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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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떻게 저런 연기를 했을까 싶어요.” 912만 명을 동원한 <엑시트> 이후 여름 성수기를 다시 찾은 배우 임윤아의 틀을 깬 연기 소감이다. 신작 <악마가 돌아왔다>에서 밤마다 내면의 악마가 깨어나는 캐릭터 ‘선지’를 연기했다. 낮의 선지(낮선지)와 밤의 선지(밤선지), 180도 다른 두 얼굴을 오가며, 과감하고 크고 과장된 연기로 볼수록 매력적인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소화해냈다. 낮선지를 파스텔 톤, 밤선지를 비비드 톤에 비유하는 임윤아를 만났다. “낮선지가 평소의 텐션이라면 밤선지는 친한 사람과 있을 때의 텐션"이라며 두 모습 모두 자신의 안에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과장된 오버 액션이 쑥스럽지 않을 정도로, 연기하는 동안만큼은 선지에 푹 빠져 있었다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먼저 <악마가 이사왔다>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살짝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웃음)
어제 처음 영화를 봤는데, 촬영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따뜻함과 감독님의 감성이 작품 속에 잘 담겨 있어서, 관객의 입장으로도 재미있게 봤다. 내가 연기한 장면을 보고 울었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밤선지의 마음으로 ‘길구’(안보현)를 바라보던 감정이 떠올라서 순간 뭉클했던 것 같다.
낮선지와 밤선지는 180도 다른 얼굴인데 이를 어떻게 접근해 나갔는지.
밤선지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면 낮선지는 이를 감추는 편인데 그렇다고 낮선지가 마냥 내성적인 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그 표현이 밤선지 만큼 적극적이지 않을 뿐이다. 낮선지, 밤선지 모두 길구를 애정하지만 그 결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밤선지에게 길구는 자신의 전부를 알고 있는 단 한 사람,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진심으로 불러주길 바라는 유일한 존재다. 이성애를 넘은 다른 형태의 애틋한 관계성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낮선지는 길구와 보다 이성적이고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밤선지는 캐릭터성이 강한데 비해, 낮선지는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해 보일 수 있어 이 부분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낮선지는 파스텔톤 밤선지는 비비드한 원색톤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밤선지가 더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다. 밤선지가 워낙 화려하고 과감한 캐릭터라 낮선지가 상대적으로 조용해 보일 수도 있지만, ‘길구’의 존재로 인해 두 캐릭터 각각이 온전한 인물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길구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낮선지가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다. 자신과 비슷한 결을 지닌 길구를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낮선지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낮선지는 꿈을 향해 나아가며 성장하는 캐릭터라, 밤선지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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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1인 2역을 연기한 셈인데, 연기하면서 어렵지는 않았나.
캐릭터가 극명하게 다르다 보니, 한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밤선지의 경우, 감독님이 그려 놓은 확고한 비주얼이 있었다. 밤선지를 보며 한편으로는 찡한 마음이 들었으면 했고, 또 스무살이다 보니 어린이 같은 모습이 비치기를 바랐다. ‘나 악마야!’ 할 때도 자기방어적인 모습에서 나오는 아이 같은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악마’라는 단어 때문에 무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밤선지는 악마처럼 코스프레하는 것에 가깝다. 호랑이처럼 무서운 악마가 아니라 아기 고양이처럼 귀여운 악마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웃음)
밤선지를 연기하면서 어떤 해방감도 느꼈을 것 같다. (웃음) 낮선지와 밤선지 중 본인과 좀 더 닳은 선지는 누구인지.
밤선지는 그동안 연기했던 인물들 중 가장 과감하고 에너지 넘치는, 과장된 모습이었다. 스스로도 갇혀 있던 틀을 깨고 나온 느낌이 들더라. 나의 한계를 깨고 나니, 더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기도 하다. 낮선지와 밤선지 모두 내 안에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평범하게 대화할 때의 나는 낮선지에 가깝고,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의 높은 텐션의 나는 밤선지와 그 모습이 닮았다. (웃음) 물론 평소에는 표정을 (밤선지처럼 그렇게) 거침없이 드러내진 않지만, 한 번 웃음이 터지면 비슷한 톤의 웃음이 나오는 등 밤선지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밤선지의 괴팍성을 드러내기 위한 표정 연기도 좋더라. 얼굴 근육까지 연기한 듯!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떻게 저런 연기를 했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웃음) 쑥스러워하지 않고 연기한 건 그만큼 선지라는 캐릭터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선지가 악마로 변했다가 돌아오는 모습을, 그 이상 어떻게 다른 표현으로 보여줄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임윤아가 저런 표정도 짓는 배우구나'라는 시선으로 봐주시면 정말 좋겠다.
밤선지가 애정하는 ‘폼폼쉬폰’은 감독님이 직접 만든 제품(?)이라고. 또 한강에도 직접 뛰어들었는데 비하인드가 있다면.
맞다, PPL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감독님이 직접 구상해서 탄생한 빵이다. 이름까지도 직접 지으셨다. 정말 맛있어서, 여러 번 먹는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한강 씬의 경우 한 번에 촬영을 마쳐야 했기에 미리 수중 촬영하는 장소에 찾아가서 뛰는 폼, 타이밍, 카메라 구도 같은 걸 감독님과 스탭들과 여러 번 연습했었다.
밤낮으로 함께한 안보현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영화 속 길구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지 않나. 그만큼 길구를 정말 잘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길구라는 캐릭터가 참 따뜻하게 다가왔고, '길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처럼, 길구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낮선지와 밤선지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안보현 배우는… 그간 강인한 캐릭터를 연기해 왔지만, 순박한 모습도 잘 어울릴 거로 기대했는데 역시나 기대 이상이었다. 처음 리딩할 때부터, 그리고 첫 촬영 때 길구의 의상과 대사 한마디만 봐도 '길구는 정말 이렇게 말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외적으로도 선지를 지켜주는 듬직한 모습이 시너지를 냈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안보현 배우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역할인 것 같다.
공교롭게도 전작 <엑시트>(2019) 때와 마찬가지로 여름 성수기 대목에 관객을 찾는다. 부담감도 있을 것 같다. 또 함께했던 조정석이 이번에는 <좀비딸>로, 동시에 관객을 찾는다.
극장 개봉 시기는 내가 선택하거나 결정할 이슈는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극장을 찾아주는 시기에 걸리게 되었다. 더운 여름에 극장에 와서 시원하게 영화 한 편 보시면 어떨까 한다. 그 중에 <악마가 이사왔다>를 봐주시면 더욱더 좋고. (웃음) 6년 전 파트너였던 정석 오빠와 비슷한 시기에 다른 작품으로 만나게 되어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먼저 개봉한 만큼 잘 이끌어 주고 있어 기분이 좋고, 우리가 잘 따라가면 될 것 같다. <좀비딸>을 재밌게 보신 분이 <악마가 이사왔다>도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다.
<엑시트>에 이어 이상근 감독과 다시 작업하게 된 이유는.
감독님은 항상 사람들 간의 이야기를 잘 포착해서 선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매력이 있는데, 이런 색깔이 이번 <악마가 이사왔다>에 더 짙게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나 에피소드들을 소박하면서도 친근하게 담아내어 좋았다. <엑시트>가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악마가 이사왔다> 역시 그와 같은 지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작품은 상황적인 요소보다는 인물들의 감정선에 더 깊이 파고들어 캐릭터의 이야기를 더욱 진하게 표현했다는 점이 다른 부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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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때만 해도 ‘소녀시대’ 타이틀이 떠올랐다면, 지금은 배우 윤아로 우뚝 선 인상이다. 스스로도 성장한 걸 느낄 것 같은데 어떤가.
경험이 쌓이면서 현장에서의 낯섦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모든 현장은 긴장되고 고민되는 부분이 많다. 이상근 감독님과는 이미 한 번 호흡을 맞춰봤기 때문에, 감독님의 디렉션이나 표현을 더 빠르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텍스트로만 봤을 때는 '이걸 어떻게 풀어내실까?' 궁금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그려내는 방식을 이미 알고 있어서 더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좀 더 깊은 소통과 대화를 통해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를 빠르게 높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원톱으로 끌고 가는 입장이기도 하다.
혼자가 아니라 동료 배우분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감독님께 많이 의지했다. 감독님과 소통하며 선지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엑시트>는 감독님의 데뷔작이고 나 역시 첫 주연작이라, 우리끼리는 ‘데뷔 동기’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웃음) 이런 공감대가 있어서 서로 마음이 잘 통했고, 그만큼 감독님께 더 의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로 어떤 반응을 얻고 싶은가.
음… 측근으로부터 ‘여운이 남는다’는 반응을 전해 들었다. 우리 영화의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것 같아서, 이 반응에 기분이 좋았다. 무언가 따뜻하고 위로받는 느낌, 마음속에 무언가 남는 것이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평소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그간 악역은 하지 않았는데 도전 의향은 .
무언가를 정해두고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중하게 들여다본다. 이번 <악마가 이사왔다>의 경우는 감독님의 색깔과 감성, 매력이 잘 묻어 나와서 좋았다. 악역은 예전에 드라마 <9회말 2아웃>에서 시기 질투하는 소녀 역할은 해봤지만, 각 잡고 악역은 아직이다. 기회가 된다면 도전하고 싶다.
안티도 스캔들도 거의 없이, 20년 가까이 한결같이 좋은 이미지로 활동을 이어오면서 배우로서 성장하고 있다. 비결은 무얼까.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웃음)
그렇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나는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눈앞에 주어진 일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아온 시간이, 지금 와서 보니 잘 걸어온 길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그저 ‘나’답게 원하는 길을 걸어갔을 뿐인데, 잘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것 같다. 원동력은 말씀드렸듯이 ‘끊임없는 관심과 응원’이다. 덕분에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계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
최근 소녀시대 18주년을 맞아, 멤버들이 함께 모였다고. 공개한 근황 사진이 화제다. 혹시 20주년 프로젝트를 기대해도 좋을까.
개인 활동이 많아져서 다 같이 모일 기회가 드물었는데, 얼마 전 티파니 언니의 생일 파티를 겸해 데뷔 18주년 기념 파티를 함께했다. ‘벌써 이렇게 됐나’ 싶으면서도,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18년간 쌓인 끈끈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20주년 이야기도 나왔다. 우리끼리 수다로 ‘20주년에는 어떻게 보낼까’ 했는데, 유리 언니 유튜브를 통해 이 이야기가 나가면서 뭔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게 기정사실화된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 정해진 건 없다. (웃음)
사진제공. SM엔터테인먼트
2025년 8월 14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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