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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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김은 오래가지 않아요.” 잘생김이 하나의 무기임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로 경쟁력은 아니라는 로운이다. 그간 ‘아이돌 출신 비주얼 배우’로 손꼽히던 그가 디즈니+ <탁류>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경강을 장악한 왈패들과 맞설 만큼 출중한 무력, 주변을 챙기는 따뜻한 심성, 그리고 정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의로움까지. 로운은 ‘장시율’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전에 본 적 없는 거칠고 투박한 얼굴을 보여준다. “로운 맞아?”라는 놀라움이 터져 나올 정도다. 20대의 끝자락에서 만난 <탁류>는 그에게 연기 인생의 변곡점이 된 작품이다. 점처럼 흩어져 있던 연기 여정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졌고, 자신의 연기 취향을 또렷이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전역 후엔 너무 섹시할 것 같아요.” 지난 10월 27일 입대한 그가, 밝힌 군대 이후의 기대감이다. 스스로 생긴 여유감과 자신감으로, 도장 깨듯이 하나하나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포부다. 영어 공부를 해서 할리우드 진출도 노린다. 무엇보다 “사람이 주는 기운을 믿기 시작했다”는 그는, “주변에 좋은 인상과 기운을 주는 섹시한 사람이 되고 싶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디즈니+ <탁류>가 호평 받았다. 기존 비주얼 이미지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왈패들 사이에서 ‘훤칠함’은 숨길 수 없더라. (웃음)
2년 만의 작품이라 설레기도 하고, 함께 고생한 동료들을 떠올리면 기대가 컸었다. 대중의 반응이 가장 궁금했는데,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할 따름이다. 훤칠해 보였다는 말씀도 기분이 좋다. (웃음) 연기라는 게 전공자라서 잘하는 것도 또 비전공자라도 못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번에는 추창민 감독님과 천성일 작가님, 그리고 좋은 동료들 덕분에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감독님께서 바로바로 피드백을 주셨고, 함께하는 배우들끼리 서로 긴장감을 유지해 주었다. 한 번은 지환 형이 ‘너 긴장 풀렸지?’ 하는 데 창피하면서도 너무 고마웠다.
<탁류>에 관한 반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을 꼽는다면.
‘로운인 줄 몰랐다’는 말이다. 나를 ‘시율’이라는 캐릭터 자체로 봐주셨다는 것 아닌가! 고등학교 친구들이 예전에는 ‘너무 각 잡고 나와서 낯간지러워서 못 보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단숨에 5화까지 봤다고 하기도. 또 엄마가 ‘김석우(로운 본명)가 안 보였다’고 좋아하셨다.
드라마 <연모>, <혼례 대첩> 등 꾸준히 사극을 해 왔는데 이번에는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탁류> 대본을 읽고 ‘이런 작품이 드디어 나한테 오나!’ 싶으면서 너무 신나더라. 그전까지는 주로 ‘꽃도령’ 같은 이미지가 많았다. 메이크업도 뽀얗게 하고 립스틱도 바르던 내가, 이렇게 거칠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날 줄이야! ‘누군가는 나를 보고 있었구나’ 싶으면서 뿌듯했다. 마침 ‘아무도 날 봐주지 않나’ 싶어 외로운 시기라 더 기뻤다.
‘잘생김을 벗어던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잘생김은 오래 가지 않는다. 물론 하나의 무기임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외모를 넘어 연기력으로 평가받고 싶다. 그러던 차 만난 작품이 <탁류>라 반가울 수밖에! 이번엔 비단옷이 아닌, 거친 누더기 같은 옷을 입으니까 오히려 편하더라. 길바닥에 그냥 앉아 있으면 되니 말이다. (웃음) 실내 촬영이 거의 없고 90% 이상이 로케이션이었는데, 식사할 때도 밥차 테이블이 다 차면 그냥 길가에 앉아 먹는 식이었다. 비단옷을 입을 때는 늘 조심해야 했거든. 잘 보시면 알겠지만, ‘시율’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의상이 단 세 벌뿐이었다. 중간에 바꿔 입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냥 세 벌로 밀고 갔다.
‘시율’은 과묵한 인물로 대사가 별로 없어서 표현하기 힘들진 않던가. 자신의 어느 면을 끌어내려 했는지.
테스트 촬영하면 보통 의상이나 조명을 살피는데, 이번에 감독님께서 ‘네 안에 무언가를 담아보라’고 하셨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그 표정이 좋았다고, 텅 빈 사람 같은 느낌이 좋다고 하시더라. 그때부터 시율이란 인물이 잡히기 시작했다. 시율은 결핍, 특히 사랑에 대한 결핍이 큰 인물이다. 겉으로는 차갑고 무심하지만, 속으로는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다. 이름도 돌아갈 집도 없는 인물이라 껍데기 같은 질감을 내고 싶었다. ‘외로운 늑대’의 이미지로 접근했었다. 누구나 굴곡이 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정이 있지 않나. 내 안에도 외로움이 있는데 이번에 이를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스물여덟 살의 로운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매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루의 촬영을 끝내면서 매번 ‘맛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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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창민 감독께 당신을 캐스팅한 이유를 혹시 여쭤봤는지. (웃음) 추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나 심성 고운 놈 아니오’라는 대사가 너무 좋아서 꼭 하고 싶었다. 감독님께서는 처음엔 나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하셨다. 근데 미팅 자리에서 내 태도를 보고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하셨다. 감독님은 정말 섬세하시다. 한 장면의 바스트샷만 10번을 찍을 정도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그만큼 공을 들이신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현장이었고 덕분에 여러 감정을 담을 수 있었다. 사실, 촬영 전부터 워낙 꼼꼼하신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내가 이 현장을 즐길 수 있을지 고민도 됐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재미있었다. 배우의 의견을 진심으로 들어주시는 분이다. 연기하다가 우발적인 감정이 나오면, 이를 반영해 씬을 수정해 주기도 하셨다. 예를 들면 시율이 ‘덕개’(최영우)와 싸운 뒤 웃는 장면이 있다. 허탈함, 쓸쓸함, 체념이 섞인 미묘한 웃음인데, 처음엔 시나리오에 없었다. 감독님이 내 감정을 보고 추가하셨다.
<탁류>는 경강 나루터를 둘러싼 왈패들의 치고 박고 하는 이야기인데,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는 아니다. 참고한 자료가 있다면.
일단 감독님께서 정말 탄탄한 레퍼런스를 주셨다. 예전에 선교사들이 찍은 영상부터 마포 나루터의 역사자료까지 매우 다양한 자료였다. 대신 기존의 ‘깡패 영화’는 보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껏 보여온 드라마와는 ‘다르게 가자’는 게 감독님의 확고한 방향이었다.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시율이라는 인물은 불가능했을 거다. 정말 은인 같은 분이다.
액션 준비도 만만치 않았겠더라. 이렇게 본격적인 액션은 처음 아닌가.
무술감독님이 ‘액션 콘티는 최소화하자’ 고 하셨다. 정제된 무술이 아닌, 속칭 ‘개싸움’ 같은 리얼함을 원하셨거든. 잡히는 대로 던지고 부닥치고 하는 식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진짜 싸움 같았다. 화려함 대신, 정말 그 시대의 그 공간에서 싸우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아이돌 시절 배운 춤이 많이 도움이 됐다. 무술 감독님이 ‘춤 같아 보인다’고 하실 정도였다. 몸의 리듬과 타이밍을 활용해 열심히 액션 준비를 했었다.
처음엔 왈패들과 맞서던 시율이 ‘무덕’(박지환)과 함께하면서 그들을 개선시키려 노력하지 않나. 시율의 변화를 어떻게 봤는지.
시율은 처음에는 왈패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매도 맞고 싸우면서 상처도 입지만, 함께 지내면서 그들이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에 ‘한 식구’가 되는 거지.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매우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시율이 그 무리 속에 들어가 밥상 앞에 앉는 것 자체로 큰 변화라고 생각했다.
‘무덕’과는 끈끈한 형제 같은 애정을 보이지 않나. 박지환 배우를 비롯해 왈패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초반에 시율의 대사가 많지 않은데, 지환 형을 필두로 왈패 형들이 세계관을 정말 맛있게 만들어 주었다. 현장에서 서로 주고받으면서 대본보다 극이 훨씬 풍성해졌다. 그분들 덕분에 극이 살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환형은, 시를 사랑하고 걷는 걸 즐기는 예술가시다. 덕분에 감수성이 한층 풍성해졌다. 형이 구사하는 언어, 추천해주는 책 하나하나가 큰 자극이 됐다. 함께해서 영광이었고 또 같이하고 싶다. 좀 쑥스럽지만, 감독님과 지환 형은 내게 정신적 지주와 같았다.
시율과 죽마고우인, ‘정천’역의 박서함 배우는 당신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크게 칭찬하던데. (웃음) 또 주연으로서의 부담감도 컸을 것 같다.
주연으로서 뭔가를 하기보다, 현장에선 ‘에너지’ 담당이었다. 지쳐 있으면 다른 사람도 지칠 것 같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배우들이 자기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거든. 서함 형이 ‘다치지만 마라’고 어깨를 두드려줬는데 그 말이 오래 남는다. 서함 형은 <탁류>가 전역 후 첫 작품이라 부담이 컸을 텐데,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참 순수하고 따뜻한 형이다. 계속 무언가를 주려는 모습이 좋았다. 또 ‘최 윤’역의 예은 씨는 정말 에너지가 엄청났다. 2화 초반 시율이 윤에게 품 삯을 달라며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고민이 많았는데 예은 씨의 연기를 보면서 ‘답이 보인’ 느낌이었다.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자기 길을 잘 아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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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촬영 끝낸 후 ‘맛있다’고 했다고 했는데, <탁류>를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음, 시원하고 뜨거운 탕 같은 느낌이다. 뜨겁고 거칠지만, 결국에 시원한 맛이 있는 작품이다.
<탁류>가 배우 로운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시간적 여유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느낀 작품이다. 내가 좋아하는 연기의 결을 조금은 찾은 것 같다. 완벽은 없겠지만, 완벽에 가까워지는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었다. 또 내 연기 인생의 변곡점일 것 같다. 예전에 어느 팬 분이 ‘점만 찍으며 가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선이더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 말처럼 내 연기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시작점이 될 것 같다.
20대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면.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던 시절도 있었다. 한 번은 (이) 현욱 형이 ‘너가 하면 너의 역할이지, 왜 비교하냐’고 해줬는데 그 말 이후로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도 했다. 이제는 스스로를 조금 더 위하게 된 것 같다. 30대에 지금보다 더 여유와 믿음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입대가 미뤄지는 바람에, 이렇게 인터뷰 자리가 마련됐다. 군 복무 이후의 로운은 어떤 모습일까. (웃음)
원래 지금쯤 자대배치를 받고 있어야 했다. 일정이 바뀌어 아쉬웠는데 덕분에 작품 홍보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다. 신이 주신 선물 같다. (웃음) 엄마 밥 덕분에 살이 많이 올랐다가 지금은 좀 뺀 상태인데,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행복해 보인다고 하더라. 전역 후에는 너무 섹시할 것 같다. (웃음)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여유가 생겨서, 하나하나 도장 깨듯이 살아갈 것 같다. 일단 입대해서는 기본 훈련도 열심히 받고 또 여가 시간엔 영어를 배우려 한다. 글로벌 진출 욕심이 있거든. 할리우드에 너무 가고 싶다! 그리고 주변에 좋은 에너지를 전하는 ‘섹시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25년 11월 8일 토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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