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을 보면 다카하시 루미코의 '메종일각'이 떠오르는데 전혀 상관없다. 아니 꼭 상관없다고 하기는 또 그렇네. '메종일각'에는 동성애자들이 안나온다뿐 만화 '메종일각'이나 이 영화 '메종 드 히미코'나 '마이노리티'를 소재로 하기는 마찬가지니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영화로 한국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누도 잇신 감독이 신작을 들고 우리곁을 찾아왔다. 이번엔 영화가 좀 더 세다. 말했듯 동성애자들이 모여사는 집 메종 드 히미코의 이야기다.
타이틀부터 범상치 않은 '메종 드 히미코'는 일본 유수의 제과회사에서 정성을 다해 만든 유럽풍 아이스크림같은 맛이다. 달콤하고 쌉사롬하며 게다가 얼핏보면 정말 유럽에서 만든 듯한 착각까지 불러 일으키는 고급 브랜드같은..
평범한 회사원인 여주인공 사오리는 결손가정 출신. 어렸을적 자신의 아버지가 게이임을 밝히고는 집을 나간 것. 아버지를 까맣게 잊고 살던 사오리는 어느날 동성애자들이 모여사는 실버타운 메종 드 히미코에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다.
마이노리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전세계 어느나라 작품이나 비장하고 스토리라인이 강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싱겁고 담백하게 만들려고 해도 마이노리티 자체가 벌써 평범하지 않은 만큼 이는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바램이다.
따라서 이런 영화들은 잘 만들 경우 관객들을 휘어잡을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작품의 포지셔닝을 이 방향으로 잡고 의도적으로 감동의 극대화를 노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는데 바로 일본영화들이다. 일본 영화들은 마이노리티를 다룰때 절대 신파의 함정에 빠져들지 않는다. 당연히 관객들도 영화를 보는내내 눈물반 콧물반 범벅이 되야하는 그런 상황은 여간해선 경험하기 힘들다. 일본영화만의 독특한 특징인데 이 작품도 그런 특징들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영화는 게이들 그것도 노인 동성애자들의 삶을 잔잔히 그리고 있다. 그러나 딱히 리얼리즘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담백하게 그리되 섬세한 미장센과 많이 신경쓴 듯한 시나리오의 조화를 통해 젖어들듯 말듯한 감흥을 시종일관 관객에게 선사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부터 지독한 감동보다 잔잔한 감동, 관객을 숨쉴틈없이 빨아들이는 이야기 전개보다는 여유있고 쉬어가며 심지어는 스토리에 꼭 몰두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가을소풍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마이노리티를 다루되 감동을 강요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나름의 치밀한 연출력을 통해 영화의 세계에서만 맛볼수있는 그 어떤 꿈같은 순간으로 관객을 부드럽게 안내해가는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잇신 감독은 '조제...'에서보다 더욱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연출력이 더 치밀해지고 감독으로서의 개성도 분명해지고 있다. 출연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명백히 '감독의 영화', '연출의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가 주연이다. 연기솜씨는 두말할 것도 없다. 조연인 다나카 민의 존재감과 나머지 호모 할아버지들의 연기도 더할 나위가 없다. 특히 나이트에서의 집단 댄스씬은 너무 멋졌다. 이런 잔잔한 영화에서는 보기드문 순간이라 순식간에 그 장면이 지나가버리자 어찌나 아쉽던지...
이 세상 그늘진 곳 그 어딘가에서 보일듯 말듯 마이노리티들이 살아간다. 그들에게도 푸른 하늘과 빛나는 햇살, 싱싱한 과일들, 그리고 맘놓고 살 수 있는 예쁜 집이 주어진다면 참 감사할 것이다. 물론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마이노리티들은 그런 세상에 짓눌려 한숨도 못쉬고 조용히 사라져 간다.
눈물이 맺히려는 순간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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