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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형식은 주인공을 닮아야 한다 <에디 앨리스: 테이크> 김일란 감독
2026년 11월 3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성별 정체성에 맞춰 몸과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인 ‘트랜지션’, 이는 성확정수술로 끝나는 것일까. 영화 <에디 앨리스: 테이크>는 두 트랜스젠더 여성의 서로 다른 삶을 통해 이 질문을 던진다. 25년 차 영화 조명감독 앨리스와 트랜스젠더 인권활동가 에디. 두 사람의 일상과 변화, 그리고 그 삶을 카메라에 담는 과정이 교차한다. 익숙한 관찰 다큐멘터리의 틀을 벗어나 기록과 재현, 퍼포먼스, 필름과 디지털 이미지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 3xFTM >(2009), <두 개의 문>(2012), <공동정범>(2018) 등을 연출한 김일란 감독의 신작이다. 20년 넘게 인권활동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해 온 그는 이번에도 새로운 형식에 도전했다. 영화의 형식은 주인공의 삶에서 출발한다는 김일란 감독. 그를 만나 두 여성의 삶과 트랜지션,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공동정범>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장편이다. 이번 작품은 어떻게 시작됐나.
트랜스젠더에 관한 작업이 처음은 아니다. < 3xFTM >이라는 트랜스 남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도 있고, 연분홍치마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낯선 주제는 아니었다. 다만 그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퀴어 운동을 재미있게 해보고 싶어서 유튜브 채널 연분홍 TV에서 예능 ‘퀴서비스’를 만들었는데, 당시 MC가 에디였다. 함께 새로운 매체로 작업하는 게 무척 재미있더라. 그러던 중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 문제를 비롯해 트랜스 여성에 대한 혐오가 사회적으로 팽배해졌고, 에디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트랜스 여성에 관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트랜스 여성 조명감독인 앨리스를 만났다. 두 사람의 이야기라면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디는 트랜지션이 진행 중이라고 말하고, 앨리스는 끝났다고 한다. 두 사람의 차이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트랜지션은 의료적인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도 달라지고 법적인 성별 정정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균형 있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앨리스는 법적·의료적 트랜지션이 끝났고 주변에서도 앨리스 언니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몸과 화해하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반대로 에디는 사회적으로는 여성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른바 ‘패싱’이 잘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촬영 당시에는 법적·의료적 트랜지션이 진행 중이었다.

트랜지션은 1단계, 2단계, 3단계처럼 차례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자신이 느끼는 것도 다르다. 수술하면 갑자기 여성이 되고 모든 것이 끝나는 단절적인 경험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과정을 영화에서도 디졸브나 다양한 이미지의 전환을 통해 감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영화는 성별 정체성뿐 아니라 노동과 생계, 가족관계, 새로운 도전까지 두 사람의 삶을 폭넓게 담았다.
영화를 시작할 무렵 에디는 수술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고, 앨리스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해고돼 힘들어하던 시기였다.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출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4년 정도 촬영하면서 에디가 수술을 결심하고 회복하고 법적인 성별 정정을 하는 과정까지 담게 됐다. 앨리스 역시 해고 이후 자신을 부정하던 시간을 지나 새로운 꿈을 꾸고, 춤을 배우면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에디가 여탕에 들어가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를 재현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탕은 트랜스 여성에게 굉장히 예민한 공간이다. 에디 역시 수술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곳이다. 그런데 수술과 성별 정정을 마친 뒤 여탕에 갔을 때 다른 여성들이 전혀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았고, 자신도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이후에는 수영장에도 다니게 됐다. 그 자연스러운 변화를 표현하고 싶었다. 반면 앨리스는 수술과 성별 정정을 마쳤어도 여전히 여탕에 가는 것을 꿈꾸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이렇듯 같은 트랜스 여성이라도 저마다 경험이 다르다.

관찰과 재현, 영화 속 영화, 퍼포먼스 등 형식적인 시도가 많다. 익숙한 다큐멘터리 문법에서 벗어난 의도는.
트랜지션의 의미를 다양한 감각으로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관찰 다큐멘터리도 해봤지만, 이번에는 정체화 과정을 여러 방식과 매체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 인터뷰도 퍼포먼스처럼 진행하고 카메라 안과 밖을 넘나든다. 관객이 ‘왜 저렇게 했을까’ 궁금해하면서 다양한 감각으로 영화를 봤으면 했기 때문이다. 또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과정도 일종의 트랜지션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디지털 서버 이미지 역시 이런 매체의 변화를 보여준다.

<에디 앨리스>는 ‘테이크’와 ‘리버스’ 두 버전으로 구성됐다. 인물의 등장 순서를 바꾼 이유도 궁금하다.
‘테이크’에서는 앨리스가 먼저 나오고 에디가 뒤에 등장한다. ‘리버스’는 반대다. 같은 이미지인데도 순서를 바꾸면 영화를 보는 느낌이 굉장히 달라지더라. 이런 부분에서도 영화라는 매체를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다. 어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한다. 동일한 이미지라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형식적 실험이 혹시라도 관객에게 어렵게 다가갈 수 있다는 고민은 없었나.
말했듯이 같은 이야기도 어떤 형식으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진다. 트랜스 여성의 이야기가 익숙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 일상에서는 낯설지만 유튜브나 예능 같은 미디어를 통해 접하다 보니 다 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트랜스 여성의 삶을 다른 시선으로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양한 형식을 실험했다.

영화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장면을 꼽는다면.
다이레이션 장면이다. 관객들이 그 장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궁금해하다가 갑자기 스태프들이 등장하니까. 그런데 에디는 위축되지 않고 스태프들에게 촬영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앨리스도 조명감독으로 참여한다. 트랜스 여성의 수술 이후 과정, 영화의 프레임 안과 밖, 출연자와 스태프의 관계가 한 장면에 담겨 있다. 가장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촬영 과정에서도 많이 고민했고, 예민한 장면이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앨리스가 관객을 향해 “이거 진짜예요”라고 말하는 순간도 그렇다.

다이레이션은 상당히 사적인 경험이다. 그 과정을 직접 보여주기로 한 이유는. 연출과 실제 경험의 경계도 궁금하다.
트랜스 여성들 사이에서도 조심스러운 이야기다. 수술을 결심했거나 이미 수술한 사람들도 다이레이션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있다. 에디는 수술을 준비하거나 고민하는 다른 트랜스 여성들과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함께 만든 장면이다. 연출했다고 해서 실제로 다이레이션을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안전하게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 각도와 위치를 고민했다는 의미다. 너무 민감한 부분이 찍히면 안 되니까. 감독의 의도가 들어갔다는 점에서 연출이지, 허구라는 뜻은 아니다.

< 3xFTM > 이후 약 18년이 흘렀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삶과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이라고 느끼는지.
사회 전반의 인식이 크게 변했다기보다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부의 변화가 더 크다고 느낀다. 내부적으로 세대 차이도 있고, 꼭 수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과거보다 자긍심을 갖게 된 부분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려는 의료진도 생겼고 트랜스젠더 변호사도 있다. 이렇듯 직업적·의료적 변화는 분명히 있지만, 사회적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앨리스가 어떤 공간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이 쳐다본다. 앨리스는 ‘패싱’이 잘 안되는 거지. 이렇듯 수술이 모든 것을 바꿔주는 것은 아니다.

인권활동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해 왔다.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과 영화적 성취를 추구하는 일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나.
나는 그 둘이 분리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번 감독으로서 목표한 영화적 성취는 이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활동가로서나 감독으로서나 메시지를 영화적인 형식에 담아 전달하기 위해 하고 싶은 도전을 열심히 해왔다. <두 개의 문>도 당시에는 많이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의 영화였고, <공동정범>이나 <에디 앨리스>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때 그에 맞는 영화적 형식을 고민하는 일은 계속해 왔다.

그 형식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이야기하고, 주의를 기울인다. 다만 원칙이 하나 있다. 다큐멘터리의 형식은 주인공을 닮아야 한다는 거다. 에디는 스스로를 불가능에 도전하는 탐험가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수술 과정도 낯선 공간을 탐험하는 것처럼 표현했다. 그런 상상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잘 들으면 얻을 수 있다. 주인공이 힌트를 주는 거지. (웃음) 앨리스도 마찬가지다. 앨리스의 목소리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데, 나는 그 목소리가 악기가 되는 순간이 있었으면 했다.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이 앨리스의 목소리를 온전히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년 넘게 함께한 연분홍치마는 당신의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독립 다큐멘터리의 제작 여건도 궁금하다.
연분홍치마의 조직적 지향이나 활동 과정에서 하게 되는 윤리적 고민, 인권운동이 계속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도 대부분 인권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다. 내게는 연분홍치마 활동과 다큐멘터리 작업이 분리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작업 자체가 연분홍치마 활동이다. 제작비는 공적 기금이 없으면 창작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여러 제작지원 사업에 신청하고, 영화제나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한다. (웃음) 그렇게 조달한다.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에게도 창작 작업은 여전히 어려운 일인가. 젊은 창작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예술에는 베테랑이 없다고 생각한다. 창작에는 경력직이 없다. 매번 새롭고 매번 힘들다. 과거의 경험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계도, 프로그램도, 제도도 계속 바뀐다. 편집 프로그램 하나도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다시 배워야 한다. 멈추면 낙오된다. 그래서 동시대성을 획득하려고 무던히 애쓰고, 뭐라도 하나 새롭게 시도하려고 한다. 경험과 경력에 상관없이 여전히 허덕거린다고 느낀다. <에디 앨리스>도 그렇게 허덕이며 만들었다. 배급 환경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물론 경험이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다. 쉽게 패배감을 느끼지 않고 마음을 다잡는 데에는 과거의 경험이 도움이 된다.

나도 하나 궁금한 게 있다. 기자로서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어떤 점이 가장 좋았는지 묻고 싶다.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가치는 내가 몰랐던 세계를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면서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것. 이 영화를 보면서도 트랜지션이 수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 이후에도 서로 다른 삶과 고민이 이어진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그것이 가장 좋았다. 마지막으로 차기작이 궁금하다. 다음에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계획인가.
1980년대 이태원에서 트랜스 클럽 활동을 했던 나이 든 트랜스 여성분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있다. 지금도 부지런히 작업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왜 이렇게 작품을 뜸하게 만드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영화를 더 보고 싶다는 뜻이었겠지만, 나는 정말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웃음)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사진제공. 시네마달




2026년 11월 3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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