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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지 않으면 죽겠다는 마음으로' <와일드 씽> 엄태구
2026년 6월 10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연예계 '수줍음의 대명사'로 통하는 배우 엄태구가 이번엔 열정 만렙 래퍼로 변신해 관객들을 찾는다. 영화 <와일드 씽>은 한때 가요계를 휩쓸었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해체된 3인조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이 20년 만에 찾아온 재기의 기회를 잡기 위해 무모한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코믹물. <달콤, 살벌한 연인>(2006), <이층의 악당>(2010), <해치지않아>(2020) 등에서 독특한 설정과 위트 있는 유머를 선보인 바 있는 손재곤 감독의 신작이다. 평소 선 굵은 연기와 묵직한 저음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왔던 엄태구는 이번 작품에서 팀의 막내이자 열정 가득한 래퍼 '구상구' 역을 맡아 전무후무한 파격 변신을 선보였다. 춤과 랩,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하이 텐션의 코미디까지 소화하며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웃음을 안긴 엄태구. “내가 지금 여기서 확실하게 귀엽지 않으면 죽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라며 촬영 당시의 솔직한 심경을 전한다.

영화 개봉을 앞둔 소감이 어떤가.
기대도 되고 떨리기도 한다. 관객 수나 흥행 반응을 잘 몰라서 막연했는데, 얼마 전 VIP 시사회를 마친 후 주변 반응이 나쁘지 않아 기대가 조금 더 커졌다. 사실 완성본을 오정세 선배님과 둘이 앉아서 같이 봤다. 서로 본인 영화를 보고는 잘 안 웃는다고 이야기한 게 있어서,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웃음)

영화를 본 가족들이나 주변의 가장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다면.
형(엄태화 감독)은 아주 담백하게 "진짜 재밌다"라고 칭찬해 줬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머니의 말씀이다. 처음에 대본을 읽었을 때는 코미디나 랩이 너무 두려워서 발라드 가수 역할이 좀 더 탐났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상구가 잘 어울린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 어머니 말씀대로 상구를 선택한 덕분에 과분한 칭찬을 듣고 있어 그 혜안에 감사하다. (웃음)

캐스팅 공개 당시 모두가 놀랐다.(웃음) 이 대단한 도전을 선택한 결심과 이유가 궁금하다.
일단 대본이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아니라 다른 배우가 했어도 정말 재미있게 살릴 수 있는 좋은 대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감독님도 미팅때 뵀는데 너무 부드러운 분이어서 믿음이 갔고, 결정적으로 ‘현우’ 역으로 강동원 선배님이 먼저 캐스팅되어 계셨다. 10년 전 영화 <가려진 시간> 때 같이 한 적이 있는데, 선배님과 꼭 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동원 선배님이 멋지게 춤을 추시니까, 내가 거기서 랩을 하면 참 재미있겠다' 싶은 그림이 그려져서 선택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강동원 배우와는 이번에 친해졌나.
이번에도 친해지기엔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10년 전이랑 달랐던 점이 있다면, 당시에는 선배님 번호도 몰랐는데 이번에는 번호를 알아 문자도 먼저 드릴 수 있었다. (웃음) 선배님께 첫 문자를 드릴 때 정말 1시간 동안 내용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너무나 대선배님이라 조심스러웠는데, 선배님께서 되게 따뜻한 답장을 보내주셔서 혼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 개봉 전부터 삽입곡 '니가 좋아'의 화제성이 엄청나다.
'니가 좋아'라는 노래 자체가 일단 너무 좋다. 완전히 내 음악적 취향이기도 하다. 나도 그 시절 가요를 듣고 자란 세대라 그런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함이 있으면서도 멜로디가 정말 훌륭하다.

함께 호흡을 맞춘 코미디 대가, 오정세 배우와의 현장은 어땠나.
정말 환상적이고 너무 좋았다. 현장에서 매 신마다 배꼽을 잡고 빵빵 터지면서 촬영한 건 아니었지만, 오정세 선배님은 내가 개인적으로 오랜 시간 동경하고 정말 좋아하는 배우다. 선배님은 카메라 안에서는 물론이고, 카메라 밖의 일상에서도 엄청난 위트와 재치를 장착하고 계신 분이다. 평소에 말을 쉼 없이 많이 하시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툭 하고 무심하게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허를 찌르듯 너무 재미있으시다. 선배님의 리액션을 받는 것만으로도 상구의 코미디가 저절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선배님과 꼭 다시 한번 코미디 장르로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 내가 선배님을 이렇게 열렬하게 좋아하고 있다는 걸 선배님은 눈치채셨을지 모르겠다. (웃음)

코미디 장르에 랩과 춤, 높은 텐션까지 유지해야 해서 부담이 상당했을 텐데.
맞다, 모든 게 다 부담이었다.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도 그렇고 춤, 랩, 높은 텐션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부담은 단연 코미디였다. 막상 몸으로 겪어보니 누군가를 웃긴다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더라. 평소에 코미디를 잘하시는 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 랩 같은 경우도 내가 라임을 전혀 모르니까, 상구에 대한 이야기를 일기처럼 써가면 랩 선생님이 라임을 맞춰주셨고 이를 감독님과 상의하며 만들어 나갔다.

스크린 속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엄태구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민망함을 내려놓은 비결이 있나. (웃음)
아무래도 이게 내 직업이고 대본과 캐릭터가 명확히 존재하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소화해야 했다. 연기할 때 가장 괴로운 순간은 망가질 때가 아니라 결과물이 어색하게 나올 때다. 내 연기가 안 풀릴 때가 제일 힘들기 때문에 망가지는 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진짜처럼 보이려고 준비를 많이 했고, 현장에서는 민망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저지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춤과 랩뿐만 아니라 깜찍한 귀여운 표정들도 화제다. 따로 거울을 보며 연습한 건가.
귀여운 표정은 거울을 보고 따로 연습하진 않았다. 현장에서 분장을 마친 뒤 분위기에 맞춰 결정됐다. 원래 대본상에는 그렇게까지 귀여운 척을 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가발과 의상을 갖추고 안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상구가 좀 더 귀여워 보이면 효과적이겠다는 의견이 모였다. 슛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지금 여기서 확실하게 귀엽지 않으면 죽겠다'라는 절박한 마음이 들더라.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온갖 귀여운 척은 다 했다.(웃음)

완전히 새로운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몰랐던 의외의 DNA를 발견하기도 했나.
그저 '구상구는 이 무대 위에서 완전히 미쳐서 논다'라는 생각 하나만 장착했다. 진짜로 무대를 즐기고 싶어서, 어릴 때 샤워하고 나와서 아무 생각 없이 홀가분하게 팬티만 입고 춤추며 놀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처럼 자유롭게 놀자, 내가 진짜로 즐기면 관객에게도 그 에너지가 전해질 거다'라고 믿었다. 제스처를 계산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내 안의 텐션을 끝까지 끌어올려 진짜로 즐길 수 있을까만 고민했고, 윙크나 귀여운 동작들은 그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더라.

랩 발성이나 녹음 과정은 어떻게 연습했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랩 선생님과 일대일로 붙어서 소리를 앞으로 강하게 내지르는 발성 연습부터 기초를 다졌다. 작중 초반에 상구가 연습실에서 괴성을 지르며 목을 푸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소리를 꽂아 넣는 실제 래퍼들의 발성 훈련법이다. 가르쳐 주시는 대로 열심히 따라 지르다 보니 의외로 익히는 과정이 참 재밌었다. 단지 방음 부스에서 선생님과 둘이서만 할 때는 신나게 잘 되는데, 부스 밖으로 딱 나오면 급격하게 쑥스러움이 밀려와서 랩을 잘 못 하겠더라. 당시 찍어둔 개인 연습 영상이 폰에 남아있는데, 부끄러워서 오늘 인터뷰가 끝나면 영원히 삭제할 예정이다.(웃음)

실제 가수들처럼 음방이나 콘서트 무대에 서보니 어떻던가.
랩도 랩이지만 춤을 소화하는 게 정말 지옥이었다. 안무 선생님의 디렉팅에 지독하게 매달려 연습했는데, 아무리 똑같이 따라 하려고 노력해도 타고난 춤꾼들의 '선'을 넘기가 어렵더라. 내가 추면 자꾸 절도 있는 '국민 체조'처럼 변해서 애를 먹었다. 그리고 콘서트 편집본 기준으로 고작 1절 분량의 무대를 오직 립싱크와 안무로만 소화했는데도, 컷 소리가 나자마자 숨이 턱 끝까지 차서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누웠다. 팔이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 온몸의 진이 다 빠지더라. 격렬한 안무를 추면서 라이브로 무대를 꽉 채우는 실제 가수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극 중 상구는 그룹 해체 후 홀로 20년간 음악을 하며 버틴다. 그를 버티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라 해석했나.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랩을 뼛속까지 정말 사랑하는 친구다. 그리고 부모님의 헌신적인 도움이 컸다. 아빠가 빚까지 내서 새 앨범을 내주는 상황이 코믹하면서도 짠하게 그려진다. 상구의 대사 중에 "내가 계속 보여줘야 한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게 대중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믿고 지원해 준 부모님에게 당당하게 증명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을 거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상구처럼 본인도 과거에 배우의 길을 포기하려 했던 순간이 있었나. 버틴 비결은 무엇인가.
과거 영화 <밀정>(2016)을 찍기 전후가 전환점이었다. 그 전에는 성향과 이 직업이 잘 맞지 않는 것 같고 현장 적응이 너무 힘들어 실제로 배우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밀정>을 마친 후에는 대중에게 내 이름이 알려지고 안 알려지고의 문제를 떠나서, 쟁쟁한 선배님들과 치열하게 작업하면서 '내가 그동안 연기의 길을 잘못 걸어오진 않았구나. 이 직업을 계속 믿고 밀고 나가봐도 되겠다'라는 든든한 확신과 위로를 얻었다.

상구와 엄태구의 가장 닮은 점을 꼽는다면.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참 쑥스럽고 조심스럽지만, 작품과 캐릭터를 마주할 때 가슴속에 품는 '순수한 열정'만큼은 상구와 내가 아주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낙원의 밤>이나 <판소리 복서>, 그리고 이번 <와일드 씽>까지 장르와 인물은 전부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결국 내 몸과 영혼을 통과해 나온 인물들이다. 어떻게 하면 대본 속 활자에 불과한 이 인물을 스크린 위에 가장 진짜처럼 살아 숨 쉬게 표현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런 열정과 우직함이, 20년간 홀로 랩을 붙잡고 버틴 구상구의 마음과 닮았지 싶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유명한데, <와일드 씽>을 하면서 성격에 변화가 좀 생겼는지. (웃음)
촬영하는 내내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매번 연기 시작 전에 혼자 전력질주를 하며 몸을 예열해야 했다. 내가 진짜로 기분이 업되고 행복해져야만 상구의 텐션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나를 두고 '내향인의 아이콘'이라 불러주시는데, 사실 실제보다 약간 더 과장되게 알려진 면이 있다. 내가 완전히 말을 못 하는 심각한 내향형은 아니다. (웃음) 요즘은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말도 먼저 잘 섞고 장난도 치며 편하게 분위기를 리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촬영하면서, 내가 내성적이라는 이유로 입을 닫고 가만히 있으면,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에게 오히려 숨 막히는 분위기로 피해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같이 웃으며 편하게 일하는 게 좋으니까, 농담도 한마디 툭 던지다 보니 성격이 조금씩 여유로워졌다. 특히 예능 <워크맨>에 고정 출연하면서 대중과 스태프들이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카메라 상황에 훈련이 많이 됐던 것 같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좀 편해지는 지점이 있나.
전혀 아니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정말 너무나 어렵다. 어제도 다른 작품 촬영을 했는데, 대본상 아주 간단하고 가벼운 감정의 신이어서 '오늘은 조금 마음 편하게 먹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장에 가야지' 하고 들어섰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슬레이트가 치는 순간 깨달았다. (웃음) 정말 단 한 컷도 대충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쉬운 씬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연기하는 게 여전히 고통스럽고 어렵다. 하지만, 그 힘든 허들을 넘고 모니터를 통해 연기가 진짜처럼 자연스럽게 구현된 걸 확인할 때 느끼는 성취감과 해방감이 그 고통을 전부 상쇄한다. 그 짜릿한 기쁨 때문에 이 힘든 직업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 같다.

대중에게 각인된 '수줍고 착한 엄태구'라는 이미지에 대한 부담은 없나.
단호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데, 나는 대중의 생각만큼 마냥 수줍고 착하기만 한 사람은 절대 아니다. 일상에서 전혀 안 수줍어할 때도 많고, 때로는 착하지 않을 때도 있는 아주 평범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간이다. 예전에는 낯선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공포 수준이었는데, 확실히 예능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노출되면서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내가 치열하게 찍은 작품이 세상에 나와서, 이렇게 수많은 기자님들이 귀한 시간을 내어 찾아와 주시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인터뷰 상황 자체가 내게는 비현실적인 꿈 같은 일이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 일이다.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무사히 마치고 세상에 내놓았다는 안도감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물론 며칠 뒤에 바로 있을 촬영할 씬들을 생각하면 다시 가슴이 턱 막히고 마음이 무거워지긴 하지만, (웃음) 지금 이 인터뷰 자리에 앉아있는 공기만큼은 참 행복하고 달콤하다.

래퍼를 완벽하게 경험해 봤는데, 향후 또 도전해보고 싶은 무대나 역할이 혹 있을까.
보통 인터뷰나 평소 "앞으로 어떤 장르나 역할을 해보고 싶으세요?"라고 물어봐 주시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구체적인 특정 역할이나 장르를 하고 싶다고 대답해 본 적이 없었다. 주는 대본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신기하게 하고 싶은 역할이 하나 생겼다. 무대 위에서 거친 에너지를 뿜어내는 '진지한 록 발라드 락커' 역할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이번에 피가 터지게 랩을 배운 것처럼, 락 창법도 기초부터 혹독하게 배우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비록 구상구를 준비하는 5개월의 과정이 육체적으로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세계의 문화를 배우고 마스터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내 연기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정말 짜릿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2026년 6월 10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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