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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의 개과천선에 씁쓸한 건배를. 미스터 소크라테스
sieg2412 2005-12-02 오후 2:04:33 1624   [8]

'조직이 키운 장학생, 형사가 되어 돌아왔다'는 카피가 <미스터 소크라테스>를 그대로 대변한다. 조직과 형사의 상반되는 이미지 속에서 태동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뇌, 조화될 수 없는된 특성으로 인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두 그룹 상호간의 충돌 등이 이 영화에 모두 녹아 있으며, 이는 위의 카피 한 줄로 요약되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영화는 '형사'라는 외피와 '조직의 장학생'이라는 내질 중 그 어느 것을 선택할 수 없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최소한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장치를 깔아둘 수 있다. 이는 끊임없이 거론되어 온 <무간도>와는 다른 이야기이며, 이렇기에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충분히 영리한 영화다.

언급한 대로 구동혁은 조직에서 의도적으로 키워 침투시킨 경찰이기 때문에 기존의 형사물이나 조폭물처럼 일방통행이 아닌 양쪽의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 (영화는 심지어 벤 다이어그램을 직접 노출시킴으로써 상당히 노골적으로 이 상황을 보여준다.) 굳이 비슷한 유형을 찾자면 <경찰서를 털어라>의 마일즈에게서나 가져올 법한 이 중립적 캐릭터는 그러나, 그 태생적인 중간자적 위치 이전에 인간 구동혁으로서도 뉴트럴한 성향을 가지려는 노력을 여기저기 보인다. 가령 구동혁이 강짜를 부리는 취객을 주먹으로 다스리거나, 자신이 교육받기 전에 목격한 친구의 살인을 자신의 공과로 올려 체포하는 내용은 '조직의 형사'가 아닌 '구동혁'이라는 캐릭터를 선악의 개념이 모호한 상태로 정립하기 위한 하나의 기초공사다. 이런 노력이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시퀀스가 바로 초반의 면회 장면이다. (당초 범표 역을 맡을 뻔 했던 오광록이 분한) 아버지와의 대면에서 동혁 부자는 그야말로 '격의없는' 사이를 연출하는데, '부모도 아랑곳 없는' 패륜적 이미지를 캐릭터에 투영함으로써 내용 전개의 이점을 얻는다.

이리하여 장착하게 되는 '무기'는 바로 이후의 내용에 있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반부까지 대부분의 신에서 구동혁은 좌충우돌 성향을 가진 '무대포' 캐릭터로 남고, 덕분에 이후의 중요한 전개에서 모든 경우의 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조직원으로서의 길, 형사로서의 길, 인간 구동혁으로서의 길까지 모두 진입 가능한 길로 뚫어놓은 뒤,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지는 관객과의 머리싸움에서 최소 세 수 이상의 우위를 점하는 시나리오, 혹은 연출 실력은, 데뷔작을 말아먹은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라기엔 예삿 물건은 아니다.

변화무쌍한 주인공과 몇 단계의 상황적 변수를 깔아놓은 능란한 컨트롤에도 불구하고 <미스터 소크라테스>의 엔딩은 막다른 길로 치닫는다. 클라이맥스인 저택 안의 대치 신에서 구동혁은 분명 (여느 영화에선 하나, 혹은 둘이었을) 선택가능한 경우의 수가 무려 셋이었다. 그 갈림길에서 동혁은 신 반장을 제거하는 길을 택했고, 그 이전까지 형사의 길에 좀 더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였던 것을 감안할 때 꽤나 충격적인 선택으로 읽힐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결말부에 신 반장이 살아나면서부터 엉뚱한 해피엔딩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동필마저 경찰이 되는 라스트 신에 가면 헛웃음이 비집어 나올 뿐이다.

물론 어떤 엔딩을 선택할지라도 불만은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무작정' 해피엔딩은 곤란하다. 이렇게 끝맺기엔, 영화는 오랜 시간을 구동혁의 캐릭터 구축에 투자했으며, 그 결과 구동혁은 분명 <콜래트럴>의 빈센트나 <씬 시티>의 마브, 혹은 <콘스탄틴>에 준하는, 어쩌면 한국영화 사상 최고일지도 모르는 안티히어로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스터 소크라테스>의 엔딩은 구동혁의 캐릭터성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소심한 영웅주의로 회귀한 경우이며, 결국 동필마저 경찰로 '키워 낸다는' 점에선 얼핏 가부장적 냄새마저 풍긴다. (이건 <너는 내 운명>에 대한 순결 이데올로기 문제 제기와 같은 경우일지도 모른다. 해석은 알아서.)

어찌됐든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열린 결말도, 주인공만 홀로 남는 비정한 결말도 아닌 권선징악의 모티프를 한껏 살린 가족영화식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비록 '어쨌든 석세스' 식의 마무리는 오히려 더욱 찝찝한 느낌을 고조시키지만, 최소 영화의 2/3가량을 집중해 만들어낸 '구동혁'이라는 캐릭터는 마초일지언정 흥미롭기 그지없는 최고의 아웃사이더였다. 그 전반부의 노력이 너무도 가상한 나머지 후반부 들어서 급격히 떨어지는 낙차 큰 포크볼도 가까스로 스트라이크 존 안에 꽂아 넣는다. 결과적으로 엉뚱한 데 그 힘을 다하고 스러져 간 이 바닥의 넘버 원, '전방위 추진가능' 양아치 캐릭터의 몰락에 조의를 표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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