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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와 상징으로 빚어낸 믿음, 장편 데뷔작 <누룩> 장동윤 감독
2026년 4월 24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믿음’이라는 키워드를 은유와 상징으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에서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 ‘차수열’ 역을 맡아 안방극장에 서늘한 서스펜스를 선사했던 배우 장동윤이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섰다. 카메라 앞이 아닌 뒤에서,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다. 그의 장편 데뷔작 <누룩>은 동네 사람들만 아는 소문난 양조장 집 딸이자 막걸리를 사랑하는 열여덟 소녀 ‘다슬’(김승윤)이 어느 날 변해버린 막걸리 맛의 원인을 찾아 사라진 누룩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누룩’이라는 소재를 통해 단순히 술을 만드는 재료를 넘어,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와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장동윤 감독을 만나 작품에 담긴 깊은 속내를 들어봤다.

배우로 인사할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다를 것 같다. 개봉 소감은 어떤가.
내가 만든 영화로 대중을 만나게 돼 설레고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긴장도 많이 된다. 확실히 배우로 인사할 때보다 더 그렇다. 감독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감이 좀 더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단편 <내 귀가 되어줘>에 이어 장편 <누룩>까지 선보였다. 원래 연출에 뜻이 있었는지, 제작 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예전부터 막연하게 창작 활동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고, 배우 활동을 하면서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연출로 이어진 것 같다. 첫 단편을 연출하며 얻은 성과와 관객들을 만났던 소중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번 장편까지 용기 내어 올 수 있었다. 특히 단편 제작 때 도움을 주셨던 이태동 감독님과의 두터운 신뢰 관계가 장편 영화를 메이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누룩>에서도 메인 프로듀서 역할을 맡아 주셨다.

전공이 경제학(상경계)이다. 연기나 영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진로 고민은 없었나.
대한민국 교육 과정을 충실히 따르다 보니 당시에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군에 대해 깊이 탐색하거나 커리큘럼에 접근할 기회가 없었다. 문과생으로서 취업에 유리하다는 상경계로 진학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막연한 꿈은 한편에 있었지만 주변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았고, 아마 그때 감독을 하겠다고 했다면 주변에서 탐탁지 않아 했을 것이다.(웃음) 벌써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지 십수 년이 지났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누룩>이라는 소재는 어떻게 떠올렸나.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김치가 질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만병통치 막걸리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가벼운 코미디를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첫 장편인 만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게 되었다. 주인공 다슬이 누룩에 집착하는 모습은 우리가 인생에서 무언가 무형의 가치를 믿고 사랑하는 모습에 대한 비유다.

영화 속에서 ‘누룩’은 단순한 재료 이상의 상징성이 있다. 구체적으로 풀어준다면.
다슬이 집착하는 누룩은 단지 물리적인 대상 이상의 은유와 상징의 존재다. 그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믿고 따르는 마음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내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다슬이가 누룩에 집착하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향한 보이지 않는 진심을 ‘누룩’이라는 형체에 비유한 것이다. 과거에 시를 썼던 경험이 있어 은유라는 기법을 즐겨 사용하게 되더라. 표면적인 재미를 넘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자 노력했다.

대중적인 서사와 감독의 의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평소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 관객이 스스로 찾아보고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을 좋아한다. ‘이 영화는 따뜻하니 위로받으세요’라고 규정하기보다 관객마다 다양하게 해석하기를 바랐다. 실제로 내가 의도하지 않은 다양한 의견을 들을 때 창작자로서 즐거움을 느꼈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전공하진 않았지만, 문학 작품처럼 해석의 매력이 공존하는 영화가 되길 원했다.


막걸리를 사랑하는 여고생 ‘다슬’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독특하다. 다슬은 극 중 나 자신을 가장 많이 투영한 인물이다. <누룩>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허구의 이야기이기에 극적 갈등 구조가 필요했고, 그 갈등을 통해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려 했다. 원래는 대학생 캐릭터로 직접 연기할까도 했지만, 감독과 배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현장에서 쉽지 않을 것 같아 방향을 바꿨다. 이후 이야기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시골 여고생이라는 설정이 탄생했다. 막걸리를 마시고 배달까지 하는 여고생이라는 설정은 소재의 참신함을 살릴 뿐 아니라, 오빠와의 갈등이나 주변의 시선 등 드라마적 긴장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낼 수 있겠더라. 다슬이 평소 막걸리를 마시고 다니는 걸 주변에서 익히 보았기 때문에 그가 누룩을 찾아 헤매는 행동을 보고 (술에) 취해서 그렇다고 오해할 수도 있고, 이러한 요소들이 이야기 전개에 복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 생각했다.

극 중 ‘부랑자’ 집단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부랑자들의 존재는 다슬의 믿음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환상에 불과한 것인지 관객을 끊임없이 혼란스럽게 만드는 장치다. 동시에 그들이 다슬이 믿고 있는 ‘누룩’ 그 자체를 상징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초반 노인정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요구하던 부랑자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흐름을 통해 존재감을 쌓았다. 이후 다슬이 누룩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부랑자들이 직접 누룩으로 막걸리를 만들어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확장했다. 겉으로 보기에 다슬의 집착은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부랑자들이 그 맛을 보고 집요하게 요구하는 장면을 통해 관객이 ‘저 막걸리에 정말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 아닐까’라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동시에 이들이 실존 인물인지, 다슬의 환각인지에 대한 의문도 남기고자 했다.

다슬의 아버지(박명훈)의 행동도 의미심장하다. 딸을 지지하는 듯하면서도 그녀의 행동을 ‘아프다’고 여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다슬을 믿고 지지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다슬을 의심하고, 기자가 찾아와도 다슬과의 만남을 꺼려하며 자신과 대화하자고 한다. 가족조차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오는 다슬의 무기력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가 살면서 때로는 가족보다 타인에게 더 큰 지지와 믿음을 얻는 역설적인 순간들을 담으려 했다.

‘누룩이 무한 생성된다’는 설정에도 분명한 의도가 있을 것 같다.
아버지는 ‘누룩이 무한 생성된다’는 신비한 현상을 말하면서도 정작 다슬의 믿음은 이상하게 바라본다. 같은 현상을 경험하고도 본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순적인 모습이 관객에게 어리석게 비치길 바랐다. 사실 여기엔 개인적인 경험도 녹아 있다. 학창 시절 내가 문학을 좋아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부모님이 다 보셨음에도, 전공 선택 시에는 경제학과를 권유하셨다. 자식이 즐거워하는 걸 알면서도 정작 온전히 응원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을 보며 느꼈던 순간의 서운함을 영화 속 가족 관계에 투영해 보았다. (웃음)

<누룩>은 믿음에 관한 영화다. 일상에서 믿음이 흔들릴 때 어떻게 대처하나.
고집이 센 편이라 하고 싶고 맞다고 판단하면 그냥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지금은 주변에 “이거 어때요?”라고 물으려 노력하지만, 예전에는 묻기 전에 저질러 버리곤 했다. 사실 내 안에서 생각의 큰 방향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평소 외부 영향을 받아 믿음이 흔들리거나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다.

뉴스 영상에 나온 후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고 들었다. 배우 데뷔 당시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낯선 세계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있으셨던 것 같다. 친척들 대부분이 학업과 취업이라는 정석적인 진로를 밟아온 터라 더 그러셨을 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몇 년 도전해보다가 성과가 없으면 다시 취업을 준비해도 늦지 않은 나이였기에, 부모님 역시 “한번 가보라”며 등을 떠밀어 주셨다. 내가 도전을 좋아하고 고집 있는 성향임을 아셨기에 실패하더라도 인생의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어주셨던 것 같다.

배우와 감독, 두 역할을 모두 경험하며 느낀 차이점은 무엇인가. 연출 경험이 연기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나.
배우는 감독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포지션일 수밖에 없음을 느꼈다. 감독이 이야기를 창조하는 주체라면, 배우는 선택받기를 기다리며 감독의 의도를 구현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현장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의지를 관철하는 능동적인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제작 전반의 과정을 경험해보니 감독은 처음부터 ‘해설지’를 펼쳐놓고 디렉팅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체적인 결을 고려한 지시라는 것을 몸소 느꼈기에, 앞으로 배우로 설 때는 감독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고 경청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웃음)

향후 연출 계획이나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연출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없다. 하지만 멜로, 블랙 코미디, 사회적 이슈 등 장르에 상관없이 ‘사람 냄새’ 나는 소재라면 언제든 매력을 느낀다. <누룩>은 판타지적 요소가 있지만 결국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들이 몇 개 있는데, 서두르지 않고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데뷔 9년 차다. 배우로서의 고민도 깊어졌을 것 같다.
그간의 활동으로 나만의 기준이 정립되었다고 교만하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연출을 경험하며 배우로서도 자신을 지켜보고 인내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10년 넘게 연기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새싹’이라 여길 만큼 성숙해지기까지는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나이에 맞게 무르익고 성장하기 위해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기다려 보려 한다. 배우라는 직업은 본인이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결과가 곧바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성과가 정직하게 쌓이는 다른 직업들과 달리, 배우는 반드시 ‘기회’를 얻어야만 한다. 신체를 단련하고 연기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결국 운(기회)이 따라줘야 하고 좋은 작품을 만나야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나갈지 조급해하기보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려 한다.

관객들이 <누룩>을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가.
다슬에게 자신을 대입해 본다면 꿈을 좇는 과정에서의 좌절이나 타인의 가혹한 시선에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를 본 분들이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순 없지만 위안을 얻었다’, ‘마음이 단단해졌다’ 같은 반응을 주셨을 때 기뻤다. 관객들도 <누룩>을 통해 각자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따뜻한 위로와 단단한 마음을 얻어 가길 바란다.




사진제공. BH엔터테인먼트


2026년 4월 24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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