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건 본인을 닮은 피조물에 대한 창조적 열망에서 기인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셨고 아담의 외로움을 덜어주고자 이브를 만드셨다. 결국 남성과 여성은 태초부터 서로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반려자였다는 것이 성경구절에도 적나라하게 나와 있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이 세계의 지고지순한 통속적 논리이자 진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 그 평범한 진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다.
동성애라는 것이 죄악시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유명 인사들도 커밍아웃을 하며 국제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부릅뜬 시선을 완화시키려는 바람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시선은 냉정하다. 겉으로는 그들을 인정하는 듯 하면서도 안으로는 천대하고 멸시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관념이 아닐까. 대놓고 손가락질 하진 않는다 해도 조소의 농도가 짙은 눈빛이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소수에 가깝다.
사오리(시바사키 코우 역)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가정을 버리고 게이가 된 아버지때문에 겪었던 힘들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녀에겐 사회적인 통념이상의 개인적인 원한까지 스며들어 조소를 넘어선 증오의 감정마저도 그들을 향한 시선에 담겨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히미코(다나카 민 역)은 가족을 등지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떠났다. 그의 인생은 게이로써의 인생이었고 그가 일반인이었을 때보다 그의 게이로써의 인생은 전설처럼 빛나는 생애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생명의 빛이 가늘어질만큼 가늘어져 생의 끝을 기다리는 중이고 그런 그의 동성연인인 하루히코(오다기리 죠 역)는 그의 딸에게 부녀간의 재회를 계획하고 실행한다.
일단 이 영화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라는 점에서 상당한 호감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본 뒤 엄청난 만족감을 얻었기에 그의 또다른 영화에 느끼는 기대감은 상당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조제'를 봤던 사람이라면 분명 이 영화를 보길 원하고 기대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이영화는 게이라는 독특하고 평범하지 않은 소재를 취함으로써 영화의 외관에 심상찮은 파장을 심어놓았다. 하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평화롭다. 그리고 단순히 소재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는 소재로써의 차용일 뿐 이야기의 맥락의 중심에 서지 않는다. 이 영화는 게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지닌 일방적인 시선의 오해와 갈등에 대한 화해와 화합의 모색에 대한 이야기다.
게이도 사람이다. 그들도 기쁨을 느끼고 슬픔을 느낀다.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삶이 있고 그 삶의 고민도 존재한다. 우리가 공유하지 못하는 고민과 생각도 있겠지만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비슷한 부류의 사념도 존재한다. 게이이기 때문에 특이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이기에 누구와 별반 다를 바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평범하면서도 평화로운 삶이 스크린 저 너머에 펼쳐지고 우리는 사오리의 눈을 통해 그들에 대한 불쾌한 시선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한다. 사오리가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경계심이 무너져 이해심의 유입을 허용하며 그 이상의 교감으로 발전함은 관객에게 유연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말그대로 무언의 화해와 공존이 성립되고 모색되는 것이다. 서로간의 어마어마할 것 같던 이성관의 차이에 의한 오해의 벽은 대화와 관찰을 통해 허물어지고 서로에 대한 끈끈한 우정마저도 관철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순간을 은은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에는 분명 묘한 매력이 있다.
이는 우리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던 타인의 특별한 사정에 손을 내미는 것마냥 따스하다. 특히나 무지한 이들에 의해 병적인 취급까지 당하는 동성애라는 소재를 통해 삶의 진리까지도 투영하는 영화의 시선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는 의미로 관객의 가슴깊이 침전한다.
또한 영화는 무료한 일상의 여백으로 스며드는 사랑의 감정의 오묘함을 살며시 보여준다. 게이와 여자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도 이뤄지기 힘든 굴절된 감정의 발로이다. 그러나 어찌보면 그만큼이나 진실된 사랑도 없을 듯 하다. 몸이 아닌 마음이 가는 사랑이기에 만지고 싶은 몸은 없어도 보고 싶은 마음은 존재하는 법이라고 이 영화는 은근한 미소를 띠며 말하고 있다.
삶은 각자마다의 색이 있다. 누군가의 삶이 짙고 농염한 색채를 띤다면 어느 누군가의 삶은 옅고 명료한 색채를 띤다. 삶은 각자의 인생을 통해 주관적인 가치를 지니며 그것은 분명 타인의 잣대로써는 어쩔 수 없는 본인만의 고고한 작품으로써의 가치로 승격될 수 있는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영화는 자신이 지닌 삶의 빛깔의 유일성에 대한 가치를 나긋나긋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어조로 말하고자 한다. 살아있는 동안의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지, 만남과 헤어짐의 양갈래의 경험에서 보여지는 극단적인 삶의 교훈을 감미로우면서도 소박하게 노래하고 있다.
영화의 인상은 솔직히 평범하지 않다. 장난끼를 한가득 머금고 있다가도 그 순간 순간에 엄습하는 진지함과 솔직함에 숙연한 미소를 얻는다. 즐거움 너머에서 다가오는 삶의 진지한 성찰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흐믓함이 이 영화가 주는 기쁨이다.
우리가 박대하던 삶에 대한 또다른 시선을 보여줌으로써 느껴지는 삶의 무게를 동반한 이 영화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영화를 보는 기쁨을 아는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이 영화는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
어쨌든 그들의 이별의 고난을 통한 슬픔의 문턱을 넘어 다시 한번 만남의 기쁨에 들어서고 있었다. 삶이란 건 단정지을 수 없는 여정아닌가. 자신의 결정이 인생의 항로를 단정짓지 않는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삶의 여정에 대한 오만함을 여유있는 웃음으로 질타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또한 누군가의 무시당하는 삶에도 우리가 모르는 빛나는 순간의 가치가 있음을 꺠달아 주기를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엿보듯이 갈구하고 있다. 적어도 그 남자들의 사정을 한번쯤은 공감할 준비가 된 이에게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올 법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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