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사마(배용준)가 올해 상반기 일본 최고의 히트상품 2위를 차지했을 때 1위를 차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일본 역사상 가장 많이 팔렸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판매량 기록을 가볍게 제치고, 영화로도 개봉되어 두 달 반 만에 관객 700만을 돌파한 명실상부한 최고의 히트상품. 그리고 국내에서도 최고 인기 검색어에 오른 바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입니다. - 10월 7일 개봉예정 -
예전에 이와이슌지의 '러브레터'를 보고 목놓아 울다가 쪽팔았던 전력이 있던 차, 전 일본을 온통 눈물의 지진으로 뒤흔든 이 영화의 시사회에 초대되었을 때 필자는 가장 먼저 손수건을 준비했더랬습니다.
'사쿠'와 결혼을 앞 둔 '리츠코'는 짐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테입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 테입에 무엇이 녹음되었는지 기억이 않나는 리츠코는 워크맨을 사서 들어봅니다.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리츠코. 갑자기 사쿠에게 다녀올 곳이 있다는 편지를 남기고 '시코쿠'로 떠납니다. 리츠코를 찾아 도착한 시코쿠는 공교롭게도 사쿠의 고향입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사쿠는 고향에 온 목적은 까맣게 잊고 학창시절 첫 사랑이었던 '아키'와 주고 받았던 테입을 들으며 슬픈 사랑의 추억에 빠지게 됩니다. 잊고 살았던 뒤안길 같은 추억을 한 걸음씩 되짚어 가던 그는 오래전에 자신에게 도착하지 못했던 아키 의 마지막 음성 메시지가 담긴 테입을 만나게 되는데... (중략)
열여섯, 열일곱. 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맑은 눈망울을 가진 시기죠. 신은 어쩌자고 무려 백년이나 살 수 있는 우리 인간에게 이렇게 짧은 봄날을 준 걸까요.
사쿠의 첫사랑 역시 그 시기에 찾아옵니다. 학교에서 가장 이쁘고 똑똑하고 건강한 아키.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해맑은 웃음으로 사쿠의 스쿠터에 올라 타 뒤에서 꼬옥 안습니다. '가슴이 등에 닿아서 이상해?' 하면서, 쑥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사쿠를 놀리기까지 합니다. 스스로 구하지 않았기에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첫사랑은 그렇게 '기적'처럼 시작됩니다.
영화는 이 기적같은 첫사랑의 만남에서부터 가슴저린 이별의 순간에 이르는 동안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時空 속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눈부시게 달려갑니다. 하지만 소설로 읽었으면 더 극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영화는 슬픔으로 조금씩 젖어가는 기쁜 첫사랑의 과정을 큰 격정없이 눈에서 마음으로 전해줍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나이 먹은 사쿠는 이제 지난 그리움의 모서리들에 더 이상 긁히지 않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하지만 리츠코와의 결혼을 앞두고 다시 찾아온 아키의 '살아있는 목소리' 는 서서히 그의 가슴을 데우고, 결국 또 다시 깊은 슬픔과 추억속에 빠지게 합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다가 헤어지게 되었을 때,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에 지쳐가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건, 그 사람과의 추억이 전설처럼 '잊혀져 가고 있다는 사실' 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쿠는 울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왜 잊고 살아 온 거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 시간은 충분했으나 그 만큼 사랑하지 않아서 아쉬운 헤어짐 보다, 사랑할 시간이 충분히 허락되지 않았던 사랑은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사쿠와 아키에게 다가온 이별은 허락하지도 않았고, 잊어달라는 말 조차 할 수 없었기에 사쿠 홀로 접기에 그 아픔이 너무나 안쓰러워 보입니다.
'사랑'에는 왕도도 법칙도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함에 있어 지켜져야할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 이겠죠. 사쿠는 죽어가는 아키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두가지 큰 선물을 준비합니다. 혼인신고서, 그리고 아키가 가고 싶어 하던 '세상의 중심'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 힘없는 작은 두 사람의 절박한 사랑에 눈물은 목을 타고 내 안에 흐릅니다.
학창시절의 첫사랑.. 사귀기에 편한 나이와, 부르기에 편한 이름과 다가가기에 편한 체온과, 함께하기에 좋은 숨결.. 그래서 그 사랑은 평생을 두고 다시 오지 않는 것 인가 봅니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는 보석같은 시간으로의 '돌아감'을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그 시절, 사랑에 울어서 맑은 눈이 더욱 맑게 빛났던 추억이 있는 당신이라면 이 영화의 풍경들 속에서 당신의 추억도 스폰지처럼 다시 촉촉해질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만남의 기쁨과 은혜의 시간속을 살아도, 가슴 아픈 첫사랑의 기억은 마음 속에 끝없는 블랙홀로 남기 때문이겠죠.
그녀를 떠나보내고, 모두가 아름다운 밤 하늘을 바라볼 때 눈물로 까맣게 탄 가슴을 하늘에 심었을 어린 사쿠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아키의 목소리가 이제서야 새삼스레 필자의 눈시울을 적시네요.
'내 생일이 조금 더 빠르니, 네가 세상에 태어난 후 내가 없었던 적은 단 1초도 없었어. 너를 사랑한 시간보다 더 오래 너를 기억할께. 그리고 네가 어른이 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들께..'
시사회장을 나서며 늦은 밤 강남역을 배회하는 어린 연인들을 바라봅니다. 남자아이의 팔이 여자아이의 옆구리를 지나 엉덩이와 가슴을 쥐었다 놓습니다.
수줍던 우리 어릴적 순수한 사랑은 이 나라의 중심에서는 더 이상 외쳐지지 않는 걸까요..
cropper in S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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