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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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을 받았더니 초능력이 생긴 이들, 함께 모여 이 신기한 힘을 어디에 쓸지 나름의 고심을 하기 시작한다. 강형철 감독의 신작 <하이파이브> 이야기다. 매번 역대급 캐릭터를 갱신하는 안재홍은 폐를 이식받은 작가이자 백수 ‘지성’ 역을 맡아 한심과 찌질, 나름의 진지함까지 B 유머 코드에 착붙한 듯 극의 웃음을 책임진다. “시나리오 받자마자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어요. 지성 역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평소 강형철 감독의 작품에 너무나 출연하고 싶었다는 안재홍이다. 그의 첫 단발인 셈인데, 가지런한 머리가 하찮은 초능력자 캐릭터와 꽤나 잘 어울린다. <하이파이브>를 캐릭터의 향연이라고 소개하는 안재홍을 만났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이 될, 그만큼 재밌는 영화라고 자신감을 드러낸다.
촬영한 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 완성본을 본 소감은.
먼저 개봉하게 되어 너무 설레고 감사하고, 두근두근한 마음이다. 관객과 함께 본 시사회에서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웃음) 마치 콘서트 현장 같았다. 큰 희열을 느꼈고 개인적으로도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을 것 같다. 평소 강형철 감독님의 팬으로서 이 작품을 하게 되어 영광이고, 완성본을 보고 나서는 ‘정말 끝내주는 영화를 만드셨구나’ 싶었다.
<하이파이브>의 어떤 부분에 끌렸는지.
재미있는 건 물론이고, 이 영화의 특별한 부분은 정말 특별하지 않은 인물들이 초능력을 얻었다는 점이다. 특히 지성은 자기가 받은 능력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서 기껏해야 아메리카노 빨리 마시기 등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하이파이브’를 결성하면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할머니의 리어커를 뒤에서 콧바람으로 밀며 남몰래 도움을 준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물이었는데 이웃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점이 지성의 가장 큰 성장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거창하게 인류를 구원하는 건 너무 먼 이야기이고, 하찮은 인물들이 모여 주변에 도움을 주려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강형철 감독과 인연이 깊다고.
약 15년 전쯤, 20대 중반 대학생 때 출연한 단편영화로 미장센 단편영화제에 간 적이 있다. 코미디 섹션인 ‘희극지왕’ 섹션에서 작품상을 받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영광스러운 상이다! 그때 이 섹션의 심사위원이 강형철 감독님이셨다. 당시 영화 <써니>(2011)가 극장에서 상영 중이었는데 그렇게 감독님과 처음으로 인연이 되었다. 그 후로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로망을 간직한 채, 편하게 개인적인 친분을 이어갔는데 <하이파이브> 제안을 주신 거다. 감독님이 ‘재홍아, 너한테 이 작품을 제안할 수 있어서 좋아’ 이러시는데 정말 가슴이 뜨거워지더라. 감독님이 바람을 쏘는 캐릭터가 있다고 해서, 머리카락이 날리면 시각적으로 효과적이지 않을까 해서 대본을 받기도 전에 허락도 안 받고 머리부터 기르기 시작했다. ‘지성’ 역을 꼭 하고 싶었거든. 다행히도 감독님이 긴 머리가 어울린다고 스타일링을 그대로 가져가셨다. 내 첫 단발머리다. (웃음)
오랜 꿈의 실현인 현장이었는데 강형철 감독과 작업해 보니 어떻든가.
한마디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라 하겠다. <하이파이브>는 매우 많은 컷을 찍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한 장면도 여러 컷으로 구성되어 있고 무빙도 많아서 그만큼 합이 중요했다. 장면 하나에도 미리 약속하고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 많았음에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돈됐었고, 또 스탭들 규모가 상당히 컸음에도 한마음으로 집중하게끔 하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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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 캐릭터는 극 중 웃음을 담당하는 대표 캐릭터인데, 코믹 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관객이 ‘안재홍’의 코믹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나.
너무너무 잘하고 싶었다. 관객분들께 <하이파이브> ‘지성’이 지닌 재미를 잘 그려내 보여 주고 싶었다. 부담감보다는 관객의 기대감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크다. 코미디 작품도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지 않나. 밝은 류의 코미디, 블랙 코미디, 또 <하이파이브> 같은 엔터테이닝 류의 코미디 등 이때마다 다른 마음과 결로 접근하고 임하려 한다. 코미디라는 공통분모를 유지하되 작품만이 지닌 톤앤매너를 찾으려고 한다. <하이파이브>는 특히나 (관객이) 반가워하는 배우들이 한 화면에 총출동하는 작품이 아닌가! 한 분 한 분 매력이 너무 뚜렷해서 스크린에 등장할 때마다 나 역시 굉장히 반가웠다. 미란 누님, 오정세 선배가 등장할 때는 어찌나 집중되면서 ‘나를 행복하게 해줄 거야’라는 기대감이 높아지던지! 기대감이라는 건 관객과 배우가 함께 쌓아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또 다양한 작품을 잘 해내고 싶다는 본능적인 마음도 당연히 있지만, 코미디를 더 잘해내 더 큰 즐거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크다. 이번 시사회 때 느낀 점은 코미디는 가장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는 장르이고, 이 반응을 현장에서 체감하는 일이 정말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점이었다.
이번에는 웃음의 톤앤매너를 어떻게 잡았나.
하찮은 한 명 한 명이 모여 무언가를 해 나간다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이번에는 애드립이 거의 없었던 게 워낙 리듬감 있게 쓰여진 대사라 이를 잘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나름대로 주안점은, 워낙 재미있고 상황 자체가 웃겨서 오히려 티를 안 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 같다. 작품 자체가 만화적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사실감을 부여해야 만화적인 순간이 확 살아나겠더라. 그래서 대사도 막 재미있게 의도하기보다 툭툭 던지듯이, 마치 현실의 대화 같이 가져갔다. 모든 장면에서 현실감을 부여하려 했다.
워낙 베테랑들이 모였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캐릭터 간의 합이 너무 좋더라. 코미디 군단이라고 할지, (웃음) 현장에서 호흡은 어땠나.
재인과는 정말 삼촌과 조카 같았다. 재인이 먼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웃음) 우리 둘이 하찮게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에서 웃기고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재인은 부담스러워하겠지만, 그는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다. 또 재인이 나이는 어리지만, 뽀뽀뽀 출신이라 경력이 길어서 티키타카가 정말 잘 맞았었다. 후반부 선배들이 손을 잡고 힘을 모아 재인을 공중으로 날려 주는 공중부양씬이 있다. 우리 영화의 상징 같은 장면이 아닌가 한다. 희원 선배, 미란 선배는 워낙 베테랑이라 팀웍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셨다. 또 같은 샷은 없지만, 오정세 선배를 보면서 감탄했었다. 정말 기대치를 뛰어넘는 무언가, 다시 말해 장면이 가져가야 할 목표를 늘 상회하는 것 같았다. 오정세 선배는 초능력도 없는데, 어떻게 저런 쾌감을 주는지 놀라웠다.
제일 재미있다고 느낀 장면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카트체이싱 장면을 좋아한다. 아주 신나고 흥미로운 시퀀스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음악이 더해져 마치 시원한 바람을 맞는 상쾌한 기분을 준다고 할지. 그야말로 영화를 ‘체험’한다고 느낀 쾌감이 넘치는 장면이다. 어느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장면으로, 감독님의 상상력이 위대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단순히 웃긴 걸 떠나서, 그 장면에는 모든 캐릭터의 액션이 집약되어 있다. 프레시 매니저 ‘선녀’(라미란)의 카트, ‘완서’(이재인)의 폭발적인 힘, ‘기동’(유아인)의 전자기파 조정과 쾌속 질주까지 모두의 초능력이 한데 모인 장면이라 의미가 크다.
그 장면에서 지성은 야쿠르트 포를 발사하는데, 실제로 한 건지 궁금하더라.
그 장면을 촬영 중반쯤 찍었고, 어느 정도 익숙한 상태라 진짜 발사했었다. (웃음) 화면에서는 CG를 더해 더 빠르게 폭발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또 야쿠르트에 컬러를 입혀서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장면으로 만들었다. 완서랑 운동장에서 ‘이런 능력이 있어서 뭐 해?’하는 장면, 또 닭날개를 먹고 뼈를 발사하는 장면도 다 실제로 발사한 거였다.
지성과 기동의 인공호흡씬도 빵 터뜨리는 모먼트 중 하나였다. (웃음)
시사회 때 인공호흡하는 장면에서 환성이 터져 나오더라. 박수와 심지어 발 구르는 소리까지! (웃음) 정말 뜨겁고도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기동과 지성은 너무 다른 인물인데, 공통분모라면 백수라는 것, 또 능력을 멋지게 활용하지도 못하는 점이 비슷하다.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하고 눈만 마주치면 싸우려고 하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하찮지 않나. 그런데 이 둘이 처음으로 통한 때가 바로 ‘슬램덩크’를 오마주한 하이파이브 장면이다. 극 중에서도 매우 상징성이 있는 장면으로, 각자 화면 끝에 멀리 떨어져 있다가 가운데로 와서 손뼉을 마주하고,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하이파이브>의 또 다른 의미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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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라고 모두 히어로가 되는 건 아니다’라는 지성이 완서에게 하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강형철 감독님 작품의 매력이 잘 담긴 대사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할 때, 정중한 태도로 진중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재미있게 이야기하지만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 않나. 감독님은 후자라는 생각이다. <하이파이브>는 재미있는 오락영화이지만, 우리를 ‘툭’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초능력자가 모두 히어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말도 진지하게 각을 잡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 속 일부일 뿐이다. 웃긴 대사 속에 담긴 중요한 의미가 감독님의 큰 매력이 아닌가 한다.
요즘 극장 상황이 좋지 않고 관객의 눈높이가 많이 엄격해 졌다. <하이파이브>를 극장에서 꼭 봐야할 포인트를 짚는다면.
<하이파이브>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체험’시켜 드릴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이유에 대한 답이 아닌가 한다. 신나는 화면, 꽉꽉 채운 사운드 등. 강형철 감독님이 음악을 너무 잘 활용하시는 건 정평 나 있지 않나! 극장에서 본다면 분명히 만족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또 <하이파이브>는 캐릭터의 향연이라는 생각이다. 이만큼 단체샷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작품이 없다. 혼자 나와도 재미있지만, 둘이 나오면 더 재미있고, 다섯이 나오면 훨씬 더 재미있어진다. 더불어 우리 모두가 가진 어떤 능력이 사소하고 하찮아 보일지라도 함께할 때 힘을 발휘하고 특별해질 수 있다는 것, 이 점이 내가 느낀 개인적인 <하이파이브>의 메시지다. 아마 관객분들)도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어떤 메시지를 받아 가시지 않을까 한다.
보통 배우들이 어려운 연기로 코믹 연기를 꼽는데, 당신은 어떤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코미디 연기는 미션이 하나 더 주어지는 것 같다. 단순히 재미만 생각하고 접근하면 코어가 비는 느낌이라, 연기 플러스 무언가 이 두 가지 끈을 잘 잡고 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관객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에 큰 웃음을 주는 배우 중 한 명인데 실제 성격은 어떤지 궁금하다. (웃음) 또 평소 재충전은 어떻게 하는지.
음, 내향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내 안에도 여러가지 결이 있으니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편이다. 코미디를 하다 보면 어느 한 부분을 증폭시켜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내가 재미있거나 웃긴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코미디라고 통칭하지만, 말했듯이 그 안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지 않나. 넷플릭스 <닭강정> 같은 경우는 평소보다 몇 톤이 위에 있는 나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하이파이브>는 만화적이지만 현실에 발을 붙인 인물로 보이고자 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저 평범한 인물이 굉장한 초능력을 지녔다는 데서 오는 언발란스함을 보이려고 했다. 재충전은… 취미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걷는 걸 좋아해서 걸으면서 생각을 많이 한다. 또 평소 영화나 시리즈 보는 걸 즐겨서 다른 작품들 보면서 영감을 찾으려 한다.
사진제공. NEW
2025년 6월 2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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