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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첫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이 별에 필요한> 한지원 감독
2025년 6월 12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던 아기, 만화방을 하는 할머니 댁에서 만화의 기쁨을 처음 느낀 아이, 롤모델은 미야자키 하야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이 별에 필요한>을 연출한 한지원 감독 이야기다. 단편 <코피루왁>, 장편 <그 여름>으로 주목받으며 K-애니메이션계 뉴웨이브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번 작품하며 고민한 지점은 ‘2D 어른들의 사랑이야기’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였다고. 보통 2D 애니메이션은 학원물이나 좀 더 어린 층을 타깃으로 하는 까닭이다. 2050년을 배경으로 우주인 ‘난영’과 뮤지션 ‘제이’의 꿈과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넷플릭스가 선보이는 첫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점에서도 업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5년에 걸쳐 완성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은 한지원 감독을 만났다. 올해가 한국 상업 애니메이션이 가장 많이 나온 고무적인 해라면서, 이 흐름이 이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한다.

넷플릭스 첫 한국 애니메이션으로, 글로벌 시청자를 만났다.
오랜만에 나온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기도 하고, 이번이 잘 돼야 다음 작업으로 이어진다는 기대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가지고 만들었다. 올해가 한국 상업 애니메이션이 제일 많이 나온 해라는 데 고무적인 느낌이 들고, 이 흐름이 이어졌으면 한다. 또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해외 반응을 받고 있어서 설레는 마음이다. 생각보다 많이 울어 주시고, 우는 모습의 귀여운 짤방 등을 보고 시청자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가는 부분이 있구나 싶었다. 고민했던 부분이 잘 닿은 것 같다.

고민했던 부분은 무얼까.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인 로맨스라는 점이었다. 2D 애니메이션은 보통 학원물이나 좀 더 어린 대상을 타깃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어른들 이야기는 상업적 반응이 크지 않기 때문인데, <이 별에 필요한> 같은 사랑이야기가 시청자에게, 특히 주 타깃인 30대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고민이 많았다.

2D 애니메이션을 고수한 이유는.
프리비주얼부터 작업과정에서는 3D를 많이 활용하였고, 최종 아웃풋은 2D를 지향하였다. 아날로그적인 터치의 정감을 살리려 했다.

넷플릭스와 애니메이션 첫 협업이라는 점에서도 고무적인 일이다.
애니로서는 <이 별에 필요한>이 OTT 플랫폼의 출발점이라 업계 사람들도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하고 있다. 이 영화가 첫 모델인 셈인 거지. 기존에는 완구나 굿즈 등을 판매해 부가 수익을 얻거나 교육용이 아니면 투자가 안 되는 구조였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이런 수익 모델보다는 오로지 콘텐츠의 새로움, 퀄리티를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기존과 완전히 다른 투자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클라이맥스 스튜디오가 제작했더라. 영화와 드라마 위주의 제작사인데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클라이맥스에서 만든 <아만자> 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 안에 애니메이션 파트가 있는데 내가 이 작업을 맡았었다. 이 작업이 인연이 되어 자연스럽게 장편을 개발해보자고 했다. 사실 2D 애니메이션은 마이너한 장르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에게 깊이 다가가는 영화를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변승민 대표님이 로맨스 부분을 좀 더 강화하자고 의견을 주셨고, 덕분에 좀 더 본격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된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애니메이션계에서는 연령대 높은 로맨스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편이라 그만큼 도전이었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딥하면서도 캐주얼한, 한마디로 리얼해야 했는데 영화사(클라이맥스 스튜디오)와의 콜라보라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작업 기간과 작품에 투입된 인원은 어느 정도 규모인가.
레드독컬처하우스와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에 있는 내부팀, 두 곳이 협업해 만들었다. 이번에는 내 개인 스튜디오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포옹하고 키스하는 등 중요한 장면은 내가 거의 수정하면서 새로 그렸다. 클라이맥스 이름 하에 모인 작업자는 대략 3~40명이고, 레드독컬처하우스까지 포함하면 수백명에 달할 거다. 시나리오부터 완성까지는 5년, 이제 만들어 보자고 스타트한 때부터 걸린 시간은 2년 3개월 정도이다.

<이 별에 필요한>은 꿈과 사랑,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작 <그 여름>도 사랑과 성장이야기였는데, 당신을 관통하는 주제일까.
음… 나를 관통하는 주제는 꿈과 성장이다. 꿈과 희망, 혼란 등 음과 양을 동시에 중의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 별에 필요한> 도 이런 주제와 맞닿아 있다고 하겠다. 두 영화 모두 사랑을 이야기한 까닭은 당시 내가 ‘사랑’에 빠졌던 시기라. (웃음) 내 인생의 어떤 생활과 맞닿은 주제를 꺼내 들게 되는 것 같다. <그 여름>부터 <이 별에 필요한>을 준비하면서 일과 사랑을 양립, 연애하고 결혼까지 했다. TMI로 남편의 영어 이름이 ‘제이’다! (웃음)

아, 그렇다면 ‘난영’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름인가.
일단 난영이라는 이름이 약간 예스러운 이름이라 특이할 거로 생각했다. 시나리오 중 음악이야기가 비중이 큰 버전이 있었는데 아주 옛날 음악이 많이 나오는 설정이었다. 그래서 가수 ‘이난영’ 님을 떠올리면서 이름을 난영이라 지었다. 극 중 제이는 아날로그를 추구하는데 힙한 이름이고, 우주인 난영은 조금 옛 것의 느낌으로 대비를 주고자 한 부분도 있다.

배경인 2050년 서울의 광경이 새로운 듯 익숙하더라. 세운상가도 그대로 있고! (웃음) 2050년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내가 보고 싶은 서울의 모습을 담았다. 서울에서 좋아하는 지점이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다. 세운상가는 철거 이야기가 나와서 이 영화가 릴리즈될 때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웃음) 세운상가를 비롯해 을지로 일대의 매력은 2050년에도 여전할 거로 생각한다. 2050년인 이유는 작품적 정서와 프로덕션 디자인과 맞닿은 부분이 있다. 무슨 얘기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현재에 태어난 아이들이 화성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성인이 될 무렵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외에도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정한 시점이다.

제이가 뮤지션인 만큼 음악에도 공을 들였는데 컨셉트는 어떻게 가져갔는지.
보통 애니메이션에는 현악기나 센티멘탈한 클래식을 활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우린 2050년에 음악하는 아티스트라는 설정이라 그 톤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했다. 생각해 보니, 25년 정도 주기로 유행이 바뀌는 것 같더라. 마치 지금 2000년대 유행한 Y2K 감성이나 패션, 음악이 다시 회자되듯이. 그래서 지금부터 25년 후인 2050년이 배경이니 현재의 음악을 쓰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요즘 유행하는 음악, 2030 세대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곡 등으로 꾸미면서 일렉트로닉한 면을 접목했다.

난영은 김태리가, 제이는 홍경이 더빙을 맡았다. 목소리 캐스팅이 짱짱하다. (웃음)
애니메이션에서 더빙에 대한 이야기는 발표될 때마다 큰 화제이기도 하고 그 퀄리티에 대해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기성 성우냐 배우냐를 떠나서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호불호가 있을 거로 생각한다. 캐릭터를 다듬어 가면서 난영의 목소리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자연스럽게 김태리 배우가 떠올랐었다. 제이 이미지는 홍경 배우가 떠올랐고. (웃음) 너무 모시고 싶었던 두 분께 수락받고 날아갈 것 같았다.

2015년 데뷔해 그간 해외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단편 <코피루왁>을 비롯해, 장편 <그 여름>, 이번 <이 별에 필요한>까지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왔다. 국내에서 특히 상업 장편 애니메이션이 성공하기 힘든데, 지난 10년 사이 업계 흐름의 변화가 있다면.
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오리지널 상업 영화가 나오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어떻게 보면 국내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오리지널 작품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제작하시는 분이 있고 희망적인 부분도 많다는 생각이다. 이전에는 국내에서 일본이나 미국의 하청 작업을 주로 해왔었다. 그런데 이런 하청기업들이 기획력이 생기고, 대학에서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가 늘어나고 또 양질의 헤드 아티스트가 생겨나면서 중소 스튜디오가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점차 직접 제작하는 추세다. 나 역시 아주 소규모의 스튜디오를 꾸린 적도 있고. (웃음) 부티크 스튜디오(작은 규모의 개성 있는 예술 활동을 하는 스튜디오) 좀 더 키치하고 독보적인 기획력을 지닌 젊은 스튜디오가 생기고 있다. 이번 공동제작사인 레드독컬처하우스도 기존의 하청 위주의 스튜디오와는 다르게 기획력을 갖춘 곳이다. 한국도 기획이나 오리지널리티를 갖춘 작업이 가능해진 점이 변화라 하겠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목표는 무얼까.
나름의 목표는 계속 한국적인, 한국적인이라는 표현이 좀 어색하긴 하다. (웃음) 나만의 방식으로 나 답게 이야기를 담고 싶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본 만화 주인공 ‘짱구’가 알고 보니 ‘신노스케’ 일 때 느꼈던 괴리감이 없는 한국 작품을 만들고 싶다. 이번 <이 별에 필요한>은 보면서 그런 어색함이 없어서 반가운 부분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영향을 준 감독이 있다면. 또 롤모델은 어떻게 되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감독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입체적인 표현은 지브리 스튜디오, 대학 때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을 보고는 배경의 리얼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와 음악의 조합이 정말 세련된 <카우보이 비밥>,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최고로 힙한 작품이다. (웃음) 롤 모델은 식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다. 지브리 혹은 하야오 감독님에 대해 매우 많은 분이 알고 있고, 작품들이 둥글둥글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특이하고 개성이 강한 작가주의적인 작품이 많다. 본인의 개성을 한평생 추구하면서 스튜디오를 열어서 동료들과 함께 오랫동안 작업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인 것 같다.

한구에도 픽사나 지브리 같은 스튜디오가 배출될 수 있을까. (웃음)
나오면 너무 좋겠다. 이들은 함께 작업한 파이프라인을 유지하고 그다음 작업으로 이어지지 않나. 개성 있는 비주얼을 가지고 창작자와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간다. 합을 맞춰 성숙해 가는 일이 한국에서는 아직은 힘들 것 같지만, 언젠가는 이런 문화가 정착되지 않을까.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클라이맥스와 함께 차기작을 시작했다. <이 별에 필요한>이 맑고 깨끗한 느낌이라면 차기작은 좀 더 장르적이다. 크리처도 나온다. (웃음) 그래도 캐릭터의 내면에 대한 깊이나 이야기는 <이 별에 필요한>과 비슷하다. (쌍둥이) 언니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데 눈여겨볼만한 독특함이 있다. 비주얼이 세면서 키치한 매력이 있고 힙한 미감을 지녔다. 차기작에는 언니도 참여할 것 같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5년 6월 12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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