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수능과 입시라는 꽉 막힌 현실 대신, 학교 담장을 넘어 야생으로 냅다 뛰어든 10대들이 있다. 오는 7월 29일 개봉하는 영화 <산양들>은 사육장의 소동물을 구하기 위해 뭉친 네 소녀의 엉뚱하고도 무해한 소동을 그린 청춘 어드벤처다.
이상 기후와 재난 상황에 대비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존법을 익히는 생존 덕후 '서희' 역의 이승연, 버림받은 상처를 다정한 칭찬과 엉뚱한 에너지로 감싸 안는 팀의 버팀목 '정애' 역의 박효은, 겉은 까칠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속내를 지닌 맏언니 '수민' 역의 최수인, 그리고 4차원 너드미로 친구들을 하나로 묶는 '인혜' 역의 박혜진까지. 네 배우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앙상블은 답답한 현실에 지친 관객들에게 산뜻하고 기분 좋은 쉼표를 선사한다.
절벽을 거침없이 뛰어오르는 산양처럼, 정해진 길 대신 자신들만의 길을 선택한 소녀들. 그 여정 끝에서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안식처가 되어준 '산양즈'. 박효은, 이승연, 최수인 배우를 만나 영화와 연기, 그리고 함께 만들어낸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네 배우 모두에게 <산양들>은 어떤 첫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나. 출연 제안을 받았을 당시의 상황과, 시나리오를 읽으며 '이 작품은 꼭 해야겠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면 들려달라.
박효은 배우(이하 박효은) 시나리오를 읽는데 정애의 아빠가 나오는 부분에서 눈물이 나고 마음이 울컥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들이 멋있게 나아가는 모습이 가슴을 크게 울려서 대본 자체가 정말 좋다고 느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고 주로 우울한 캐릭터들을 많이 해왔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정애라는 밝고 다정한 역할을 제안받아서 꼭 도전해보고 싶었다.
이승연 배우(이하 이승연) 드라마 촬영 스케줄로 바쁜 와중이었는데, 제작진 쪽에서 일정을 맞춰주겠다고 해서 감사히 참여하게 됐다. 처음에는 네 명의 귀여운 소녀들이 나온다는 설정 자체가 무척 좋았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꼭 해야겠다'는 마음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촬영을 준비하며 '정말 하길 잘했다'고 확신했던 순간이다. 처음 넷이 모여 리딩을 진행했을 때, 각자의 색깔이 너무나 뚜렷하고 귀여워서 이 조합이라면 무조건 좋은 작품이 나오겠다고 느꼈다.
최수인 배우(이하 최수인) 당시 영화 <최소한의 선의>(2024) 홍보와 개봉 일정을 소화하던 중에 이 시나리오를 만났다. 네 역할 모두 가능성을 열어두고 감독님 의견을 따르려 했는데, 인혜와 수민 캐릭터의 가능성이 높았다. 수민이는 너무 매력 있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네 캐릭터가 다 소중했고, 동물과 인물들의 조화, 그리고 '쉘터'라는 공간이 너무 아름다웠다.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귀여워서 꼭 참여하고 싶었다.
|
영화는 '특별관리대상'으로 불리는 네 소녀가 서로에게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네 배우가 함께 연기하며 실제로도 팀워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어땠나. 촬영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박효은 다른 언니들은 다 성인이었고 나만 유일하게 중학생이라 '내가 언니들의 대화에 잘 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언니들이 나를 너무 잘 챙겨주었다. 늘 "정애야" 하고 찾으면서 간식도 챙겨주고 이야기도 나눠주어서 외로울 틈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이승연 처음 미팅하고 리딩할 때는 넷 다 낯을 너무 가려서 쭈뼛쭈뼛 분위기가 어색했다. 그런데 다 같이 짜장면을 먹고 들어오니 이상하게 금세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촬영장에서도 초코 과자를 서로 나눠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현장 자체가 마치 영화 속 '쉘터' 같은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최수인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스며들듯이 친해졌다. 수민이라는 역할 자체가 말이 별로 없고, 나 역시 먼저 다가가서 싹싹하게 굴지 못하는 성향인데도 현장에 스스럼없이 녹아들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한 팀이 되었기에 진짜 '산양들'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애는 팀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친구들을 묵묵히 지탱하는 다정한 인물이다. 웃음과 따뜻함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해 그의 서사를 어떻게 분석했나.
박효은 '이 친구는 왜 이렇게 남을 칭찬하고 잘해주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정애의 엄마가 방글라데시인이고, 초등학교 때 정애를 떠났다는 전사를 만들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다 보니, 다시는 버림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진짜 친구를 갖고 싶다는 갈망이 컸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더 다정하게 칭찬하고 먼저 마음을 열며 곁을 지키는 성격이 되었다고 해석하고 전사를 열심히 쌓아갔다.
|
서희는 거침없는 행동력과 뚝심이 매력적인 '생존 덕후' 캐릭터다. 본인과 가장 닮은 점, 그리고 가장 달랐던 점은 무엇이었나.
이승연 일단 가장 다른 점은 내가 평소에 칼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웃음) 반면 닮은 점은 추진력과 행동력이다. 서희는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시간이 매우 짧지만, 나는 고민을 오래 한 뒤에 움직인다는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일단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는 점은 서희와 많이 닮았다.
수민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고 툴툴거리지만 속정이 깊은 츤데레 캐릭터다. 말보다 감정선으로 보여줘야 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썼나.
최수인 수민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지 깊이 생각해 봤다. 사실 수민이는 마음에 불만이 있거나 복잡하게 꼬여 있는 친구가 아니다. 그냥 겉으로 툴툴거리는 츤데레일 뿐이다. 자기애가 강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독특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다. 나중에는 산양들과 쉘터를 너무나 아끼게 되는데, 스스로는 맏언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언니같이 굴지는 못하는 미숙함이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산양들을 위해 가장 강인하게 나서는 든든한 면모를 표현하려 했다.
<산양들>은 입시와 미래보다 '지금 지키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청춘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공감했던 부분이나, 배우로서 혹은 개인으로서 현재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박효은 연기를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좋은 작품들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동시에 지금 학생 신분인 만큼 학교 생활도 충실히 잘 해내서 무사히 졸업하고 싶다.
이승연 거창한 계획보다는, 당장 다음 작품에 들어가는 것과 카메라 앞에서 떨지 않고 내 연기를 펼치는 것이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최수인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는 중이다. 연기자로서 좋은 작품과 감독님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목표고, 그 외에도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다 해보고 싶다. 소소한 아르바이트나 운동, 공부 같은 경험들이 모여 큰 자산이 된다고 믿는다. 최근에는 운전하는 것에 매료되었고, 아이들을 좋아해서 아동 심리와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도 하고 있다. 사실 수민이가 극 중에서 운전을 하게 된 것도 내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수민 역할을 위해 운전 연습을 시작했고, 대사 하면서 운전까지 하는 멀티태스킹을 연마하다 보니 운전의 재미를 알게 되더라. (웃음) 촬영이 끝난 후에도 운전해서 쉘터(촬영지)를 다시 찾아가 보기도 했다.
이번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산양들>이 배우 이승연에게 어떤 전환점이 되었나.
이승연 우선 이번 수상은 나 혼자가 아니라 '산양들' 네 명을 대표해서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평소 내가 잘하고 있는지,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늘 의심하는 편이었다. <산양들>을 찍고 상을 받으면서 '내가 틀리지 않고 잘 걸어가고 있구나' 하는 긍정적인 확신과 믿음을 얻게 되었다.
|
영화 <우리들>(2015), <최소한의 선의>(2024) 이후 또 한번 청소년의 섬세한 내면을 연기했다. 이전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수민이라는 인물은 최수인에게 어떤 새로운 도전이었나.
최수인 그동안 연기했던 캐릭터들이 주로 소심하고 내면에 갇힌 내포된 감정을 보여주는 '외톨이' 타이틀이었다면, 이번 수민이는 '산양즈'라는 확실한 공동체 안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연기였다. 현장에서도 '내가 산양들을 지키는 맏언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홀로 감내하는 연기가 아니라 다 함께 합을 맞추며 만들어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자 새로운 도전이었다.
네 사람이 함께 소동물 구출 작전을 펼치는 과정이 유쾌하면서도 뭉클하게 그려진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마음에 담아갔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박효은 정애가 버림받은 상처 속에서도 친구들에게 다정한 손을 내밀었듯, 관객분들도 겉모습이나 환경에 굴하지 않고 서로에게 다정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마음을 느껴주셨으면 좋겠다.
이승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타인의 시선이나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자신만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게 된다. 가끔은 '내가 왜 이런 가면을 쓰고 있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는데, 영화 속 네 소녀가 무모해 보일지라도 스스로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직진하듯 관객분들도 자신의 진심을 들여다보는 용기를 얻어갔으면 좋겠다.
최수인 세상이 정해놓은 거창한 기준이나 정답에 매달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고 소소해 보이는 마음일지라도 그것들이 모이면 삶을 이겨낼 거대한 힘이 된다는 희망을 받아가셨으면 한다.
<산양들>은 각자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나.
박효은 '나를 넓혀준 소중한 첫걸음'이다. 첫 장편영화에서 큰 역할을 맡아 처음엔 긴장도 많이 했고, 동물들과 합을 맞추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이 작품을 준비하고 감독님의 솔직하고 열정적인 디렉팅을 거치면서 연기를 좀 더 자유롭게, 나를 풀어 놓을 수 있었다.
이승연 '사람이 남은 영화'다. 동료 배우들은 물론 스태프들까지 너무나 친밀해졌다. 연출을 맡으신 유재욱 감독님은 재치 있고 열정적이며 귀여우셔서 마치 '산양들의 다섯 번째 멤버' 같았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듬뿍 남겨준 고마운 작품이다.
최수인: '가장 예쁜 나의 모습을 담아준 선물 같은 작품'이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산양들>은 너무 귀엽고 희망적이며 웃음을 자아낸다. 나의 가장 밝고 예쁜 순간을 담아주었기에 평생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세 배우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인가.
박효은 연기는 '내가 가장 행복해지는 시간'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떼를 써서 연기를 시작했고 사춘기 시절 내가 잘하고 있는지 방황도 많았지만, 카메라 앞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 순간이 너무나 즐겁고 뿌듯하다. 현장에서 만나는 인연들과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 때문에 연기를 놓을 수 없다.
이승연 연기는 '합법적으로 다양한 가면을 바꿔 쓸 수 있는 매개체'다. 작품이 들어오지 않을 때는 불안함에 토익 공부를 하며 다른 길을 찾으려 했지만, 너무 우울하고 힘들었다. 그러다 다시 연기를 하게 되었을 때 '아, 나는 연기를 해야만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고 절실히 깨달았다. 연기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일이다.
최수인 11년 동안 연기를 해오면서 느낀 건, 연기는 '대체 불가능한 삶의 매력'이라는 점이다. 원래 엄청나게 소심한 성격이지만, 이상하게 카메라 앞에만 서면 소심쟁이가 싹 사라진다. <우리들>의 '선'으로 알고 계시는 분이 많다 보니, 최근 <산양들> 관련 릴스가 나왔을 때 한 댓글에 '<우리들> 선이 닮았다'라고 하니까, 또 다른 댓글로 "아니야, 선이보다 예쁘잖아" 이러시더라. 그런데 <더 글로리> 때는 '선이보다 못생겼잖아' 라는 상반된 반응이 있었다. (웃음) 이렇듯 작품마다 이미지가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서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무척 뿌듯하다. 이런 변신의 재미와 행복을 주는 일이라 '연기가 아니면 안 되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된다.
사진제공. 시네마달(박효은)/ 안컴퍼니(이승연)/ 매니지먼트 mmm(최수인)
2026년 7월 28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