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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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는 거칠지만, 여리기도 해요. 내가 위험할 때 불끈불끈 나서서 지켜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친구처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영화 <경주기행>(감독 김미조)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난 네 모녀의 가족 복수극이다. 이연은 전직 프로레슬러 ‘퍼플 마그마’인 셋째 딸 동주로 분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공격받으면 곧장 되받아치는 인물로, 프로레슬링 기술을 활용해 위기를 돌파하며 영화에 유머와 장르적 활력을 더한다. 그러나 그 거침없는 행동 이면에는 막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가족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자리한다.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한 동주에게 몸을 쓰는 일은 상처를 회피하는 수단이자, 마침내 그 상처와 대면하는 방식이었다. “이 여행은 동주가 자신을 드디어 마주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는 이연을 만나 ‘퍼플 마그마’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동주의 내면, <경주기행>이 남긴 이야기를 들었다.
완성된 영화를 선보이게 된 소감과 주변 반응은 어땠나.
새로운 장르의 영화다 보니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다. 호감으로 느껴주셨으면 좋겠고 기대도 많이 된다. 주변에서는 재미있다는 말과 함께 ‘몸을 정말 많이 썼네’, ‘고생한 게 화면에 잘 담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응원을 많이 받고 있다.
처음 동주 역을 제안받았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거칠면서도 사랑스러운 인물인데 어떻게 접근했는지도 궁금하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었다. 감독님이 대사와 행동만으로 캐릭터를 굉장히 잘 구축해 놓으셔서 내가 아이디어를 더하기보다는 잘 소화해서 표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동주는 워낙 기세가 센 인물이었다.(웃음) 편집됐지만, 첫 등장부터 엄마가 옆에 있는데도 육두문자를 하는 친구였다. ‘정말 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은 이 거친 친구를 내가 연기해서 조금 더 귀엽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강한 인상에 가려진 다른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동주는 일단 행동에 나서면 고민하거나 물러서지 않는 인물이지만, 그 안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뭉쳐 있다고 생각했다. 휘파람을 부는 장면이나 마지막에 엄마 ‘옥실’(이정은)에게 ‘내가 아직도 밉냐’고 묻는 순간처럼 자신의 마음이 드러나는 장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게 없다면 동주는 그저 거칠기만 한 아이로 보일 수 있으니까. 부끄럽지만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였으면 했다.
동주의 또 다른 핵심은 프로레슬러라는 설정이다. 일반적인 액션과도 결이 다른데 어떤 준비를 했나.
레슬링은 두 달이 조금 넘게 배웠고 촬영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 액션스쿨에 다녔다. 합 위주의 액션보다는 실제 기술을 많이 연습했다. 기술을 쓰려면 기본적인 신체 능력부터 올라와야 해서 점프나 짧게 달리는 훈련을 하며 체력을 먼저 끌어올렸다. 낙법과 구르기 같은 기본 동작도 익혔다. 프로레슬링은 하나의 연극 같은 쇼라서 시나리오와 대본이 있다. 진짜로 목을 잡아 던지는 게 아니라 상대도 함께 점프해서 떨어져 주는 식이다. 물론 맨살을 손바닥으로 치는 동작처럼 실제로 맞아야 하는 것도 있다. 원래 운동을 좋아해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내 호흡과 체력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지 않나. 그래서 체력 증진이 정말 중요했다. 액션스쿨에 가면 가장 먼저 헤이리 마을을 15~20분 정도 뛰고 줄넘기를 한 뒤 액션 연습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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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에는 동주의 프로레슬링 액션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가장 힘들거나 무서웠던 장면은 무엇이었나.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의외로 초반에 봉고차에서 튀어나와 달려간 뒤 스피어를 걸고 다시 트렁크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그날이 정말 더웠고 뙤약볕 아래에서 굉장히 많이 뛰었다. 시멘트 바닥에서 점프해 봉고차 트렁크로 들어가니 몸도 많이 아프더라. 가장 무서웠던 것은 허리케인 기술이었다. 타이어를 밟고 올라가 상대를 넘기는데 내 머리가 땅에 닿을까 봐 무서웠다. 머리가 닿지 않으려면 정말 높이 뛰어야 했다.
또, 마지막에 엄마와 동주, 남자(변요한)가 한데 엉켜 싸우는 장면은 특히 잘 나온 것 같다. 모든 동작이 짜여 있었는데 무술감독님이 막싸움처럼 보이도록 각각의 인물에게 장애를 줬다. 동주는 칼에 찔려 기술을 제대로 쓸 수 없고, 상대는 팔이 부러졌으며, 엄마 역시 교통사고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셋 모두 핸디캡을 갖고 있으니 그렇게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굉장히 똑똑한 빌드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동주는 그 와중에도 초크 기술을 건다.(웃음)
극 중 ‘퍼플 마그마’ 포토카드도 인상적이다. 별도로 촬영한 것인가.
정식 촬영에 들어가기 전 실제 프로레슬링 체육관에 가서 따로 촬영했다. 의상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은 의상·분장팀에서 퍼플 마그마에 맞춰 만들어줬다. 프로레슬링 음악을 틀고 실제 링 위에 올라가 소리를 지르며 촬영했다. 처음에는 다른 분들은 모두 평상복을 입고 있는데 나만 그 옷과 화장을 하고 있어서 너무 민망했다. 그런데 역시 화장을 하면 자신감이 생긴다.(웃음) 링 위에 올라가 음악을 틀어주니 재미있게 촬영했다. 포토카드는 소품으로 여러 장 만들어서 나도 몇 장 가지고 있다. 지갑에도 한 장 넣어뒀다. 귀신이 못 붙을 것 같은 얼굴이라 약간 부적처럼 갖고 다닌다.(웃음) 회사 냉장고에도 한 장 붙여놨다.
동주는 막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8년의 전사와 이번 여행에 동참한 이유를 어떻게 이해했나.
내가 생각한 동주는 죄책감 때문에 8년 동안 잠시 가족을 회피했을 것이다. 첫째인 ‘장주’(공효진) 언니가 엄마 곁을 지켰다면 동주는 집에 있지 않았을 것 같더라. 가족들도 어느 정도 자기 탓을 한다고 느꼈을 테니 그 분위기 안에 있기 어려웠을 거다. 그래서 자기 돈으로 일본에 가서 프로레슬링에 몰입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라도 해보려고 했던 거지. 한동안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과는 감정의 흐름과 에너지가 조금 다르지 않을까 했다. 엄마가 이렇게까지 변했다는 사실도 가장 늦게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동주가 드디어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우리 같이해야 해’라고 했을 때도 동주는 죄책감 때문에 빠질 생각조차 못했을 거다.
옥실은 복수를 위해 다른 세 딸까지 위험한 여정에 끌어들인다. 동주의 입장에서 엄마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나.
그렇게 똑 부러지게 판단할 수 있었던 사람은 둘째 ‘영주’(박소담) 정도였던 것 같다. 동주는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엄마가 이기적이다’라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을 거다. 장주와 엄마가 대화하는 걸 들으면서 조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순간 다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해?’ 하면서 스스로 눌러버렸을 거다.
동주는 첫째 장주와 둘째 영주를 대하는 태도도 확연히 다르다. 두 언니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했나.
엄마와 아빠가 모두 일을 했기 때문에 장주가 어릴 때부터 엄마처럼 동생들을 돌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주에게 장주는 엄마 같은 언니라, 그의 말은 아주 잘 듣는다. 반면 영주와 동주는 정반대다. 공부를 잘하는 둘째와 몸을 쓰는 셋째여서 어릴 때부터 비교도 많이 당했을 것 같더라. 같은 잔소리를 들어도 장주 언니가 하면 듣지만 영주 언니가 하면 ‘뭐 어쩌라고’ 하는 반응이 나오는 관계다. 그냥 나와 너무 달라서 꼴 보기 싫은 언니라고 생각했다.(웃음)
여성 감독과 배우들이 중심이 된 현장이었다. 선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또 그 안에서 당신은 어떤 후배였나.
호흡은 정말 좋았다. 내가 막내라 선배님들이 정말 잘 챙겨주셨다. 공효진 선배님과는 쉬는 날 게임도 하고 산책도 했고, 이정은 선배님은 계속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해주셨다. 가족 역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욱더 끈끈해지더라. 지금도 단체 대화방에서 계속 연락할 정도로 친해졌다. 나는 어떤 후배냐면… (웃음) 효진 선배님은 내가 애교가 있는 편이라고 하는데, 일부러 애교를 부리는 것은 아니고! 질문도 잘 하고 의견도 스스럼없이 여쭤보는 편이다. 깍듯하지만 편안하게 다가가는 후배인 것 같다.
그런데 선배님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정말 재미있었다. 내가 절대로 가볼 수 없는 시절의 활동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세 분의 연기 스타일도 모두 달라서 어떻게 준비하고 표현하는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 좋은 공부가 되더라.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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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조 감독이 오디션 없이 동주 역을 먼저 제안했고, 디엠도 여러 차례 보냈다고 들었다. (웃음) 배우로서 욕심날 만한 캐릭터 아닌가.
그래서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 만약 이 역할을 두고 미팅이나 오디션을 봤다면 내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웃음) 내 또래에 정말 좋은 배우들이 많지 않나. 그런데 내게 제일 먼저 기회를 주신 덕분에 경쟁하지 않고 이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한편으로는 감독님이 먼저 연락해주신 덕분에 ‘그래도 내가 잘하고 있었나 보다’라는 생각도 들더라. 정말 감사해서 뽀뽀해드리고 싶다.(웃음)
실제로 당신은 어떤 딸인가.
엄마에게 나는 친구 같은 딸이다. 가끔 마음과 달리 짜증 낼 때도 있고 그 순간 바로 후회하는 불효녀이기도 하다. (웃음) 엄마가 영화와 드라마를 정말 좋아하신다. 어릴 때부터 주말 데이트를 영화관에서 했는데 막상 배우가 되고 나니 예전만큼은 못하고 있다. 내가 시사회 등으로 먼저 봐버려서 엄마가 혼자 영화를 보시는 일이 많아졌다. 그건 조금 미안하다.(웃음)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배우’도 궁금하다.
<경주기행>을 마치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의 양식과 꽉 찬 느낌이 든다.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또 그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성숙해진 부분도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조금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이야기를 잘 담을 수 있는 배우다. 관객분들이 한 번쯤 묻어 놨던 생각이나 스쳐 지나간 기억, 어떤 순간을 다시 꺼내 볼 수 있도록 영향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관객들에게 동주는 어떤 인물로 남았으면 하나.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동주를 사랑스럽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거칠기는 하지만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좋은 친구처럼 느껴졌으면 한다. ‘저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 불끈 나서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친구다’라고 봐주시면 좋겠다.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는 편인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이야기도 궁금하다.
자연에서 위로 받는 편이다. 스트레스가 많거나 사람에게 지치는 일이 생기면 자연으로 간다. 그렇게 전자기기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동떨어져 지내다가, 다시 돌아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면서 회복하는 편이다.
앞으로 정말 슬픈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꼭 연인의 사랑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가족의 사랑도 좋고 부부나 커플의 이야기도 좋다. 울고 싶을 때 보면 정말 펑펑 울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연기하면서 실컷 울고 싶기도 하고. (웃음) 요즘에는 사람들이 울 기회가 너무 없는 것 같다. 간혹 ‘다들 어디에서 울고 계시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2026년 9월 8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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