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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는 넘과 속는 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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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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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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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0 오후 3:1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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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불바뒤 안냐심까? 요사이 넘 조까튼 사건들만 눈에 들오고 그러다 보니 세상이 트릿- 하게 보이고,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조차 정말 조까튼 일들만 눈에 보이는 거 같슴다. 그래서 말투를 좀 바꿨슴다.
기분이 조까틀수록 표현이라두 곱게 해야 감정의 제어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임다. 흠... -.-;; 압니다. 그치만 이보다 더 감정을 제어하긴 어려우니깐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면 고맙구... 아니래두 어쩌겠슴까? 다 니덜 팔자지.
본론 들...가기 전에 실제루 겪었던 조까튼 일부터 먼저 썰 풀겠슴다. 친구넘하구 지하철 타구 집에 가는 길였슴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구 지하철 안은 한산했슴다. 나는 친구넘하구 둘이 붙어 앉아 노가리를 풀고 있었슴다.
한참 노가리를 푸느라 주두이가 마를 새가 없었는데,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어떤 청년이 양 손에 반코팅 목장갑을 끼구 양다리를 쭉- 뻗은 채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양 손을 이용해서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로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였슴다.
청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그 청년은 다리를 전혀 못 쓰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슴다. 그 청년은 듬성듬성 앉아 있는 사람들 앞에 다가가 최대한 공손하면서도 최대한 또릿또릿하고도 최대한 애절한 말씨로 말했슴다.
"안녕하십니까? 열차내에서 불편을 끼쳐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만, 살아볼려고 애쓰는 젊은이에게 100원짜리 하나만 도와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았슴다.
비록 그가 두 다리를 쭉- 뻗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쳐 든 채 손을 벌리고 있어슴다만, 그 말씨와 태도는 그보다 더할 수 없으리만큼 공손하였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면 또한 최대한의 예를 갖추어 고마움을 표시하였고, 그렇게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도 청년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귀가하시는 길에 불쾌감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꾸벅 인사를 하고는 양손과 엉덩이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갔슴다.
캬~~ 나는 감동 먹구 말았슴다. 그래서 그 청년이 우리 앞을 지나가려구 할 때, 우리에게 동정을 요구한 것두 아니었는데 주머니에서 몇 푼의 돈을 집어 그 청년에게 주었슴다. 아무리 생각해두 나는 에인젤의 화신이 아닌가 싶슴다. -.,-;;
그런데 매정한 친구넘은 100원짜리가 하나두 없다면서 한 푼도 그 청년을 도우려 하지 않았슴다. 나는 친구넘에게
"물론 니가 원래부터 그렇게 쪼잔X100하다는 건 알구 있지만, 그래서 니의 쪼잔함을 감추기 위해 저런 사람들의 상식화된 부정부패를 애써 부각시키고자 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니는 그럼으로써 결국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거시다. 저 청년의 어디를 봐서 니의 판단이 옳다고 할 수 있단 말이냐?
저 청년의 저 태도를 보아라. 그리고 저 청년의 저 당당하고 또릿또릿한 눈망울을 보아라. 만일 저렇게나 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청년이 사지가 멀쩡하다면 결단코 이따우로 동정을 구걸하는 짓은 하지 않을 거시다.
설혹 저 청년이 가짜 장애인이라 하더라도 저 정도의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댓가를 받아도 충분한 거시다. 물론 저 청년은 결단코 가짜 장애인일리가 없으며 진실로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거시다."
라면서 침을 튀겼슴다. 그리고 앞으로 쭉- 뻗은 두 다리를 끌고 두 손을 이용해서 뛰뚱거리며 나아가고 있는 그 청년의 뒷모습에서 어떤 경외감까지 느꼈더랬슴다.
그런데... 아~ 씨파- 그런데 말임다...
친구넘의 잘못된 선입견에 대한 성토로 열을 올리면서 그 청년이 힘겹게 열차에서 내리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구야 말았슴다. 엉덩이를 바닥에 깔구 양 손으로 어렵사리 열차에서 내린 그 청년은 열차의 문이 닫히자 벌떡 일어나서는 두 손을 탈 탈 탈.. 털구는 걸어가 버렸슴다.-.-;;
그렇슴다. 내가 속은 거시였슴다. T.T | | . . . .
"야, 이 시방새야, 그렇게 사람을 의심하구 그러면 말야..." 의 "..야.."에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두개골을 강타하는 충격을 견디지 못해 목석이 되어 있는 나에게 앞자리에서 역시 한사코 그 청년의 눈길을 외면하였던 중년의 남자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슴다.
"저런 놈들은 도와줄 필요가 없다니깐. 허~ 참."
친구넘두 한마디 거들었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뽕- 이다."
졸... 라... 세상이 무섭슴다. 나와 같은 에인젤의 화신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도 험난한 곳인 거 같슴다. 나와 같이 순진무구 천진난만 청순가련(이건 아니구, 암튼)한 사람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거짓이 판을 치고 있는 것 같슴다.
그런데 나와 같이 (청순가련은 빼구) 순진무구 천진난만한 사람이 의외로 너무 많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두 같슴다. 아니, 나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바보같은 분들이 너무 많은 거 같슴다.
영화 <진주만> 말임다. 그거이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하구 마이클 베이가 감독한 거라는 그 사실 하나에 필이 딱- 꽂히지 않았단 말인가여?
그 사실이 쪼까 부족한 정보라구 해도 예고편을 보는 바로 그 순간에 <더 록>과 <아마계똥>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하나두 새로울 것 없는 스또리에 화려한 스펙따꾸르로 떡칠한 영화일 것이라는 감동이 파노라마 쳐 오지 않았단 말인가여?
도대체 더이상 뭘 더 기대했단 말인가여? 그런데 영화가 개봉되자 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이 영화의 기만과 사기성을 성토하고 분노의 응징자인 양 냉철한 이성의 논리를 펼쳐 보이며 이 영화의 쉣스러움에 호들갑을 떨어대구 있슴다.
이건 마치 똥꼬를 디벼 보면서 똥꼬털이 아닌 금가루가 있기를 기대한 격이지 않고 뭐겠슴까? 아아..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순진무구 천진난만한 사람들이 많은 거 같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나 똥꼬에는 똥가루밖에 없노라고 울부짖는데도 불구하고 <진주만>의 똥꼬를 지덜 눈깔로 꼭 디벼보고야 말겠다는 임관무퇴(관람에 임하여서는 결코 물러남이 없다)의 결의를 다지는 분들 역시 부지기수라는 것임다.
그러면서 영화을 다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에이- 뭐 이래? 졸라 길구 졸라 잼없잔어? 시파-' 라고 한결같이 외침다. 순전히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간혹 혈기왕성한 모지리들은 극장앞에 주저 앉아 피같은 내 돈 돌리도의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자신의 냉철한 지성과 날카로운 혜안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영화의 진부뻔뻔뺀질스러움을 꽤뚫어 보고 있다는 자랑스러움에 가슴 뿌듯해 하는 순박한 모지리는 수많은 인터넷 게시판에까지 자신의 순진무구 천진난만함을 도배하고 있슴다.
그래서 나는 헷갈리고 있슴다. <진주만>의 파상적인 폭격에 항거하기 위해서인지 어째서인지는 몰겠슴다만, 언론의 거의 맹목적이다시피한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고 대중들의 관심 역시 그 못지 않게 뜨거운 <수취인 불명>에 속으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임다.
<진주만>에 속느니 <수취인 불명>에 속아 주는게 니덜의 정신적인 건강에 훨씬 더 이득이라구 아무리 감언이설로 쥐랄발광을 해두 사람들은 <수취인 불명>만 생각하면 영특하신 혜안이 번쩍 트여서 짜가 장애인이 생각나나 봄다. 어쩜 그리도 용하신지...
때때로 우리는 속아줘야 할 것에 속지 않고 속지 말아야 할 것에 훌러덩 홀라당 잘두 속아 버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듬다.
누드 파문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김모 혹은 K모 교사의 이름인 김인규를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건 언론의 쪼잔함을 여실히 증거한 예가 되고 있슴다.
몇 편의 시사 토크 프로에 실명으로 실제 주인공이 등장하여 자신의 예술관과 누드 파문에 대한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곡해를 해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언론에서는 아직도 그를 김모 혹은 K모 교사로 지칭하고 있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김인규 교사의 이야기에 아직도(!) 선정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임다.
절라 지저분한 넘들임다. 빨아먹을 때까지 하나두 남김없이 빨아 먹겠다는 심뽀가 아니겠슴까? 불행한 것은 울나라의 거의 전국민이 김모 교사의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현직 미술 교사가 발가벗었다는 그 사실만 알 뿐 그가 왜 벗었는지 하는 인간 김인규의 예술적 고뇌는 거의 전국민이 모르고 있다는 것임다.
100년만의 가뭄으로 전국민이 고통받고 있는데 하필 그 때에 파업같은 거 해 가지구 수많은 사람들에게 절망과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연일 떠들어대는 통에 제대로 된 협상도 하지 못하고 깨갱- 하고 말았던 노동계의 파업사태도 그렇슴다.
도대체 울나라에서 파업이라고 이름 붙여진 행위가 단 한 번이라도 정당화된 적이 있었던가여? 수많은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어 왔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들이 파업에까지 이르게 된 불가피한 사연을 제대로 알지 못함다.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파업하구 쥐랄이냐? 시파 시키들, 배가 불렀지. 니덜 파업하면 수출 전선 비상 걸리구 국가 경제 거널난다는 거 몰라서 그래? 암튼 이 넘들 정신 못 차린다니깐!' 식의 비난만이 있을 뿐임다. 그래도 울나라의 천진난만 순진무구한 사람들은 '그래 마저! 이렇게 어려울 때 왜 파업같은 거 하구 쥐랄이다냐?' 하면서 고개를 끄덕임다.
이건 속이는 넘 잘못입니까? 속는 넘 잘못입니까? 속이는 넘이야 지들 나름대로의 이해타산에 따라서 그런 만행을 저지른다고 하겠지만 속는 넘들은 왜 아득바득 그렇게 속아주는지 알다가도 몰겠슴다. 알고 속아 주는 거 아닐까여? -.-;;
물론 노동계의 파업이 무조건 정당하다는 건 아님다. 다만 왜 우리는 늘상 편협한 시각에 지배당하면서도 그것이 편협하다는 사실조차 알 권리를 박탈당하며 살구 있는지 답답할 뿐임다.
차라리 짜가 장애인에게 속을지언정, 짜가 언론의 파시즘적 선동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그렇게나 난해한 일일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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