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길이 없어도 괜찮아’ <산양들> 유재욱 감독, 박혜진이 찾은 진짜 ‘안식처’
2026년 7월 28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학교가 정해준 미래 대신, 지금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선택한 10대 소녀들이 있다. 수능과 입시라는 꽉막힌 틀 안에서 주저앉기보다 학교 담장 너머 야생으로 뛰어든 네 친구. 오는 7월 29일 개봉하는 영화 <산양들>은 사육장의 소동물을 구하기 위해 뭉친 소녀들의 특별하고도 무해한 모험을 그린 청춘 어드벤처다. 전작 <라임크라임>으로 청소년들의 억눌린 에너지와 성장통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풀어냈던 유재욱 감독은 이번에는 입시 경쟁 속에서도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가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여기에 N수 끝에 연극영화과에 입학하며 자신만의 뚝심을 증명한 박혜진은 엉뚱하지만 단단한 '인혜'로 분해 날것 그대로의 4차원 너드미와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펼쳐낸다. 절벽을 뛰어다니는 산양처럼, 타인이 정해 놓은 규범과 미래 대신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소녀들. 험난한 야산과 차가운 수중 로케이션을 오가며 완성한 네 배우의 유쾌한 앙상블은, 현실에 지친 청춘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따뜻한 안식처를 선물한다.

전작이자 장편 데뷔작인 <라임크라임>(2021)이 힙합에 빠진 소년들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산양들>은 소동물을 구하기 위한 네 소녀의 이야기다. 두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유재욱 감독(이하 유재욱) 공통점은 청소년기에 내 안에 갇혀 있는 에너지를 친구들과 함께 발산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무언가에 진심으로 몰입해서 스스로의 안식처를 구한다는 속성도 닮아 있다. 전작에서 버려진 공간이나 고속도로 아래 같은 곳에서 아이들만의 안식처를 꾸려 랩을 했다면, 이번 영화 역시 자연 속 '쉘터'라는 공간에 들어가 자신들만의 안식처를 꾸며나간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차이점이라면 전작이 도시를 배경으로 음악적 취미를 공유하며 인물들이 서로를 은유했다면, 이번 작품은 중소도시 주변 그린벨트 같은 야생에서 내 힘을 시험해보고 무언가를 구출하는 모험의 속성을 강조했다. 내가 학창 시절 학교 사육장에 있던 동물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과, 학교생활을 하며 느꼈던 답답한 감정이 서로 닮아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동물을 구출하는 모험을 통해 스스로 안식처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박혜진은 영화 <산양들>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느낌이 어땠나. 캐스팅 당시 본인의 상황도 궁금하다.

박혜진 배우(이하 박혜진)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원래 '서희' 역할을 지망해서 네 인물을 모두 준비해 갔다. 그런데 오디션 현장에서 감독님이 '인혜' 대사를 시키셨고, 대사를 읽자마자 감독님과 PD님이 웃으시는 걸 보며 '잘 어울리나?' 싶었다. 당시 연극영화과 입시를 오래 준비하던 N수생이었는데, 입시 연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독립영화 현장이 그리웠기에 이 작품을 만나 큰 환기가 됐다.

네 소녀의 케미스트리가 매우 중요한 영화다. 각 캐릭터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유재욱 감독 특이하고 독특한 결을 가진 배우들을 찾고 싶어 단편영화와 주변 수소문을 많이 거쳤다. '인혜' 역의 박혜진 배우는 노다해 촬영 감독의 추천으로 리딩을 진행했다. 첫 장면에서 동물과 대화하는 연기를 하는데 마치 진짜 동물이 된 것 같은 특이함과 4차원적인 너드미가 느껴져 '그냥 풀어놓으면 되겠다' 싶더라. (웃음) '서희' 역의 이승연 배우는 생존 덕후 같은 몰입감을 원해 단편 <수능을 치르면>을 보고 직접 SNS로 연락했다. 동물을 죽이려고 몰입하는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고, 두 사람을 붙여 놓으면 '한국 소녀판 덤 앤 더머' 같은 독특한 매력이 나오겠다고 확신했다.

'정애' 역의 박효은 배우는 제작진의 강력한 추천으로 만났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정애가 받는 압박과 상처를 상쇄할 만한 천진난만함과 특유의 영특한 연기력이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수민' 역의 최수인 배우는 원래 시나리오상 연약하고 시니컬한 이미지였으나, 최수인 배우가 지닌 특유의 강인한 힘을 보고 캐릭터를 수정했다. 수민이 가장 강인하고 정의로운 대의를 지녀야 팀을 입체적으로 이끌 수 있겠다고 만장일치했다.(웃음)

'인혜' 캐릭터의 순수한 용기와 성장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고 연기했나.

박혜진 일부러 뭔가를 더 첨가하려 하지 않고, 인혜라는 인물에 평소 성격과 말투를 그대로 녹여내려 했다. 입시라는 현실의 풍파를 맞으며 냉정해진 부분도 있었지만, 서희·정애·수민처럼 마음을 연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원래의 천진난만하고 엉뚱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연기했다.

남성 감독으로서 10대 소녀들의 우정과 감정을 그리며 디렉팅하는 과정에서 고민이나 어려움은 없었나.

유재욱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분야에 도전하며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을 좋아한다. 남성 감독이라고 해서 꼭 남자의 이야기만 하기보다, 여자들의 이야기를 써나가면서 타인과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개인적으로 무척 소중했다. 이번 작업 역시 부시크래프트나 캠핑, 동물, 10대 소녀들의 감정선에 대해 잘 알아서 시작했다기보다 몰랐기 때문에 배워가며 만든 것에 가깝다. 실제 현장에서는 배우들과 이야기를 무척 많이 나누고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 감정을 맞춰나갔다. 디렉팅을 줄 때 가끔 직접 시범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4명의 배우들과 함께 리딩하고 합을 맞춰가며 19살 소녀들만의 발랄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를 완성해 나갔다. 한두 명이 아닌 네 명의 소녀들과 호흡을 맞추며 앙상블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연출자로서 매우 특별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배우 입장에서 현장에서 느낀 유재욱 감독과의 호흡이나 기억에 남는 디렉팅 방식이 있다면.

박혜진 감독님이 연기를 참 잘하신다. 디렉팅을 해주실 때 갑자기 직접 시범 연기를 보여주시곤 했는데, 배우들이 그걸 보고 감을 잡아 서로 연기 합을 맞추고 타협점을 찾아갔다. 그렇게 19살 소녀들만의 발랄한 이미지를 함께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산양들'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또 로케이션 촬영 에피소드도 궁금하다.

유재욱 한 15년 전에 산양 보호 센터에서 절벽을 뛰어다니는 산양을 본 적이 있는데 겉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이 네 명의 소녀들도 정해진 길이 없어도 괜찮고, 스스로 길을 내며 뛰어오르는 행위 자체에서 안식처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목을 지었다. 영화 속 자연 풍경과 계절감을 담아내기 위해 서울, 인천, 이천, 남양주, 태백 등 전국의 다양한 장소를 돌아다니며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다. 특히 중요한 배경이 되는 호숫가의 경우, 야생 공간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배우들이 직접 물속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기에 그에 맞는 최적의 장소를 찾아 태백까지 찾아가야 했다. 가파른 야산을 계속 오르내리고 물속에서 몸싸움을 벌여야 해서 배우들이 체력적으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캠핑에 온 것처럼 즐겁게 임해주어 고마웠다.

야외 로케이션이 많았던 만큼 고생스러운 장면이 많았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박혜진 가파른 야산을 뛰어다니며 총을 쏘고 오리를 찾는 장면이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수중 씬의 경우 사전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막상 물에 들어가니 물놀이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흙범벅이 된 채 몸싸움을 벌이는 등 체력 소모가 컸지만 마치 친구들과 캠핑을 다녀온 듯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가장 공감되었거나 기억에 남는 대사는 무엇이었나.

박혜진 극 중 교사가 "특별하지도 않은 애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대사가 가장 뼈때리듯 공감됐다.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왔기 때문에 고3 때 당연히 바로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스스로 특별하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막상 입시를 거치며 현실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현실을 잘 몰랐던 나 자신을 돌아보며 오히려 더 뚝심 있게 연기에 임하게 됐다. 결국 N수 끝에 원하던 학교와 학과에 입학했고, 어쩌다 보니 (유재욱) 감독님의 후배가 됐다. (웃음)

감독은 어떤 의도로 이 대사를 썼나.

유재욱 실제 학교 선생님들이 자주 할 법한 생각을 담았다. 모두가 특별해지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들의 개성을 획일화하고 미래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당장 꿈이 없고 가고 싶은 대학이 없다고 해서 이 아이들이 생각이 없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네 소녀에게 '산양들'이라는 안식처(쉘터)가 있듯, 감독과 배우에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안식처 같은 공간이나 존재가 있나.

유재욱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 그 자체로 안심되고 편안함을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 도서관에 가서 글을 쓰는 루틴 자체가 나에겐 일종의 안식처다. 물론 글이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을 때 오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글을 쓰지 않고 불안하게 있는 것보다는 쓰는 행위 자체가 훨씬 좋고 안도감을 준다.

박혜진 오랫동안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살다시피 했던 입시학원 공간인 것 같다. 아침에 가서 발레바를 잡거나 같이 신체 훈련을 하며 땀을 쫙 빼는 루틴이 있었는데, 한창 입시를 할 때는 그걸 안 하면 하루 전체가 불편할 정도였다. 학원에서 팀별로 연기를 연습하고 무용이나 신체소조 같은 트레이닝을 긴 시간 이어가면서 나만의 안식처이자 일상이 되어주었다. 또한 그 긴 준비 과정을 거치며 내가 남들보다 정서가 풍부하고 감정에 깊게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도 깨닫게 됐다.

배우로서 앞으로 꿈꾸는 목표와 지향점이 궁금하다.

박혜진 매체나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을 좋아하는데,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에서도 그 나라 언어로 연기해 보는 것이 첫 번째 꿈이다. 혼자 유럽 여행을 가거나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같은 해외 연극 축제를 직접 경험하면서, 다른 언어로 상연되는 연극도 많이 보고 다양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힘을 키워보고 싶다. 또한 영화뿐만 아니라 입시를 치르며 연극 쪽에도 애정과 관심이 많이 생겼다. 국립극단 단원으로 무대에 서려면 외부에서 최소 3번 이상 공연을 한 경력이 있어야 지원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차근차근 이력을 쌓아 기회가 된다면 꼭 국립극단 무대에도 올라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느끼거나 다가갔으면 좋겠나.

유재욱 관객분들이 이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게 첫 번째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감정이 소모되거나 마모되기 쉬운데, 네 명의 외톨이 소녀들이 스스로 용기 있게 길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통해 즐겁고 유쾌한 위로를 받아가셨으면 좋겠다. 발랄하고 귀여운 에너지가 관객분들의 마음속 감정을 산뜻하게 일깨워줄 수 있길 바란다.

박혜진 깊고 거창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영화 속 네 명의 소녀가 옹기종기 모여 귀엽고 엉뚱하게 무언가를 해나가는 모습 자체를 기분 좋게 바라봐 주시길 바란다.




사진제공. 시네마달


2026년 7월 28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