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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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갑·양인자 선생님의 삶과 음악, 그리고 두 사람의 특별한 협업을 담은 다큐멘터리 <바람이 전하는 말>이 관객을 찾는다. 김희갑은 3,000여 곡에 달하는 명곡과 뮤지컬 ‘명성왕후’까지 끊임없이 창작의 샘을 펼쳐온, 한국 대중음악의 품격을 지켜온 거장이다. 양인자는 그의 인생 동반자이자 음악적 파트너로, 통찰력 있는 가사로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과 영감을 불어넣은 대가로 평가받는다. 10여년에 걸쳐 두 거장의 시간을 기록한 양희 감독을 만났다. 음악적 성취와 인간적인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담으면서, 관객이 ‘시간 여행’처럼 과거의 따뜻한 순간을 경험하도록 구성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존경할만한 어른, 삶의 동반자를 담다
“영화 공부하는 남편 때문에 미국에 머무는 동안 저는 소설로 (한국에서) 등단했어요. 귀국 후 팬투어를 갔는데, 그때 양인자 선생님이 오셔서 친해졌습니다.” 한때 MBC ‘우정의 무대’ 등에서 작가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양희 감독은 이렇게 첫 만남을 떠올렸다. 양인자 선생과는 작가 선후배로서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었고, 이 인연은 김희갑 선생 헌정 공연 ‘그대, 커다란 나무’를 기획하면서 점차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김희갑이라는 커다란 나무 아래서 놀고 쉬었다”는 의미로 지은 제목이다.
양 감독은 두 분을 다큐멘터리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할 만한 어른이자 삶의 동반자로 바라봤다고 말한다. 김희갑 선생은 2006년 70세 때 뇌경색과 치매를 앓았고, 2020년에는 재차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혈관성 치매와 난청에도 불구하고, 음악만큼은 이상하게도 들리셨다. “기타곡이나 클래식은 들으셨지만, 다른 사람의 곡은 카피할까 봐 잘 안 들으셨습니다.” 쓰러진 후 양인자 선생은 불안한 마음에 실버타운(노블카운티)에 입주해, 안전하고 정갈한 환경 속에서 생활했다.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제작비 없이, 선생님의 기록을 남기자는 선의로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장소와 장비, 출연료까지 모두 우리끼리 해결해야 했어요. 일이 커지면서 부담도 컸지만, 선생님을 뵐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김희갑 선생이 감독의 남편 허욱 감독을 향해 “허 서방, 왔어?”라고 인사할 때면,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 양인자 선생이 자신들의 노화와 소멸 과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해서, 1년 6개월간 촬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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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과 추억이 흐르는 화양연화
영화는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김희갑-양인자 콤비의 대표곡 ‘킬리만자로의 표범’ 공연 영상으로 문을 연 첫 파트는, 이후 1.4 후퇴 당시 평양에서 대구로 내려와 처음 기타를 잡고 미 8군 무대에 서게 된 김희갑 선생의 사연을 소개한다. “두 분은 조용필 공연은 따로 티켓을 구해 항상 관람하셨어요. 영화 오프닝 공연은 두 분이 마지막으로 관람한 2023년 공연입니다.” 마침, 당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앵콜곡으로 연주됐고, 객석에서 울려 퍼지는 연호 속 전주가 시작되는 순간을 감독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조용필의 1985년 8집 앨범 수록곡으로 두 선생의 협업이 빚어낸 걸작. 당시 파격적인 '독백(내레이션)과 노래, 포효'의 결합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양인자 선생은 그 가사에 대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두 번째 파트는 김희갑 선생의 음악을 연대기적으로 다루며, 가수들이 함께한 화양연화를 보여주며 관객의 향수를 자극한다. 마지막 파트에서는 에너지가 넘치는 공연과 임희숙, 혜은이 등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연출이 이어진다. 또한 두 선생과 최고의 호흡을 보여온 조용필의 인터뷰도 담겼다. 쉽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러 차례 문을 두드린 끝에 성사할 수 있었다.
“사실 조용필 인터뷰는 영화제 버전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개봉 버전을 준비하며 1년 이상 연락을 시도했고, 결국 김희갑 선생의 딸을 통해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감독이다. “김희갑 선생 중심의 영화라, 조용필 선생의 인터뷰는 필요한 만큼만 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한마디가 영화의 결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김희갑과 양인자, 두 거장의 협업은 약 300곡에 달한다. 상호 존중에 기반한 이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본 양희 감독은 말했다. “김희갑 선생이 만든 곡을 양인자 선생께 드리면, 마음에 들면 가사를 붙이고, 그렇지 않으면 서랍 속에 넣어 두셨어요. 마찬가지로 양인자 선생이 가사를 주면 김희갑 선생이 곡을 붙였는데, 그냥 서랍 속에 남겨둔 가사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웃음) 완성되지 못하고 서랍 속에 묻힌 선율과 노랫말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또, 양인자 선생이 다른 작곡가의 노래에 가사를 붙이며, 김희갑 선생이 슬며시 ‘나도 곡 있는데…’ 하고 말씀하셨다는 일화를 전한다.
한편, <바람이 전하는 말> 언론시사회에서 양인자 선생은 젊은 세대가 자신의 음악을 자유롭게 불러주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감독에 따르면 “양인자 선생은 2차 저작권 관리 회사와 계약했지만, 그 세부 사항은 잘 모르셨어요. 나중에 전해 듣고 ‘그렇게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느냐’고 놀라셨죠.” 양인자 선생은 “노래가 오랫동안 회자되려면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낫다”며 자녀들과 상의해, 2차 저작권 걱정 없이 무료로 불러도 좋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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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당신 속상해도, 인생은 따뜻한 거야
영화 제목 <바람이 전하는 말>은 단순한 노래 제목을 넘어, 양인자 선생이 남기고 싶은 메시지에서 비롯됐다. “어느 날 양인자 선생님께서 ‘당신은 이미 유언을 남겼다’고 말씀하시면서, 노래 속 ‘착한 당신 속상해도, 인생은 따뜻한 거야’라는 구절을 이야기하셨어요.” 영화에는 실제 노래가 수록되지 않았지만, 가사의 일부를 챕터 제목으로 활용해 의미를 담았다.
두 선생의 인품 또한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를 구성한다. “두 분은 여전히 서로 꿀이 떨어지듯 친밀하고, 서로를 존중해요.”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운전하지 못하는 양인자 선생을 위해 김희갑 선생이 자청해 기사를 맡았다는 일화가 이를 보여준다. “김희갑 선생님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주저하지 않고, 열정적이세요. 70대에도 스키, 산악자전거, 골프에 몰두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 올리셨어요.” 이러한 열린 자세가 바로 그의 작곡 원동력이자 원천인 것 같다는 양희 감독이다.
또한 “김희갑 선생은 분재만 봐도 얼마나 예민한 분인지 알 수 있어요. 단 누구에게도 까탈을 부리진 않으세요.” 조용필 선생과 공유한 분재 취미 이야기를 전하며, 선생이 일주일 동안 분재를 가져와 가꾸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던 세심한 일화도 소개한다. 양희 감독은 “한번은 분재 뒷면을 보고 계시길래 의아해했더니, ‘쟤가 이쪽을 좋아해요’라고 하시더군요. 분재의 입장에서 위치를 잡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라고 전한다.
“인터뷰에 응한 가수분들이 모두 즉석에서 라이브해 주시는데, 얼마나 뭉클했는지 몰라요.” 양희 감독에게 영화의 가장 기쁜 순간이기도 했다. 감독은 “관객이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고, ‘찬란하고 애틋한 시간’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고 취지를 전한다. 이번 작품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와, 음악이 사람에게 전하는 따뜻한 기억과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노래를 듣는 관객이 자신만의 시간으로 돌아가 그 시절의 따뜻함을 느낀다면, 영화의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된 것”이라고 말한다.
양희 감독은 <바람이 전하는 말>을 계기로, 미8군 음악에 관한 차기작도 준비 중이다.
사진제공. 판씨네마㈜
2025년 11월 4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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