 온몸으로 업보를 맞고 처절하게 퇴장하기까지 매번 얼굴을 갈아 끼운 박해수를 만났다. 간극이 큰 캐릭터의 변화를 시청자들이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고, 연기 호평에 대해 겸손함을 내비친다. ‘마음이 움직이는 이야기와 궁금증이 일어나는 캐릭터’를 평소 작품 선택 기준으로 꼽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기존에 연기한 악역들과 달리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는 캐릭터인데 어떻게 접근하고 빌드업해 갔는지.
이렇게 극한으로 치닫는 캐릭터를 만난다는 것 드문 일이고, 그래서 좀 더 끌리기도 했다. 많이 고민하면서 준비했는데 감사한 부분은 <악연>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성이 만화 같은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실존하는 인물일지 헷갈릴 정도라 안으로 파고들기보다 오히려 바깥에서 인물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양심과 도덕을 버리고 욕망만을 저토록 쫓을 수 있을지 제3자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점이 다른 악역과 차이점이었던 것 같다. 안에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바깥에서 볼 때 그의 잘못된 선택이 너무 쉽게 보여서, 한편의 우화 같기도 하고 코미디 같아서 안과 밖의 간극으로 인해 접근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었다.

역할에 집중하다 보면 정신적인 피도로도 상당했을 것 같다.
연기하면서는 집중한다고 해도 이런 집중이 일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서 크게 영향받지는 않는다. 다만 후반부 화상 분장을 한 상태에서는 계속해서 예민함을 가지고 가야 해서 이 부분이 좀 힘들었다. 날카로운 선인장 같이 계속 성질을 돋우고 있어야 했거든. 한데 이 역시 분장에 많은 힘을 받았다. 분장하면 무언가를 표현함에 있어서 어딘가 자유로워지는 부분이 있다. 이번에 함께한 희준 선배가 영화 <남산의 부장들> 당시 증량했을 때, 걸음걸이가 바뀌고 목소리까지 변화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재미를 느꼈다고 이야기했는데, 무슨 말인 줄 알겠더라. 정서적으로는 다소 힘들었으나, 외형적인 변화가 흥미로워서 힘든 부분이 희석됐던 것 같다.

분장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분장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는지 궁금하다.
국내 최고 수준인 특수 분장 팀 ‘셀’(Cell)이 담당했는데, 처음에는 3시간 정도 걸리다가 나중에는 2시간 10분에서 20분 정도로 단축됐었다. 캐릭터의 옷을 입는 거라 분장도 의상도 매우 중요하다. 준비하는 시간이 마치 캐릭터에 들어가는 명상 플러스 숙면 시간이라고 할지, (웃음) 화상 분장을 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표정이 나오고 동작이나 성질이 돋워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장과 의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 것 같고, 이전에 무대 연기하면서 극단적인 분장을 많이 해봐서 어색하지 않고 흥미로웠다. 아, 그리고 분장을 지울 때도 30~40분 정도 걸리는 데 이때 가장 사랑받는 느낌이다. 분장팀이 빨리 퇴근하기 위해 4명도 넘게 붙어서 마치 아기처럼 닦아준다! (웃음)

화상 이후 목소리에도 변화가 있는데 이는 어떻게 표현하려 했는지.
실제 화상 입은 후 목소리 변화나 성대 수술 후 목소리 변화 같은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 톤을 잡기 위해서 목을 쉬게도 하고 잠기게도 하는 등 테스트를 여러 번 거쳤다. 중간 중간하는 기침은 목의 상황에 따라 또는 목 아플 때 나오는 식이었다. 신기한 건 팔과 손에 (화상) 분장을 하면 실제로 쓰린 느낌이 든다는 거다.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목격남은 계속해서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자기 본 얼굴을 속이고 아주 순진한 느낌의 찐따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변화를 가져가려 했나.
일부러 캐릭터를 변신하게 하거나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목격남은 극 중 다섯 명의 악연과 모두 대면하는 인물이라 주고받는 상황에 집중해서 대응해 갔었다. 예를 들면 공승연 배우와는 과거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양심을 버린 사람의 돈을 뜯으며 스스로 합리화하는 모습으로, 또 안경남(이광수)과의 만남에서는 광수 배우의 에너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약간 덜떨어진 성인의 모습이 나왔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인가 특별하게 캐릭터를 만들려 하지 않아도 광수 배우 덕분에 나약하고 이상한,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얼굴이 나왔지 않았나 싶다. 후반부에 박재영으로 역할 할 때는 돈밖에 안 보는 인물의 목적성에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것 같다. 더 강하고 죽어 마땅한 캐릭터로 말이다.

마지막에 중점을 둔 부분은 목격남이 어딘가 외로워보였으면 했다는 점이다. 집도 이름도 없는, 껍데기밖에 없는 인물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흥미로우면서도 불쌍하고 이상한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감독님이 이런 느낌을 강화하기 위해서 허밍을 해보라고 하셨는데, 잘 보면 이상한 허밍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캐릭터에 방점을 두며 마무리를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연기 잘하기로 원체 유명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연기 호평이 많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허점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이번에는 캐릭터 자체의 변화, 그러니까 간극이 큰 모습을 오가서 시청자분들이 좋게 봐주신 듯하다. 이번 목격남은 (말했듯이) 모든 인물과 엮여 있고 상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의 간극이 커서 좀 더 흥미로웠지 싶다. 개인적으로 평소에 이런 단층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선호하는 편이기도 하다. 사람이란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극대화할 때 카타르시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를 그려나가면서 원작 웹툰을 참고한 부분이 있을까.
궁금해서 ‘원작을 볼까요?’하고 감독님께 여쭈어보니, 감독님도 원작을 참고해서 새로 만들었다고, 그림에 있어서 웹툰과 차이가 있을 거라고 하셔서, 감독님의 글을 방향 삼아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었다. 그럼에도 살짝 웹툰을 보기는 했는데 다 보지는 못했다. (웃음) 워낙 정신이 없는 데다가 일단 작품에 들어가고 나서는 다른 걸 잘 보지 않는 편이라 그렇다. 처음 8부작이었던 글이 6부작으로 압축되면서 감독님이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는데, 그 결과물을 보고 진짜 감탄했었다.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의 성격을 극대화하면서 압축하신 거다. 각 캐릭터를 스토리 라인에 어긋나지 않게 배치하고, 합리화하거나 정당화시키지 않으면서 캐릭터 성을 끌어낸 감독님이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다.

중반부 목격남의 정체가 드러나는 육교 위에서의 표정이 너무 해맑지 않나! 무슨 생각하며 찍었을지 궁금하더라. (웃음)
고민이 많았던 장면이다. 날씨가 매우 춥고 찬기가 너무 많아서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육교에서) 내려왔는지 모니터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연기하면서, 목격남의 직전 행동을 떠올려 봤었다. 그가 육교 위에서 시체를 떨어뜨려 자동차에 맞추는 장면이라, 그 성공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를 생각했었다. 우리가 볼링에서 핀을 맞추거나 과녁에 화살을 꽂았을 때 오는 쾌감이 있지 않나. 그 느낌을 상상하며 연기했고, 나중에야 그 표정을 보고 나도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악연으로 얽힌 인물들이 자신의 악행에 따라 업보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의 무게가 클수록 더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고 할지, 이런 면에서 목격남의 최후에 동의하나.
누가 더 악하고 덜 악하고가 아니라, 악을 녹일 한 인물을 빼고는 그냥 한 덩어리 같은 느낌이었다. 쓰레기들이 구르면서 엄청나게 큰 쓰레기 더미가 되었다고 할지, 이들이 다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는데 그 죄에 타당한 벌이 아닐까 한다. 중요한 건, 내가 누군가에게 악연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선택의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는 점이다. 보면 뻔하게 보이는 잘못된 선택들을 거듭하지 않나. 이런 악연의 굴레에서 단 한 명만이 용서라는 선택을 한다는 점. 악인의 이야기지만, 결국 악의 덩어리를 녹일 수 있는 한 명의 선택이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공승연, 신민아 배우와 동시에 호흡을 맞췄는데 인상 깊은 순간이나 비하인드가 있다면.
승연 씨와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때 같이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정말로 처음 보는 얼굴을 보여줘서 흥미로웠다. 평소 목소리가 중저음이라, 이번 캐릭터로 어떻게 변모할지 궁금했는데 정말 찰지게 때리고 욕하더라. (웃음) 애드립으로 진행된 부분도 많았고, 하면서 이런 즉흥성에 서로 재미있어했었다. 민아 씨의 경우는 정서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라서 처음에는 굉장히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또 화상 분장이 아닌, 맨얼굴로 거의 만난 적이 없어서 ‘어렸을 때 저 좀 생겼었어요’ 하고 괜히 농담하고 했었다. 민아 씨는 정말 단단한 선함이 있어서, 이런 면이 캐릭터에 시너지를 불어넣은 것 같다. 후반부 골목씬도 재미있었던 게, 이때 내가 민아 씨한테 맞는 장면인데 맞는 사람이 아니라 때리는 사람이 대역이 있었다는 점이다. (웃음)

<악연>이 넷플릭스와 7번째 작품일 정도로 넷플릭스와 인연이 깊다. 평소 작품 선택 기준은.
덕분에 넷플릭스 스탭들과 많이 친해졌다. (웃음) 보통 대본을 받은 시기에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에 끌린다. 전체적인 이야기나 메시지 그리고 캐릭터를 우선적으로 보게 된다. 내가 도전할 부분이 있는지 그리고 스스로 궁금증이 나는 이야기인지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첫 번째는 관객으로서 내게 재미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장르물을 연속 선보이고 있는데 사실은 ‘양관식’(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남자 주인공)같은 남편이자 아빠라고 자처했던데. (웃음)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품을 꼽는다면.
사실 양관식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아들에게 제일 보여주고 싶은 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다. 굉장히 애정하는 작품이다. 장르물을 계속하게 된 건 말했듯이 들어온 시기에 끌린 부분이 컸다.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고 또 스스로 어떻게 소화할지 궁금해서 일종의 도전이기도 했다. 지금은 다양한 장르를 하고 싶다. 멜로도 하고 싶고, 배우는 멜로에 대한 로망이 있는 듯. (웃음) 여러 소재에서 나오는 다양한 멜로가 있지 않나. 또 휴머니즘 드라마도 해 보고 싶고, 생활 속에서 나오는 연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서 생활 연기나 코믹 연기 등 해보고 싶은 연기는 무궁무진하다.

지난해 전도연 배우와 ‘벚꽃 동산’으로 무대에 섰다. 지난 3월에는 부산에서 공연하기도. 늦었지만 소감 한 말씀.
하면서 느낀 점이 정말 잘 짜인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대본이라는 거였다. 사이사이 즉흥적인 부분도 많은데 이번 부산에서 공연하면서 ‘우리가 많이 가족같이 가까워졌다’는 걸 느꼈다. 배우로서 캐릭터로서 서로가 신뢰하고 있다는 걸 느낀 행복한 순간이었다. 전도연 선배는 부산 공연 끝나고 마지막 식사하는 자리에서 정말 재미있다고 살아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선배와 눈을 맞추며 연기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할 뿐이다. 후배로서 감히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고 존경하는 마음이 크다.

하정우 감독의 <로비>로 모처럼 스크린으로 관객을 찾기도. 감독 하정우와 작업해 보니 어떻든가.
연극 무대와 마찬가지로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도 그 공간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움직임도 제한적이고 전화도 못 하고 화장실도 못 가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을 수 있는 공간 아닌가. 하정우 감독님은 현장에서 너무 프로페셔널한 감독님이셨다. 배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차분하게 현장을 이끌어 가는 분, 누구보다 진지하면서도 피식피식 웃음을 주며 유쾌한 호흡을 잃지 않는 분이시다. 무엇보다 스탭 한 명 한 명에게 끊이지 않고 칭찬을 던져 주는, 아주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분으로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장이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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