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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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 월화드라마 <아너: 그녀들의 법정>(이하 <아너>)은 과거의 거대한 스캔들에 정면으로 맞서는 세 여성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 첫 방송부터 ENA 역대 월화극 최고 시청률로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은 이 드라마는, 탄탄한 서사를 바탕으로 최고 시청률로 종영하며 ‘웰메이드 법정 드라마’라는 수식을 얻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사건의 마디마디를 흔들며 문을 여는 저돌적인 변호사 ‘현진’이 있다. 이청아는 스스로를 "작품에 대한 빠른 이해를 장점으로 삼는 배우"라 말하며, 박건호 감독이 던진 ‘어떻게(How) 대처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붙잡고 현진이라는 인물을 현실감 있게 완성했다. 특히 그는 해외 여행 중 암스테르담의 한 카페에서 대본을 읽다 즉흥적으로 떠올린 내추럴한 헤어스타일과 일상적인 의상을 제안하는 등 캐릭터의 디테일을 직접 빚어냈다. 완벽하기보다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다하려는 인간적인 인물, ‘현진’을 단단하게 완성한 이청아를 만났다.
첫 방송부터 화제를 모으며 자체 최고 시청률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종영 소감은.
촬영이 끝나고 방영까지 보통 텀이 있는 편인데, 이번에는 촬영과 방영이 맞물려 연이어 진행되다 보니 아직 끝났다는 느낌이 잘 안 든다. 어제 이나영 언니가 인터뷰의 첫 스타트를 끊었고, 오늘 내가 하고, 나중에 은채까지 인터뷰를 마쳐야 정말 끝났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엊그제 마지막인 12화를 보고 바로 인터뷰를 하니 마치 예전 신인 때 인터뷰하는 기분도 들고 묘하다.
세 친구 중 가장 마지막으로 작품에 합류했다고.
6화까지 받고 들어갔다. 해외 여행 중 암스테르담 카페에 앉아 세 시간 만에 읽었는데, 그 자리에서 매료됐었다. 평소 준비 시간이 많이 필요한 편이라, 늦게 합류한다는 데 조바심이 컸었다. 다른 분들은 이미 캐스팅되어 준비가 끝났을 텐데, 나는 들어가면서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반부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박건호 감독님을 만날 수밖에 없었고, 감독님이 들려주신 주제 의식에 홀린 듯 참여하게 됐다. (웃음)
세 친구가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인물이 아니라서 더 입체적으로 보이더라. 특히 ‘현진’이 실수하고 자책하면서도 직시하는 모습이 그렇다.
단순한 선악 구도로 나눌 수 없는 인물들이라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원작을 그대로 가져왔다면, 국내 정서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과감한 설정이 부럽기도 했다. 팬층이 두터운 드라마일수록 주인공의 도덕적 흠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완벽한 인간은 없고,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한다. 그런 인물을 통해 시청자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실수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최대한 흠 잡히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 배우로서도 점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쪽으로 훈련되어 왔기 때문인데, 이런 면에서 ‘현진’이라는 캐릭터는 오히려 나보다 더 용감한 인물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괴로워하며, 사과하고 끝까지 책임지려 하지 않나. 처음에는 이 캐릭터를 관객이 납득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았지만, 작업을 이어가면서 점점 이해하게 됐다. 연기하면서 ‘이 인물을 내가 책임지고 설득해보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
세 친구 중 현진은 유독 사건을 밀어붙이는 에너지가 강해 보인다.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는지.
사실 현진은, 내 시선 안에서 이해하려고 하니 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 발 물러나 ‘이 인물이 왜 세 친구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지’, 그리고 ‘제작진이 왜 나를 선택했는지’를 고민했다. 그러면서 이 캐릭터가 사건의 문을 여는 인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건을 흔들고, 판을 열어주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더 과감하게 움직여야겠다고 판단했다. ‘라영’(이나영)과 ‘신재’(정은채)가 지키는 인물이라면, 현진은 맘껏 흔들고 찌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역할이어야 했다. 그렇게 방향을 잡고 나니 캐릭터가 훨씬 선명해졌다. 다만 캐스팅이 늦어 준비 시간이 길지 않은 데다 초반 분량이 많고 거기다 액션까지… 부담되더라. 그런데 박건우 감독님이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씀해주셨다. 인물의 행동 이유에만 매달리기보다, 그 행동을 어떻게 구현할지에 집중해보라는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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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현진’이 가장 호감 캐릭터였다. 제일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이다. (웃음)
정말?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호감의 근간은 현진의 ‘연약함’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동안 내가 해 온 캐릭터가 주로 카리스마 있는 빌런 혹은 재벌 사모님처럼 거리감이 느껴지는 ‘멋진’ 인물이었다면, 이번 현진은 “너 왜 그러냐” 하며 품어주고 싶은 동정심을 자극하는 것 같다. 완벽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사과하고 책임지려는 모습이 시청자의 마음에 닿지 않았을까.
묵직한 주제의식에 드라마가 잠식될 수도 있는데, 세 친구의 각기 다른 매력이 극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 같다. 스타일리쉬하더라. 특히 ‘현진’은 셋 중 가장 친근한 캐릭터고, 이런 면을 스타일링으로 잘 살렸더라.
바로 그 지점이 중요했다. 일상에 닿아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전작 넷플릭스 <셀러브리티>(2023) 때는 의상이 캐릭터의 지위나 층위를 나타내서 일일이 컨펌을 받아야 했지만, (웃음) 이번에는 내 평소 옷도 많이 활용했다. 잘 보면 같은 바지를 여러 상의와 매치해서 입고, 백팩과 운동화를 주로 신는다.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가 된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헤어스타일도 암스테르담 여행 중 대충 묶고 땋고 다녔던 그 모습 그대로를 감독님께 제안했는데 의외로 좋아하셨다. 부풀어 오르는 곱슬머리 설정까지 팀들과 재미있게 만들어갔다.
극 중 드러나지 않았지만, 상상해 본 전사가 있을까. 가령, 세 친구의 현재를 있게 한 과거의 어떤 사건 이후 어떻게 지냈을지 등.
나만의 설정인데, 과거 라영의 사건을 겪은 이후 세 친구의 행보가 갈렸다고 생각했다. 라영은 언론이나 SNS 등을 이용하여 힘을 갖고자 했고, 신재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릴 법률법인을 만들었지 않나. 현진이 현재 주짓수 같은 액션을 자연스럽게 하는 걸 보면,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무술을 배웠을 것 같더라. 게다가 남편은 형사이고 전 남친은 사회고발 기자라, 그녀가 자기만의 정의를 저돌적으로 추구해 왔을 거로 생각했다.
제일 몸을 많이 쓰는 캐릭터이기도 한데 액션 씬을 직접 소화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사실 몸 쓰는 걸 좋아한다.(웃음) 20대 때 영화 <좋은 놈, 이상한 놈, 나쁜 놈>(2008) 촬영 당시 6개월간 액션스쿨을 다니며 승마와 검술을 배웠었다. 아쉽게도 대부분 편집돼 거의 나오지 않지만 말이다! 이번에도 액션을 빨리 습득해야 했는데 무술 감독님이 '아직 죽지 않았다'며 칭찬해 주셔서 즐겁게 했다. 주짓수 합을 맞출 때도 스스로 ‘나 소질 있나 봐’라고 생각하며 신나게 임했다.
20년지기 친구 설정이다. 이나영, 정은채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두 분이 좀 내성적인 편이다. 감독님이 내가 사회성이 좋다며 다리 역할을 기대하셨는데, 사실 나도 내향인이라 처음 만났을 때는 침묵이 이어졌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조금만 이야기해도 진심이 느껴지는 분들이라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고 있다’는 걸 암암리에 느꼈던 것 같다. 다만 며칠 쉬다 오면 다시 어색해져서 “우린 왜 만날 때마다 다시 처음 같냐”며 허무해하기도. (웃음) 촬영이 끝날 때쯤엔 정말 끈끈해졌다.
현진이 친구들에게 혼나는 장면이 많아 서러웠다고 밝히기도. (웃음)
그게 참… 늘 리드하는 위치나 첫째 역할을 주로 맡아왔는데, 이번엔 친구들에게 참 많이 혼났다. 혼나고 나면 정말 서럽더라. 집에서 동생을 많이 혼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웃음). 이건 좀 다른 이야긴데, 현진은 대본에 없는 “새끼”라는 표현을 추임새처럼 쓸 정도로 감정이 풍부하지 않나. 그런데 감독님이 “청아 씨, 한 회에 세 번 이상 쓰면 심의 걸려요”라고 말리시기도 했다. 잘 보면 새끼라는 표현은 거의 현진이 독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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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의 단역 데뷔 후, <늑대의 유혹>(2004)으로 단숨에 샛별로 떠올랐다. 원체 일찍 데뷔해서 업계 사람들과 친분도 깊을 것 같은데 어떤가.
사실 나는 누가 불러주면 열심히 참여하는 편이다. 작품 할 때 마치 ‘프로젝트 그룹’처럼 뜨겁게 친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끝나고 나서도 그 모임을 끈끈하게 이어 나가는 팀들이 있다. 드라마 <라이더스: 내일을 잡아라>(2015), < VIP >(2019), <낮과 밤>(2020) 팀이 그렇다. 이런 경우 대체로 주도하는 분들이 계시다. 20년지기 베프인 배우도 있고, 이 친구는 연출 전공이라 내가 연기 톤을 잡는 데 평소에도 도움을 많이 준다. 또 장나라 언니와도 친하다. 이번에도 작품을 잘 봤다고 연락 주셨다. 예전 < VIP >때가 떠오른다고 하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더라. 뭐랄까 내가 정말 좋아서 하면 작품에서 보이는 것 같다. 이번 <아너> 팀은 단톡방에서 자주 이야길 나눈다. 은채가 ‘언니들~’ 하고 먼저 부르곤 한다.
앞서 박건호 감독에게 ‘홀리듯이’ 작품에 합류했다고 했는데 감독님과 작업해 보니 어떻든가.
감독님은 본인의 그림이 굉장히 확실한 연출자시다. 개인적으로는 설정이나 설명을 많이 들을수록 편안해하는 편인데, 감독님이 동선이나 호흡을 구체적으로 잡아주셔서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신인 배우들이 이런 감독님을 만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해주면서도 설득력 있게 이끌어주는 분이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감독님이 그려놓은 그림을 채워가는 데 집중했다면, 점점 작업이 진행될수록 내 질문에 대한 방향성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납득되지 않는 방식으로 연출이 제시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또, 자연 다큐멘터리를 해오신 촬영 감독님과의 작업 덕분에 풍경 자체에 감정이 담겨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배경이 연기에 영향을 주고, 감정을 더 끌어올려주는 경험이었다.
시즌 2를 암시하는 엔딩에 대해 배우들끼리 나눈 이야기가 있는지. 또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
우리도 대본 나왔을 때 현장에서 “어?” 하고 놀랐다. 그런데 아직 시즌2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다(웃음). 제작사 대표님께 여쭤보니 “좋으면 또 할 수도 있고~” 하시며 말을 흐리시더라.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인 엔딩이라 좋았다. 악이 완전히 사라지기보다는 또 다른 곳에서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드는 것은 결국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싸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존재들의 의미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아너>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의도치 않게 약점을 갖게 되고, 어떤 순간에는 그로 인해 잘못된 방향에 휩쓸릴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악의 고리를 끊어내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당신에게 <아너>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내가 어떤 배우인지 조금씩 더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천재적인 기량은 아니지만, 작품에 대한 이해가 빠르다는 내 장점을 다시금 확인했다. (웃음) 현진을 연기하며 ‘왜’ 보다는 ‘어떻게’에 집중했고, 이 과정이 연기뿐 아니라 내 삶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보다 ‘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 거다. 현진과 <아너>를 통해 얻은 가장 큰 변화이자 배움이다. 또 픽션이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가시화했다는 것만으로도 배우로서 참여한 의미가 충분했다. 내 삶을 반추하며 나아갈 힘을 얻게 된 소중한 작품이다.
사진제공. 매니지먼트 숲
2026년 3월 30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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