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년전에 개봉한 영화가 한 편 있다.
이 영화는 삼개월이나 개봉하면서 그 흔한 광고나 요란한 포스터 없이 순전히
입소문으로만 수만명을 끌어모았고  개봉기간 동안 관객이 모아준 가장높은 별점은
단 한번도 빛을 잃지 않고 온오프라인의 모든 영화잡지를 수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끝없는 재개봉의 요구를 못이겨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2004년에 개봉된 최고의 영화'로 뽑혀 한달을 더 상영하고도 아쉬움은 끊이지 않아
DVD로 출시후에도 단번에 수천장이 판매되었고 급기야 개봉 1주년을 맞아
지난주 부터 다음주 까지 앵콜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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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 늙은 한 노인네가 천으로 꽁꽁싼 유모차를 끌고다닌다는 소문이 돌고
그 유모차에 든 것이 무엇인지를 놓고 소문만 무성하다.
잘생기고 친절해서 여자들이 가만놔두질 않는 대학생 츠네오는 그 소문만발의
유모차와 우연히 부딪힌다.  그 안엔 비슷한 또래의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소녀
조제가 타고 있다.  집안에만 있으라는 할머니를 졸라 꽃과 고양이를 보고싶어
몰래 바람을 쐬러 나온다는 조제. 

쿠미코라는 이름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그녀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평생을 집안에서 지내며  때로는 놀라울 지식을 과시하고,
때로는 가슴저미는 소설의 주인공 조제가 되어 마치 뭍에 나온 인어공주마냥
방안을 헤엄치고 다닌다.

조제도 다른 여학생들 처럼 꽃미남 츠네오의 단 몇번의 친절에 마음을 뺏기고
사랑을 나누게 된다.  츠네오 또한 독특하고 쿨한 그녀의 매력에 사랑을 느끼고
드디어 1년 넘는 동거에 들어가게 된다.

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최고의 영화로
선택되어진 이유는 매우 특별하다.
젊은 남녀가 우연히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야기는 셀 수조차 없다.
세상 남녀의 만남이 모두 특별하고 운명같음을 누가 부인하랴 마는   
남녀들이란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우연과 사건들을 마치 운명인양 새끼를 꼬고
스스로를 그 끈으로 꽁꽁 묶지만,  1년 아니 몇 달만 지나면 그 느슨해진 끈사이로
갖가지 구실의 이별을 끄집어 낸다. 
아니면 그냥 다들 그러려니 하고 무뎌진 일상에 사랑은 잊고 살거나 .

이러한 특별한 흔해빠짐이 연애의 일상다반사 이지만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눈빛은 전혀 일상적일 수 없다.
그것은 조제가 다리를 전혀 쓸 수없는 장애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그토록 많은 사랑을 접하면서 장애자의 사랑을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최근에 화제가 되곤 하는 정상인과 장애인의 결혼소식은 일반인들에게
그저 먼 나라의 얘기이고 보니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차 그들의 사랑은 거의 마주쳐
지질 않는다.

장애인은 늘 정상인 주인공의 카운셀러이거나 그들과 친하게 지내는 동료일 뿐
- 인기 드라마인 [프라하의 연인]에서도 - 그 어떤 정상인 주인공이 장애인 등장인물
을 사랑하거나 더 나아가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들은 보릿자루 마냥 주인공의 심성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에 꿔다 놓아진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조제가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꽃미남을 독차지 하고마는
사랑의 주체자이며 그녀를 시기하는 다른 이쁜 여자 - 조제는 이쁘지 않다 - 에게
뺨까지 얻어 맞는다.
이 영화의 미덕은 이렇게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을 특수하게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장애인으로서 정상인에게 컴플렉스를 갖지 않으며 정상인으로서 장애인인
그녀를 동정하지 않는다.  조제가 가끔 보여주는 어리광이나 떼씀은 장애인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갈등의 모습이다.

있지도 않거나 혹은 어렴풋한 동정심이나 컴플렉스라는 건, 그 연인 사이에 있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속에 놓여 있다. 
그녀가 물고기 조명이 가득한 모텔방에서 그에게 말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너에게 주기 위해 저 어둠 속으로부터 왔어.'
가장 야한 섹스라는 말의 의미는 조제가 꿈꿔온 가장 화려하고 뜨거운 마음을 사랑하는
츠네오에게 주고 싶다는 열렬한 소망의 메시지이다. 

섹스란 때론 몸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픈 '세상 가장 야한 섹스'는 야한 체위를 얼마나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신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만큼 상대를 사랑하느냐에
달려있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주고 싶었던 세상 가장 야한 섹스를 받지도 않고 잠들어 버린 츠네코의 얼굴위로
흐르던 조제의 독백은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바다처럼 깊은 슬픔을 울려댄다. 
"네가 떠나고 나면 난 길 잃은 바다속 조개처럼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방황하겠지..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렇게 나쁘진 않아." 

그렇게 예감한 이별..  그 헤어짐이라는 것도 슬프지가 않아서 더욱 가슴 철렁하게
만드는 이별 뒤에,  조제는 다시... 완전한 혼자가 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잠깐 보여지는 조제의 말없는 모습은 우리에게 훨씬 더
성숙하고 달라진 모습을 암시하게 만든다.

우리가 장애인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의 눈매를 지극히 평범한 사랑의 모습으로 
녹여 없애고, 특별한 메시지가 없는 듯 하면서도 바다속 물고기들 처럼 가슴속을
상념들로 가득 떠다니게 만드는 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독특한
매력은,
마치 잘 말려 달콤하게 찐 호박처럼 늘러 붙지도, 많이 달콤하지도 않아서 
그렇게 흐믓한 미소로 관객의 입가에 번진다.

Filmania  CROP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