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이번에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없었어요. 아쉬움이 남지 않는,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영화예요.” 영화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 만에 복수를 결심한 네 모녀의 가족 복수극이다. 공효진은 엄마 ‘옥실’(이정은)의 뜻을 가장 충실히 따르는 맏딸 ‘장주’를 연기했다. 겉으로는 동생들을 다독이며 가족의 중심을 잡는 인물이지만, 공효진은 장주를 “엄마의 사령탑이자 복수 여행을 가장 두려워했던 딸”로 해석했다. 엄마 앞에서는 순종적이던 장주는 자신의 남편과 딸을 마주한 뒤 비로소 또 다른 ‘엄마’로 각성한다. 공효진을 만나 장주의 내면과 네 모녀의 앙상블, <경주기행>을 향한 남다른 애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드라마 <유부녀 킬러>가 방영 중인 가운데 <경주기행>까지 선보이게 됐다. 두 작품이 동시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요즘 기분은 어떤가.
꿈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말 꿈결 같아서 많이 들떠 있다. 예전에는 ‘너무 들뜨지 말아야지. 나중에 실망하면 어떡하지?’ 하며 마음을 억눌렀다. 그런데 지금은 오늘이 가장 기쁜 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영화가 개봉하기 전이라 스코어도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의 흐름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 가장 기쁜 순간일 수 있다. 지금의 기쁨을 만끽하려고 한다. 나중에 실망할까 봐 미리 주저하거나 내 마음을 억누르지 않으려고 한다.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봤나. 제목과 예고편만으로는 작품의 성격을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만큼 관객 반응도 궁금할 것 같다.
난 너무 재미있게 봤다. 대본도 좋았고, 모든 캐릭터에게 한 번씩 특별한 장면이 있는 것 또한 너무 좋았다. 다들 자기만의 특정 장면을 잘 만들어낸 것 같다. 모두의 만족도가 높아야 좋은 것 아닌가. 다들 은근히 울기도 하고 감격하기도 했다. 남다른 애정으로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다. 관객들이 처음 이 영화를 어떻게 느낄지도 정말 궁금하다. 배우들이 워낙 친근한 이미지라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막상 보고 너무 그로테스크하다고 느끼면 어떡하나 걱정된다. 그렇다고 귀엽고 재미있고 가볍고 둥글둥글한 영화로만 생각하는 것도 아닌거 같고. 결국 이런 서로 다른 요소들이 영화의 매력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경주기행> 현장에서는 전체적인 흐름을 만드는 데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고 들었다. 경험 많은 배우로서 김미조 감독에게 조언한 부분도 있었나.
내가 참여한 배우들 중 여성 감독님과 작업한 경험이 가장 많았다. 또 이번 작품과 비슷한 예산과 규모의 영화를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감독님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드렸다. 나는 영화 대본을 처음 읽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안 본 눈’으로 읽었던 기분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것이 내가 관객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이다. 영상화된 뒤에는 모든 내용을 알고 있기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부터 검열하게 된다.
감독님께는 우리 영화의 예산과 로케이션 촬영을 고려하면 보충 촬영이 쉽지 않을 테니, 스토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꼭 넣고 싶은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면 초반에 먼저 찍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촬영이 길어지고 시간이 부족해지면 그런 장면부터 포기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이라면 먼저 찍으시라고 했다. 내가 이 정도 규모의 영화를 해본 배우로서 드릴 수 있는 조언이었다.
앙상블 작품에서는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중요하다. 평소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연기 방향을 정하는 편인가.
앙상블 작품이기 때문에 비어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배우가 어떤 부분을 잘한다면 나는 다른 길로 가서 다양성을 더하는 식이다. 미리 모든 것을 결정하기보다는 현장에서 배우들이 어떻게 하는지 본 뒤 내 방향을 정한다. 좋게 말하면 현장감이 있는 편이고, 솔직히 말하면 결정을 미루는 편이다. 내가 극단적인 P다.(웃음) 배우들이 내가 잘 맞춰준다고 말하는 것도 내가 나중에 결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히 상대에게 맞추려 했다기보다 내가 작품을 소화하는 방식이다. 모두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보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처음에는 출연 제안을 고사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결국 <경주기행>을 놓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정말 맞출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었다. 이정은 선배가 엄마 ‘옥실’역에 이미 캐스팅된 상태라 마냥 기다리게 할 수가 없어서 너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고사했다. 그런데 이후에도 매니저에게 몇 번이나 누가 캐스팅됐는지, 작품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어봤다. 엎어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대본이었다. 동생들은 캐스팅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처음 제안을 받은 뒤 거의 반년쯤 지나 감독님이 다시 한번 시간을 맞출 수 없는지 물어보셨다. ‘다시 제안이 오다니!’ 싶었다. 그만큼 마음속에 잔상이 깊게 남은 대본이었다.
‘장주’는 이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감독님께 장주를 어떻게 쓰고 싶은지 여쭤봤더니 ‘엄마의 사령탑’이라고 하셨다. 장주는 딸들의 편이라기보다 엄마 쪽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동생들이 불안해하면 ‘그런 말 하지 마’, ‘엄마가 이러잖아’, ‘너희는 동생이 안 불쌍하니’라며 가족 안에서 금기시된 대화를 막는다. 대사뿐 아니라 작은 행동으로도 살을 붙이려고 했다. 엄마에게 흙이나 먼지가 묻으면 털어주고, 수시로 괜찮은지 살피고 쓰다듬어줬다. 엄마를 가장 많이 이해하고 과할 만큼 애정을 쏟지만, 엄마가 하자고 하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해야 한다는 압박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사실 장주는 엄마를 굉장히 무서워하고, 이 복수 여행을 가장 두려워하며 도망치고 싶었던 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처음으로 반항하고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후반부의 장면이 더욱 극적으로 대비되며 잘 나온 것 같다.
장주는 엄마 앞에서는 순종적이지만 남편(김영성)과 딸 앞에서는 우두머리처럼 행동한다. 남편의 등장이 장주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남편이 딱 나타났을 때 든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객은 이 영화에 그런 조력자가 나타날지 모르지 않나. 셋째 ‘동주’(이연)가 프로레슬러이기는 하지만 체구가 작다 보니 ‘이들이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남편이 등장하는 순간 안정감이 생긴다. 짧은 한두 장면만으로 그런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감독님의 연출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장주가 자기 집에서는 우두머리이고 엄마를 닮았다는 것도 남편과의 관계를 통해 바로 드러난다. 남편은 눈치가 빠르고 옥실에게도 굉장히 친밀한 사위다. 등장하는 순간부터 남처럼 느껴지지 않고 진짜 이 집 식구처럼 보였다. 연기를 정말 잘해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공효진은 어떤 아내인가. 극 중 장주처럼 집에서는 리더 역할을 하는 편인가. (웃음)
실제 집에서도 타고난 리더십을 감추기는 어려운 것 같다.(웃음) 하지만, 나는 1남 1녀 중 장녀이고 남편은 삼남매의 맏이다. 내가 짹짹거리는 리더라면 남편은 조용히 있다가 꼭 필요할 때 ‘어흥’하는 리더다. 그래서 내가 진다. 평소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툭 던지는 한마디가 내 얼굴을 빨개지게 만든다. 한마디로 남편의 리더십이 더 강하다.
남편과 딸의 등장은 장주가 엄마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 좀 평범하게 살면 안 되느냐”고 말하는 장면은 어떻게 접근했나.
남편과 딸이 등장한 뒤부터 장주는 각성한다. 그전까지는 엄마 말을 가장 잘 듣고 동생들을 통솔해야 하는 언니이자 딸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가족이 등장하면서 ‘나도 엄마다. 엄마는 남편과 딸을 모두 잃었지만 나는 이 둘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이제 그만하고 새로 출발하자고 처음으로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 감독님이 내게 가장 기대하며 주신 장면도 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정은 선배님의 연기를 보면서도 소름이 끼쳤다. 엄마가 눈물을 줄줄 흘리는데, 자신이 다른 딸들까지 위험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 순간이다. 장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내 앞에서만 울 수 있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관객 역시 재미있고 쫄깃하게 따라오다가 이 장면을 기점으로 ‘이 여자들이 얼마나 큰 혼돈 속에 있는 걸까’를 느끼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의 색이 살짝 바뀌는 중요한 장면이라 그만큼 만족도가 높다.
복수극과 가족극 사이에서 감정의 균형을 잡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감독, 배우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장주는 엄마에 비하면 수월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훨씬 어려운 인물이다. 이정은 선배님도 계속 ‘이게 지금 해야 하는 일이 맞느냐, 아니냐’를 고민하셨다. 딸들을 모두 범죄자로 만들면서까지 복수하는 일이 옳은지, 진정한 복수가 이들에게 무엇을 남길지를 계산해서 연기하셨을 거다. 감독님이 그런 지점을 뚜렷하게 알고 계셨다. 어디에서 어떤 감정이 나와야 할지 많이 이야기하며 다듬었다. 대본도 워낙 풍부해서 답이 많은 글이었다.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좋은 장면들이 있어서 여러 버전으로 찍었다. 촬영 때 비가 많이 와서 기다리는 시간도 많았는데, 그동안 ‘이 장면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건 우리가 알고 하는 것이냐’ 같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배우들 모두 작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라 다음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지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더 돈독해졌다.
|
이정은, 박소담, 이연까지 세대가 다른 네 배우의 앙상블이 영화의 큰 힘이다. 실제 현장에서도 가족처럼 가까워졌다고.
우리의 실제 관계성이 화면을 뚫고 나온 것 같다. 현장에서의 관계가 편했고 서로를 향한 애정도 깊었다. 이정은 엄마가 50대, 내가 40대, 박소담이 30대, 이연이 20대였다. ‘어떻게 이런 조합이 이렇게까지 함께 놀러 다니지?’ 싶었다.(웃음) 세대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내게도 선배님이 있었고 내가 조언해줄 수 있는 동생들도 있었다. 비슷한 또래만 모인 것이 아니어서 고민을 나누고 답을 찾는 데 더 도움이 됐다.
특히 세 자매는 정말 옆집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관객이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이 복수극에 공감할 수 있다. 세 사람이 진짜 자매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했고 그 밸런스를 함께 만들어갔다. 동생들은 워낙 흡수력이 높은 배우들이다. ‘이 배우의 장점은 이것이구나’ 싶으면 거기에 맞춰보려고 했다. 촬영이 끝난 지금도 단체 대화방에서 계속 연락한다. 촬영 당시에는 비 때문에 감독님의 속이 타들어 가는데 우리는 ‘뭐 먹으러 가자’, ‘갈비 먹으러 가자’ 같은 이야기를 계속했다.(웃음) 당시에는 감독님을 빼고 방을 만들었는데 얼마 전에는 감독님도 초대했다. 꺼지지 않는 단체방이 될 것 같다.
특히 이정은과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이후 두 번째 모녀 호흡이다. 배우로서도 개인적으로도 어떤 선배인가.
늘 편안한 분이다. 감정을 준비한다고 모두를 긴장하게 하거나 조용히 하게 만드는 분이 아니다. 그렇다고 선배로서 위엄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분도 아니다. 정말 자연스럽고 인간미가 넘친다. 엄마와 언니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은데 위트도 있고 정말 재미있다. 내 모든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고, 그걸 다 들어준 뒤 답도 해줄 수 있는 선배다. 전체적으로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분이면서 친구 같기도 하다. 동생들도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게 이정은 선배님을 좋아한다.
복수의 대상인 남자 역에 변요한이 합류했다.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땠나.
처음에는 감독님이 새로운 얼굴을 상상하고 있다고 들었다. 비닐이 벗겨졌을 때 관객이 ‘누구야?’라고 느낄 만한 배우를 생각하신 것 같다. 그러다 변요한 씨가 대본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자 요한 씨가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자 넷을 상대해야 하는 역할이어서 그만큼의 위압감과 장악력을 가진 배우가 필요하다고 봤다. 요한 씨가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 마이 갓, 완벽한 캐스팅이다’ 싶었다. 정말 고생도 많이 했다. 당시 다리 부상에서 거의 회복되는 시기였지만 여전히 아픈 상태로 뛰어야 했고, 우리에게 계속 맞고 비닐에 싸여 있어야 했다. 잘생긴 얼굴도 망가뜨리고 때를 묻히고 가발도 쓰면서 더운 날씨에 엄청나게 고생했다. 이런 역할을 누가 이렇게 잘 받아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 웃긴 친구이기도 하다. 나와 잘 맞는다. 정말 재미있게 촬영했다.
<경주기행>이 필모에서 어떤 작품으로 남기를 바라나.
흥행작으로 남기를 바란다.(웃음) 정말 많은 사람에게 통하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이게 웬일이야’ 싶을 정도로 잘됐으면 좋겠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다. 특정한 숫자를 기대하기보다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통하고 사랑받는 작품이었으면 한다. 작품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아쉬운 부분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함께한 배우들과 감독님, 영화의 콘셉트와 완성도가 모두 마음에 쏙 들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느낌이다. 예전에 영화 <미쓰 홍당무>(2008)가 그랬다. 내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 컷들이 모두 영화에 살아 있었다. 감독님은 다르게 판단할 수도 있는데 내가 ‘이거다’, ‘이게 오케이다’라고 생각한 컷들이 모두 남았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그래서 만족도가 더 높은 것 같다.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2026년 9월 4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