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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은 최소화, 공포는 극대화”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이정림 감독
2025년 12월 10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성별을 불문하고 불편한 노출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누가 보고 싶어할까 고민했죠.”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로 첫 시리즈 연출에 도전한 이정림 감독의 말이다. 김태리, 김은희 작가와 함께한 드라마 <악귀>로 호평을 받은 그는 이번 작품에서는 시선을 가정 폭력 문제로 돌렸다.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선명한 주제의식을 장르적으로 풀어내며, 장르성과 작품성 모두를 잡았다고 평가받았다.

이정림 감독은 장르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시청자가 폭력 남편을 살해하는 두 친구 ‘희수’(전소니)와 ‘은수’(이유미)를 응원하도록 서사를 쌓아 올렸다. 살인이라는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두 인물의 처지와 행동이 설득력 있게 전달되도록 감정을 단계적으로 빌드업한 것이다. 감독은 “어쩔 수 없이 느끼는 불편함이 있더라도 이를 최소화하고, 두 친구가 느끼는 공포를 최대화해 시청자들이 함께 분노하길 바랐다”고 말한다. 또한 트라우마를 가진 시청자가 조금이라도 덜 고통받도록, 폭력에 대한 어떤 스테레오타입도 피하려 노력했다. 신중한 접근을 통해, 가정 폭력 문제와 사회적 인식을 다시 환기했다.

# 작품의 의도가 통한 것 같아 다행

<당신이 죽였다(As You Stood By)>를 공개한 직후, 이정림 감독은 여전히 잔잔한 파문 속에 서 있었다. “어제 출근했는데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평소 잘 안 하시는데, 8부까지 다 보셨다면서 울며 너무 슬프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은 그 순간을 떠올리며 조용히 웃었다. 토요일에 만난 친정엄마도 새벽에 정주행을 끝냈다며 작품 속 희수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70대 분들께도 괜찮을까 싶으면서도 기뻤어요. 아직도 떨리고, 반응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기에는 제가 좀 새가슴이라, 주변에서 들려주는 좋은 말로 버티고 있습니다.” (웃음)

SBS 소속으로 드라마 <황후의 품격>, < VIP >, <악귀> 등을 연출한 이정림 감독이다. <당신이 죽였다>는 처음으로 연출하는 OTT 시리즈인데, 표현의 자유는 어느 정도였을까. 감독은 현장에서 여러 장면마다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진표가 죽는 장면도 그렇고요. 19세 관람가를 예상하며 촬영했고, 무엇보다 희수나 은수가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도록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셨어요. 법적 제약이나 흡연 장면도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었고요.”

장르적 긴장감과 메시지의 균형 또한 중요한 과제였다. 감독은 은수와 희수의 삶을 먼저 충분히 보여줘, 시청자가 그들을 응원하게 만드는 흐름을 의도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 뒤에도 살아가야 하는 인물들이잖아요. 과격한 표현이 있더라도 시청자가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했습니다. 2부에서 희수가 당하는 장면은 길게 표현했지만, 신체 접촉 등 불필요한 노출은 최대한 줄였어요.”

# 가정폭력은 개인 서사가 아닌 사회 문제

극 중 여성 캐릭터들이 지닌 주체성에 대한 질문에서, 감독은 ‘영웅화’보다 ‘현실’을 먼저 꺼냈다. “은수와 희수는 정말 보통 사람이에요. 완전범죄에 성공해 떠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상황을 어떻게든 무마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들이죠. 주변에서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결국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모습이 그들의 단단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제안을 받았을 때의 마음도 선명했다. 감독은 이미 오래전 원작 소설을 읽었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두 여성이 가정폭력을 벗어나는 이야기였어요. 영상화 소식을 듣고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런데 막상 준비해보니 쉬운 작품은 아니더라고요.”

제목에 담긴 의미도 단순하지 않다. “영어 제목인 ‘As You Stood By’, ‘당신이 죽였다’는 서로 다른 느낌이지만 결국 모두의 시선이 들어 있어요. 은수와 희수뿐 아니라 방관자까지 ‘당신’ 안에 포함됩니다.” 이는 감독이 이 이야기를 단순히 가정폭력 피해자의 서사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기 바랐다는 의도와 맞닿아 있다.

소품에는 미세한 장치들이 숨어 있다. “신혼여행 때 구입한 행복을 상징하는 스노우볼은 오프닝과 연결되고, 8부는 조각 맞추기처럼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배치했어요. 시계 소리는 각 인물에게 압박감을 주는 장치고요. 마작 패는 진소백이 인물들을 이해하는 동시에 긴장을 풀어주는 소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캐스팅 기준을 묻자, 감독은 가장 먼저 두 여성 배우의 얼굴을 떠올렸다고 한다. “전소니 배우는 은수와 비슷한 단단함과 곧은 심지가 있어요. 이유미 배우는 희수의 내적 강함을 교차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고 봤고요. 이호정 배우는 악역 노진영의 무표정 속 심리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두 주인공이 피해자이자 생존자라는 점에서 비롯됐다. “스테레오타입이 되지 않도록 조심스러웠어요. 매니큐어 하나까지도 캐릭터에 맞는지 논의하며 현장을 운영했죠. 누군가의 상처가 될까 늘 걱정했습니다.”

# 창작자의 태도를 다시 고민하다

이 작품은 감독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스스로 대견하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는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창작자로서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많은 고민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뭐를 하고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더 깊게 마주하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차기작을 묻자, 그는 짧지만 확실한 계획을 전했다. “<닥터 X: 하얀 마피아의 시대>를 김지원 배우와 함께 내년 편성을 목표로 준비 중이에요. 하반기쯤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5년 12월 10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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