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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pme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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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25 오후 12:4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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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미 이프 유 캔] 짓누르던 시간으로부터의 탈출
인생의 목표는 사람마다 다르고, 또 다양하다. 하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은 "행복"이라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희대의 수표사기꾼, 프랭크는 그래서 탄생했다. 그의 천재성은 몇 번의 실수를 거듭하면서 빛을 발했고 결국 그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가 그런 길로 들어선 이유는 오직 단 하나. 행복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혼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의 어린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되고 거기서부터 그의 사기 행각은 시작된다. 이후, 영화는 그의 천재적인 사기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의 사기성이 처음으로 발휘된 때는 그래도 아직은 행복한 시절이었던 학생 때에 대리교사를 자청하고 나서부터였다. 하지만, 이 사기는 비교적 쉽게 용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이 이혼한 후부터의 사기는 범죄의 도(?)를 뛰어넘어 버린다. 처음에는 항공사로 행세하다 비밀요원을 가장해 칼의 눈앞에서 유유히 사라지더니, 의사로 변해 브레나와 사랑을 나눈다. 심지어는 변호사를 가장해 결혼까지 해 버린다. 이런 그를 집요하게 뒤쫓는 칼은 그에게는 유일한 걸림돌이자, 또 그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하다. 이런 아이러니는 영화 전반을 이끌어갈수록 따뜻한 휴머니즘을 일구어가는 하나의 필연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더 이상 범죄자로서의 삶을 살 수 없게 된 프랭크는 칼에 의해 FBI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나는 이 장면에서 울컥 치밀어오르는 뭔가가 있었다. 그게 뭔지는 그냥 생각 안하기로 했다. 감동이라는 것은 생각을 할 수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치밀어오르는 어떤 느낌 때문에 오래오래 간직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차별화된 세상에 대하여 욕을 퍼붇다가도 어느 순간 세상은 얼마나 공평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한다. 프랭크가 느꼈던 고통의 시간은 그만큼 길었을 것이다. 언제 잡힐지 몰라 조마조마하면서도 그러나 은근히 빨리 잡히길 바라는 마음의 이면 속에는 자유롭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과 어서 빨리 이런 불편한 짓을 끝내고 싶다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으니, 이 감정은 아마도 보다 큰 大義를 위한 준비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18세도 안 된 미성년의 나이에 세상의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버린 프랭크가 선택해야만 했던 길은 그가 가장 잘 할 줄 아는 사기를 하는 짓이었으니. 심지어 그의 아버지조차 프랭크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로 그는 수표위조에 뛰어났다. 재능이란 것은 누가 멈추려 한다고 멈춰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그러니까, 사기를 위해 수표를 위조하느냐와 수표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활용하느냐는 - 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 영화가 주는 그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 더욱 더 빛을 발휘하고 있는 듯 하다. 한국의 대도 신창원이 전문털이범은 어떻게 집을 터는가를 밝히면서, 한국의 보안시스템이 새 국면에 접어들듯이 세계의 수표위조범은 프랭크로 인해 많은 골치를 앓았을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듯한 이 문장은(세계의∼앓았을 것이다.) 아마도 프랭크가 원래는 전과자였기 때문에 이제는 쫓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쫓기는 입장에서 범죄를 새롭게 봐야된다는 나름대로의 해석이라고 봐야겠다. 어찌됐든, 이 세상에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도둑이나 범죄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다같이 잘사는 사회. 다같이 행복한 사회. 아마도 그 사회가 오려면 아직도 우리는 많은 꿈을 꾸어야만 하겠지. 프랭크를 보면서 지금 이 세상에 살아있는 수많은 범죄자들도 나름대로의 희망과 위안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그 희망과 위안이 정당한 것으로 승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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