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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원’이 ‘영원’이 된 거예요, 프로젝트가 삶이 됐죠 <담요를 입은 사람> 박정미 감독
2026년 9월 9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용감해서 한 선택이라기보다 무엇이 더 두려웠느냐의 선택이었어요. 시스템 안에 남아 돈을 벌고 소비하며 사는 것보다 바깥으로 나가는 삶이 제게는 덜 두려웠거든요.”

영화 <담요를 입은 사람>은 ‘돈이 없으면 삶도 없는 걸까’라는 질문과 함께 박정미 감독이 시작한 ‘0원 살이’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사는 것이 두려워 도망치듯 길을 떠난 그는 가슴에 액션캠을 달고 돈을 쓰지 않은 채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질렀다. 버려진 음식과 물건을 되살리는 ‘스킵 다이빙’, 빈 건물이나 땅을 점유해 주거권을 확보하는 ‘스?팅’, 자급자족 농장과 히피 공동체 등 자본주의 체제 밖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삶을 만났다.

2014년 시작한 ‘0원 살이’는 2년의 프로젝트를 넘어 박정미의 삶 자체가 됐다. 그 경험은 2022년 에세이 ‘0원으로 사는 삶’으로 먼저 세상에 나왔고, 여정 이후 12년 만에 다큐멘터리로 관객과 만나게 됐다. 처음에는 ‘돈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묻던 기록은 사람과 자연의 연결을 거쳐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내면의 질문으로 확장됐다. 당시 스물여덟이었던 박정미는 이제 마흔하나가 됐다. 길 위에서 시작된 질문은 진도와 지리산, 수행 공동체와 부모의 곁을 지나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 스물여덟 정미, ‘0원 살이’에 뛰어들다

박정미 감독은 스스로 겁이 많은 아이였다고 했다. 강해지고 싶어 군인이 됐지만 결국 군대를 나왔고, 이후 서울에서 문화기획 일을 했다.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에서 약 2년 동안 즐겁게 일했기에 직장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스물여덟 즈음 ‘내가 이 일을 하면서 평생 살아야 하나’, ‘이걸 하려고 태어났나’라는 질문이 찾아왔다.

“직장생활은 충분히 괜찮았는데도 불만족스러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특별한 주인공으로 살고 싶었던 야망이 컸던 것 같아요. 성공도 못 했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니, 이대로 아무것도 아닌 삶으로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죠.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배운 것과 정반대의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었어요.”

2013년 런던으로 향한 데에는 2년 동안 체류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와 영어권 국가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산업혁명과 금융을 비롯해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출발한 곳이라는 점도 그를 끌어당겼다. 당시에는 영국을 선진화된 문명의 중심으로 동경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곳이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를 잉태한 출발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됐다.

런던에 가기 전 머문 몰타에서는 아침마다 수영하고 영어를 공부한 뒤 친구들과 여행하고 와인을 마셨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생활이었지만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행복하냐”고 물었다.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도 왜 행복하지 않은지,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삶을 왜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런던에서도 생계를 위해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돈을 벌고 소비하며 버티는 삶은 더욱 두려워졌다. 박 감독에게 ‘0원 살이’는 자본주의에 맞서겠다는 선언이나 환경을 위한 신념에서 출발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덜 두려운 길이었다.

“바깥에서 보면 용감하거나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제게는 돈을 벌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며 사는 일이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삶이었어요. 너무 용감해서가 아니라 두려우니까 도망친 거예요. 돈을 벌고 사는 게 너무 두려워서 돈을 쓰지 않는 삶을 선택한 거죠.”

◆ 길 위의 정미, ‘0원’에서 ‘영원’을 발견하다

처음부터 평생 돈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1년은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만 있었다.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지, 다른 삶을 선택할지도 알지 못했다. 돈을 쓰지 않고 먹고 자는 방법을 하나씩 찾다 보니 빈집 주거 운동과 자급자족 공동체, 버려진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 카라반을 타고 이동하며 살아가는 히피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이런 대안적인 삶이 존재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렇게도 살 수 있네, 저렇게도 살 수 있네’라는 가능성이 하나씩 생겼어요. 우리는 흔히 ‘이것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선택지가 무한하게 펼쳐지면서 ‘0원’이 ‘영원’이 된 거예요. 프로젝트가 삶이 된 거죠.”

생리대와 화장품, 샴푸처럼 일상에 꼭 필요한 물건을 해결하는 과정도 삶의 방식을 바꿔놓았다. 가지고 있던 일회용 생리대를 면 생리대로 바꿨고, 당시 국내에서는 낯설었던 생리컵을 선물받아 사용했다. 건조한 피부에 바를 화장품은 농장에서 기른 알로에와 오일로 만들었고, 샴푸의 대안을 찾다가 아예 샴푸를 사용하지 않는 ‘노푸’를 선택했다. 자전거 라이트와 우비, 정비 도구가 필요할 때는 자전거 가게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 가게에서는 한 달 동안 일한 대가로 새로운 자전거를 받기도 했다. 구매 대신 생산과 교환으로 필요한 것을 채워나갔다.

돈을 쓰지 않는 일이 또 다른 강박이 된 시기도 있었다. 처음에는 ‘돈을 쓰면 안 된다’는 규칙에 자신을 가두며 먹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을 장애물처럼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돈을 쓰지 않는 생활 자체가 자연스러워졌다. 무엇을 구해야 할 때도 ‘돈이 있다면 살 텐데’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휴대전화가 당장 사라지면 못 살 것 같지만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면 없는 삶에 적응하잖아요. 돈도 마찬가지였어요. 나중에는 돈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시 돈을 썼지만, 사도 괜찮고 사지 않아도 괜찮은 균형이 생겼죠. 돈이 있으면 감사하고, 없으면 소비를 줄이면 됐어요.”

더 큰 변화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찾아왔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춥고 더러운 공동체의 생활 방식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마시는 물과 공기, 몸을 이루는 모든 것이 자연에서 왔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체득했다. 자연은 불편을 감수하며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분리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됐다.

히피들과 함께한 ‘레인보우 개더링’은 관심을 외부의 자연에서 내면의 평화로 옮겨놓았다. 모두가 연결돼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신은 왜 평온하지 못한지 묻게 됐다. 그들이 남긴 질문은 곧바로 답이 되지 않았지만, 1년 뒤 명상과 수행으로 이어졌다.

“프로젝트를 행한 2년이 당시 저를 완전히 바꿔놓은 건 아니에요. 그때 사람들이 심어놓은 씨앗을 한참 뒤에야 이해했어요. 그 삶의 방식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안에 투영되면서 계속 변화를 일으키고 있어요.”

◆ 돌아온 정미, 자연에 삶을 뿌리내리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정미를 기다린 것은 가족의 환대만은 아니었다. 런던에서 취업한 딸이 세계를 여행한 뒤 성공해서 돌아올 것이라 기대했던 어머니에게 “나는 이제 일하지 않고 자연인으로 살겠다”는 선언은 충격이었다. 헐렁한 옷을 입고 방에서 촛불을 켜 명상하는 딸을 본 친척들은 이상한 종교에 빠진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신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마저 “한국 사람이 왜 외국 부처를 믿느냐”며 발을 동동 구르고 울었다.

덕분에 부모님와 6개월 정도 지내려던 계획은 한 달 만에 끝났다. 박 감독은 진도로 내려가 5년을 살았다. 가족과 거리가 생기자 갈등은 조금씩 무뎌졌지만, 어머니의 걱정은 지금도 이어진다. 책을 내고 영화를 완성했어도 안정적인 수입이 생긴 것은 아니기에 “돈을 벌어라”, “돈을 모아라”라는 말을 여전히 듣는다.

“엄마는 아직도 저를 한심해하고 걱정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요. 그렇지만 이제 그런 말에 별로 타격을 받지 않아요. 언젠가는 엄마도 무엇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인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진도에서의 생활은 자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농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끊임없는 간섭은 또 다른 피로를 안겼다. 여성은 부정을 탄다는 이유로 마을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고, 자신의 삶을 매번 해명하고 설명해야 했다.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도 근본적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단절감이 커졌다. 결국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혼자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리산의 빈집을 찾았다.

우연히 구례에 사는 친구를 방문했다가 산속의 빈집을 소개받았고, 집주인에게 부탁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직접 집을 수선하고 돌담을 쌓으며 두 마리의 형제 유기견과 5년을 살았다. 영화 말미에 담긴 지리산 생활은 종착지라기보다는 길 위에서 배운 삶을 자신의 공간에 뿌리내리는 과정의 일부였다.

여정은 8년 뒤 에세이 ‘0원으로 사는 삶’이 됐고, 거기서 4년의 시간을 더해 다큐멘터리 <담요를 입은 사람>으로 완성됐다. 하지만 박 감독은 ‘작가’나 ‘감독’이라는 이름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기진 않는다.

“작가와 감독은 제가 한 경험을 나누기 위해 선택한 표현 방식일 뿐이에요. 집을 고치고 돌담을 쌓는 것, 나무를 깎고 바느질하는 것도 모두 표현의 도구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농부나 목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작가나 감독은 제가 하는 여러 일 가운데 하나일 뿐이에요.”

◆ 마흔하나 정미, 늙음과 죽음을 마주하다

지리산을 나온 뒤 박정미는 거창의 비구니 승가 공동체에 머물며 종무 일을 돕고 수행했다. 모든 종교인과 사찰을 존경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곳의 스님들이 검소하게 자급자족하며 성실하게 수행하는 모습에 감화됐다. 한때 출가를 고민하고 직접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아직 버리지 못한 욕망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출가 대신 재가자로 수행하는 삶을 택했다.

지난 6월에는 아버지의 암 진단 소식을 듣고 공동체를 나와 강원도 원주의 부모 곁으로 돌아왔다. 파킨슨병과 신장암을 앓는 아버지를 돌보면서 그의 관심은 늙어감과 병듦, 죽음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연명 치료는 더 살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 순간에는 삶과 생존의 차이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버지가 죽음의 과정을 어떻게 통과하고 가족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카메라에 담으려 한다.

“아버지가 제게는 뮤즈예요. 아빠와 싸우고 방에 들어오면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글을 쓰게 돼요. 아버지가 연명 치료를 원하는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기록하려고 해요.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작업이라 20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웃음)

‘0원 살이’를 해낸 자신감에는 젊고 건강한 몸이라는 조건이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마흔을 넘기며 디스크와 오십견을 겪으면서 장작을 자르거나 머리를 묶는 일조차 어려워지자, 돈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배경엔 건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시에 돌봄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장애인과 환자를 비롯해 누구나 늙고 병들며 죽음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이전에는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노후를 위한 돈과 보험,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몸이 무너지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덜컥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답은 다시 돈을 버는 삶으로 돌아가는 데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돈 없이도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과정을 잘 통과할 방법을 찾는 것이 다음 삶의 화두가 됐다.

두려움에서 도망치며 시작한 여정. 그렇다면 13년이 흐른 지금, 박정미는 그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졌을까. 답은 ‘아니었다’. 밤 산길에서는 야생동물이나 낯선 사람을 만날까 두려웠고, 전철을 타면서도 재난과 사고를 상상했다. 영화가 외면받을까, 부모가 예상보다 일찍 세상을 떠날까 걱정하기도 했다. 다만 이제는 두려움이 찾아올 때 그것이 자신의 망상임을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게 됐다.

13년 전의 자신을 다시 만난다면 박정미는 “인간을 믿으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에는 길 위에서 만난 이들의 위로가 실질적인 용기를 주지 못했지만, 직접 경험한 뒤에야 세상에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고 좋은 마음으로 시작하면 좋은 인연이 찾아온다는 말을 믿게 됐다.

행복하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않았다. 그에게 행복은 때때로 욕망이 충족되는 찰나의 쾌락과 혼동되는 거창한 말이었다. 그보다는 지금 자신의 삶이 평안한지, 충분한지, 만족스러운지가 더 중요했다.
“저 역시 바라는 것도 두려운 것도 있으니 100% 만족스러울 수는 없겠죠. 다만 돈이나 타이틀처럼 사람들이 대체로 필요하다고 믿는 것들이 다른 이들보다는 조금 적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의 삶에 만족하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만족할 만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사진제공. 시네마달


2026년 9월 9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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